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딸아이가 우리 나이로 3살, 생후 22개월, 두 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여기서 놀 거야.”
“이거 맛이 없어. 우유 줘.”
“모자 그렸어.”
“엄마 일루와.”
꼬물꼬물하던 것이 언제 사람처럼 되나 했는데 이제 제법 제가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엄마와 떨어져 한참 놀이에 몰입한다. 드디어 대상항상성이 생겼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는가. 타로카드 뒤집기 놀이에 빠진 딸을 옆에 두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그녀가 자신에게 눈을 뗄 수 있게 허락해준다니! 아 이게 얼마나 꿈만 같은가.
친한 작가샘과 함께 공동저자로 육아일기를 써볼까 하고 시장조사를 했는데, 요즘 ‘닥치고군대육아’가 핫하단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요는 ‘닥치고 3년만 고생해라’ 란다. 3년 동안 빡세게(?) 육아에 몰입하면 이후가 편해진다면서.
그런데 아이 낳고 키우는 게 정말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군대 가면 이런 기분인가. 임상심리수련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그 뭐랄까, 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심적, 육체적 어려움.
나더러 지인들이 블로그 왜 안 하냐고 하는데, 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출판사에서는 약속된 원고 언제 보내주냐고 하는데 글을 쓸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의원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 빨리 보내달라고 하는데, 빨리 쓸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일할 때에는 나가서 한창 일하다가
집에 오면 “엄마!” 하며 현관문까지 한달음에 달려오는 딸아이 앞에서,
내 가치관에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니
퇴근 후 아이와 노는 것 외에 달리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나는 집에서 많은 시간 일해야 하는 프리랜서라는...;;)
애교 작렬이 우리 딸.. 자꾸만 눈웃음으로 사람 유혹한다..
그나마 일을 안 잡아 쉬는 날엔 하루 종일 딸아이와 놀다가
그녀가 낮잠 자는 시간에는 나도 녹초가 되어 버려 같이 꿀잠자고..
눈뜨면 또다시 계속되는 그녀와의 시간.
딸아이와 제대로 놀아보겠다고, 그토록 많은 심리상담 관련 자격증을 따고
또 놀이치료사 자격증까지 땄으니...;; 나도 못말리는 극성 엄마인가.
초승달 눈웃음, 딸아이의 살인적인 미소에
육아로 고달프던 마음도 흐물흐물해져
한쪽 구석이 따뜻해지면서... 그래! 이맛이지!!!! 이런 기분이면 아이를 둘 셋 넷 다섯도 낳겠어! 하고 있으니.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구나.
그러다가도 딸아이의 황제병과 엄마에 대한 엄청난 집착 앞에선, “오매매, 육아는 정말 힘든 거야!” 하며, 휴. 그래도 하나라 다행이지. 아이를 둘 셋 씩 키우는 전업맘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들을 키워내신 세상의 엄마들을 존경하면서...
특히 전업맘들 대단하십니다, 정말.
딸아, 너를 얻으면서 나는 또다른 많은 것을 얻었지.
아줌마란 이름과 늘어난 뱃가죽에 주름살, 경력단절.
뼈아픈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통...
웃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란다.
사랑한다. 고맙다, 내게 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