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定義)는 말이 지니는 의미, 내용에 착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뚜렷이 정한 절차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절차로 정해진 내용또한 정의로 간주할수 있을듯 하다.
어떤 단어를 정의 내리는 문장은 대략 이러하다.
xx(이)란, yy이다. 또는, yy를 xx라 일컷는다.
예컨데, 현미경이란, 작은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는 기구이다.
또는 작은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는 기구를 현미경이라 일컷는다.
참인 정의가 되려면 모든 xx는 yy를 만족해야 하고, yy로 만족하는 단어는 오직 xx뿐이어야 한다.
즉, 세상에 현미경이라 불리는 모든 것은 작은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는 기구여야 하고
작은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는 기구라는 조건을 만족하고 지칭하는 단어는 오직 현미경뿐이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특정단어를 정의내리는데는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순환정의는 안된다.
즉, xx를 정의하는 내용인 yy안에 xx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경우다.
이 경우 xx를 알려면그 알고자 하는 xx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문화'란 한 민족이나 집단이 공동으로 이루어 놓은' 문화' 유산이다. 이다.
그리고 정의를 특정단어의 반대의미로 정의해서도 안된다.
즉, xx의 반대말이라는 내용이 yy의 핵심이 되는 경우다.
이 경우 xx를 알려면 xx에 준하는 수준의 단어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정의는 최대한 쉬운 말로 기술되어야 한다.
예컨데, 여자는 남자가 아닌 인간이다. 같은
그리고 비유나 은유도 안된다.
이것은 범주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정의는 설명이며 누구나 같은 의미로 이해를 할수 있게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주로 추상명사 같은 주관적인 대상을 정의할때 이런 잘못은 종종 일어난다.
예컨데, 사랑은 우리를 동여 매는 끈 같은 것이다. 같은 정의다.
참조: http://cafe.daum.net/wkrrktptkd/HWlq/84?q=%C1%A4%C0%C7%B9%FD%20%BB%E7%C0%FC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정의에 관한 흔한 착각은, 정의를 속성(屬性)들을 나열로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데, 창의성이란, 문제해결능력과 직결되며, 인간의 지능발달에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생각과 경험을 통해 발생하는 능력이다.
뭐 이런거..
예를든 창의성도 그렇고 보통 교양서적에서 대개 지능, 의식, 기억같은 추상적이지만 핵심이 되는 용어들을 이런식으로 정의하는듯 하다.
이 경우 xx는 yy가 될수 있을지언정, yy를 만족하는 단어는 xx만 있는것은 아니다.
예를들어서, 문제해결능력과 직결되는 능력이 창의성 뿐이랴, 기억력도 있고, 주의력도 있고 얼마든지 있다.
특정 대상의 특징이나 성질을 말하는 저런 속성들은 트럭 째로 날려줘도 정작 그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이렇듯, 정의와 속성은 다르다.
다만, 굳이 둘을 엮는다면 고유의 본질적인 속성을 정의라 정의할수는 있을듯 하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의한답시고 이렇게 뜬구름 잡는 실체가 없는 속성들만 늘여놓아 놓고는 자신은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것은 다를수 있는데, 그래서 실제로는 잘 모르면서 제대로 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이 경우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더러,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이런 우(愚)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가급적 모든 자신이 쓰는 용어들을 최대한 정확히 정의내려 보려할 필요가 있다.
나름데로라도, 그것이 꼭 정답이 아닐수도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야 사물의 껍데기가 아닌 본질적인 부분을 한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깊게 생각해 볼수 있을듯 하다.
그래야 최소한 자기라도 자기가 무슨내용을 말 하는지 알것이다.
그래야 최소한 자기가 말하는 내용의 불확실성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것 같다.
아마도, 이런 시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상당한 지적 훈련이 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