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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학] 퍼석퍼석
게시물ID : panic_894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의뒷면
추천 : 25
조회수 : 1974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07/22 21:11:25
퍼석퍼석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뇌일혈이라면서, 한 번 쓰러지신 후 병원에 입원하신 채 돌아가셨다.
장례식 때 내가 고별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잠도 설치며 쓴 원고도 흐느끼느라 제대로 읽지 못 한 게 천추의 한이다.

그리고 그날 밤은 우리 아버지가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는 날이었는데
다음 날 준비도 해야 하고, 병원 뒷정리도 하셔야 해서
친척들도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는지 대신할 사람도 안 정하고
불 지키는 사람 없이 그 날 밤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데 실제로 촛불이 꺼지고 말고 그렇게 큰 일이 나는 건 아닌데다
밤새도록 안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던 지라
불이 날 일은 없겠다 싶었다고 한다.

이튿 날, 장례식 본식이 이뤄지는 날이라 아침부터 매우 바빴다.
엄마를 비롯해서 여자들은 모두 요리하느라 바빴고
나는 친척 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례식 자체는 별 일 없이 잘 끝났고,
조문객들도 각자 돌아간 후 다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식욕이 없어서 가족들이 거실에서 식사하는 동안
할머니 관 옆에서 울고 있었다.
마치 주무시는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만져보니 엄청 차가웠다.
그렇겠지.. 드라이아이스 같은 걸로 식혀두니까..

그날 나는 밥은 안 먹고, 불단 모신 방에서 제일 가까운 방에서 혼자서 잤다.
핢니 집은 오래되긴 했지만 큰 편이라서 집 앞에 작지만 단풍과 소나무가 심어진 정원도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툇마루 쪽으로 머리룰 두고 자기로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 이루지 못 하고
몇 번이나 뒤척이다가 시간이 흘러, 괘종 시계가 3번 울렸다.
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라도 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내 기분 탓이겠지 했는데 점점 소리가 커졌다. 발 소리였다.
창 밖에서 모래를 자박자박 밟는 소리가 났고,
내 머리 쪽을 향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짤랑짤랑하고 작은 종이 굴러가는 소리도 나고
나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만나러 와주셨나보다"하고 생각했다.

나는 일가 친척 중에서 할머니가 제일 아껴주신 아이였던데다가 병문안도 자주 갔었다.
그런데 "여자친구 생겼냐?" "공부는 잘 되어가니?" "친구들과는 사이 좋고?"하고
나에 대해 걱정도 해주셨지만, 아프신 할머니를 걱정 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충 거짓말로 둘러댔다.

모쏠이면서, 여자친구들이랑 데이트했다, 친구들이랑 낚시하러 갔었다 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같은 병실에 누워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기쁜 표정으로 자랑하시는 거다.
"우리 손주가 드디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구랴. 분명 예쁠 거야.
 우리 손주는 어릴 때부터 패기는 부족했어도 정말 마음이 상냥한 애니까"

할머니는 내 거짓말이 진짜인지 알지도 못 하신 채 병원에서 돌아가셨으니
할머니 가시는 길에 속 썩이는 손주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는 안도감과
마지막까지 진실을 말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복잡한 심경이었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그런 내가 걱정되셔서 이렇게 작별인사 하러 오셨구나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내가 한심하기도 해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몰래 울었다.

그러자 창 밖에서 자박자박하던 소리가 그쳤다. 풍경 소리도.
나는 할머니가 천국으로 돌아가신 줄 알고,
이불에서 얼굴을 떼려던 순간 귓가에서 짤랑하고 풍경 소리가 들렸다.
핢니는 한참 동인 발을 질질 끌며 내 머리맡에서 오가셨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던 걸까.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속여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이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나는 괜찮다고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안심 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불 안에서 "할머니.."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목소리를 낸 순간, 할머니가 이불에 손을 집어 넣더니 내 머리를 꽉 쥐었다.
억지로 내 머리를 이불에서 꺼내려고 잡아당겼고
내가 필사적으로 이불을 쥐고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뚜둑뚜둑 뜯겼다.

할머니가 아니구나 생각한 순간, 무서워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고, 왠지 밖으로 끌려나가면 죽을 것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내 위에 덮고 있던 이불이 걷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말았다.

피부가 퍼석퍼석하고, 온 몸이 딱지인지 비늘 같은 걸로 뒤덮힌 사람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아앗... 허악..."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팔을 온힘을 다해 휘두르며 불단을 모신 방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대로 날이 밝을 때까지 할머니 관과 벽 사이에 끼여들어가서
미처 닫지 못 한 장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본 사람이 언제 들어올 지 모르니까 죽을만치 무서웠다.
어쩌면 잠이 덜 깼던 걸 지도 모르겠다.
날이 밝아 엄마가 일어나서 다니는 소리가 들리길래 방에 돌아가보니 없었다.

솔직히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든다.
이 게시판에서도 정신 차려보니 아침이었다라고 쓰인 글에는
그건 다 꿈이야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도 봤었고.
하지만 정말 꿈이 아니었다.

화장을 하고, 납골까지 마친 후
한참 지나 할머니 댁에, 할머니를 모신 불단에 인사 겸 갔더니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귀신 같은 건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그런 기척을 느낀 적 조차 없는 사람이라
그 퍼석퍼석하던 놈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이 할머니 불단 옆에, 내가 도망쳤을 때 있던 그 장소에
마치 날 흉내내듯 같은 모양새로 앉아 있었다.
여전히 퍼석퍼석한 피부였다.
눈, 코, 입은 잘 모르겠다. 탈피하기 전의 뱀같은 비늘 인간.

좋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나만 빤히 보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 놈 옆에서 불단에 인사하고 있고..
할머니는 안 계셨다. 우리 집 불단에는 그 퍼석퍼석한 놈 뿐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결국 불단에 인사하지 못 했다.

이건 할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약간 정신이 나간 걸까?
어차피 미칠 거면 할머니 귀신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말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 테고
우리 집 불단엔 터무니 없는 것이 살고 있다.
출처 http://occugaku.com/archives/362722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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