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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문명의 발전
게시물ID : panic_894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34
조회수 : 3278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6/07/21 08: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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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전

 

서기 2523. 세계는 평화롭다.

 

심심하다. 너무 너무 심심하다. 너무 너무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

 

지주어른은 너무 심심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규모의 장원을 소유하고 어마어마한 수확물을 매년 벌어들이는 지주어른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일은 모두 즐겨 보았다. 궁궐같이 크고 화려한 대저택, 승마, 사냥, 좋은 술과 맛있는 음식, 멋진 여자 기타 등등…….

 

 

인간이 제아무리 폭력적이고 멍청하다고 해도 한 번의 세계 대전을 겪고 나면 싫어도 깨닫게 된다.

전쟁이란 정말로 무시무시하다는 것!

 

1914년에 발발하여 1918년에 종결된 역사 유일의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는 전쟁의 공포에 떨며 하나로 통합되었다. 인류는 생각했다.

만약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수많은 평화조약들이 난립했고, 놀랍게도 그 조약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리고 21세기가 오기 전 지구상의 모든 전쟁이 종식되었다.

 

인류는 번영하는 동시에 퇴보했다. 탱크와 장갑차를 보다 힘차게 달리게 하기 위한 연구가 중단되자 자동차가 점차 퇴보하여 사라졌고, 대륙간탄도탄을 날리기 위한 로켓연구가 중단되자 인공위성과 위성 TV는 나타나지도 못했다. 전쟁을 위한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인터넷이 발명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미 누리고 있던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동안의 편의와 안락을 누리던 사람들이 참지 못하겠지만, 원래부터 없던 것이 발명되지 않은 정도의 상황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였다.

엄청난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무리 평화스러운 세상이라고 해도 빈부의 차이와 재벌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들에 비해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만족을 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농장과 광산을 가진 지주어른이 생각했다.

 

심심하다. 너무 너무 심심하다. 너무 너무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 돈도 충분하고 시간도 많은데, 할 일이 너무 없다. 지금보다 문명이 더 발전해 있다면 나는 지금 보다 더 풍족하고 환상적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가진 말 중에 가장 빠른 말보다 더 빠른 무언가를 타고 다닐지도 모르고, 지금 살고 있는 아흔 아홉칸 짜리 기와집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집에서 살 수 있었을 지도 몰라. 혹시 모르지 하늘을 날아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상의 모든 곳을 여행할 수 있었을 수도 있어. 어쩌면 100년이나 200년 쯤 후에는 나보다 훨씬 가난한 녀석들도 그런 환상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이거 너무 불공평 한데. 단지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 발명될 문명을 누리지 못하다니. , 너무 억울하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던 지주어른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학자들을 모두 모아 엄청난 돈을 내밀며 명령했다.

 

지금 당장 이 세상의 문명을 500년 이상 발전시켜라.”

 

이 말도 안되는 의뢰에, 많은 학자들은 지주어른의 정신상태를 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 말도 안되는 의뢰만큼 말도 안되는 것이, 지주어른이 재안한 성공수당의 액수 였다. 이정도 돈을 받을 수 있다면 달까지 맨발로 걸어갔다 오는 것도 심사숙고 할 만큼, 압도적인 성공수당에 몇몇 학자들은 당장 문명을 발전시킬 방법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학자 중 슈바인스타이거박사는 지주어른의 요구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마침내 찾아내고 말았다.

 

문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꾸면 됩니다.”

 

박사의 연구는 시간이동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물질문명을 현대로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과거로 어떠한 사물을 보내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여행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했다. 과거로 물건을 한번 보낼 때마다 지주어른의 재산 중 20%에 달하는 금액의 황금이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지주어른의 전재산을 다 합친다고 하여도 과거로 물건을 보내는 시도는 딱 다섯 번이 한계라는 것이다.

 

지주어른과 박사는 심사숙고했다. 역사를 뒤바꿀 만한 물건은 뭐가 있을까?

먼저 발달된 현대과학의 모든 자료를 담은 책을 과거로 보내 보았다. 도자기의 강도를 다섯 배 이상 올릴 수 있는 유약의 제조방법. 마차 바퀴의 흔들림을 혁신적으로 줄여주는 베어링배치방법, 세제없이 세탁이 가능한 수동세탁기 설계도, 가축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천연사료배합법 등등 이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지켜주는 최첨단 기술들을 대략 500년 전인 서기2000년에 보내 보았다.

막대한 황금을 소비하며 현대과학의 정수를 과거에 전달하고 역사와 문명이 바뀌기를 기다렸지만 세상은 아무 변화 없이 여전히 아름답고 따분했다.

 

어째서 아무 변화가 없는 거지?”

 

지주어른이 박사를 닦달했지만 박사도 이 현상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전송이 실패 했나? 아니야 전송은 확실히 성공했어. 그러면 전송좌표가 잘못되어서 책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 건가? 가령 깊은 바다나 숲속 같은 곳. 아니야 좌표 설정도 완벽하게 했어. 틀림없이 2000년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도서관으로 보냈는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지?’

 

박사는 이 당시 대학생들은 특별한 과제라도 생기지 않는 한 도서관 구석에 꽂혀 있는 이름 모를 책 따위는 절대로 찾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2523년의 대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하면, 각 학교 도서관의 책들을 모조리 읽어보는 것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 것이다. 하지만 500년 전의 대학생들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지주어른과 박사는 다시 고민했다. 이번에는 자료와 정보 보다는 현대과학의 결과물을 보내기로 했다. 역사를 뒤바꿀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참신한 물건은 바로…….

 

. 지주어른 말씀하신 물건 가지고 왔습니다.”

 

젊은 하인 한명이 등에 거대한 상자를 지고 왔다. 지주어른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이 물건을 과거로 보낸다면 순식간에 문명이 발전할 것이고, 자신은 그 뛰어난 문명의 해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르신 저는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짐을 지고 온 젊은 하인이 슬그머니 나가려고 했다. 지주어른은 그 하인에게 호통을 쳤다.

 

가긴 어딜 가! 이 상자를 전송기 안쪽으로 옮기고 박사님이 일 하는 걸 도와야지. 네놈은 언제까지 그렇게 요령만 피우고, 요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거냐?”

 

지주 어른은 이 하인이 평소에도 적잖이 마음에 안들었다. 사내 녀석이 일할 생각은 않고 그림을 그린답시고 설치고, 자기애에 지나치게 빠진 나르시스트이니 지주어른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그래서 간혹 이렇게 직접 붙잡고 힘든 일을 시키곤 한다.

하인은 낑낑거리며 상자를 전송기 속에 넣고 있었다. 그 힘겨워 하는 모습도 요령피우는 것으로 보여 부아가 난 지주어른은 하인의 등을 확 떠밀었다. 그런데 하인이 무거운 상자와 함께 떨어져 큰 충격이 가해지자 전송기가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박사와 지주어른이 전송기를 멈추러했지만 하인은 그대로 과거로 전송되어 버렸다. 박사가 확인하니 1918년 세계대전 직후로 날아가 버린 듯 했다.

지주어른은 화가 났다. 보내야 할 상자는 그대로 남았고, 하인만 전송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주어른은 하인의 이름을 욕설과 함께 소리높혀 외쳤다.

 

아돌프!!! 이 개놈의 자식아!!!”

 

그 순간 지주어른이 살고 있던 시절의 문명이 변하기 시작했다.

출처 http://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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