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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열림과 닫힘의 관계를 생각한다
게시물ID : lovestory_893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4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2/14 09:46:47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obPwxNmpU2g






1.jpg

정호승밤의 십자가

 

 

 

밤의 서울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마다 노숙자 한 사람씩 못 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떤 이는 죽지 않고 온몸을 새처럼

푸르르 떨고 있고

어떤 이는 지금 막 손과 발에 못질을 끝내고

축 늘어져 있고

또 어떤 이는 옆구리에서 흐른 피가

한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비바람도 천둥도 치지 않는다

밤하늘엔 별들만 총총하다

시민들은 가족의 그림자들까지 한집에 모여

도란도란 밥을 먹거나

비디오를 보거나 발기가 되거나

술에 취해 잠이 들 뿐

아무도 서울의 밤하늘에 노숙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줄을 모른다

먼동이 트고

하나둘 십자가의 불이 꺼지고

샛별도 빛을 잃자

누구인가 검은 구름을 뚫고

고요히 새벽하늘 너머로

십자가에 매달린 노숙자들을

한명씩 차례차례로 포근히

엄마처럼 안아 내릴 뿐







2.jpg

서안나베란다

 

 

 

나는 문그는 베란다

나는 그의 밖에 있고

그는 나의 밖에 있다

 

나를 열면 그는 반쯤 내가 된다

나를 닫으면 그는 마술처럼 사라져버린다

정작 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내 두 눈이 그를 밀어낸 것뿐이다

 

나를 떼어 내면

그는 바람 잘 통하는 훌륭한 거실이 된다

사랑이라는 바람만 남는다

내가 사라진 것도

세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랑의 밖이며 안이다

 

문을 열고 닫는 일

어쩌지 못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향해 뻗어가는

퇴화식물 뿌리 같은 캄캄한 눈동자

사랑아

문에 접질려 피멍 든 손가락으로

어디서 울고 있는가

 

거실문을 열고 닫을 때

열림과 닫힘의 관계를 생각한다







3.jpg

함순례빗속 문답

 

 

 

이 비를 무어라 할까요

 

안개비 이슬비 부슬비 가랑비 는개

되는 대로 불러도

그 마음 이 마음에 젖어들지 않겠습니까







4.jpg

백석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높은 것이 있어서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한탄이며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5.jpg

신경림장마

 

 

 

온 집안에 퀴퀴한 돼지 비린내

사무실패들이 이장집 사랑방에서

종돈을 잡아 날궂이를 벌인 덕에

우리들 한산 인부는 헛간에 죽치고

개평 돼지비계를 새우젓에 찍는다

끗발나던 금광시절 요릿집 애기 끝에

음담패설로 신바람이 나다가도

벌써 예니레째 비가 쏟아져

담배도 전표도 바닥난 주머니

작업복과 뼛속까지 스미는 곰팡내

술이 얼근히 오르면 가마니짝 위에서

국수내기 나이롱뻥을 치고는

비닐우산으로 머리를 가리고

텅 빈 공사장엘 올라가본다

물 구경 나온 아낙네들은 우리 피해

녹슨 트랙터 뒤에 가 숨고

그 유월에 아들을 잃은 밥 집 할머니가

넋을 잃고 앉아 비를 맞는 장마철

서형은 바람기 있는 여편네 걱정을 하고

박서방은 끝내 못 사준 딸년의

살이 비치는 그 양말 타령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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