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힘내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자상하신 아버지죠?
올해 3월 6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문자를 받아봅니다.
'주소 문자로 보내라 아빠'
주소를 보내드린 며칠 뒤.
시골에서 직접 건강원에 사과를 맡겨서 쥬스를 짜서 보내주셨습니다.
제 나이 25살. 아버지 연세 65세.
늦둥이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받아 본 선물입니다.
아버지께 처음받는 선물, 아버지께 처음 들어보는 '힘내라'는 말 한마디.
이걸 듣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희집은 제가 타어날때부터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가난에 대한 어려움이야 쌓으려고하면 이루 말할기도 힘들겠지만...
가난이란 게 정말 힘든거란 걸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 진학할 무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규교육은 중학교까지입니다.
고등학교는 공립을 들어가는 사립을 들어가는 아무래도 교육비 지출이 크지요.
저는 형편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를 6학년을 마치는 겨울방학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경상도에 살았고, 경기도에 친척이 하는 공장이 있어서
거기에서 초등학교 6학년 겨울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여름 방학 1달, 겨울방학 2달. 이렇게 1년에 약 300만원의 돈과 학교에서 나오는 장학금으로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이들 다 가기 싫어하는 보충수업을 듣는 게 너무나 해보고 싶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야근과 특근이 있는 날이면 밤 12시까지.
그렇지 않은 보통 밤 9시까지 공장에서 일을하며
이 시간에 친구들과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뜻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게 된 것이
중학교 3학년.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 조차 가기 힘들어지자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을하며 돈을 벌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께 반기를 듭니다.
'저는 당장 한달 한달의 월급보다, 더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일하던 공장의 사장님이던 친척분에게
아버지께 통화를 드릴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렇게하여 어렵게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야자를 시작한 첫날.
갑작스레 담임선생님이 저를 부르십니다.
'아버지가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욕을하시면서
야자는 불법 아니냐고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결국 저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 뒷바라지를 하러
야자를 못하고 집에 가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다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여느 때처럼 공장에서 일을하고 있는데
친척분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장님의 형수님께서
'삼촌(저를 부르는 호칭)도 이제 고등학교 막바지인데
공부하도록 좀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요.'
공장 사장님이던 친척형께서 기숙사비를 대주시고
혹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 등록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난 5년 간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던 꾸준함이면
한번 믿어볼만 하다시며 정말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 2학년 11월.
공부를 반대하는 아버지가 두려워 집에는 편지를 한통 써놓고
고등학교 기숙사로 가출을 합니다.
3개월 뒤, 집에서 전화가 옵니다.
'여기가 살기 어려워 경기도로 이사 간다.'
저는 대학 진학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 채
혼자 시골에 살게 됩니다.
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가 문을 닫는 토요일에는
학교 당직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열쇠를 받아
혼자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다가 교실에서 책상을 붙여놓고 잠을 잤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과외나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책을 살 돈도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3학년 형들이 버린 교재들을 주워다
지난 년도 ebs교재로 공부를 했습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란 말로 저를 옹호하며
가끔씩 공부에 손을 놓은 후배들 교실에 몰래 들어가서 필요한 책을 훔쳐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수능 500점 만점이던 때, 2학년 학기말 모의고사 점수는 200점도 채 안나오는 상황.
1년의 죽기살기의 공부로 수능 때까지 평균 월 20점씩 점수가 올라서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으로 진학을 합니다.
친척분께는 대학교 1학년때까지 학비를 지원받고
그 이후부터는 지금까지 계속 혼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집에 상조도 들고 가끔 용돈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25살.
아버지께 문자가 옵니다.
"아들 고생많치! 지식은 금이다.힘내라!!!!"
아마 저말은
미안하다는 말씀이실 겁니다.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으시겠다며 고집을 굽히지 않고
고등학교 때 야자도 하지 못하게 교장선생님께 전화해서 욕을 하시던 당신께서
아버지 연세 환갑이 넘은 지금.
처음으로 아들에게 힘을 내라고 말씀을 해주십니다.
지금 이글을 보는 분들중에서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혹은 너무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한 부모님의 성격 때문에
부모님이 너무나 밉고 힘들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정말 맞더군요.
그렇게 무섭고 고집을 꺾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서
이제는 아들이 자랑이고, 전화하면 '어~ 아들이나~'
이렇게 반가워하십니다.
저는 지금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열심히 돈을 벌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힘이 듭니다. 가끔 정말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꿈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며 그것을 제 모자람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삼지 않겠다는 좌우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무서운 모습도 온데간데 없고
이빨빠진 호랑이 마냥 허허 웃으시는 아버지가 계십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공부하는 거... 사는 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저보다 더 힘든 여견 속에서도
열심히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글을 보는 분들도
시간이 얼마 없다고 좌절하시는 분들도
가난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