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이 더 웃긴다.. *************************************************** 나는 서울 모처에서 시설경비분야에 근무중인 공익근무요원이다. 야간근무중 새벽에 심심하기도 하고 모기와 싸우다 지쳐서 초소를 나와 잠시 밖을 서성이고 있는데, 저쪽 구석에 책 몇권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중학교용 참고서 몇권이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몇 권 들고와서 그 옛날 기억을 되살리며 책장을 넘기는데...! 98년 과정대비 두산동아에서 나온 한달음 사회자습서 중1 견본 책에서 반으로 접힌 편지가 한장 나왔다.. 으흐흐~ 참고서 주인은 여자아이였으며 견본인걸로 보아 선생님과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단정한 아이로 추측된다. 자, 우선 편지의 전문을 읽어보자. to. 영주. ♥♥♥♥♥♥ 안녕? 영주야. 나야. 세규. 너의 편지 잘 받았어 혜원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좀 서운했어. 너의 답장이 와서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난 굉장히 용기를 내서 너한테 고백했는데. 영주야. 다시한번 생각해보겠니? 사귀지는 않아도 돼.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라도 좋으니까 날 만나줄 수 있겠니? 참!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음... 언제쯤이 좋을까? 11월 20일. 요번주 토요일 2시에 만나자. 알았지? 꼭 나와. 장소는 육교앞. 괜찮지? 그럼 그 때 만나는 것으로 하고. 맞아! 이것 너가 초등학교때 좋아하던 편지지였지? 언제 내가 이 편지지 사주었잖아. 기억 나니? 누나꺼 몰래 쓰는거야. 내 정성 봐서라도 요번 토요일에 꼭 나와. 그럼 안녕 ― ♥ 1999. 11. 16. 영주와 친해지고 싶은 세규로부터. P.S - 미안. 봉투가 없어서... 으아~~!! 감동의 소름이 온몸을 휘감아 돌지 않는가. 맞춤법에 충실하며 원본의 글씨체는 굉장히 단정한 글씨체였다. 땜빵이 없는걸로 보아 초안 작성 후 옮겨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평이한 문장이며, 간단히 추측할 수 있는 내용으론 이들은 초등학교 동창, 중1, 세규가 영주를 좋아한다는 것. 이 정도이다. 이제, 한문장 한문장 살펴보기로 하자. ▶to. 영주. ♥♥♥♥♥♥ 원본엔 하트가 찐한 빨강색이다. 사랑하는 영주에게 마음을 차마 표현하지 못한 완곡한 표현으로 보인다. ▶안녕? 영주야. 나야. 세규. 너의 편지 잘 받았어 주목할 것은 너의 편지 잘 받았어 이다. 문어체의 문장으로서, 영주를 대하기 껄끄러운 세규의 입장이 드러나있다. 부담없는 사이에서 너의 편지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규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대목이다. ▶혜원이라고 했던가? 혜원이.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어제 밤새도록 혜원이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느라 한잠도 못 잤다. 과연 혜원이는 누구일까? 이후로도 혜원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우선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은 혜원이가 세규에게 부끄러워 하는 영주를 대신해 편지를 전해준 메신저의 역할을 했을 경우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경우도 있다. 혜원이가 남자일 가능성... 영주는 혜원이를 좋아하는 것이다. 세규에게 보낸 답장에 미안해.. 난 혜원이를 좋아해.. 라고 세규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말했으며, 세규는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혜원이라고 했던가? 로 혜원이의 존재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편지만으로는 혜원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다. ▶솔직히 좀 서운했어. 너의 답장이 와서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난 굉장히 용기를 내서 너한테 고백했는데. 주목할 단어는 굉장히 이다. 세규는 굉장히를 두번씩이나 연거푸 남발하며 뺀찌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영주야. 다시한번 생각해보겠니? 사귀지는 않아도 돼. 세규도 나름대로 성깔이 있을것이다. 애써 그의 성깔을 삭히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니? 로 끝나는 의문어미다. 이를 뿌드득 갈며 애써 상냥하게 무엇인가를 질문할때 주로 사용된다. ~냐? 또는 ~어? 는 이를 갈며 발음하기가 꽤 힘들다. 함 해보시라.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라도 좋으니까 날 만나줄 수 있겠니? 역시 ~니? 로 끝난다. 일반적으로는 여자쪽에서 이런 말을 하는게 보통인데, 세규자식 어지간히 좋아하나부다. 세규, 정말 많이 굽히고 들어간다. 허나, 친구사이라도 영주와의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힘내라. 근데, 가끔 만나서는 친한 친구사이가 되기 힘들텐데...-_-a ▶참!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음... 언제쯤이 좋을까? 어쨌든 만나서 쇼부치자는 저 자세. 본받을만 하다. 언제가 좋을지 애써 생각하는 척하지만 이미 모든것은 정해져있다. 다음을 보자. ▶11월 20일. 요번주 토요일 2시에 만나자. 알았지? 꼭 나와. 장소는 육교앞. 괜찮지? 거침없다. 11월 20일 오후2시. 또 하나. 감동의 물결... 장소는 육교앞!! 으아!!! 육교앞..!! 근래에 육교앞에서 이성을 만난적이 있었던가? 건전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무언가 허전할 정도로 순수한 세규와 영주!! 이 편지를 이해하기 위한 코드는 육교앞 이었던 것이다. ▶그럼 그 때 만나는 것으로 하고.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약속성립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나이에 비해 노련함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맞아! 이것 너가 초등학교때 좋아하던 편지지였지? 여기서 공감대 형성기술 들어간다. 얄팍하지만 그런대로 효과가 좋은 기술. 육교앞 약속에 대해 고민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편지지를 통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언제 내가 이 편지지 사주었잖아. 기억 나니? 공감대 형성 기술에 이어 바로 생색내기 기술로 2연타! ▶누나꺼 몰래 쓰는거야. 됐다. 이제 그만 생색내라. ▶내 정성봐서라도 요번 토요일에 꼭 나와. 보통 이런 표현은 제3자가 쓰는것이 보통이다. ex) 얘, 영주야, 세규 정성봐서라도 한번 나가줘라~ 세규... 멋진 놈이다. 평이한 문장과 완곡한 표현이지만 할말 다 한다. ▶그럼 안녕 ― ♥ 1999. 11. 16. 역시 하트 그림을 통해 가슴속의 응어리를 표출하고 있다. 슬프다. ▶영주와 친해지고 싶은 세규로부터. 아직도 약속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지 모를 영주에게 쐐기를 박는 문장이다. 나이스! ▶P.S - 미안. 봉투가 없어서... 으아~ 이 편지의 옥의 티가 아닐까 싶다. 이건 쪽지가 아니다. 편지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상 기본은 해주어야 한다. 편지 = 봉투 + 편지지 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세규다.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상 세규가 영주에게 보낸 편지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너무도 순수한 그들의 애정행각에 입가에 흐르는 미소를 막을 수가 없었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주의 마음을 아직 얻지 못한 세규의 마음을 생각하며 가슴 한 켠이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편지는 99년 편지로 지금 그들은 중3 졸업반일 것이다. 지금 이 때의 느낌, 순수함 잊지 않고 살길 바라마지 않는다. 세규와 영주의 추억을 위해... 건배! (((((( 생각해 볼 문제 )))))) 1. 과연 혜원이는 누구일까?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자. 2. 영주의 입장이 되어 세규의 맘이 다치지 않게 거절하는 편지를 써보자. 3. 이 편지에 대해 다른 시각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연락해주길주길 바란다. 함께 토의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