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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니나 남징어의 허접한 여행기- 프롤로그
게시물ID : travel_89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백살이다
추천 : 7
조회수 : 73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10/15 00:53:41
안녕하세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리스에 살게 된 남징어입니다.
한국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딩가딩가 하면서 살았지만, 막상 그리스에 와서 생활해보니 전 너무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었더군요.
해서,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 국내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어디 다니다가 마음에 들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진찍는걸 까먹고
마음에 안들면 사진찍을 기분이 들지 않아서 안찍다보니
사진 분량도 별로 없고, 사진이라곤 허접한 거 투성이네요.
그래도 기록이라도 남길 겸 한번 정리해봅니다.

우선, 처음 그리스에 도착해 지금 살고 있는 요아니나 (Ioannina, Ιωαννινα)에 도착하기 까지의 짧은 여정을 맛보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IMG_1349.JPG

때는 2월 초, 여기는 아테네 공항입니다.
한국은 아직 추웠는데, 여긴 그저 따뜻하기만 합니다.
2월초인데도 따뜻하다니 진짜 그리스에 오긴 왔나봅니다.
아테네에서 요아니나로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한대밖에 없는데, 항공 스케쥴이 잘 안맞아 아테네에서 하루 묵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하루 묵을거니 구경이라도 하라며, 저와 함께 일할 교수가 친절하게도 아테네 지하철 노선도와 아크로폴리스 가는 길 및 개장 시간을 알려줬습니다.

그치만 전 긴 여행에 지쳐 어서 샤워하고 침대에 드러눕고만 싶어, 미리 예약해둔 공항 근처 호텔로 갈겁니다.


IMG_1353.JPG

호텔에서 샤워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이메일도 확인했습니다.
근데 제가 예약한 비행기의 수하물 규정 때문에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는 urgent 메일이 항공사로부터 왔습니다.
해서 수하물 규정에 대해 문의를 하러 공항으로 다시 갔다가 나오니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아테네 구경은 아무래도 오래 못 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한번 가봅시다.

지하철 타는 곳이 어딘가 싶어 표지판을 봅니다.
교과서나 논문에서만 보던 그리스 문자가 절 반깁니다.
그리스에 오긴 왔나봅니다.

원래 물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 문자랑 친합니다. μετρο라고 적혀있는 곳이 '메트로' 즉 지하철입니다.
그래서 화살표를 따라 곧장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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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디 가서 초행인 사람처럼 두리번 거리는걸 싫어합니다.
그러면 괜히 어중이떠중이가 달려들어 제 눈탱이를 깔 것만 같거든요.
해서, 한번 목적지를 정하면 망설이지 않고 직진만 합니다.

지금은 망설임 없이 지하철 화살표를 따라 직진하다가, 힘이 들어 현대문물의 힘을 빌어 직진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라보. 전 맞게 왔습니다.
첫날부터 길을 한번에 찾는걸 보니, 그리스의 생활은 앞으로 순탄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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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할 교수가 보내준 아테네 지하철 노선도입니다.
전 아끄로뽈리 (Acropolis)역에서 내릴겁니다.
파란선을 타고 가다가 신다그마 (Syntagma)에서 빨간선으로 갈아탈겁니다.
아 뭐 아테네 지하철 쉽네요.

왜 아크로폴리스를 아끄로뽈리, 신타그마를 신다그마라고 읽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게 인지상정.
이게 그리스 본토발음입니다. 저 믿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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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끄로뽈리에 도착했습니다.
길을 따라 죽 올라오니 교회같이 생긴 건물이 있습니다.
정교회 교회를 다 보다니, 그리스에 오긴 왔나봅니다.

지하철을 타고 갈아타고 내리고 하는 사진은 없습니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행동하려다보니 사진찍는 여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이해하세요.

그리스 곳곳엔 이렇게 작은 교회부터 큰 교회까지 교회가 무지하게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신앙심은 매우 깊습니다만, 젊은이들은 신앙심이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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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아끄로뽈리 구경을 하러 가봅시다.
아끄로뽈리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입구를 향해 무작정 직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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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반대편을 봤더니 도시의 전경이 보입니다. 제가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는 이야기겠죠.
저 빼곡하고 드넓은 집의 바다가 보이십니까.
아씨나(이제부터 본토발음입니다. 아테네 ㄴㄴ)는 한국의 서울처럼 그리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 사는 거대도시입니다.
그래서 집도 무지하게 많고 인구밀도도 무지하게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처럼 도시 계획이나 정비 같은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도시의 외관은 매우 너저분합니다.
실제로도 청결하지 않고, 사람들도 친절하지 않습니다. (구걸 및 호객행위 조심하세요. 가끔 부랑자들이 시비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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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부지런히 직진을 하다보니 뭔 그리스스러운 건물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아직 아끄로뽈리스 안엔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여긴 그저 외곽에 위치한 건물로, 간혹 음악공연이나 페스티벌 같은걸 하는 야외음악당입니다.
그리스에선 이런 젊은 건물 따위는 울타리 칠 필요도 없이 그냥 막 쓰는겁니다.

근데 그땐 그런줄도 모르고, '와 아클로폴리스구나' 하고 겁나게 사진을 찍어댔더랬죠.
아 부끄럽습니다.
암튼 사진 몇장 더 박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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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보니 뭐 있어보이는게 또 나옵니다.
일단 사진 찍고 봅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와보니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한번 시간내서 공부한 다음 또 와야겠습니다.

근데 막상 직진하고 또 직진하다가 아끄로뽈리 입구에 당도해보니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놔 겨울이라 문을 빨리 닫는답니다.
그래도 아직 다섯시밖에 안된거 같은데 문을 닫는다니.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돌립니다.
너무 황당해서 사진은 안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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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아까 본 교회에 다가가 자세히 살펴봅니다.
비록 무신론자라 아무것도 모르지만, 문에 십자가도 두개씩이나 박혀있고 한걸 보니 교회는 맞는 것 같습니다.
괜히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이교도가 여기있다!'고 소리치며 절 잡아갈까봐 언넝 발길을 재촉합니다.


IMG_1375.JPG

정교회 교회에서 멀어지는 이교도의 발을 그리스의 길냥이가 붇듭니다.
듣자하니 그리스 고양이는 사람을 안무서워 하기는 쥐뿔, 더 다가가니 쏜살같이 도망칩니다.
야옹아 제발 가지마 엉엉.


IMG_1378.JPG

아끄로뽈리스고 뭐고 개나줘버려.
한번 고양이를 마주친 전 뭐에 홀린 듯 고양이를 찾아 아씨나의 뒷골목을 헤메입니다.
야옹아 나좀 한번만 봐줘. 날 외면하지 마 엉엉.

그리스에 온 첫날 한국산 남징어는 길냥이들의 심장어택에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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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심장어택에 혼미해진 정신을 추스리고 보니 어느새 날은 밝아 전 요아니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씨나 공항에 와있습니다.

탑승시간은 임박했는데 B20 게이트 스크린에는 아직도 미꼬노(μυκονος)행 비행편만 표시되고 있습니다.
혹시 잘못 찾아왔나 몇번을 확인해도 게이트 번호는 맞습니다.
어쨌든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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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요아니나에 도착했다는 방송과 함께 이윽고 비행기에서 내린 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어릴 적 동네에서 봤던 가수원역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이건,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요아니나 공항입니다.
하루에 비행기 한대, 항공편은 오로지 아씨나행 뿐인 여기가 바로 요아니나 공항입니다.
이때 알아채야 했습니다. 이 강렬한 시골의 정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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