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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단편]게임에서 만난 은지
게시물ID : panic_895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4
조회수 : 117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7/23 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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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못된야옹의 여덟번째 단편
<게임에서 만난 은지>
 

 

 

 

 

1.
타지에서 홀로 자취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미진은 당시 한창 유행처럼 번진 ‘소울 블러드’ 라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었다. 현실과의 타협이란 이유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덕분에 타지까지 올라와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불만 때문이었을까? 평소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게임이란 장르에 빠져버린 자신을 미진은 자책하기보다는 이해하려 애썼고, 그 결과 이제는 그녀의 지인이 본다면 경악할 만큼이나 ‘소울 블러드’라는 게임은 그녀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있었다. 하기야,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로 출근. 퇴근 후 집. 자고 일어나면 다시 회사. 퇴근 후 집. 회사. 집. 회사. 집. 주말엔 기껏해야 찬거리를 사러 마트로의 외출. 그 외의 나머지 시간은 온종일 집. 그리고 그 주말이 지나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회사, 집의 반복. 미칠 듯 반복되는 2년간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 찌들어있던 그녀였으니,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흔한 커피한잔을 안주삼아 얼굴을 마주하고 수다 떨 친구도, 그 쉬운 밥 한 끼 같이 먹을 가족도 없는, 그야말로 외로움의 절정을 느끼던 그녀에게 설사 그 돌파구가 자신이 경멸하던 게임일지언정 그런 것이 대수겠는가? 그런 대수롭지 않은 가치관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라고 생각하는 미진이었다.
 

 

 

2.
미진은 오늘도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대충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키득거리고 있었다.
 

“진짜? ㅋㅋㅋ 그래서 그 남자가 뭐라는데?”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양반이게?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우는 거 있지? 그 사람 많은 카페 안에서 말이야. 나 참, 기가 막혀서….”
“대박! 진짜 창피 했겠다 은지야 ㅋㅋ 꼭 내가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감정이입이 돼서 막 화끈거려….”
“몰라! 진짜 살면서 그때만큼 쪽팔렸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나저나 오늘은 어땠어? 그 김부장인가 뭔가가 자꾸 미진이 너한테 찝쩍거린다며”
“벌써 1년 271일째야. 이제 소름 돋는 걸 떠나서 면역이 됐다고 해야 할까?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에 ‘미진씨 오늘 같이 영화 볼래?’ 이러는 거 있지? 진짜 근성하나는 40대 대머리 아저씨라고 하기엔 대단한 것 같아.”
“아 ㅋㅋㅋㅋㅋㅋ 대머리 아저씨 ㅋㅋㅋㅋ 이해가 되면서도 좀 안쓰럽다야ㅋㅋㅋ”
“진짜 너도 겪어보면 못 웃을 걸? 이 인간 때문에 이직할까 고민 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일 자체도 적성에 안 맞는 김에 확 때려치워버릴까?”
“에이, 또 배부른 소리한다! 요즘 취업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난 네가 부러워 죽겠구만.”
“은지 너는 그래도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으니 조만간 분명 좋은 소식 있을 거야! 걱정 하지말라구~”
 

미진은 은지의 ‘따가워톡’ 프로필 사진을 떠올렸다. 인형 같은 외모는 아니었지만 은은한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보면 볼수록 호감 가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진짜 너 립 서비스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번 주에 언니가 또 그쪽으로 갈테니까 만나서 온종일 수다나 떨어 보자구우!!”
“네가 이쪽으로 온다면야 완전 땡큐지!”
“콜! 그리고 보니 길드에서도 정모 한다는 것 같던데. 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니? 괜찮은 남자 물색도 할 겸! (ㅇㅅㅇ)”
“괜찮은 남자라…. 길마 오빠는 어때? 말하는 건 완전 훈남! 난 그런 사람이 좋더라.ㅎㅎㅎ 정모 한다면 꼭 참석하겠어!”
“오~ 진짜야?”
“물론이지! 길마 오빠는 뭐랄까. 얼굴을 모르는데도 뭔가 되게 남자다울 것 같고, 자상할 것 같고, 사랑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무튼 되게 호감 가는 거 있지ㅋㅋ 그렇다고 말하지는 말구!!”
“호오~ 꽤나 구체적인데 이거? 그럼 이 언니가 팍팍 밀어줘야지! 잠깐만 기다려봐.ㅋㅋㅋㅋㅋ”
 

은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만치 마을 입구로 들어오는 남자 캐릭터 하나가 미진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마우스를 갖다 대자 익숙한 길드마크와 닉네임이 보인다.
 

“우리 미진이~ 여기서 은지랑 뭐하고 있어??”
“아! 길마오빠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등장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ㅋㅋ”
“왜? 무슨 일이야?”
 

미진은 은지가 방금 자신이 한 이야기를 꺼낼까봐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얼굴이 안 보이는 게임 상에서의 대화라 해도 연애경험이 거의 전무한 연애초보인 그녀에게는 충분히 떨리는 일이었다. 빠르게 채팅창에 커서를 맞추고 은지에게 귓속말을 보내려는 찰나 은지가 입력한 메시지가 화면에 출력되었다.
 

“우리 정모 언제 해요?!”
 

 

 

3.
‘소울 블러드’란 게임을 시작한지 정확히 3일 째 되는 날, 생각만큼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게임 속에서 역시 쉽지 않다는 걸 미진은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초면에 반말은 기본이고, 갖은 욕설과 부도덕한 행위들을 일삼는 플레이어들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려, 고된 일상의 굴레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하려 시작했던 게임에서 되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으로 변모해 버린 작금의 상황이 그녀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게임에 기대한 내가 멍청한 년이지.”
 

그렇게 마을에 앉아 푸념 섞인 한 숨을 뱉어내고 있을 때, 처음으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준 것이 은지였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처음부터 낯설지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생소한 캐릭터만이 모니터에 출력되고 있었지만, 그 캐릭터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 그래. 마치 소꿉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미진은 고향에 있는 20년 지기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술술 대화를 풀어놓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나이도 같은데다가 가치관이나 성격 따위도 비슷했던 둘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고, 덕분에 현재는 적어도 이삼일에 한 번은 꼭 실제로 만나서 수다 떠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미진은 불현듯 은지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떠올리며 묘한 설렘에 젖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드카페에 올라온 따끈한 공지사항은 충분히 그녀가 설렐만한 내용이었다.
 

[제 3회 길드 정모 안내.]
 

미진은 정모 날짜와 시간 등을 훑어보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사람의 대한 불신 같은 건 은지를 만난 이후로 완전히 날려버린 미진이었다. 비록 10명도 안 되는 조촐한 길드였지만 미진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들 은지만큼이나 선량해보였고, 특히 배려라는 것이 뭔지 정도는 잘 알고 있는 개념인들이었기에, 미진은 은지를 처음 실제로 만났을 때보다 더욱 설레고 있었다. 물론 처음엔 은지의 장난스런 한 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정모 공지가 올라온 것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던 미진이었으나, 이미 몇 번 정모 이력이 있었다는 길마오빠의 말에 당혹스러움은 눈 녹듯 사라진지 오래였다. 미진은 거울 앞에 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내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몸에 대어보기 시작했다. 허나 썩 마음에 드는 옷은 없었는지, 그녀는 아무래도 백화점에 한 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지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지.”
 

미진은 약간은 겸연쩍게 피식 웃었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고, 미진은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떠있는 이름을 보고 자연스럽게 귀로 가져갔다.
 

“어, 은지야. 안 그래도 전화하려 그랬는데.”
“통했네? 큭큭.”
“금요일에 월차 쓰고 백화점 좀 다녀와야겠어.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머리도 좀 해야 될 것 같구.”
“아휴, 미진님. 누가 보면 맞선이라도 보러가는 줄 알겠어! 후후.”
“그러게,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좀 이상해진 듯 히히히. 근데 은지 너는 길드원들 얼굴 본적 있어?”
“아니, 나도 이번이 처음 보는 거야. 말 했잖아? 나 너 길드 가입시키기 3일전에 가입했다니깐? 근데 다들 되게 잘생겼데. 저번 2회 정모 때, 알던 언니가 참석 했었는데, 특히 길마오빠가 완전 훈남이었다더라.”
“오! 진짜야? 완전 좋아!! 근데 오늘은 길드 단톡방이 왜 이렇게 조용해? 다들 게임 접속도 안하고.”
“길마 오빠는 지방 출장 갔고, 민수오빠랑 현우는 동창회라고 못 들어온데.”
“아하! 그럼 오늘은 레벨 업 말고 만나서 노가리나 깔래요, 은지님?”
“언젠 우리가 레벨 업 했니? 새삼스럽게 호호호. 그나저나 네가 하도 호들갑 떨어서 그런지 나까지 긴장되잖아…. 다들 정말 잘생겼겠지? 아, 난 뭐 입고 갈까나….”
“역시 우린 뭔가 코드가 맞는다니깐? 그러지 말고 말 나온 김에 내일 만나서 백화점이나 가자!”
“백화점? 콜!”
 

 

 

4.
막 미용실에서 나온 미진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었다. 새로 한 머리와 어제 은지와 만나 백화점에서 큰맘 먹고 구매한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자신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 미진은 확신했다. 무엇보다 은지와 같은 커플룩으로 맞춰 입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처음 커플룩을 맞추자고 은지가 제안했을 땐 솔직히 창피함이 앞섰지만, 대학교 새내기 때 이후 친구랑 커플룩을 맞춰 입는 것은 매우 오랜만이었기에 오히려 더욱 들뜨는 그녀였다. 미진은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따가워톡을 켜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정모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약속대로 은지와 먼저 만나서 같이 갈 생각이었다.
 

“은지야 출발했어?”
 

미진이 메시지를 전송하기 무섭게 은지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아 망했어….”
“응? 무슨 일이야?”
“어제 밤새 드라마보다 아침에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났어. ㅠㅠ 미안. 아무래도 바로 정모 장소로 가야할 것 같아.”
“으이구! 그러게 일찍 자라니깐. 별수 없지 뭐. 그럼 이따 거기서 봐 은지님!?”
“응…. 미안해, 미진님ㅠㅠ 그럼 이따 봐!”
 

미진의 얼굴에 약간의 아쉬움이 어렸다. 하지만 별 수 없는 일. 그녀는 휴대폰을 핸드백에 도로 집어넣고는 저만치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로 시선을 던졌다. 정모 장소에 먼저 가 있기는 좀 그렇고 아무래도 카페에서 시간 좀 죽이다 갈 요량이었다. 때마침 신호등의 녹색불이 깜박이는 것을 확인한 미진은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오랜만에 신은 20센티미터의 굽을 가진 하이힐은 미진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몸을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그 모습은 깜박이는 신호등의 녹색 불 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순식간에 들이닥친 새하얀 빛은 그런 미진의 위태롭던 몸을 눈 깜짝할 사이에 삼켜버렸다.
 

 

 

5.
“미진아….”
“미진아….”
 

새까만 어둠속에서 일정한 톤으로 마치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참으로 구슬프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미진은 뭐에 홀린 듯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소리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한 미진은 저만치 희미한 누군가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미진아….”
“누구…세요?”
“미진아….”
 

점차 가까워지는 그림자의 윤곽은 실체가 되어 하나의 사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 사람의 얼굴은 꽤나 낯이 익은 사람의 것이었다.
 

“은지…니?”
“…….”
“은지야!!”
“…….”
 

어느덧 미진의 코앞까지 다가온 은지. 자신과 같은 핑크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분명 미진이 알고 있는 은지가 맞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창백한 얼굴과 마네킹 같은 무표정한 은지의 모습에 미진은 알 수 없는 이질감에 사로잡혔다.
 

“은지야 왜 그래? 은지…야?”
 

그 순간 은지의 입이 좌우로 길게 찢어지며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쏟아져 나왔다.
 

“이리와!!!!!!”
 

 

 

6.
갈비뼈에 금이 가고 왼쪽 팔과 다리가 골절되는 꽤나 큰 교통사고였다. 그저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미진은 차디찬 병실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옆에서 걱정 어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미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아내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꼬박 2일이나 잠들어있었어?”
“그래! 이놈의 기집애야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
“으이구, 이 화상아! 됐고, 얼른 몸 추tm를 생각이나 해! 엄만 잠깐 의사 선생님 좀 만나 뵙고 올게.”
“으응….”
 

엄마가 병실을 빠져나가자 미진은 그제 서야 사고 당일의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길드 정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은지는….
 

“가만….”
 

문득 꿈에서 본 은지의 모습이 떠오른 미진은 침대 옆 탁자위에 놓인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전원을 켜자 요란한 알림소리와 함께 밀렸던 따가워톡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기록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그중 몇 개는 회사 사람들로부터, 또 몇 개는 고향 친구로부터,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은지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은지님과의 대화]
“미진아 어디야?”
14일 오후 6:51
“어디야?”
14일 오후 6:57
“미진아??”
14일 오후 7:04
“다들 기다린다. 빨리 와!”
14일 오후 7:12
“너 다들 보고 싶어 하니까 빨리 와.”
14일 오후 7:13
“전화가 왜 안 되니? 빨랑 와.”
14일 오후 7:15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오늘 못 보니?”
14일 오후 7:30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14일 오후 7:59
“미안. 나쁜 기지배 나 삐져써 왜 안 오니 ㅠㅠ”
14일 오후 8:10
“미진아 빨리 와. 아니 어딘지 말하면 오빠가 데리러갈게.”
14일 오후 8:18
“전화 좀 받아라 .”
14일 오후 8:38
“야 전화 좀 받으라고. 내가 너 잡아 먹냐?”
14일 오후 11:14
“연락 좀 받아. 너 설마 잠수 탔냐?”
14일 오후 11:17
“아나ㅡㅡ”
14일 오후 11:23
 

은지로부터의 메시지는 여기까지였다. 제법 거친 메시지의 내용이 마음에 걸린 미진은 미안한 생각에 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기다렸던 은지의 목소리 대신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미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스마트폰을 귀에서 떼고는 한 손으로 힘겹게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은지야 정말 미안. 나 그날 교통사고가 나서ㅠㅠ. 이거 보면 연락 줘!”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미진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서인지 또다시 졸음이 쏟아져, 엄마가 돌아왔을 땐 이미 그녀는 잠들어있었다.
 

 

 

7.
퇴원을 한 미진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다시 살던 고향으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집으로 돌아와 힘겹게 컴퓨터를 켜고 ‘소울 블러드’에 접속하는 미진. 병원에 있는 동안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그녀에게 크나큰 고통이었다. 그건 은지를 못보고 이곳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길드 단톡방은 텅텅 비어있었고 은지는 아무리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더군다나 매일 같이 꿈에서 등장하는 은지의 창백한 모습은 점점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게임에 접속하자 익숙한 마을의 모습과 그녀의 캐릭터가 모니터로 출력되었다. 미진은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여 길드 창을 열었다. 허나, 그녀는 길드 창 대신 화면에 나타난 어처구니없는 에러 메시지를 마주해야 했다.
 

[가입 된 길드가 없습니다.]
 

“렉이야? 가입된 길드가 없다니 무슨 소리야!!”
 

그녀는 재차 길드 창을 마구 눌러댔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미진은 이번엔 길드 검색을 시도했다.
 

[해당 길드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혹시나 철자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 싶어 다시금 길드 이름을 또박또박 입력해보는 그녀였으나, 이번 역시 결과는 같았다. 거기다 친구 목록도 은지를 제외한 나머지 길드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말이다. 미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꿈이라도 꾼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채팅창에 ‘은지님이 접속하셨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미진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마냥 상기된 얼굴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은지야!! 대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거야!?
“…….”
“휴대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거야? 왜 메시지 확인을 안 해! 은지야!! 괜찮아?”
“…….”
“길드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없는 길드라는 거야? 길마 오빠는? 정모는 잘 한 거야? 나 교통사고 나서 오늘에서야 퇴원 했다구! 은지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미진아.”
“응. 은지야! 말해.”
“나 너무 아파….”
“응??”
“너무 아파….
“은지야? 괜찮아?? 지금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께!!”
 

뭔가 이상함을 느낀 미진은 황급히 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만 줄기차게 들려올 뿐, 은지는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모니터속의 은지는 계속 알 수 없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아파…. 너무 아파….”
“은지야! 전화는 왜 안 받아!? 은지야!”
“왜 나만….”
“은지야 전화 좀 받아!”
“왜 나만….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은, 은지야…?”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점점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괴이한 말만을 되풀이하는 은지에게서 민지가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순간 수화기 너머로 딸깍 소리와 함께 익숙한 은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미진아. 조금만 기다려. 다 왔어.
 

의아해하는 미진의 음성도 잠시 순식간에 컴퓨터 모니터가 꺼지며 검게 바뀐 화면 속에는 미진 자신의 얼굴과 그 옆으로 머리를 산발한 채 피투성이가 된 채, 미진을 노려보는 은지의 기괴한 모습이 나타났다.
 

“끼야아아아아악!!!!”
 

 

 

8.
“미진아 미안해.”
“응?”
“지금 와서 이야기해본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들어주길 바라.”
“갑자기 진지하게 왜이래 이 기집애야.”
“사실 말이야….”
“응. 말해.”
“처음 너한테 접근한 것도, 길드에 가입시킨 것도, 만나서 수다 떤 것도, 다. 전부 다. 계획의 일부였어. 나한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현실을 도피하는 것밖에 못하는 나로썬 다른 방도가 없었어.”
“애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꿈이라도 꾼 거야?”
“그런데 너랑 자주 만나고 친해지게 되니까 마음이 이상한거야.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 ‘아. 친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 막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바보 같은 생각까지 드는 거 있지?”
“은지야, 나 이런 장난 싫어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러다 지난번 너랑 백화점 갔을 때, 네가 사준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너와 나란히 서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그때 확실히 결심했어. 너는 정말 안 되겠구나. 이제 그만 이 거지같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야겠다고.”
“은지야 이러지마! 그만해.”
“그래서 용기를 내봤어. 우리 이런 짓 그만하자고. 오빠들을 설득했지.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내 설득은 실패했어. 뭐, 어차피 예상한 결론이었어. 후회는 없어, 그래도 너 하나만은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만해…. 그만해!!”
“평생 같이 있고 싶었지만, 이제 그럴 순 없겠지? 미련이 참 많이 남는 인생이네.”
“너…. 너….정말!!”
“많이 놀랐을 거 알지만 더 이상 이걸로 끝이니 이제 안심해.”
“제발 그만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구!!”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즐거웠어.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야.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게. 내 하나 뿐인 친구 미진아. 후후. 그리고 염치없지만…. 비록 이런 나라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떠올려주면 좋겠다. ‘언제나 항상’ 네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테니까.”
 

은지의 모습은 공기 중으로 천천히 흩어지며 어둠속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리고 그곳엔 홀로 남은 미진만이 애타게 그녀를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은지야!!! 은지야!!!!”
 

 

 

9.
목이 달토록 은지의 이름을 부르다 눈을 떴을 때, 미진은 컴퓨터 앞에 엎드려있었다. 아무래도 깜박 잠이든 모양이었다.
 

“은지야….”
 

꺼져있는 모니터 화면에 넋이 나간 듯 멍한 얼굴의 미진이 비춰진다. 미진은 꿈속에서 은지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대체 은지의 정체가 뭐이기에, 길드 사람들의 정체가 뭐이기에, 은지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만약 정말로 은지가 한 말들이 사실이라면….
 

[한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피의자 심모씨의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 된….]
 

문득 거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거실 탁자에 놓여있던 텔레비전이 언제부턴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TV를 켰었던가? 어라? 저건….헉!”
 

미진의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난 것처럼 몸을 휘청거리며 벽에 쓰러지듯 기대었다. 뉴스에서는 한창 사건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중요한 건 용의자의 사진들 속에서 미진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은지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지가… 은지가 왜….”
 

[지난 8월부터 온라인상에서 친해진 여성을 꾀어내 장기적출을 감행했던 일당이 검거되었는데요, 놀랍게도 용의자는 모두 혈연관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장에 있는 김영철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네. 이들은 큰형이었던 심모씨의 주도아래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범행을 실행해왔지만, 끝내 심리적 부담감을 못이긴 막내 동생 24살 심모양의 신고로 경기도 인근의 자택에서 붙잡혔습니다. 이들은 심모양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꾀어내 만남을 가졌고, 자리에서 술이나 음료등에 약을 타서 먹인 뒤 자택으로 데려오게 하는 수법으로 일체 심모양을 제외한 형제들의 노출을 자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는데요, 심지어 피해여성의 장기를 적출하고 매매하는 과정역시 짱개, 아, 죄송합니다. 중국 쪽 브로커와 같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해결하는 비범함마저 보였습니다. 한편, 경찰의 말에 따르면 신고를 했던 심모양은 옷장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해 정확한 사인은 국과수에서 부검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경찰은 현장에서 채취한 혈흔의 DNA가 지금까지 살해된 피해자들과 전부 일치했다며,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유족들에겐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며 애도의 뜻을 내비췄습니다. 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은 결국 양심의 가책을 못이긴 동생의 신고로 막을 내렸습니다만, 사건의 잔혹성을 떠나 특정 계층만을 노린 범죄가 점차 늘어만 가는 이 시점에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AEDD 김영철이었습니다.]
 

미진은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입을 앙 다문 채 떨리는 심장을 달래는 것이 고작이었다.
 

 

 

10.
‘소울 블러드’란 게임은 사건 이후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반복하더니 끝내 서버를 닫고 운영을 종료하였다. 그년의 오빠들은 전부 무기징역 형을 받게 되었고,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사형이 없는 이 나라에 대한 울분을 토하며 매일같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직접 가서 본 건 아니지만 인터넷이며 TV며 한동안 그 이야기뿐이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난 그곳을 떠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고, 적성에 맞는 새로운 직장을 잡아 어느덧 대리로도 승진하고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휴대폰 번호도 바꿨고 그 이후 ‘소울 블러드’라는 게임은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게임을 경멸하던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내게 그 당시 그 게임과 관련된 일들은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역시 모두 악몽일 뿐이니까, 되도록 빨리 잊고 싶을 뿐이다. 가끔씩은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정말이지 염치도 없는 년이다 그년은. 심은지…. 언젠간 그년의 이 이름자체가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질 날이 오겠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후우, 오늘은 이만 쓰고 자야겠다.”
 

일기장을 덮은 미진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왠지 노곤한 것이 졸음이 쏟아진다.
 

 

 

11.
요란한 알림소리에 눈을 뜬 미진은 알람을 끄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일인지 미진의 얼굴이 어두웠다. 은지가 나오는 꿈을 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길드 정모가 있던 그 날. 도로에서 나를 덮친 차량. 차가운 아스팔트 위를 쓰레기처럼 볼품없이 구르는 생생한 감촉. 흐릿한 차창에 비친 은지 의 묘한 얼굴.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더욱이 한동안 꿈에서 은지가 나오질 않아, 이제 슬슬 잊혀 지려나보다 하고 안심하던 미진이었기에 그 불쾌감은 더욱 컸다.
 

“망할! 잊을만했더니 또 야? 대체 뭘 바라고 자꾸 나타나는 거야? 기분 나쁘게!”
 

미진은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집어던졌다. 그리곤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향하는 미진의 눈에 펼쳐진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제 펼쳐놨던가?”
“미진아 얼른 씻고 내려와. 얼른 아침 먹고 출근해야지!”
“응, 금방 나가요 엄마.”
 

미진은 아래층에서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에, 일기장을 덮고 책꽂이에 꽂고는 거실로 내려갔다.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차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았지?”
“엄만 내가 얜가! 내 나이 벌써 이십대 후반이랍니다! 후후. 다녀올게!”
 

미진은 장난스럽게 쏘아 붙이고는 대문을 나섰다. 귀에 이어폰을 꼽은 그녀는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좋아하는 가수의 멜로디를 음미하며, 느긋한 봄 날씨를 만끽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어야 했지만 모처럼의 봄, 날씨가 좋은 요즘은 매번 20분정도 집에서 일찍 나와 이렇게 걸어서 출근하는 그녀였다. 미진은 따사로운 햇살에 물든 거리를 둘러보며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가사를 작게 따라 부른다. 은지의 꿈으로 불쾌했던 기분은 이미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익숙한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고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늘 그랬듯 오늘 역시 인터넷 뉴스나 보면서 갈 요량이었다. 그렇게 인터넷에 접속해 오늘의 뉴스를 대충 훑어보던 미진은 헤드라인을 장식한 기사 하나에 순간적으로 눈이 부릅떠졌다.
 

[AEDD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심모씨 탈옥…추가피해 우려의 목소리. 끝난 줄 알았던 지옥도의 막 다시 열리나?]
 

미진은 휘청거리며 가로수를 붙잡아 몸을 의지했다.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리며 금방이라도 가슴을 뚫고 튀어나갈 것처럼 요란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 금방 잡히겠지? 암, 자, 잡힐 거야. 경찰을 믿자.”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대한민국 경찰을 어떻게 믿어!! 어쩌지? 서,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얼굴은 어떻게 안다 쳐도 내 사는 곳은커녕 번호도 모르잖아? 괜찮아, 괜찮아.”
 

미진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이 번쩍이며 따가워톡 메시지를 알리는 효과음이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확인하는 미진. 더 이상 그녀의 이어폰으로부터 노랫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볼륨이 너무 큰 나머지 고막이 터졌다거나, 이어폰의 고장 따위의 문제는 아니었다.
 

[알수없음님과의 대화]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서 혼자선 못 가겠어.”
4일 오전 7:31
 

미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덜덜 떨리는 손은 금방이라도 휴대폰을 떨어트릴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휴대폰의 화면에는 쉬지 않고 계속 메시지가 써내려져 가고 있었다.
 

“너무 억울하다. 억울해.”
4일 오전 7:32
“내 목숨 버려가며 구해줬는데, 날 가끔 기억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 아니면 내 사과로는 부족했니?”
4일 오전 7:33
“다 봤어 네 일기장. 나쁜 년.”
4일 오전 7:34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 널 데려가기로.”
4일 오전 7:35
“오히려 잘됐어. 이제 외롭지 않겠어.”
4일 오전 7:36
“진작 이럴걸 그랬어. 혼자서 지켜보기만 하는 건 너무 외로웠으니까.”
4일 오전 7:37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4일 오전 7:38
“이제 우린 영원히 함께야.”
4일 오전 7:39
 

불현듯 지척에서 들려온 커다란 엔진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미진. 이내 그녀의 부릅떠진 두 동공 속에는 커다란 승합차의 운전석. 그 운전석에 앉아 소름끼치게 입 꼬리를 치켜 올린 기괴한 얼굴의 은지가 담겨있었다.
 

 

 

12.에필로그
은지는 저만치 서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미진을 차창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나 얼마 안 있어 옆 좌석에 놓아둔 자신의 휴대폰이 불을 밝혔다.
 

[미진님과의 대화]
“은지야 출발했어?”
“아 망했어….”
“응? 무슨 일이야?”
“어제 밤새 드라마보다 아침에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났어. ㅠㅠ 미안. 아무래도 바로 정모 장소로 가야할 것 같아.”
“으이구! 그러게 일찍 자라니깐. 별수 없지 뭐. 그럼 이따 거기서 봐 은지님!?”
“응…. 미안해, 미진님ㅠㅠ 그럼 이따 봐!”
 

은지는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기고는 휴대폰을 옆 좌석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이내 저만치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걸음걸이로 도로를 건너는 미진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먼저 가있어, 금방 따라갈 게. 나….더는 외롭기 싫으니까.”
 

은지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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