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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아마츄어의 등산
게시물ID : panic_894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1
조회수 : 174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7/22 21:10:45
아마츄어의 등산

지금부터 4, 5년 전쯤 나는 시즈오카에 있는 타카독쿄라는 산을 등산하려고 했다.
당시에 등산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라
고도 1000m 이하인 산에만 등산하던 때였다.
슬슬 레벨을 올리려는 속셈이었는데
타카독쿄라는 산은 그때까지 등산한 산보다 한단계 험준하다기에 골랐다.
눈동냥으로 등산을 배워서 하던 지라,
장비로는 식료품에 복장도 초심자용의 털 달린 옷 밖에 없었지만
길만 제대로 잘 보고 가면 길 잃을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때 아마 후쿠오카의 키요미즈였나.. 그 산 안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골랐다.
인근에 아오자사야마라는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은 등산해본 적이 있으니 거기로 향하는 코스를 갈까도 생각했지만
체력적인 면과 오전 11시부터 등산한다는 시간적인 면을 따졌을 때 타이트할 것 같아서 생각을 접었다.
기본적으로 당일치기를 하는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시작하고
밥을 먹은 후 정오 쯤에는 내려오는 사람이 많다.
내가 산을 내려올 때는 보통 오후 3시가 지난 시각이라, 그때쯤엔 산에 사람이 없다.

이날은 오전 10시 조금 지나서 출발했다.
한참 강을 따라 정비된 길을 걷다보니,
표지판도 점차 없어지는 바람에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흔적을 찾으며 겨우 겨우 등산을 계속 했다.
이윽고 이름 없는 훤히 펼쳐진 고갯길에 접어들었다.
여기에서 2시간 정도 더 걸어가야 하는 것 같았다.
이 시점에 이미 오전 11시였다.
잠시 쉰 후 밥 먹는 중인 두 사람을 곁눈으로 보며 출발했다.
별 일 없이(힘들긴 했지만) 오후 1시 반 정도에 도착했다.
이때 밥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이제 내려가야지 하고 시각을 확인해보니 오후 2시 15분이었다.
지금부터 내려가면 3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저녁까지 산에 있었던 경험은 없었던 지라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최근 해가 길어지기도 했으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하산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내려갔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건 페이스가 빨라서 오후 3시 반에는 고갯길에 도착했다.
좀 지치고 왜인지 허벅지 뼈가 아프기 시작했다.
발을 들어올리기도 힘들었지만 걷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때 아팠던 부분이 지금도 괜찮다가 아프다가 반복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안 좋은 기억이 많이 있는 산이다.
아직 오후 3시 반이다. 이대로 가면 4시 조금 지나면 도착할 것 같았다.

한참 내려가는데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급경사가 있었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걸었는데 길을 잃었다.
큰일났다.. 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맞은 편에서 누군가가 왔다.
길이 있는지도 모르던 곳이었다. 괜히 안심되었다.
그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어느 쪽에서 오셨나요?"
나는 일단 대답하고 "이 길로 올라오신 건가요?"하고 여쭤봤더니
"그렇죠"라고 답했다.
척보기에 그 사람은 나보다 더 가벼운 복장인 것 같았다.
아니, 아무 것도 안 들고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날 보는 듯 다른 곳을 보는 듯 했다.
궁금하던 걸 하나 여쭤봤다.
"지금 올라가시는 건가요?"
"그렇죠"라고 할 뿐이었다.
약간 오지랖이지만 "지금 올라가시면 날이 저물텐 데요"하고 물었더니
"그렇겠네요. 괜찮습니다"라고 했다.
과묵한 사람이구나. 피곤하신가.
일단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고, 길을 알았으니 나도 늦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그 사람이 걸어오던 길을 따라 내려가봤다.
그런데 약간 걸어가보니 길 같은 게 사라졌다..
부러진 나무들.. 큰 바위에 급경사..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막다른 길이었다.

아까 그 사람은 아직 있을까? 날 놀린 걸까?
뒤쫓아서 다시 길을 물으려고 아까 온 길까지 돌아왔다.
이미 그 길엔 없었다. 큰 소리로 한 번 불러봤지만 답이 없었다.
어쩌지.. 아까 그 사람을 따라서 올라가볼까..?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왔던 길을 다시 한 번 가보았다.
길? 아니, 사람이 걸어다닌 흔적이 없었다. 조금 걷기 쉬운 곳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앞은 막다른 길이었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아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자 무서웠다. 왜 거기에 있는 걸까.
"신경 쓰여서 내려와봤어요. 길을 알아보기 힘들 것 같아서"라고 했다.
내가 부른 소리를 듣고 내려온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 사람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아까 그 길로 가긴 했지만, 미처 몰랐다.
좁은 바위와 경사면 사이에 길이 이어져 있었다.
등산로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이 사람은 터벅터벅 걸었는데 나는 깜짝 놀라며 따라갔다.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가끔 뒤돌아보며
내가 따라오는 걸 확인한 후에 계속 걸어갔다.
정말 이 사람을 따라가도 되는 걸까.
그런데 이 사람은 이런 시간대에 짐도 하나 없이 왜 이런 길에 있는 걸까. 이 지역 사람인가?
귀신 치고는 너무 생생했다.
점점 내려가고 있기도 하고, 방향도 틀리진 않았다. 그러니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난 이런 심정이었다.

위험한데다 길이라 부르기 뭣한 경사면을 내려갔더니 괜찮은 길이 나왔다. 살았다.
나도 모르게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부터는 가실 수 있겠죠? 길도 단단하니 괜찮을 겁니다"라더니 다시 올라갔다.
"지금 어디 가세요?"하고 나도 모르게 물었다.
"헤이지 단이요"라더니 목례하고 길을 올라갔다.

헤이지 단이란 건 고갯길에서 갈라지는 길을 말하는데, 타카독쿄 반대편에 있는 산이다.
나보다 길에 훨 익숙해보이니 괜찮겠지 싶어서 나는 그냥 내려갔다.

그리고 입구에 있는 차밭이 보였고, 농가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일단 인사하고, 왠지 신경 쓰여서 아까 그 사람 일을 여쭤보았다.
"나 계속 여기 있었는데, 아무도 못 봤는데..
 뭣보다 지금 올라가면 어두워질 텐데?
 짐도 없이 올라가는 사람은 살면서 본 적도 없고,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기억할 텐데"
라고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거기 있었고, 길을 헤매던 나에게 길도 알려줬는데..

그 일 후 벌써 5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상하다.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도와주었으니 분명 사람일 텐데.
동그란 얼굴에 말수는 적었지만 착한 사람이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다시 한 번 등산하러 가고 싶다.
다음에 갈 땐 헤이지 단이라는 곳에 가보려고 한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412321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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