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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곳, 에서.
게시물ID : panic_893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마추어눔나
추천 : 10
조회수 : 77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18 06: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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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그는 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맣구나.

그는 지직거리는 라디오의 전원을 끄고,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덜 깬건지 비틀, 한 발자국 헛내딛었다.

바닥에 먼지가 많네. 미리미리 치워둘걸.

그는 주린 배를 채우려 주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찬장을 뒤적거리길 얼마,

어두컴컴한 방에 홍채가 적응하자 곧 그는 오래 전 사다둔 통조림을 찾을 수 있었다.

통조림의 뚜껑은 약간 힘을 주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고,

그는 대충 옆에 있는 젓가락을 집어 통조림 안의 과일에 꽂아넣었다.

푹. 푹. 푹.

그러길 얼마, 젓가락을 통조림 속으로 넣고 몇번 휘적거린 뒤 그는 모두를 먹어치웠음을 깨달았다.

그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듯, 입맛을 다시다 고개를 젖히고 통조림의 국물을 마셨다.

탱그랑. 부딪히는 금속소리.

그는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바깥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은 그가 친구에게 빌렸던 물건을 갚기로 한 날이었다.

그는 길을 걸었다. 툭 튀어나온 보도블럭이 그의 발걸음을 불편하게 했다.

근처에 살던, 꽤 친하게 지내던 이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그는 장미로 지붕과 담벼락을 장식할거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로 종자를 심었었다.

중간에 게을러지기는 했지만, 과연 결실을 이룬듯 집 곳곳마다 붉게 피어있었다.

그는 잠깐 그곳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늦으면 친구에게 타박을 들으리라.

얼마간 걷자 이 동네에 유일하게 있는 대형 할인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 전에는 쇼핑하러 자주 들렀었는데.

요즘은 들를일이 없다.

그는 신호등을 흘긋 바라보고 교차로를 건넜다.

지금같이 사람도 차도 없을 때는, 무단횡단쯤은 괜찮겠지.

그렇게 또 얼마간. 얼마간. 얼마간.

그는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조금 바뀌어있어 여기가 맞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려봤지만, 확실히 친구의 집이었다.

그는 집안으로 걸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는 대문을 지나쳤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는 친구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어둠에 적응해 커진 동공이 그에게 정보를 말했다.

그의 친구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있었다.

마치 친구의 잠을 기다려주는 것처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는 친구를 향해 다가갔다.

한 발자국.

그는 다가가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흐느꼈다. 그는 울부짖었다.

깨진 가로등 대신 달빛이 대지를 비추고, 전화(戰火)가 불타오르고, 

폭격으로 무참하게 유린되고 파괴된,

폐허가 된 그의 도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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