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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벚꽃. 1]
게시물ID : readers_89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미..
추천 : 1
조회수 : 19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9/22 03:51:36

 한가한 오후라고 말하기엔 너무 나른하다. 가끔 한다가하다는 건 짐이 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바쁘니까. 이제는 바쁘지 않은 사람이 마치 죄를 짓는 것 처럼, 혹은 다른 사람과 다른 형편없는 사람인 것 처럼 비춰지니까. 

 즐겨마시던 녹차라떼도 지금은 그저 텁텁한 설탕물에 불과했다. 폼 잡으려고 들고왔던 책은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그리고는 무의미하게 핸드폰을 켰다가 끈다. 

 3:20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20분이 지났다. 그럴 수록 불안은 가중되어 간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을 듣게 될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아도 통화속의 목소리는 절대 기쁜 소식을 안겨줄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넌 날 만나러 교회에 온거잖아."

어젯밤 차갑게 지효가 했던 말을 상기하자 눈앞이 캄캄하고 아득해졌다. 오늘은 하루종일 이런 상태였다. 어른들은 입이 삐뚤어져도 바른말만 하라고 했는데 실상 바른말을 하면 이렇게 손해를 보게된다. 어떻게 잡은 손인데...

 지효를 처음 만난건 4월이었다. 벚꽃이 가득한 거리에서 먼저 인사를 건넨 지효는 내 눈에 천사 같았다. 메말라 있던 나의 심장에 촉촉한 꽃비가 되어 내렸던 그 미소. 솔직히 그건 과도한 망상이었다. 그 순간 모지리 처럼 늘 앓고있던 도끼병이 또 도져서는 지효가 나를 좋아하는게 아닐까라는 반쯤은 확신에 가까운 망상을 해버린 것이다. 

 그 뒤로는 지효와 함께하는 순간 순간마다 심장이 두근거려 '이것이 사랑이구나.'라고 멋대로 결론을 지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 나가며 독실한 척 했다. 

 하지만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도 믿음, 소망, 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다. 나는 그 제일인 사랑을 실천하려 누가봐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으니까. 

 "거짓말이잖아! 어떻게 날 속일 수 있어?"

지효의 질책에 순간 고민하긴 했다. '믿어!'라고 거짓말을 해버릴까. 웃긴 상황이다. 거짓말을 했다고 질책을 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거짓말을 해야 모면할 수 있다니. 아이러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을 믿는 주제에 나에게 거짓말이라니. 허탈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허탈은 곧 자조가 섞인 비통함이 된다. 

 우리가 처음만난 4월. 나는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왔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나는 숙부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회사에 낙하산으로 들어간 것이다. 거기서 주로 서류정리와 회계쪽 일을 했고 그런 고로 한 번 씩 동사무소에 가게 되었다. 바로 그 동사무소에서 지효를 만나게 된것이다. 

지효를 처음 본 순간 솔직하게 이쁘다는 생각은 했다. 어쩌면 그게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원치도 않는 교회에 매주 나가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지효를 보며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속여왔던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지친다.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있는가.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끝내려 할 때마다 '지효가 없는 인생'이라는 가상 심파극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며 나를 압박해왔다. 결국 '난 할 수 없어.'라며 포기하고 도망친 것이다. 어찌보면 도망치던 자의 최후라고 볼 수도 있겠다.

 -탁

 나는 맞은편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랬다. 지효다. 언제들어왔는지도 모를 지효가 상념을 깨고 내 앞에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지효는 그랬다. 언제 들어왔는 지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들어와 멋대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지효의 눈은 차가웠다. 아니, 더 정확히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눈빛이었다. 그래, 냉정보다 이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지?"

 툰드라의 냉기가 묻은 것 처럼 차갑게 뚝뚝 떨어지는 지효의 말은 내 기분도 바닥 깊은 곳까지 뚝뚝 떨어뜨렸다. 나는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를 좋아한다면서 어떻게 날 속인거야?"

 지효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질문을 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숙연해진 분위기에서 나의 고백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탁자 밑으로 두손을 내리고 초조함에 양 무릎만 쓰다듬었다. 땀이 났다.

 "일단, 확실하게 말하는게 좋겠다. 이제 나한테 연락 하지 마."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서 진정이 되지 않는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아득해지고 머리속이 어지럽고 멍하다. 예상했다.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게 되니 내 심장은 산산히 조각나 흩어져 버린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 수십, 수만의 개미병사들이 들어와 뇌를 갉아 먹는 것 같았다. 온 몸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어나 멎지를 않았다. 

 "그럼, 갈게."

 그 역겹기까지한 어지러움 속에서 지효는 날카로운 창처럼 내 심장을 후비고 떠나갔다. 이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효의 말과 동시에 나를 비웃거나 동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지효는 나에게서 도망치듯 서둘러 카페를 벗어나고 있었다. 

 잡을 생각도 없다. 끝난 사랑을 이어붙이려고 하는 것 많큼 안쓰럽고 부질없는 짓은 없다. 나는 주섬 주섬 내 짐들을 챙겼다. 지갑은 뒷주머니에 넣고 핸드폰은 자켓 안주머니에 넣고 옷매를 단정하게 하고 태연한 척 카페를 걸어나갔다.  세달 정도 사귄건가? 카페 문을 열자 뜨거운 태양이 나를 비추었다. 아직 7월.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 얼굴에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그리고 곧 장마가 온 듯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이게 무슨 쪽팔리는 짓인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어두운 곳으로 향했다. 홍수가 난듯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기우제를 지내듯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 

 "아....."

 목이 메여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적당한 건물 입구로 들어간 나는 계단뒤에 숨어서 속으로 오열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벽을 '탁'하고 짚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여기서 더 추태를 부리기엔 날이 너무 밝았다. 

 10분정도 지나자 폭발하듯 터져나오던 눈물은 거짓말 처럼 멎었다. 마치 소나기 처럼 갑자기 찾아와서 모든걸 토해내고는 별안간 그쳐버렸다. 카페에 도착하기 전 부터 들었던 노래를 듣기 위해 이어폰을 휴대폰에 연결했다. 지금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
 
 정말 궁상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귓속에 들려오는 가사가 너무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나는 슬픈표정으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차에 탔다. 시동을 걸려고 열쇠를 꽂다가 갑자기 헛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흐......"

그리곤 곧 고개를 숙여버렸다. 뭐가 나쁘냐고. 널 위해서 그런 행동까지 했으면 감동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나 아무 문제도 안일으키고 잘 지내왔는데. 네가 하라는거 다 했는데. 

울컥했다. 지효의 마음은 알것 같은데 막상 하나도 모르겠다. 이해할 것 같지만 이해하기 싫은 걸까. 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다고....그런데 그렇게 원망하고 화내다가 갑자기 아무 상관없는 이름이 떠올랐다.

'김정래'

지금 들려오는 이노래. 사실 정래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을 때 "이노래 들을 때 마다 네 생각이 났어."라며 정래가 들려줬던 노래였다. 검지를 깨물었다.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밝아서~ 괜찮았어.]

마지막 노랫말에 귓가에 들려오자 또 눈물이 흘렀다. 정래는 말했었다. 

 "그때 너무 밝아서......아무렇지 않은 척했어. 울고 싶었는데...."

오른손으로 추하게 눈물을 훔쳤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어..........."

 그말이 홍수가난 내 가슴에 돛단배처럼 여리게 떠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이제야 정래의 슬픔을 공감하는 걸까? 그건 아닌것 같은데 자꾸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녀에게 위로받고 싶은걸 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래 함께해서 연인이지만 친구같기도 했으니까. 몇번이고 헤어져도 바보처럼 다시 만났으니까. 헤어지고나서 내가 멍청하게 다시 만나달라고 애원하면 못이기는 척 다시 안겼던 정래였으니까. 

 그래서 부산에 왔다. 서울에서의 추억을 다 버리고 여기로 오면 변할 것 같아서. 그때까지 괜찮았던 벌이를 다 접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정착하고 싶어서. 내 마음이 쉴곳이 필요해서. 정래를 대신해줄 사랑이 필요해서. 그래서 지효에게 미친듯이 전념했던 것 같다. 

 지효가 백미러에 달아주었던 십자가 모양의 악세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다시 그 노래를 재생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때어서 버렸다. 창문을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눈물이 비칠까봐 황급히 오른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그냥 던져버렸다. 마치 내 사랑처럼. 지효는, 저 십자가 처럼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듯 나를 버렸고 나는 그런 지효가 준 저 십자가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지효가 했던 것 처럼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창물을 올렸다. 

 눈을 감고 시트를 뒤로 눕히고 기대누었다. 모든게 잘못되었다. 애초에 부산에 오는게 아니었다. 그렇게 쫓기듯 지효에게 매달려서는 안되었다. '너 때문에 교회에 왔어.'라는 말은 해서는 안될 말이었다. 그 말을 했던 이유는......

 나는 모든걸 체념하며 다시 시트를 일으켜세웠다.  

[우리 혹시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냐고]

나는 힘없이 이어폰을 빼고 노래를 꺼버렸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왜 그말을 했냐면, 왜 했냐면.......그 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우리는 세달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3년을 만났던 정래보다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다고 했던 그 정래보다 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그렇게 날 속이고 싶어서. 

 -끼이이익

 거칠게 핸들을 꺾자 바닥과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엑셀을 밟았다. 나는 왜 울고 있는가. 울 자격이나 있는 건가. 지효와 함께 하면서 '여긴 처음와노는 곳이야.'라며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때 정말 정래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 안에서, 나 혼자 정래에 대한 내 마음과 지효를 향한 내 마음을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았을까? 사랑이라는 건 참 가벼운 거다. 

 정래에게 내 사랑이 얼마나 무겁고 진중하고 변하지 않는 것인지 설교하다가 그게 걸림돌이 되서 이제는 다른 사랑도 못하는 병신이 되었다. 이 눈물은 지효 때문일까, 아니면 정래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 때문일까. 

 차는 미친듯이 막혔고 나는 뒤늦게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에 달아 둔 방향제의 냄새가 내 가슴을타고 올라왔다. 멋쩍다. 심장은 자동차의 엔진 처럼 계속 '웅웅'거리고 있는데 에어컨 처럼 차갑게 식은 머리는 눈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럴 수록 내 심장은 더욱 괴로워하듯 '웅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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