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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게시물ID : sisa_5556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레고리오
추천 : 2
조회수 : 6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10 22:22:16
뉴스보다가 알리고 싶어서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링크를 남기긴 했지만 글을 몽땅 긁어 왔는데 괜찮나요?

소녀는 영특했다. 늘 교육을 강조하며 밤늦게까지 딸을 앉혀놓고 정치토론을 벌이던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9세에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 앞에 나와 학교 교육에 대해 발언할 정도로 조숙했다. 11살 때에는 영국 BBC방송 블로그에 가명으로 자신의 생활과 소녀들이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17·사진)가 살던 곳은 파키스탄 북서부 팍툰콰주의 밍고라였다. 소아마비 접종을 해주는 보건요원들이 외국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극단세력의 공격을 받는 파키스탄이지만, 그중에서도 밍고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깝고 탈레반이 기승을 부리던 곳이었다. 탈레반은 2009년 1월 모든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시킨 뒤 여학교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곡절 끝에 다시 학교들이 문을 열기는 했으나 극단주의자들은 여학생들을 계속 위협했다.

당시 이미 말랄라와 아버지 지아우딘은 BBC 블로그와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 등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2012년 10월 9일, 하교길 말랄라가 탄 버스에 탈레반이 들이닥쳤다. 이마와 어깨에 총탄을 맞은 말랄라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근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을 찾지 못했다. 

말랄라는 가족과 함께 영국 버밍엄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 사건이 보도되자 세계가 들끓었다. 파키스탄 온건 이슬람지도자 50여명은 범인들을 규탄하는 포고를 발표했고, 여성교육권 운동에 200만명이 서명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서둘러 교육권리법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글로벌교육특사였던 고든 브라운 전 영국총리는 2013년 ‘나는 말랄라(I am Malala)’라는 슬로건으로 2015년까지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말랄라’라는 이름은 그가 속한 파슈툰족 말로 ‘비탄에 빠진’이라는 뜻이고, ‘유사프자이’는 유력한 부족연합체 이름이다. 시인이자 교사인 아버지 지아우딘은 파슈툰의 유명한 시인이자 여전사였던 말랄라이 마이완드의 이름을 딸에게 붙여줬다. 말랄라는 어린 나이에 공포와 고통을 겪었지만 ‘비탄에 빠진 채’ 머무르지 않았다. 영국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 세계를 돌며 여성교육을 역설하는 운동가가 됐다. 

2013년 7월 12일 열 여섯번째 생일을 맞은 말랄라가 유엔본부의 연단에 섰다. “테러리스트들은 제 목표와 열망을 빼앗아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게 있습니다. 저의 약함, 공포, 절망은 사라졌고 강함, 힘,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저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엔은 이 날을 ‘말랄라의 날’로 정했으며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를 “우리의 영웅”이라 불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10대 소녀’가 된 말랄라는 석달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드론(무인기) 공격을 하는 것에 항의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말랄라를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10일 “말랄라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여성교육권을 위한 싸움을 해온 여성교육의 대변인”이라며 그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이 “세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뽑힌 말랄라는 오는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상을 받는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101947231&code=9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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