반년전 전역을 하고
부대에 있을땐 몰랐는데 늘 정정하시고 아침에 운동도 다니시고 저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던 할아버지께서(저희는 할머니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삽니다)조금 상태가 안좋아지셨음을 느꼈습니다
건망증이 생기신 걸까...하고 그냥 넘어가왔습니다
(연세가 90이 넘으셔서 그럴만 했으니까요)

그러다 최근 저희가 10년넘게 살아오던 집에서 이사를 갔습니다
집이 다른건 상관없는데 역까지 가는길이 먼건 아니지만 좀 복잡합니다
비슷한 골목을 몇개 지나서 가야해서 저도 이사간지 얼마안됐을때는 가끔 헷갈렸어요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신당동의 노인정같은 시설에서 그나마 남은 친구분들을 보시는데요
이사간지 6일정도 됐을무렵 처음으로 그길을 나가셨는데 집을 찾지 못하셔서 경찰지구대의 도움을 받아 모셔오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 때 부터 할아버지께 가족들이 매일 핸드폰을 충전시켜서 보내드리고 연락처같은거 못들어가실까봐 수첩에 집전화 아버지 어머니번호도 다 적어놓고 사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같이 동네를 돌면서 역가는법을 여러번 설명드렸더니 알겠다고 하시길래 안심했어요

근데 그일이 있고 바로 다음날 또 나가셨는데 또 집을 못찾으셨습니다 핸드폰은 어디두셨는지 잃어버리셨고 저희는 새벽까지 동네를 뒤지다 지구대에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그 사이 할아버지가 집에 잠시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셨는데 당신이 어디 계신지 모르겠다고 그러시는겁니다
역추적해본 결과 예전에 살던 집 근처였고 그쪽 지구대에 연락해서 다시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할아버지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또 못찾으셨어요?라고 물으시는데 대답이 집 못찾은거 아니다 주변산책하고 있었다 런식으로 말씀하시는겁니다
그렇게 정신이 없지 않다며..
아버지가 집에 전화해서 길잃었다고 하셨잖아요?? 라고 물으셔도 그런적이 없다고 하실뿐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치매가 오시는구나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치매라는게 건망증과 다른건 뭘 잊어버려서 물을 때, 아 맞다 그랬지 라는 반응이 나오면 건망증, 그게 뭔데? 그런적 없는데? 라는 반응이 나오면 치매라고 들었거든요.
예를 들면 앞치마를 하고 밖에나갔는데 거울을 보고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는게 건망증, 보고도 이상한걸 전혀 못느끼면 치매..라고 하나 확실하진 않지만요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계속 상태가 심해지시는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커피를 드신다고 유리주전자에 물을 올리셨는데 그냥 다시 잠드셔서 유리주전자에 플라스틱 뚜껑부분이 하도 달궈져서 다 녹아없어졌더군요
제가그날 술약속에 그냥 나갔으면 큰일났을 뻔했죠
집도 여러번 더 못찾으시고..
식사를 방금 하시고도 밥 차리라고 하시고
방금 드셨잖아요 이러면 언제 먹었냐며 대뜸 역정을 내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어머니랑 저는 아버지한테 치매가드신건 아닌가 하고 말씀드렸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역정을 내셨습니다
치매는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아버지도 어느정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듯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겠죠

그러다 며칠전 야근을하고 퇴근하는데 등본을 좀 떼오라고 아버지가 그러셨습니다
무슨일이시냐고 했더니 할아버지 치매판정? 이런 검사에 필요하다더군요(무슨 검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뭐랄까 씁쓸하고 슬픈 여운이 많이 남아있으셨습니다
또 최근에 할아버지가 식사하신뒤에 또 밥을 달라고 하시면 드셨잖아요 아버지..하시는 데 그 목소리가 정말.. 애잔하게 들리네요

아버지가 치매인걸 받아들이는건 무슨 기분일까요?
항상 넓은 등으로 자기를 지켜줄거같던 슈퍼맨같던 아버지가 치매인걸 느낄때의 기분은 어떤걸까요??..

요새 부쩍 그일로 말수도 줄어들고 우울해지신 아버지...
어떤 위로가 될수 있을까요 제가?
저마저 많이 마음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