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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들-2
게시물ID : readers_8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총균쇠
추천 : 1
조회수 : 2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9/22 15:39:04
프롤로그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8903&s_no=8903&page=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8904

### 꿈에서 깬 시간은 4시를 조금 지나서였는데, 다시 잠을 청하려 해도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이 들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올 때까지 책이나 읽자, 하고 소설책을 펼쳐 들었다가 결국 침대 맡에서 새벽해가 뜨는 것을 보고 말았다. 오늘은 아침 9시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자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하고 평소보다 일찍 샤워를 하고 식사를 했다. 평소보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신경 써서 아침을 차려 먹었다. 어제 끓여놓은 미역국을 데우고 계란 프라이를 한 쪽 면만 익히고 베이컨을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바싹 익혀 먹었다. 보통 아침은 가볍게 먹는 편인데 제법 형식을 갖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본의 아니게 새벽해가 떠오를 시간에 깨어있을 때에 느껴지는 무기력한 기분이 사라졌다. 정성스럽게 이를 닦고 치실로 이 사이를 정리하고 난 뒤 8시쯤 집에서 나섰다. 자취를 하고 있지만 비교적 싸고 쾌적한 방을 찾다 보니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에서 내려 강의실까지 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충 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출근시간이란 때때로 불가사의할 정도로 막힐 때가 있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출근하기 마련인데도 어떤 날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평소보다 훨씬 막혀서 버스 안에서 20분이 넘게 시간을 빼앗길 때가 있다.(특히 월요일이 그렇다. 왜 그럴까?) 난 약속이나 일정에 늦는 것을 싫어해서 대체로 여유 있게 출발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학교에 갈 때는 늘 강의 한 시간 전에 출발한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구르는 것보다 약속 장소에 한참 일찍 도착해서 멍하니 기다리는 게 차라리 낫다. 그리고 난 기다리는 걸 별로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편이다. 찜찜한 꿈을 꿨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 안에서 내 머릿속에는 이미 꿈 따위는 새까맣게 잊혀졌다. 뇌의 스위치가 '현실' 모드로 전환된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면 걸어갈 경로라던가, 커피를 어느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해야겠다던가, 오늘의 일정, 혹시 오늘 해야 할 과제가 있지는 않은 지, 말 그대로 현실적인 주제에 대해서 이것저것 두서 없이 떠올렸다. 점심 식사를 하기 전까지 어제의 이상한 꿈이 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을 틈은 없었다. 하지만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오자 자연스럽게 어젯밤(오늘 새벽?) 그녀가 꿈 속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1시까지 학교 카페테리아로 와. 난 아마 창가 쪽 테이블 어딘가에 앉아 있을 거야. 내게 말을 걸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해.' 난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11시 50분이었다. 다음 수업은 세 시.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특별히 해야 할 과제나 일도 없고 해서, 평소에는 동아리방 혹은 과학생회실에 얼굴을 비추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죽이는 시간이다. 망상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난 스스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녀가 카페테리아에 마침 그 시간에 나타나고, 마침 창가 쪽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수를 가늠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지만 매일 수 백 수 천 명의 학생이 그 시간에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싼 가격에 질 좋은 식사를 양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페테리아가 세로로 길쭉한 구조이기 때문에 테이블 중 절반은 창가 쪽에 있다. 하지만 상관 없지 않을까? 내가 12시에 밥을 먹건 1시에 밥을 먹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와 식사 약속을 한 것도 아니다. 외부적으로 볼 때 나는 그저 1시간 정도 시간을 죽이다가 밥을 먹으러 갈 뿐인 모양새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행동이다. 아무도 관심 없기야 하겠지만 식욕이 없다던가, 제일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피한다던가 얼마든지 적당한 이유를 댈 수 있다. 나 스스로만 나의 이 괴상 망측한 동기를 눈감아 준다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다. 호기심.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심심한 일상이다. 꿈에 나타난 조상님이 불러 준 번호대로 복권을 산다는 정도의 일인 것이다. 복권은 아마 맞지 않을 것이다. 복권이 맞는다고 해도 그건 그저 확률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 조상님께서 번호를 점지해주셨기 때문은 아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도 호기심이 있고 때때로 심심할 때가 있다. 그런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쯤에서 고민을 멈추었다. 어차피 스스로 기만하면 그만인 일이다. 더 이상 깊이 생각해봐야 내가 정신분열과 망상장애의 길목에 접어들었다는 결론을 내리기 밖에 더 하겠는가. 학교 안에 있는 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숲이나 공원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민망하고, 차라리 정원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그마한 길목이다. 아마 처음엔 학생들이 지름길로 쓰던 비공식적인 길이 통행자가 많아지면서 길의 폭이 넓어지자 벤치도 깔고 가로등도 세우고 한 것 아닐까, 혼자 상상해봤다. 그 곳 벤치에 앉아 오늘 새벽에 침대에 누워 읽었던 소설을 이어 읽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페이스로 소설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글 읽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을 5번 정도 읽기도 했다. 만약 진짜 여름이 거기 있으면 어떡하지, 말을 건네야 하나, 건넨다면 뭐라고 말을 건네지, 하는 따위의 별 쓸모도 없는 걱정거리들이 자꾸 떠올랐다.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지만, 어쨌든 시간은 착실하게 갔다. 12시 50분쯤 해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카페테리아로 발길을 향했다. 머릿속은 복잡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심경이 복잡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아닐까. 점심 시간답게 온 캠퍼스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마 캠퍼스에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대일 것이다. 카페테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식권을 사는 줄이 끝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고 배식 받는 곳에도 마찬가지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내가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설령 여름이 이곳에 있어도 간단히 찾기는 힘들다. 원래 배식을 받고 앉을 자리를 고르는 척하면서 창가 쪽 자리를 훑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식판을 들고 돌아다니기엔 사람들이 너무 많고 또 빈 자리가 나면 바로 앉아야 할 정도로 자리도 별로 없다. 여름을 발견한다고 해도 ‘옆자리에 앉아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접근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 그녀 옆 자리가 비어 있지 않을 가능성도 제법 높다.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계획에 어울리는 어처구니 없는 결말이다. 그냥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식권을 판매하는 줄에 섰다. 내가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혹은 이 시간대의 카페테리아가 어떤 꼴인지 잊지 않았더라면) 꿈 속에서 좀 더 조용하고 괜찮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어차피 그녀를 만나지 못할 거 최소한 조용하고 괜찮은 장소에서 기다리지 않고 식사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운터 직원의 능숙한 솜씨 덕분에 줄은 생각보다 일찍 줄어들었다. 난 기다리는 동안 그녀들의 장인의 경지에 이른 계산 솜씨를 구경했다. 메뉴를 묻고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하고 식권과 영수증을 주기까지의 시간이 거의 3초도 걸리지 않았다. 한식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그에 맞춰서 식권과 거스름돈을 동전까지 미리 준비해놓고 있는 점이 비결이었다. 어느새 내 차례가 와서 한식을 카드로 결제했다. 역시 3초 정도 걸렸는데, 그 중 대부분이 영수증이 기계에서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계속 하면 달인이 되는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으며 배식을 받으러 가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였다. 여름이었다. 그녀도 배식 줄을 서기 위해 나보다 조금 앞서서 걷고 있었다. 순간 모든 소음이 수그러들면서 배경이 흐려지고 그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동안 멍청히 서 있다가 내 뒷사람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배식 줄에서 나와 그녀 사이에 사람이 끼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억지로 그 사람을 앞질렀다. 결국 그녀와 나는 배식 줄에서 바로 앞 뒤로 서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무표정하게 한식 옆에 분식 섹션 메뉴를 훑어보는 것으로 보아 혼자 밥을 먹으러 온 모양이다.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아무 의미도 없다. 조금 신기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우연이 벌어진 것뿐이다. 그나마도 끼워 맞추기 식이다. 꿈 속의 그녀는 창가 쪽에서 자신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만 했다. 그 달콤하면서도 지독한 자각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손 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안녕?” 내 표정이 지금 어때 보일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멍청해 보이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녀의 표정에 차례로 누구? - 아! - 근데 왜 나한테? 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흘러갔다. 식은 땀이 흐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답게 곧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홍연우, 심리학과. 맞지?” 왠지 ‘정여름, 사회학과. 맞지?’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멍청해 보일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맞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밥 먹으러 온 거야?” 그녀는 옆머리를 귀 뒤쪽으로 넘기며 물었다. 비누 냄새인지 샴푸 냄새인지 좋은 향기가 났다. “응. 너도 혼자 왔나 보네?”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혼자서 밥 먹는 거 좋아해.” 가슴이 철렁했다. 이건 같이 먹자고 말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아닐까? 내 쪽의 반응과는 관계없이 그녀는 재잘재잘 말을 이어나갔다. “대학교 입학하니까 혼자 밥 먹을 기회가 거의 없더라고. 나, 밥 먹는 속도도 느리고 밥 먹을 때 먹는 데 집중하는 성격이라 대화하면서 밥을 먹으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거든.” “같이 먹자고 할까 했는데 그럼 안 되겠네.” 나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말을 꺼내놓고 아차 싶었다. 내 모습이 얼마나 비루하고 한심해 보일까? 눈치도 없다. 그냥 적당히 말을 나누다가 배식을 받고 각자 갈 길 갔으면 됐을 것을. 그녀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여름아!” 만회할 말을 찾아 머뭇거리는 사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이고 아마 같은 과 동기거나 선배인 모양이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했다. “어 그래. 밥 먹냐?” “네.” “왜 그런 데서 먹구 있어. 임마, 신입생은 이런 데서 먹는 거 아냐. 따라와 밥 사줄게.” 그는 무리를 거느린 침팬지처럼 오만하고 거들먹거렸다. 그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일행이 있어요.” 그녀는 내 한 쪽 팔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나는 그녀와 일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두목 침팬지는 무관심한 시선으로 나를 흘깃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래? 그래도 맛있는 거 먹는데 같이 가지. 우리 스테이크 먹으러 가. 자주 있는 기회가 아냐.” “그래도 일행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녀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나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침팬지가 타겟을 바꾼 모양이다. 그는 갑자기 싹싹한 태도로 내게 말했다. “저기요, 제가 여름이 같은 과 선밴데요. 선약이 있으신 건 알겠는데, 제가 여름이 진짜 아끼는 후배고 또 제가 이렇게 후배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안타까워서 그런데 혹시 약속 좀 미뤄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뻔뻔할 수가, 할 말을 잃었다. 여름도 난처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학식은 식권 꼭 지금 사용 안 해도 다음에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근데 사실 오늘 제가 오늘이 아니면 또 이렇게 밥을, 비싼 데서 살 기회가 또 언제 있을 지 모르거든요. 저도 지갑 사정이 좋지만은 않은데 오늘 어떻게 사정이 딱 맞아 떨어져서.”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난처해하던 여름이 뭐라고 말하기 직전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공손하게. “아 죄송하네요. 사실 여름이랑 저랑 오늘 중요하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침팬지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그냥 양보할 거라 믿었나 보다.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그런 기대를 하는 걸까. 불쾌하고 화가 났다. “아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시구나.” 공손한 듯 하지만 살짝 비꼬는 투였다. “그리고 학식이 됐든 뭐가 됐든 여름이랑 저랑 선약이 있고 벌써 밥 먹으려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이러시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제가 죄송하죠. 제가 미리 연락을 했어야 됐는데. 그럼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여름아 밥 맛있게 먹고 중요한 얘기 잘 해라.” “예, 선배도요.” 나와 여름은 침팬지 무리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윽고 침팬지 무리에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됐을 때 내가 말했다. “줄 다시 서야겠는데.” 두목 침팬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연스럽게 배식 줄에서 빠져 나왔기 때문에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애매했다. 이미 우리가 서 있던 자리는 배식을 받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다시 배식 줄의 끝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아까만큼 줄이 길지는 않았다.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고?” 그녀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짓궂은 말투로 말했다. “너도 나랑 일행이라며.” “그렇지 선약이 있는 일행이지.”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미안. 저 선배 좀 불편하거든. 스테이크가 아니라 김밥에 라면이라도 혼자 먹는 게 나아.” “많이 밉보였나 보네.” “응. 복학생인데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대놓고 자기는 신입생이랑 사귀겠다고 공언을 하고 다니더라. 근데 내가 타겟이 됐나 봐. 기회만 있으면 자꾸 들이대고 그러네.” “아깐 미안해서 혼났어. 같이 밥 먹기가 너무 싫어서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는데 너한테 그렇게 대할 줄은 몰랐어. 정말 미안해. 기분 많이 나빴지?” “아냐. 내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곧 우리가 배식 받을 차례가 되었다. 난 제육볶음 따위를 배식창구 쪽에서 내 쟁반으로 옮겼다. “아까 말했던 거 말인데.” “응?” 국그릇이 넘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쟁반으로 옮기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같이 밥 먹기 싫다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어. 그냥 혼자 밥 먹는 거에 대해서 얘기하다 보니깐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말했던 건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 못했어.” “아냐. 내가 좀 소심해서 원래 쓸데없이 앞서나가고 그래.” “배려심이 있는 거지.”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그녀가 음식을 마저 다 담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에 카페테리아 내부를 죽 훑어보았는데 잠깐 사이에 제법 자리가 생겼다. 여름은 음식을 다 담은 쟁반을 들고 내 앞에 섰다. “그럼 같이 먹을까?” 내가 말했다. “좋아. 위기에서 도와준 보답으로 내가 후식으로 커피도 쏠게. 아! 저기 창가 쪽에 자리 있다. 저 쪽으로 가자.” 그녀가 앞장서서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고 난 그 맞은편에 앉았다. 과연 그녀는 식사 중에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차피 카페테리아 내부가 꽤 시끄러워서 대화를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난 아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일부러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쨌든 조상님 꿈을 꾸고 복권을 산 결말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예상대로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한 거냐고 자학하며 식사를 하는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몇 가지 우연이 중첩되면 허무맹랑한 계획도 때때로 좋은 결말을 맺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제 그 꿈은 꾸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꿈은 자각몽과 짝사랑이 만들어낸 일종의 상사병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하던 일방적인 관계에서 실제로 대화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는 등 상호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제 꿈으로 자학에 가까운 대리 만족을 해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앞으로 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어떻게 발전될 지 모르는 현실의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물론 이제 막 말을 섞었으니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기묘한 자각몽을 더 이상 꾸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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