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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아는 것. 유식함.
게시물ID : phil_9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1
조회수 : 43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12 00:42:13

다른 말로 잘난 척. 아는 척. 유세 떤다.

조금 더 아는 것은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고 배웠다는 뜻이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그들에게 배울 수도 있다는 것.

다른 말로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지식을 무엇에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함.

1. 내가 더 많이 아는 정보를 이용해 상대방을 억누르고, 짖밟는 행위.

상대적으로 '악'이라고 치부된 대상에게 사용했을 때 가장 효과를 볼 수 있음.

거짓말을 하거나, 혹은 잘못된 상식이나 지식을 내세워 텃세부리는 경우에 효과적임.

즉 이런 경우에는 내가 선의 위치에 서있거나 혹은 중재하는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음.

대표적인 위치로 법으로 중재하는 판사라고 볼 수 있음.

반대로 이것을 이용해 교묘하게 상대방을 농간하고 우롱할 수도 있음.

'내가 이만큼 아니 당신은 나보다 부족한 사람.'이라는 전제를 기본적으로 까는 경우에

말투나 어조가 강해지며 정상적인 비판보다는 나보다 덜떨어진 사람이라는 감정이 앞서

결국 비난하고 조롱하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음.

이런 경우에는 지식의 한계가 드러날 때까지 상대를 비난하고 비방하다가,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에서 '감정적'인 요인 덕분에 결국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행위가 나타남.

2. 더 많이 아는 것,

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함.

특히 철학에서 이런 시작과 끝을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 하다고 봄.

인간이 살면서 끝은 죽음 뿐이며, 끝을 알자는 것은 다가설 수 없는 성역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함.

물론 현재로써는 과학적으로도 풀어헤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함. 

아무리 끝을 알 수 없다고 한들, 지금 내 앞에 놓인 문제들도 많을 뿐더러,

우리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

질문하고, 대답하고, 대화를 통해서 또 책을 읽고 어떤 매체를 통해 공부를 하는 등의 지식을 쌓거나 공유할 때,

가끔 사람이 어떤 특수한 심리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상황이 생김.

예를 들어서 내가 공부했던 학문이나 취미, 직업적으로 혹은 과거 연습했던 어떤 재주따위 등에서

상대방에게 나를 어필할 수 있고, 나의 유식을 자랑할 수 있는 상황일 경우.

혹은 여러 심리적인 상황에서 대화나 토론 혹은 언쟁이 벌어진 상황에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나뉘게 되었을 때,

군중심리가 발생했을 때에도 적용되며, 특히 사회운동이나 어떤 규범이나 혹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집단 등.

이 사람들의 특징은 멈춰있다는 것. 후퇴했으면 했지, 진전은 없다는 점.

지금 그 상태에서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집단을 따라 목표를 따라 몰개성화하는 현상이 더 나타남.

즉, 지금 이 상황에 우월함에만 치중된 채 스스로 망각하고 착각하는 상태.

자기가 속한 집단이 상대적으로 유식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할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함.

3. 가르침.

지식을 나누는, 그리고 가르치는 교육이 대표적.

초중고, 대학교나 연수원, 어학원 등 상대적으로 배운 것이 많은 유식한 사람들에 의해서가 대부분.

가르침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는 누군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나, 그것이 주 목표인 상황일 때,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그것이 주 목표가 아닐 때라고 분류함.

전자는 학교 교사가 대표적이겠고,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혹은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거나, 인생의 조언 혹은 격려해주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음.

후자는 직업 강사나 학원 강사 등 계약직 강사로 가르치는 것이 의무가 아닌 직업적 선택에 의한 경우가 많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 직업이나 분야에서 '가르침'을 목적으로 둔 것이 아니라,

다른 '돈'이나 '돈'따위나 '돈'이 필요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함.

그러니까 정말로 가르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라고 봄.

후자에 더 많은 분류가 들어갈 수 있음. 2번에서 말했듯 특수한 심리가 발생한 상황이거나,

혹은 친구나 연인의 고민상담이 예일 수도 있겠다.

전자의 사람들은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 혹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고, 가르치며 또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공유하기도 한다.

후자의 사람들은 가르침을 쉽게 여겨 얕보거나 깔보는 느낌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직업 강사일 경우, 내가 소신껏 가르쳐야 할 의무는 없다. 그냥 돈을 받는 만큼만 하면 된다.

뭔가를 잘 아는 상황이거나 혹은 대화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상황이라면,

그것에 대한 해답만 내놓고는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진심과 정성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자는 나의 일이 아님에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겠고,

후자는 나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분류했다.

4. 유세. 잘난 척. 오지랖. 그것들의 상관관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도 그렇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내가 해주고 싶은 욕구가 든다.

"너는 그것도 못하냐?" 라면서 우습게 보면서 그 일이 마치 쉬운 일처럼 생각한다.

정작 이렇게 유세떨어놓고는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 유머다.

우리에게도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마찬가지다.

유년기 시절 호기심에 가득 차 무엇이던 만져보고 결국 사고를 치는 아이처럼,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 꼬마가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하고 "왜?"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의 그런 욕구는 항상 존재하고 영원하다.

위에서 두 번이나 다뤘듯 사람들은 '잘난 척'하는 것을 몹시나 좋아한다.

아마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난 척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다시 망신당하기 싫으니까.

그런데 심리라는 것이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허졉한 인간이 아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것 혹은 잘 하는 것 혹은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려고 한다.

즉 과시욕이다. 이런 쪽에선 좋은 과시욕이라고 부르겠다.

누구나 다 신뢰가는, 호감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때로는 좋은 과시욕이 이런 상황에서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되면 그것은 곧 나쁜 결과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각인시켰다면

우리가 각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그런 과시에 물들어 우월함에 매료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오지랖으로 사소한 간섭으로 나타날 것이며, 나중에는 반드시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즉 어떤 부분에서 우월하다는 착각이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로 나타나며,

그것이 곧 오지랖이 되는 것이며, 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5. 지식은 곧 힘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내가 얼마만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만큼 알은 것을 통하여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성을 억제하고, 감정을 억누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배움을 통해서 동시에 지식을 쌓아가면서 내 내면을 더 가꾼다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더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잘난 척'이라는 글을 보고 써봤습니다.

저도 본문에 나온 과시욕구를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중요한 건 무언가를 안다는 것보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항상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하며,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나 자신을 아는 것, 그리고 반성하는 것이라고 느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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