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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51.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
게시물ID : history_183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4
조회수 : 72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13 02:15:59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blog.daum.net/carilla



*오왕비열전(吳王濞列傳)

 

한나라가 개창한 이래 고조가 붕어하고 고후가 득세하니 여씨 일족이 난을 일으켰다.

효문황제의 시절은 한나라가 열린지 얼마 안된 시기여서 나라가 크게 안정되지 않았으나

그래도 현명한 황제와 유능한 신하들이 백성을 어루만지고 위로하여 천하는 태평 하였다.

그런데 이당시에 한나라 초기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오초칠국의 난 이다.

 

황실이 아직 안정되지 않고 권력의 흐름이 명확하지 않을때 스스로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여

난을 일으킨 자들이 있었으나 나라의 기둥인 공신들의 힘으로 난은 평정되고

다시 국가의 안정을 되찾아 400년의 한나라 역사를 전하게 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오초칠국의 난을 일으킨 주인공인 오왕 비 의 이야기이다.

고조의 형 유중은 왕위를 빼앗겼지만 그의 아들 유비는 오나라의 왕이 되었다.

한 제국이 기초를 다지는 초기에 그는 양자강과 회수 일대를 평정 했다.

이제부터 오왕 비의 이야기를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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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상유반상(若狀有反相)

 

오왕(吳王) 비(劉濞)는 유방의 형 유중의 아들 이었다.

고조가 이미 천하를 평정한지 7년에 형 유중을 대나라 왕으로 삼았다.

그런데 흉노가 대를 공격하자 유중은 사수하지 못하고 대나라를 버리고 도망쳐 낙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황제에게 자수 했다.

 

고조는 차마 형을 벌주지 못해 왕위만 박탈하고 합양후로 떨어뜨리는것에 그쳤다.

 

고조11년

가을에 회남왕 영포가 모반했다.

영포는 동쪽으로 형땅을 병합하고 서쪽으로 회수를 건너 초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고조가 친정하여 이를 토벌 했다.

 

유중의 아들 패후 유비는 나이 20세로 기력이 흘러넘치는 기병대장이었다.

유비는 영포의 군사를 기현 서쪽의 괴추에서 격파했다.

 

형왕 유가가 영포에게 피살 되었는데 그에게는 마침 아들이 없었다.

고조는 오군과 회계군의 백성들이 날쌔고 사나워서 다스리기 어렵다 생각하고

경험많고 용감한 인물을 골랐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고조의 아들들 역시 어려서 왕으로 기용할수 없었다.

그때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것이 유비였다.

젊지만 용맹무쌍한 유비를 패 에서 기용해 오왕으로 삼고 3군과 53성시를 다스리게 하였다.

 

고조가 유비를 불러 다시 천천히 관상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ㅡ이놈의 얼굴에 반역의 상이 있구나.ㅡ

 

그러나 이미 오왕의 옥새를 넘겨 주었고 취소 할수도 없었다.

속으로 후회 했지만 고조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타일렀다.

 

"한나라에 앞으로 50년 후에 남동쪽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그건 아마 너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 유씨의 천하가 아니냐?

꿈에라도 모반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유비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 했다.

"제가 어찌 감히 모반을 생각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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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혜제와 여태후 치세에는 천하평정의 초기여서 그럭저럭 넘어갔다.

각국의 왕과 제후들이 자기 나라의 백성들을 어루만지기에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오나라 예장군에는 구리광산이 있어 오왕 비는 전국의 유랑자들을 불러들여 많은 동전을 주조 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구워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지 않아도 국가재정이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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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제때

오나라태자가 입조하여 황제를 알현한뒤 황태자를 모시고 술을 마시며 쌍륙을 하게 되었다.

오나라 태자의 사부는 모두 초나라 출신이어서 사납고 경박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오나라 태자도 원래부터 성격이 교만하여 쌍륙을 하면서도 그 놀이방법을 가지고

무례하게 황태자에게 대들고 다투었다.

 

참다못한 황태자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쌍륙판을 들어 오나라 태자의 머리통을 깨부수자 즉사했다.

오나라 태자의 유해는 오나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아들의 유해를 맞은 오왕은 크게 분노했다.

"장안에서 죽었으면 장안에서 장사지낼 일이지

천하가 같은 유씨의 일가라면서 굳이 여기까지 유해를 돌려보내 장사를 치루게 하는가?"

 

오왕 유비는 굳이 아들의 시체를 장안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것이 원한의 발단이었다.

오왕은 그때부터 조정에 대해 번신의 예를 다하지 않았다.

입조하라는 명이 내려와도 병을 핑계로 장안으로 가지 않았다.

 

장안에서도 차츰 오왕이 태자 피살사건으로 신병을 핑계삼아 입조하지 않는다는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오나라의 사자가 올때마다 번번히 잡아 옥에 가두고 심문했다.

 

오왕도 차츰 불안해졌다.

오왕은 어차피 죽을것이라면 차라리 모반을 하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마다 가을에 입조하는 추청때에 오왕은 여전히 입조하지 않았다.

효문황제가 사자를 힐문하자 사자가 대답 했다.

"사실 오왕은 병이 없습니다.

오나라 사자가 장안에 오면 폐하께서 계속 투옥하고 심문하시기 때문에

오왕은 더욱 겁이나서 입조하지 못하는것입니다.

연못속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듯 아랫나라의 사정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는것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오왕은 처음엔 병이라 핑계했지만 그후 문책 당하자 더욱 주벌을 두려워 하여 오지 않고 있는것입니다.

폐하께서 기왕지사를 용서하시고 오왕이 새출발 할수있게 해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황제는 이 말을 옳게 여겨 사자를 사면하고 돌려보내면서 

사자에게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며 "고령이니 입조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죄를 용서받은 오왕은 그때부터 모반할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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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는 잘 다스려 졌다.

구리와 소금의 수입으로 백성들에게 세금을 받지 않으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도 배불렀다.

남의 병역을 대신 하러 오는 사람에게도 보수를 주었으며 인재를 뽑아 상을 주고

망명자나 범법자가 오나라로 도망 오면 체포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렇게 40년을 다스리니 백성들이 모두 오왕을 믿고 따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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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서는 조착이 황태자의 가령이 되어 태자의 총애를 받았다.

조착은 종종 '오왕이 과오를 범했으니 그 영지를 삭감해야 한다'고 태자에게 말했고

태자와 조착이 함께 효문제에게 상주하기도 했지만

관인한 성품의 효문제는 차마 오왕을 처벌할수 없어 그대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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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제 붕어후에 황태자가 즉위하여 효경제가 되었다.

조착이 어사대부로 승진하여 효경제에게 말했다.

"옛날 고조께서 처음으로 천하를 평정했으나 여러 형제들은 수가 적고 아들들은 어렸기때문에

이에 같은 유씨 종족들을 대거 제후왕으로 봉했습니다.

그래서 첩복의 황자 제 도혜왕 유비(劉肥)는 제나라의 70여 성의 왕이 되고

배다른 아우 초원왕 유교 는 초나라의 40여 개 성의 왕이 되었으며

형의 아들 유비(劉濞)는 오나라의 50여 개 성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황족이 거느리고 있는 땅은 한나라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오왕이 폐하의 옛날 태자시절 사건을 구실로 병을 사칭하여 조현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죄는 법에 따르면 주살에 해당되나 선제께서 차마 법을 집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시고 덕을 후하게 베푸셨습니다.

그렇다면 오왕은 마땅히 잘못을 고쳐 스스로를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왕은 더욱 오만방자하게 되어 광산에서 사전을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어 생긴 돈으로 천하의 도망자들을 모아 반란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지를 삭감하면 지금 반란이 일어나고 삭감하지 않아도 역시 반란이 일어납니다.

지금 삭감하면 반란은 빨리 일어나 그 피해는 적을것이고,

지금 삭감하지 않으면 반란은 늦게 일어나겠지만 그 피해는 클 것입니다."

 

효경제는 조착의 계책을 들었지만 곧바로 결정하지는 못했다.

 

효경제 3년

초왕 유무가 입조했다.

 

그때 조착이 황제에게 간했다.

"초왕 유무는 예전에 박태후의 상이 났을때 복상하던 집에서 궁녀와 몰래 간통했습니다.

청컨대 그를 주벌 하십시오."

 

그러나 효경제는 유무를 용서하고 대신 그 벌로 동해군만 삭감했다.

기왕에 그 기회에 오왕의 예장군.회계군을 삭감하고

조왕 유수도 죄가 있어 하간땅이 삭감되었고

교서왕 유앙은 뇌물죄로 인하여 6현이 삭탈 되었다.

 

이런식으로 제후.왕들의 영지가 계속 삭감당하자

오왕 비는 자신의 영지도 계속 빼앗기게 될것이라 생각하여 또다시 모반을 꾀하게 되었다.

 

오왕은 혼자 거사하기에는 힘이 부족할것같아서 주변 제후국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것이 교서왕 유앙 이었다.

 

오왕은 사자를 교서왕에게 파견했다.

사자가 교서왕에게 오왕의 뜻을 전하고 모반을 제의하자 교서왕은 처음에는 깜짝 놀란듯 했으나

 

오왕의 사자가 어사대부 조착의 횡포를 말하고 조착 토벌을 명분으로 삼아

교서왕을 맹주로 삼겠다고 계속 부추기고

'천하를 병탄하면 한나라 땅을 둘로 나누어 양분해 가지자고 하자

교서왕도 결국 솔깃하여 오왕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래서 오왕 비가 교서국으로 가서 유앙과 맹약을 체결 했다.

 

그러나 교서국의 신하중에 교서왕에게 모반을 중지할것을 간하는 신하가 있었다.

 

"한사람의 황제를 섬기는것이 훨씬 안락한 일입니다.

지금 왕께서 한나라를 배반하고 오왕과 서진하여 설사 일이 성공한다 해도

결국은 두 군주가 또 서로 싸우게 될것이니 그것은 또하나의 화근을 만드는것에 불과 합니다.

게다가 제후국의 땅을 모두 합해도 한나라의 직할지인 군현에 2할도 못되는데

그런 정도로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볼수도 없습니다.

또한 반역을 함으로서 태후께서 근심하실것이니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서왕은 듣지 않았다.

교서왕은 즉시 사자를 파견하여 제.치천.교동.제남.제북등과 맹약을 맺고 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

 

실제로 제후들은 계속 영지를 깎이고 벌을 받았기 때문에 조착에 대한 원망이 매우 커서

교동왕의 제의에 쉽게 동의하고 참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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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조정에서 회계군과 예장군을 삭감한다는 조서가 내려오자 오왕은 즉시 군사를 일으켰다.

교서국에서는 정월.병오일에 한나라에서 파견나와 있던 2000석 이상의 관리들을 모조리 주살 했다.

교동.치천.제남.조.초나라에서도 교서국과 마찬가지로 한나라 관리들을 죽여버렸다.

 

이제 그들은 병사를 동원해서 서쪽으로 진격 했다.

 

그런데 불길한 징조가 일어나기 시작 했다.

제왕 유장려가 반란에 가담한것을 후회하고 음독자살 함으로서 제나라가 동맹에서 빠졌다.

 

또 제북왕 유지가 그의 낭중령에의해 감금 되었다.

그래서 제북 역시 출병 하지 못했다.

 

교서왕이 여러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교동.치천.제남의 군사를 이끌고 임치를 에워 쌌다.

 

조나라왕 유수도 반란군에 합세하기 위해서 흉노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빌어 동맹군에 참전 시켰다.

 

일곱 나라가 군사를 일으키자 오왕은 그 군사들을 모두 동원하면서 온 나라에 안에 총 동원령을 포고했다.

"과인의 나이 62세이나 스스로 장수가 되어 앞장 서겠다.

나의 막내아들은 14세 이지만 그역시 사졸의 선두에 선다.

무릇 위로는 나와 동년배부터 아래로는 나의 말자와 같은 나이까지 전국의 남자는 모두 출전하라."

 

그리하여 오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가 동원 되었다.

또한 남방의 동월과 민월에 군사를 요청하니 동월이 이에 응해서 오왕의 뒤를 따랐다.

 

효경제 3년

오왕은 광릉에서 서진하여 회수를 건너 초군과 합류 했다.

오왕은 이곳에서 제후국에 일제히 격문을 띄웠다.

 

<오왕 유비는 삼가 교서왕.교동왕.치천왕.제남왕.조왕.초왕.회남왕.형산왕.여강왕.및

전날의 고 장사왕의 아들께 묻사오니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나라 조정에 적신이 있어 제후들의 영지를 빼앗고 형리를 시켜 탄핵하고

단죄하여 우리를 욕보이고 있습니다.

유씨의 골육인 우리 제후들을 억압하고

선제의 공신들을 멸망 시키고 간악한 무리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여

천하를 속이고 어지럽혀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병이 많으셔서 정사를 돌보지 못하시고 계시니

이에 제가 병사를 일으켜 폐하 측근의 적신들을 주멸하고자 하오니

삼가 여러분의 가르침을 받아 따르고자 합니다.>

 

오왕은 이 외에도 장문의 격문으로 여러 왕들에게 모반의 명분을 설명하고

또 이리저리 제후.왕 들이 취할 행동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공로에 대해 논공행상할 규정도 선포하고 드디어 거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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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의 반란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조정에서도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태위인 조후 주아부에게 36명의 장군을 거느리게 하여 오.초 로 진격하게 했다.

곡주후 역기에게 조나라를 치게 하고 장군 난포에게 제나라를 칠것을 명했다.

대장군 두영을 형양에 주둔하게 하여 제나라와 조나라의 동태를 감시하고

토벌군의 배후가 되게 하였다.

 

대장군 두영이 출전하려 할때 황제가 크게 근심하는것을 보고 원앙을 추천 했다.

당시에 원앙은 은퇴하여 집에 있었는데 효경제가 호출하자 곧바로 입조 하였다.

 

원앙이 입조해 보니 황제가 조착과 함께 군사의 배치등을 점검하며 병량의 조달등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황제가 원앙을 반기며 물었다.

"그대는 한때 오나라의 재상으로 있었으니 오나라의 사정에 대해 잘 아시겠지요?

오나라의 대장 전녹백은 어떤 인물이오?

또 지금 오.초 가 반군을 일으킨것을 그대는 어떻게 보시오?"

 

그러자 원앙이 명쾌하게 대답 했다.

"걱정하실일이 못됩니다.

그들은 곧 격파되고 말것입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오나라는 광산에서 구리를 채취해서 화폐를 주조하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구워 부강한 나라가 되었소.

오왕이 그러한 금력을 믿고 거사 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들이 쉽게 격파 될것이라 생각하는거요?"

 

"천하의 호걸이라면 돈을 쫓아 오왕의 반란을 돕지는 않을것입니다.

오히려 오왕을 잘 보필하여 그로하여금 의를 실행하게 하였겠지요.

지금 오왕을 따르는 무리들은 모두 천하의 무뢰배들 뿐입니다.

그러한자들이 일으킨 반란이 어찌 성공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에게 오나라를 깨뜨릴 계책이라도 있소?"

"제게 계책이 있사오나 여러 신하들이 있는곳에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좌우의 신하들을 모두 물리쳐 주십시오."

 

그리하여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물러갔으나 오직 조착만은 효경제의 총신이었으므로 그대로 자리에 있었다.

원앙이 다시 아뢰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리려 하는것은 신하된자로서 알아서는 안될 일이옵니다."

그렇게 아뢰자 황제가 조착마저도 물러가도록 하였다.

조착은 궁전 밖으로 물러가면서 몹시 아쉬워 하고 원통해 하였다.

 

좌우가 모두 정리된후 원앙이 아뢰었다.

"오나라와 초나라 간에 서로 왕래한 서신의 내용을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고조께서 자제들을 각각 왕으로 삼고 영지를 나누어 주셨는데

조착이 제 멋대로 제후들의 죄를 뒤집어 씌워 영지를 삭감하고 있으니

서진하여 조착을 주살하고 옛 영지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하니 이제 조착을 베고 오.초 7국에 사자를 파견하여 그들을 용서한뒤에

삭감했던 그들의 영지를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반란군은 명분을 잃어 스스로 해산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깊이 고심했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원앙이 게속 강력히 주장했기때문에 결국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황제는 원앙을 즉시 태상의 벼슬에 임명하여 오나라로 파견 했다.

그리고 며칠뒤에 조착을 입궐하게 하였다.

조착은 아무것도 모르고 정복을 차려 입고 궁으로 들어갔다.

황제가 그를 속여 수레에 태워 시장으로 데려갔다.

조착은 그 차림대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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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이 왔다는 말을 들은 오왕 비는 그가 자기를 설득하려 왔다는것 알고 원앙을 감금했다.

오왕은 원앙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원앙이 거절하였으므로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원앙은 예전의 인연으로 무사히 오나라를 탈출하여 한나라로 돌아와 보고 할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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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주아부는 대군을 형양으로 이끌고 가기위해 6두마차를 타고 달려 낙양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서 뜻밖에도 극맹을 만났다.

주아부는 매우 반가이 극맹을 맞이하여 말 했다.

"7국의 반란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서 내가 역전거를 타고 낙양에 이르는 길도 위험할줄 알았는데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

저들이 큰 일을 하면서도 그대와 같은 호걸을 끌어들이지 못했으니 그들의 능력을 알만 하오.

이제 나는 마음놓고 형양으로 갈것이니 그대는 이곳에 남아 낙양을 잘 지켜 주시오.

그대가 있으니 이제 형양의 뒤는 걱정할것이 없겠소이다."

 

주아부는 형양에 이르러 자신의 부친인 강후의 빈객이었던 등도위에게 물었다.

"좋은 계책을 일러 주십시오."

"오군은 매우 정예로우니 정면대결 하는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 초군은 경솔한 습성을 가져서 지구전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북동쪽으로 이동하시어 창읍에다가 누벽을 세우십시오.

또 오나라는 양나라에게 상대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오군은 반드시 전력을 다해 양나라를 칠것입니다.

그때 장군께서 오나라의 뒤를 차단하고 군량의 수송을 끊으면 오군은 지치게 됩니다.

그때 지치지 않은 장군의 군사로 오군을 치면 지친 오군은 반드시 격파 될것입니다."

 

주아부는 등도위의 계책이 매우 훌륭하다 생각하고 그대로 따라 창읍으로 군대를 이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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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군의 대장군은 전녹백 이었다.

전녹백이 오왕비에게 군사를 나눠어 주면 자기가 그 군사를 이끌고 한군의 뒤로 돌아가

함곡관의 남쪽 무관을 돌파하고 관중을 쳐서 오나라 본군과 합류하겠다는 작전을 아뢰었다.

그러나 오왕의 태자는 전녹백을 의심하여 아버지 오왕 비 에게 군사를 나눠주지 말라고 간하였다.

그래서 오왕은 전녹백의 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 오나라의 젊은 장수 환장군이 계책을 아뢰었다.

"우리 오군은 보병위주 이며 한군은 전차와 기병위주 입니다.

자고로 보병은 험난한 땅이 유리하고 전차나 기병은 평지가 유리한법이니

우리 오나라는 도중의 작은 성들은 버리고 곧장 낙양으로 달려가 낙양의 무기창고를 점령하고

오창의 양곡을 확보한뒤 산하의 험준함을 의지하여 천하의 제후를 호령하면

굳이 관중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가히 천하는 평정 된것과 같습니다.

 

만일 중도에 만나는 성마다 공격하여 시간을 끌면 한군의 전차대와 기마대가

양나라.초나라의 넓은 들판으로 달려나와 우리의 거사는 실패하고 말것 입니다."

 

환장군의 게책은 매우 타당한것 이었지만 오왕 비 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오왕이 주변 노장군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젊은 아이의 무모한 계략일 뿐입니다.

애초에 계획 한대로 도중의 성을 공략하고 관중을 점령하는것만이 상책 입니다."

 

그래서 환장군의 계책도 채택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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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이 회수를 건너기 전에 오왕 비 는 자기의 가신들을 장군과 사마 등의 직위에 임명하였으나

오직 주구 만은 어떠한 자리에도 임명되지 못했다.

주구는 하비 출신의 재사였는데 오나라로 망명와서 술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오왕은 주구의 행실이 경박하고 신중치 못하다 하여 그를 임용하지 않았다.

 

이에 주구가 오왕을 찾아가서 아뢰었다.

"신은 무능하여 군중에 있으면서도 임용되지 못했습니다.

신이 감히 장수의 자리를 구할 수 없으나 원컨대 왕께서 한나라의 부절 한개를 저에게 주시면

제가 반드시 왕께 보답하겠습니다."

 

오왕은 그러한 주구를 기특히 여겨 부절을 내주었다.

주구는 부절을 받아들고 말을 달려 자기의 고향 하비성으로 들어갔다.

 

하비성은 오나라가 모반하여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굳게 성을 지키고 있었다.

주구는 여사에 들어 사람을 모으고 부절을 이용하여 하비의 현령을 불러들였다.

현령이 여사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주구는 현령에게 죄를 씌워 자신의 부하를 시켜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런후에 주구는 자신의 형제들과 친한 토호들을 모아 설득 했다.

"오왕이 곧 하비성을 칠것입니다.

그러면 이깟 하비성 따위는 한식경도 못되어 쑥대밭이 될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오나라에 항복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이 하비성을 들어 오나라에 항복하면 내가 여러분의 안전을 보장할것이며

그대들을 모두 제후로 삼을 것입니다."

하비의 토호들이 모두 항복하기를 원했다.

관리들이 밖으로 나가서 백성들에게 주구의 말을 전하니

하비의 백성들까지 모두 항복을 하고 말았다.

 

주구는 사신을 오왕에게 보내 하비의 사정을 보고하고 하비의 병력을 이끌고 북진하여 성읍들을 공격했다.

성양에 이르렀을때는 주구의 군사가 이미10만을 넘어섰다.

주구는 쉽사리 성양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주구는 거기서 오왕이 패하여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저런 허술한 자와 대사를 도모했다니!"

주구는 이미 일을 성공할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군사를 철수하여 다시 하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로인한 울화병이 생겨 등창이 생겨서 하비에 도착 하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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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이 패주하자 천자는 한나라 장군들에게 조칙을 내렸다.

ㅡ짐이 듣건대 선을 행하는자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을 행하는자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아준다 하였다.

고조께서 공있는 신하들을 표창해 제후로 세워주시고 한나라의 번병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오왕은 배은망덕하여 의리를 저버리고 천하의 망명객과 죄인을 끌어들이고

사전을 주조하여 공전을 어지럽혔으며 병이라 핑계하고 20년이상 입조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그의 죄를 다스릴것을 청했으나 효문황제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개과천선 하기만을 고대하셨는데도 오왕은 주변 제후들과 맹약하여 모반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백성은 도륙 되고 민가는 불타 버렸으며 군국에 있는 고조의 사당이 약탈되었으니

짐은 특히 이런것들을 애통해 하고 있다.

이제 장군들은 사대부들에게 고하여 반도들을 치라.

목을 베도 좋고 사로잡아도 좋지만 봉록300석 이상은 모두 참하라.

이 조칙을 비난하거나 불복하는자는 모조리 요참에 처할것이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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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돌려 오왕이 승승장구하던 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등도위의 계책대로 주아부는 창읍으로 물러갔고 오왕은 양나라를 공격하게 되었다.

오군의 기세는 매우 날카로와서 양의 효왕은 매우 고전했다.

양효왕은 주아부에게 여러번 구원을 요청했지만 주아부는 번번히 모른척 했다.

할수 없이 양효왕은 조정의 천자에게 주아부를 움직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황제가 주아부에게 출전을 명했지만 그래도 주아부는 꼼짝 않고 누벽만 지키고 있었다.

양효왕은 별수 없었다.

그래서 한안국과 장우 를 장군으로 삼아 가까스로 버티기만 했다.

오왕 비 는 양나라가 쉽게 무너지지 않자 서쪽으로 진격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수없이 군사를 돌려 주아부의 주력군과 맞서 써우기로 했다.

그러나 주아부는 역시 꼼짝않고 누벽만을 지키며 시간을 보냈다.

 

식량이 떨어진 오군은 양나라와 주아부의 사이에 끼어 굶어죽을 판이었다.

오왕은 최후의 일전을 위해 야습을 감행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오군의 야습을 미리 탐지한 주아부는 누벽의 뒤로 돌아서 오군의 배후를 쳐서 오군을 크게 무찔렀다.

오군의 태반은 맞아 죽고 도망치던 군사들도 굶어 죽은자의 수를 헤아릴수 없었다.

처절하게 패한 오왕은 휘하병사 수천명 만을 거느리고 양자강을 건너 단도를 거쳐 동월에 이르렀다.

 

동월에는 1만 이상의 군사가 있었으므로 오왕은 다시 전열을 수습하고

흩어졌던 패잔병들을 불러들여 군사를 재정비 하려 했다.

 

한나라에서는 세작을 보내 이익을 미끼로 동월을 매수 했다.

오왕이 군진 앞에서 병사들을 위로하려 할때

사졸 하나가 미친척 하고 갈래창으로 오왕의 목을 찔렀다.

동월은 오왕의 머리를 그릇에 담아 역전거를 달려 한나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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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의 아들 자화 와 자구 는 민월로 달아났다.

나머지 군사들은 주아부나 양왕에게 항복 했다.

초왕 유무는 패전하게 되자 자살 하였다.

교서.교동.치천의 세 왕은 제나라 수도 임치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3개월이 지나도록 함락 시키지 못하다가

한나라 군대가 몰려오자 포위를 풀고 각각 자기 나라로 철수 하였다.

 

교서왕은 웃옷을 벗고 맨발로 짚방석에 올라 물만 마시며 죄를 빌었다.

어머니인 태후의 도움으로 용서받으려는 생각 이었다.

교서왕의 태자가 간했다.

"한군은 멀리서 왔으므로 매우 지쳐 있습니다.

제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나가 한군을 습격 하겠습니다.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면 그때 바다의 섬으로 도망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다.

우리 군사 역시 모두 지쳐 있다.

한번 무너진 군사를 다시 일으켜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교서왕은 태자의 진언을 듣지 않았다.

 

그때 한나라의 장군 궁고후 퇴당의 편지가 왔다.

ㅡ저는 조칙을 받들어 불의를 치고 있습니다.

항복하는 자는 그 죄를 용서하여 전과 같이 대우 할 것이지만

항복하지 않는자는 주멸 할수밖에 없습니다.

왕께서는 어느쪽을 택하시겠습니까?

회답을 기다리겠습니다.ㅡ

 

교서왕은 이것이 기회라 희망을 갖고 성벽 아래로 내려가 고두례를 행하고 용서를 빌었다.

"나 유앙은 한나라의 법을 지키지 못하고 천하의 백성을 놀라게 했으며

또한 장군을 괴롭혀 궁벽한 곳까지 오게 했습니다.

저해의 벌을 받아도 할말이 없습니다."

 

궁고후는 모반을 하게된 자초지종을 물었다.

왕이 절하고 무릎으로 기어서 나와 말했다.

"조착이 함부로 법을 변경하여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하고 주벌하였기에

7국의 제후들이 이를 불의라 여겨 조착을 주살하려고 거사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들으니 조착이 이미 죽었다 하기에 저희들은 군대를 해산하고 귀국하려 한것입니다."

 

궁고후가 다시 물었다.

"왕께서 진실로 조착이 잘못했다고 생각 하셨으면 왜 폐하꼐 그일을 상주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황제의 조칙도 없이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수호하려는 제후를 쳤습니다.

그러니 결국 이러한 것들로 보아 조착을 주살하는것이 목적이었다고는 할수 없을것입니다."

 

교서왕은 할 말이 없었다.

 

궁고후가 말했다.

"아니 되겠습니다.

조서를 읽어 드릴테니 다 들으신 후에 스스로 자신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궁고후가 조서를 꺼내 읽자 교서왕은 체념한듯 말했다.

"그렇다.

나는 죽어도 죄가 남을것이다."

드디어 교서왕 유앙은 자살 했다.

 

교동왕.치천왕.제남왕도 모두 자결 했다.

이로서 이 나라들은 모두 몰수되어 한나라에 귀속 되었다.

 

제북왕은 협박을 당해 반란군에 가담 했고

또 신하에 의해 감금되어 있었으므로 죄를 면하고 치천왕으로 옮겨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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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에 오왕이 주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초군을 병합.통솔하고 제.조 등을 연합해 결국 1월에 거병해서는 3월에는 완전히 패망 했다.

오로지 조나라만이 10개월을 버티다가 뒤늦게 항복 했다.

 

이로서 오.초7국의 대란이 정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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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오왕 유비가 왕이 된것은 그의 부친 대왕의 죄를 덜어준데서 기인한다.

그는 부세를 경감하고 민중을 사역해 산해의 자원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래서 교만해 졌다.

반역의 싹은 그의 아들에게서 생겼다.

쌍륙을 하다가 재난을 일으켜 본가를 멸망 시킨 꼴이 되었다.

오왕은 만족인 동월과 친근해 종실인 한나라를 전복하려다가 오히려 멸망한것이다.

 

조착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화를 입었고

원앙은 권모술수로 처음에는 총애를 받았으나 뒤에는 결국 욕되게 생을 마쳤다.

 

옛말에 제후의 영지는 사방 백리를 넘으면 안되고

산해의 자원이 있는곳에 제후를 봉해서도 안된다 하였다.

<<예기.왕제편>>

 

또한 권모술수의 주동자가 되지 말라 하였는데<<주서>>

이는 원앙과 조착을 두고 한말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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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오왕 비 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 보았다.

 

오왕 유비는 젊어서부터 용맹하고 재주가 있어 고조의 눈에 띄어 왕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재주를 믿고 교만하여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자신의 세력을 키웠으니

그 자식마저도 아비를 닮아 교만 방자하여 재앙을 당했다.

오왕은 자신의 죄가 막중함에도 황제의 용서를 받았는데

그러함에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결국 모반을 일으켰으니

고조가 그의 관상을 보고 한 말이 이제야 맞아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관상을 미리 알았던 고조가 그러한 오왕을 먼저 통제하지 못한것은

결국 오왕의 운명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욕심을 가져 종실을 전복하려다가 결국 몸을 망치고 나라도 망쳤으니

현명한 신하의 간언을 듣지 못한것은 오나라의 풍속이 사나웠기 때문인가?

 

그러나 이것은 풍속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능력의 한계를 지적해야만 할것이다.

전녹백과 환장군과 주구 등의 빼어난 장수들이 있어 양책을 내었지만

오왕 스스로가 그 계책을 채택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패한것이 아닌가 한다.

만일 오왕이 이들의 헌책을 받아 들였다면 중국의 역사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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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욕망이 있는듯 하다.

그러나 자신의 그릇을 판단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린 오왕의 고사에서 보듯이

세상의 일이 모두 욕심대로 되는것은 아닐것이다.

 

오왕은 한실의 번병으로 황족의 지위를 가졌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황제가 되길 원하였다.

그러나 포부를 따라갈 만큼의 능력과 재주가 없던 오왕비는 

천자의 뜻을 가진것과는 다르게 일개 사졸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으니

과욕의 결과는 항상 이러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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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야당의 일각에서 스스로의 욕심을 내보이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 했다.

예전의 명성이나 경력등으로 보아 스스로 자신이 더욱 큰 자리에 갈수있는 자질이 된다고 착각하여

국민의 열망을 잊고 자신의 욕망을 따르려는 모습에 분통을 금할 길이 없다.

그동안의 인기와 명성이 자신의 능력으로 받은것이 아니요,

국민의 성원이 자신만을 위한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저버리고 야권전체를 비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행위를 한다면

국민들은 그를 반드시 응징 할것이다.

 

오왕 비는 황제가 되려다가 사졸의 창에 목을 찔려 죽고 말았다.

터무니 없는 욕심을 부린다면 현세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걸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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