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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메이크] 빨간 마차
게시물ID : panic_893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루나틱프릭
추천 : 10
조회수 : 110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7/18 17:18:07
배낭여행은 처음이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낯 선 얼굴을 한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혼자서 여행한다는 그 기분.
한동안 알바비를 아끼고 아껴 그토록 소원하던 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는 거리 구석구석을 다니며 먹고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던 중 한 골목에 들어섰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음침하고 어두운 골목
그 골목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신처럼 보였다.

 "꺄아아악!"

별안간 누군가가 비명을 질러댔다. 깜짝 놀란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여행을 오셨소?"

이역만리에서 들리는 익숙한 언어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빨간 옷에 어울리는 붉은 머리를 한 할머니였다. 그녀의 손에는 금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시나요?"
 "물론이죠. 조선 분들을 많이 뵈었는걸요."
 "그럼 소리를 지른 게...?"
 "호호, 그냥 장난을 한번 쳐보고 싶었어요"

그는 왠지 모르게 노인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는 자신의 빵을 노파에게 내밀고
그의 옆에 자리잡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거의 원어민 수준의 한국말을 할 수 있었다.
노파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소싯적엔 여러 남자들을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이
나이를 많이 먹었음에도 그 기품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행색이었다. 
그리고 그는 노파에게 점점 빠져들었다.

 "아, 그보다도 이 거리에 내려오는 전설을 아시는지?"
 "전설이요?"

노파는 미소지었다. 빠진 이를 훤히 드러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소름끼쳤다.

 "그래요. 이 거리에는 전설이 있지.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요."

노파는 주변을 더듬거리다 곁에 있는 악기를 집어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능숙한 솜씨로 악기를 연주하였다. 그의 입에서 시인지 노래인지 모를 가락이 나왔다.

 빨간 마차가 이곳에 나타났다.
 붉은 털의 새하얀 말들이 울부짖는다.

 빨간 마차가 거리를 배회한다
 붉은 머리와 붉은 눈을 가졌다

 빨간 마차가 누군가를 찾는다
 그 눈이 불타기 시작했다

 빨간 마차가 그들을 찾았다
 눈꽃처럼 하얀 순결을 가진 그들을

 빨간 마차가 거리를 떠나간다
 붉은 영혼과 붉은 심장을 가지고

노파는 이 시를 다 읊고 난 후 그에게 물었다.

 "이 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소?"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듣기에는 빨간 마차가 멋있게 보이는데요."

노파가 허허 웃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이 곳은 봉건제도 하에 신분 사회를 유지한 곳이었다.
농민들의 생활은 궁핍했지만 귀족들의 배는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온 영주는 다른 모양이었다. 선정을 한없이 베푸는 그를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불가촉천민조차 능력이 출중하다면 영주의 성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잘 정돈된 금발에 아기자기한 생김새,
가녀린 목선과 가늘고 예쁜 모양새를 한 팔다리를 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항상 성내의 시인과 함께 마차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웅장한 붉은 색 마차는 마치 전쟁터에서 쓰일 모양새였지만 
하얗디 하얀 그녀가 위에 있을 때는 세상 어느 마차보다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다.
그 마차를 끄는 말 또한 갈기털부터 꼬리까지 하얀색의 우수한 종마들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그녀는 마차를 타고 거리를 그냥저냥 다니고 있었다.
그날따라 새로운 곳이 너무나도 가보고 싶었던지 그녀는 마부에게 요청했다.

 "오늘은 저기 골목길로 가주겠어요?"
 "마님, 저기는......"

마부는 주저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 골목은 이 곳의 악명높은 부랑자 골목이었으니까.
아무런 호위도 없이 그들끼리 골목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임이 분명했지만 
그녀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마부는 그녀의 성화에 못이겨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그닥 다그닥

아무도 없이 정적만 가득한 골목에 말발굽 소리만 울려퍼졌다.
마부는 불안했다.

 "마님, 이제 돌아가심이......"

이것이 마부의 마지막 말이었다. 영애가 보는 앞에서 
마부의 목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시 떨어졌다. 그의 목에서 나오는 피는
분수처럼 흩어져 마차 여기저기를 장식했다. 말들이 발굽을 치켜올리며 놀라 소리질렀다.

마차 안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침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부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영애를 향해 어두운 손길이 뻗쳤다.
귀족의 마차를 노린 것은 가격도 가격이었음이지만, 어두운 손들의 생각은 또 다른 곳에 미치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는 무참히 짓이겨졌다.

 그 후 이 영지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토록 온정을 펼치던 영주는 폭군으로 돌변하여 이 영지의 남자들을 닥치는대로 살해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농민들의 손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변화는 그녀가 죽은 골목에 주인 없는 마차가 계속 배회한다는 것.
어둠 속에서 말 발굽 소리가 들리고 그 곳에는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여자가 몰고 다니는
붉은 마차가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붉은 마차가 지나가다가 남자들을 마주치면 그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별안간에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었다. 

영애를 짓밟고 살해한 자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영지 밖의 개울에서 처참한 몰골로 발견된 그들은 눈과 심장이 뽑힌 채 난도질당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마차에 탄 여자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영애가 아니었을까 싶었지만
아직도 그 마차는 이 골목에 나타난다.

 빨간 마차가 이곳에 나타났다.
 붉게 물든 새하얀 말들이 울부짖는다.

 빨간 마차가 거리를 배회한다
 피에 젖은 머리와 충혈된 눈을 가졌다

 빨간 마차가 누군가를 찾는다
 그 눈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빨간 마차가 그들을 찾았다
 눈꽃처럼 하얀 순결을 빼앗은 그들을

 빨간 마차가 거리를 떠나간다
 붉은 영혼과 붉은 심장을 빼앗고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말했다.

 "재미 있었소? 여기까지 지어 내는 데에 5분 정도 걸렸구려."
 "아 뭡니까?"

그는 실소를 내뱉었다. 
그래 이런 이야기가 진실일 리가 없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갈 길을 가기 위해 노인에게 인사했다.

 "가보는 것이오?"
 "네, 예상보다 늦었네요."

노파는 어딘지 모르게 슬픈 얼굴을 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시길."
 "네, 할머니도 건강하게 계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골목 밖으로 걸어갔다.

 다그닥 다그닥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의 노파는 사라지고 저 골목 멀리 붉은색 마차 한 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출처 빨간 마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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