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 어여쁜 포니 공주님들과 정치꾼들의 뻔한 계획
아까 친구라는 놈들이 열심히 갈궈댄 탓에, 샤이닝 아머는 자기가 어제 겪었던 스물 네 시간이 과연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던 차였다. 뭐 아주 약간이었지만.. 하긴.. 솔직히 새로 즉위한 공주가 학교 불량배에게 괴롭힘 받는 학생을 도와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마치 지금 캐이댄스 공주가 직접 샤이닝 아머 앞에 나타나 할 말이 있다면서 갑자기 빈 체육관으로 끌고 갈 확률만큼이나 말이다.
캐이댄스는 지금 샤이닝 아머 주변을 서서히 돌며 심각한 눈치로 샤이닝 아머를 이리 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캐이댄스는 분명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생이자, 학생들과 심지어 선생님들마저도 질투와 선망이 섞인 시선으로 우러러보며 가까워질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다. 다들 공주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를 생각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평소 샤이닝 아머와 그 친구들과는 180도 다른 취급이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갑자기 캐이댄스 공주가 샤이닝 아머를 체육관으로 먼저 끌고 간다는 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캐이댄스 공주는 분명 샤이닝 아머의 눈앞에서, 샤이닝 아머의 몸을 검진하듯 이리저리 직접 찔러보고 있었으며, 캐이댄스의 상큼한 샴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캐이댄스가 쓰는 샴푸의 향이 엄청 강렬했다는 이야기다. 변태처럼 대놓고 킁킁거렸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샤이닝 아머는 도대체 자기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납득 가는 이유를 찾기 위해 얼떨떨하게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벅에게 죽도록 쳐맞아서 아직까지 헛것을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샤이닝을 구해준 선셋은 아마 샤이닝 아머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가장 완벽한 암말의 모습이 형상화된 거겠지... 하지만 이 이론의 가장 큰 맹점은 샤이닝 아머가 이야기로만 들어본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그 모든 게 깡그리 허상으로 끝나버린 게 아니라, 분홍색 포니 공주가 마치 서브 히로인 등장씬과도 같이 샤이닝 아머를 체육관으로 끌고 가 진지한 얼굴로 샤이닝 아머를 살피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지만 느껴지는 오감은 생생했다.
그것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눈앞의 공주는 마치 훈련조교를 방불케 하는 포스를 뿜고 있었다.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 차근차근 몸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3바퀴쯤 돌았을 때, 샤이닝 아머는 겨우 용기를 내서 질문을 던졌다.
"저.. 공주님.. 혹시 보모 일 때문에 오신 거라면..."
"보모 일이라니?" 공주는 잠시 관찰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샤이닝 아머를 바라보았다.
"선셋이 말 해주지 않았어...요?" 샤이닝은 말을 이었다. "이번 주말에 제 여동생을 돌봐줄 포니가 필요한데.. 제가 좀 바쁘거든요.. 그 때 선셋도 오-"
"그러니까 동생 걱정 없이 선셋이랑 단 둘이 같이 있고 싶다는 거지? 그치?"
샤이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캐이댄스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물론 도와줘야지! 아.. 근데 선셋 걔가 나한테 동생 이야기를 해 준 적은 없긴 한데.. 그래도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어제 걔가 네 이야기를 할 때 걔 이야기를 약간 방해한건 나였으니까.."
그리고 공주는 다시 샤이닝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샤이닝 아머는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공주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스칠 때마다 속이 끓어오르듯 아파왔다.
"뭐...뭐...뭐라고 말하던가요?"
"음.. 약간 애매하긴 했지만 대체로 좋은 말. 가령, 성격 같은 거? 그래도 정보가 부족해서 내가 너를 직접 프로파일링하기 전에, 다른 학생들에게서 정보를 좀 얻어야 했지만 말야."
...나 지금 떨고 있니? 선셋 이외의 또 다른 공주가 지금 샤이닝 아머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고.. 아니... 그냥 지금 자기가 하려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건가? 뭐든 간에 샤이닝 아머가 보기엔 눈앞의 저 포니는 명백한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방심을 했다간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용기를 긁어모아, 샤이닝 아머는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공주님.. 대체 뭘 하시는.."
"존댓말 생략하고 그냥 편하게 대해도 돼. 나도 그게 더 편하니까. 그리고 지금 뭐 하냐구? 네 외모를 체크하는 중이지 뭐겠어?"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바로 뒤에서 멈췄다. 찌르는 듯한 시선을 샤이닝 아머가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으~~~~~~~~음. 약간 호리호리한데다가 신장은 평균. 근육이 많지는 않지만.. 운동만 열심히 한다면 몇 년 후엔 꽤 쓸 만하겠군. 흐~~~~~~음...."
캐이댄스는 한숨을 한 번 쉰 뒤 다시 샤이닝 아머의 앞에 섰다.
"어떻게 이걸 설명해야 되나.."
이렇게 중얼거리다 곧 확신이 선 듯 공주는 샤이닝 아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너한테 관심이 있으니까 선셋이 애프터를 신청한 거겠지?"
여전히 혼란 상태에 빠진 채로 샤이닝 아머는 어물어물 고개만 끄덕거렸다.
"하긴, 걔도 걔 입으로 직접 그런 말을 했으니까... 아까 내가 다른 학생들에게서 너에 대한 정보를 좀 얻었다고 말을 했었지?"
캐이댄스는 한 쪽 날개를 펴서 바깥쪽 깃털부터 차례대로 구부리기 시작했다. 페가수스들이 수를 셀 때 흔히들 하는 방법이었다.
"수요일에 다른 학생들에게 수학 숙제 푸는 법을 가르쳐줬다지? 화요일과 목요일 땐 제스트풀리 클린의 남동생을 사정이 있어 못 오는 부모님들 대신 학교에서 집까지 대려다줬고. 거기에 대체로 성적 우수, 비흡연자... 그리고 내가 직접 널 세심하게 살펴본 결과까지 더하면... 흠... 말대로 귀엽고 자상하긴 하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조교를 해 줄 필요가 있겠군 그래.. 귀엽긴 하되 어느 부분에선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선셋의 입맛에 딱 맞는 당당한 한 필의 수말로 말야."
캐이댄스는 입맛까지 다시면서 샤이닝 아머를 보고 있었고, 샤이닝 아머는 안절부절 낯빛을 붉혔다. '와 나 시발 이거 대체 뭐가 어떻게 돼가는거?'
"어...고...고마워?"
"그런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둘게. 지금 당장 선셋이랑 데이트하는 건 아주 나쁜 생각이야."
얼굴을 찌푸리며 캐이댄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수말 으로써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핫핑크색의 공주님 드레스를 입은 선셋의 옆에서 멋진 판금갑옷을 입은 체 그 옆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망상도 자존심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자-잠깐. 뭣?!"
캐이댄스는 코웃음을 한 번 치며 다시 샤이닝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물론 네가 좋은 얘라는 건 알아. 상냥하고 자상하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
칭찬으로 말을 꺼내면 보통 그다음엔 나쁜 말이 날아온다는 이야긴데..
"모름지기 암말들이라면 너 같은 포니에게 진심으로 끌리는 게 당연할거야. 하지만..."
그리고 공주는 샤이닝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문제가 뭔 줄 알아?"
"뭐..뭔데?"
샤이닝은 우물쭈물 겨우 목소리를 내 대답했다.
"그 정도로 선셋 쉬머에게 들이대려고? 모자라!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공주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샤이닝 아머는 거의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선셋은 보통 공주가 아냐! 야심만만하고 또 열정이 넘치는 공주라고! 물론 넌 좋은 애긴 해. 근데 그게 네 전부라면-"
"잠깐! 아까 네가 분명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공주는 눈매를 바짝 치켜 새우더니, 그 자리에 앉아 발짱을 끼며 대답했다.
"자고로 대어를 낚으려면 말이야... 그렇게 고만고만한 떡밥으로는 안 돼."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가슴을 앞발로 푹 찌르며 말을 이었다.
"대어에겐 대어에 걸맞은 미끼가 필요한 법이야. 지금 당장 내가 보기에도 넌 착하다는 것 하나 빼곤 장점이 없어. 게다가 선셋이 나한테 또 뭐라고 한 줄 알아? 널더러 약간 소심한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 더 최악인건 선셋이 그걸 알면서도 너한테 기회를 주려고 네 고백을 내심 기다리고 있다는 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캐이댄스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서, 샤이닝 아머는 혼란에 빠져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그게 어째서 최악이라는 건데?"
샤이닝의 단점을 알면서도 오히려 사귀기를 원하는 거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캐이댄스는 성을 내며 으르렁거리더니 다시 샤이닝 아머의 주변을 굶주린 한 마리 맹수처럼 어슬렁거렸다.
"왜냐면! 선셋 쉬머는 불같은 성격과 열정을 가진,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거기에다가 성질이 아주 급한 포니니까!"
인상을 팍 구기며 캐이댄스는 샤이닝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모...몰라?"
캐이댄스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지자 너무 부담스러운 나머지 샤이닝은 서서히 앞발을 위로 올렸다. 진정을 좀 하라는 몸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얼굴 바로 앞에서 성난 숨을 씩씩거렸다.
"그 말인즉슨 선셋이 원래 자기 성격도 다 죽이고 널 기다려주고 있다는 거야! 그것도 없는 성격을 만들어 꾸며내면서까지!"
이렇게 말한 뒤 캐이댄스는 약간 뒤로 물러나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얼굴은 찌푸린 채이긴 했다.
"물론 처음엔 '아 쟤가 저러면서까지 날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누구 앞에서 그렇게 꾸며낸 모습은 얼마 못 가기 마련! 이건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아. 최악의 상황에선, 몇 주간 자신의 성격을 굽히고 들어가는데 진절머리가 난 선셋이 먼저 널 차버리고 자신의 불타는 열정을 바칠 만한 다른 수말을 찾는 거로 끝나거나, 혹은 네가 그냥 수말친구감이 아닌가보다 하고 포기하고 그냥 친한 친구로 끝나고 말겠지."
그리고 캐이댄스는 다시 샤이닝에게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그냥 친한 친구'사이가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탈출 못 하는 깊은 나락 속으로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한 발짝 물러난 캐이댄스는 한 쪽 눈매를 세우며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 선셋이랑 로맨틱한 관계로 진도를 빼고 싶지 않은 거야?"
샤이닝 아머는 잔뜩 움츠린 채로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괴상 쩍은 상황이긴 했다만, 어쨌든 캐이댄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분명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자기 암말친구로 만들고 싶었다.... 만약 선셋이 기회를 준다면 말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다음번에 내가 선셋 공주님을 만난다면 어... 난 다 받아줄 수 있다고 말하란 거지 지금?"
포기하긴 싫었다. 그리고 캐이댄스의 말대로 선셋이 진짜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성격이라고 쳐도.. 샤이닝 아머가 만난 선셋은 그저 착하고 또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있고.. 어쨌든 모든 게 다 좋아 보이는 그런 암말이었다. 캐이댄스가 선셋이 없는 곳에서 험담... 이라고 까진 좀 애매한데, 왠지 깎아내리는 듯 한 말을 하는 게 샤이닝 아머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셋을 변호해야겠다고 샤이닝 아머는 생각했다. 설령 상대가 또 다른 공주님이라고 해도 말이다.
"...일부로 열 좀 내보라고 말을 했더니.. 고작 그 정도 대답이 다야? 너 선셋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공주는 뚱하게 눈을 뜨고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갑자기 돌변한 공주의 태도에 샤이닝은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아니.. 좋아하는 거 맞는데?"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몇 초 후, 캐이댄스는 침묵을 깨고 질문했다. "왜지?"
샤이닝 아머는 선셋을 처음 만났을 때를 되돌아보았다. 노을을 등에 업고 서 있던 그 자태... 아름다웠다. 하지만 샤이닝이 좋았던 건 결코 그 외모 뿐만은 아니었다.
"그게... 강하고... 자신만만하고, 또 상냥하니까."
샤이닝 아머의 말은 점점 더 진심 어린 뚜렷한 말투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예쁘기도 예쁘지. 하지만 그냥 예쁘기만 해서 내가 선셋을 좋아하는 건 아니야. 선셋은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을 때.. 아무 이유도, 아무 대가도 묻지 않고 내 편을 들어줬어."
이 말을 다른 포니 앞에서 하기는 부끄러웠지만, 어쩐지 캐이댄스 앞에서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넌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캔틀롯 고등학교의 학생 계층 중에서 최하위에 속해. 다른 잘 나가는 학생들에게는 만만한 괴롭힘 대상이라는 이야기지. 대놓고 괴롭힘을 당해도 다른 포니들은 그냥 무시하거나, 아니면 그 꼴을 보고 비웃기도 한다고. 하지만 선셋은..."
샤이닝은 침을 한 번 삼킨 뒤 말을 이었다.
"...다른 몇몇 애들처럼 일이 다 끝나고 날 일으켜준 것으로만 끝낸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날 괴롭히는 얘들 앞을 막아섰어. 그리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나 같이 인기가 바닥을 기는 녀석의 이야기도 다 진지하게 들어줬다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 다들 내가 말을 하면 몇몇 포니들 빼고 겉귀로도 안 듣는데.."
캐이댄스는 인중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흠... 내가 샤이닝 널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보네."
"뭐?"
한숨을 쉬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캐이댄스는 대답했다.
"미안. 샤이닝 아머.." 그리고 공주는 고개를 들어 다시 샤이닝 아머를 쳐다보았다.
"난 너를 그저 한 때의 사랑에 눈이 먼 그저 그런 수말 한 필로 착각했지 뭐야.. 그냥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의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 너, 선셋을 동경하는구나? 그렇지?"
다시 한 번, 샤이닝은 볼을 붉혔다. "맞아.. 걔 진짜 멋지지 않아?"
"그렇군..... 그래. 결정했어. 내가 둘이 잘 되도록 도와줄게."
캐이댄스는 턱에 대고 있던 앞다리를 땅에 내려놓으며 결정을 내렸고, 샤이닝은 한 쪽 눈초리를 올리며 캐이댄스의 눈치를 살폈다.
"어... 애초에 네가 날 여기 데려온 이유가 그것 때문 아니었어?"
푸핫 하고 웃더니 캐이댄스는 앞발을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하하! 아냐. 아냐. 사실 난 네 자존심을 자근자근 짓밟아서 선셋 근처엔 얼씬도 못 하도록 만들 생각이었거든?"
공주가 너무나 행복한 투로 말하는지라 샤이닝이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샤이닝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캐이댄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한테만 하는 이야긴데... 선셋은 지금 좀 정신적으로 안정이 좀 안되어 있는 상태야. 걔가 다시 마음을 굳건하게 먹을 때 까지 접근하는 다른 포니들을 가급적 떨어트려 놓으려고 했는데.. 보니까 넌 진짜 좋은 얘 같더라. 그저 새로 탄생한 공주에게 관심이 있어서 집적대는 수말 수준은 절대 아닌 것 같고... 근데, 이거 하나만은 명심해. 정말 선셋이랑 애마 관계가 되고 싶다면 내 지시를 확실히 따라줘. 섣불리 바보짓 했다간 그 땐 진짜 안 도와줄 거야. 알았지?"
샤이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알았어."
도망가고 싶은 걸 샤이닝은 억지로 참았다... 공주 앞에서 도망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좋아!"
캐이댄스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약 2초 후에 엄격,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자.. 그럼 너를 선셋에게 걸맞은 수말로 만드는 일만 남았군.. 아. 그건 걱정 마. 내가 착실하게 개조 해 줄 테니까.."
샤이닝 아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복도에서 벅과 만났는데 도망갈 수도 없을 때가 딱 이런 느낌인가.....? 아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더 깊고 어두운 공포가 샤이닝 아머의 마음을 뒤덮었다.
"도...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정확히 어떤....."
"넌 분명 좋은 포니야. 하지만 내가 분명 말 했을 텐데?"
지금 샤이닝 앞의 캐이댄스는.. 어쩐지 광기 서린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단순히 착하기만 한 걸로는 부족해. 내가 볼 때, 선셋의 취향은 강한 남성이야. 선셋의 불같은 성격을 받아주면서 끝까지 곁을 지켜줄 그런 포니... 내가 어떻게든 선셋이 널 그런 포니로 볼 수 있게끔 만들겠어.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면 선셋도 깨닫겠지. 자신에겐 그저 강한 남성이 아닌, 바로 너처럼 자상함, 상냥함까지 갖춘 포니가 곁에 있어야 되는 걸 말이야."
샤이닝 아머는 눈을 깜빡거렸다. 체육관 벽면에 붙은 시간표만 돌아보았다.
"어.........그렇....구나..."
말을 흐리며 샤이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정확히 어떻게 할 건지는 말 안 해준 것 같은데.."
"아. 그건... 내가 선셋에게 샤이닝 아머 네가 가장 어울리는 포니라고 열심히 설득할 동안 넌 무언가 큰일을 하나 해내기만 하면 돼."
공주는 날개를 활짝 피고 발굽을 한 번 공중에 내지르며 말했다.
샤이닝 아머의 머리에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유쾌한 부류의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랑의 알리콘'이 갑자기 나타나서 샤이닝 아머가 살면서 본 중 가장 섹시한 포니와 사귀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해도 여전히 본질적인 의문이 하나 남아있었다.
"..괜찮을까?"
그 질문에 공주는 얼굴을 바짝 찌푸렸다.. "뭐?"
"내가 과연 선셋에게 어울리는 포니이긴 한 걸까?"
샤이닝은 고개를 축 늘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 말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준 건 고마워. 아주 고마운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난 선셋이랑 사귀기엔 한창 부족한 포니가 아닌가 하고.."
캐이댄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샤이닝 아머는 고개를 올려 캐이댄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공주는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샤이닝 아머를 살피고 있었다.
"잠깐.. 지금 사랑의 공주님께서 직접 나서서 네가 꿈에 그리던 포니를 잡도록 도와주겠다는데, 고작 한다는 걱정이....."
샤이닝 아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공주의 찌르는 듯한 시선을 외면하며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그..그게.. 선셋은 공주님이잖아.. 난 그저 학교에서도 못난 놈 취급을 받는 수말 한 필일 뿐이고.. 나보다 더 잘난 포니들은 산처럼 쌓였다고."
"넌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 사랑하는 포니의 행복을 더 우선시하는 포니야."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가 자신의 눈을 똑똑히 보도록 두 앞발굽으로 샤이닝 아머의 고개를 돌리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공주의 표정은 더 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건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나 마찬가지... 네가 지금 네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에 답을 좀 해주자면, 그래. 너야말로 선셋에게 걸맞은 포니야. 너 만한 자격을 가진 포니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사랑의 공주는 잠깐 가슴에 앞발을 올리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앞발을 앞으로 쭉 펴면서 마셨던 숨을 내쉬었다. 아까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던 포니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필의 아름다운 알리콘 공주만이 남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단 한 가지. 어떻게 선셋에게 네가 이상적인 수말인지 보여주는 것 뿐."
샤이닝 아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결국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걸로 끝나게 된다면..."
물론 캐이댄스의 의욕은 고마웠다. 하지만.. 샤이닝 아머가 보기엔 이건 전혀 잘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샤이닝 아머....."
지금 캐이댄스는 마치 타르타로스의 심연의 구덩이에서 뛰쳐나온 악마의 형상이었다. 갑자기 대기를 뒤덮은 흉흉한 기운에 샤이닝 아머는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 분홍색의 순하디 순하게만 생긴 공주가 이런 엄청난 살기를 뿜을 수 있단 말인가..
"바보짓 하는 걸 두려워해선 평생 사랑 같은 걸 할 자격도 없어!"
곧 악마는 사라졌다. 또 한 번 어여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핑크색 공주만이 남았다.
"됐지? 이제 어떻게 선셋에게 감명을 줄 수 있을지 그 일 하나에만 전념하자. 알았지?
"히익! ...아.. 알았어..."
완전히 공포에 압도당한 채로 샤이닝 아머는 부들부들 떨며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리고 곧 다음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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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스승님.. 아니,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었는지 선셋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릴 때 셀레스티아가 어머니가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꿈꿔왔었던 모든 것들은 실제로 안겨있는 이 한순간에 비하면 진실로 하찮은 것들뿐이었다.
어머니의 품에서 느껴지는 온기, 푹신하게 선셋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날개, 어머니의 차분한 숨결, 모든 게 다 완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좋은 일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외부 포니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만약 누가 이 순간을 방해할 요량이었다면, 선셋은 당장 그 포니를 알리콘 마법으로 다른 먼 곳으로 강제로 순간이동 시켜버리고, 자신이 시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막을 둘 주변에 둘러버릴 예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고요한 순간을 방해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순전히 선셋 자신이 문득 든 의문 때문이었다.
당장 물어봐야 할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이제 우리.. 뭐 해야 되죠?"
작은 목소리로 선셋은 물었다. 반쯤 '어머니가 제발 내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선셋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공주의 품에 얼굴을 비비고 어릴 적 좋아했었던 베개에 얼굴을 묻고 꿈나라로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셀레스티아는 그 말을 들은 듯 고개를 들고 선셋을 내려 보며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상하게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넌 뭘 했으면 좋겠니. 작은 해님아?"
잠깐 생각에 잠긴 채 선셋은 침대 위를 뒹굴며 셀레스티아의 큐티마크 쪽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똑같은 태양 큐티마크를 달게 된 걸 선셋은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 만큼 어머니와 특별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선셋의 것과는 달리 셀레스티아의 큐티마크에 그려진 태양은 한 점 어두운 기색 따윈 없었다. 선셋이 깨우쳐야 할 게 아직도 많다는 이야기일까..
선셋은 한숨을 쉬고 셀레스티아의 옆구리에 몸을 기댔다. 오래전의 느낌과 똑같았다. 여전히 푹신했다.
"제 즉위식 준비도 해야 할 것 같고... 이거 쓰는 방법도 배워야 할 것 같네요.."
자신의 날개를 들어 올리며 선셋은 대답했다. 선셋의 날개의 깃털 끝이 어머니의 날개에 닿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예전에 선셋이 알리콘이 되고 싶었을 때엔 날개를 쓰는 법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날개까지 달게 됐을 때의 권력과 마력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마지만 막상 되고 보니 이 막대한 힘을 제어하는 것 자체가 선셋에겐 매우 어려웠다. 특히 어스 포니의 힘을 말이다. 전생에 어스포니이기라도 한 거야 뭐야..
"어머. 아무래도 내 말을 오해한 듯하구나. 딸아."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모성애가 뚝뚝 떨어지다 못해 아주 넘쳐흐를 지경이었고, 선셋은 그게 아주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몇 십 시간이고 몇 백 시간이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네가 정녕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본 거란다."
선셋의 당혹스러움이 티가 날 정도로 선셋의 표정에 드러났다.
"어... 분명 어머니께선 절-"
"그랬었지."
셀레스티아는 선셋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고집만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잖니. 지금 중요한 건 선셋 너란다. 네가 만약 즉위식을 원치 않는다면 네가 준비가 다 될 때 까지 미뤄줄 수도 있단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으마. 네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어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셋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음.. 일단 몸 다루는 방법부터 배워야겠죠?" 그리고 선셋은 뿔과 날개를 각각 가리켰다.
"제가 아무리 유니콘으로 태어났다지만, 페가수스의 날개에 관한 공공연한 농담을 한 번도 안 들어본 건 아니라서.."
3년동안 쌓인 게 많았던지라 그 어떤 수말이 그 옆을 지나가도 날개가 우뚝 솟을 지경이었다.
셀레스티아는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겠구나. 하긴, 갓 승천한 유니콘은 막 십대에 들어선 페가수스 수말보다 날개 관리가 잘 안 되곤 하니까... 아참. 그럼 하늘을 나는 법도 배우고 싶겠구나?"
셀레스티아는 방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고, 선셋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비록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 캔틀롯 태생이라고 해도 높은 곳은 여전히 무서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므로 미연의 사고가 생기기 전에 중력의 법칙에 빅엿을 날려주는 법을 배우는 게 현명한 판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선셋의 뇌리에 스치긴 했다.
"어... 설마 캐이댄스처럼 망아지 단체 비행 캠프 같은데 보내시려는 건 아니시죠?"
망아지 훈련 교관에게 교습 받는 성마라니.. 이 얼마나 모양 빠지는 장면이란 말인가?
"글쎄다. 너라면 망아지들이랑 잘 어울리고 괜찮을 것 같긴 하다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 당초 너한테 망아지들을 나대신 가르치게 함으로써 책임감을 기르게 해볼까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지금의 너에겐 굳이 그런 과정은 필요치 않을 것 같구나."
선셋이 셀레스티아를 도끼눈을 뜨고 노려봐도, 셀레스티아의 미소는 더 커져가기만 할 뿐이었다.
"옳지! 우리 딸을 유소년 비행단에 가입시켜야겠구나! 그 자그마한 망아지들이 올망졸망 구호를 외고 있는 걸 보면 어찌나 귀엽던지.. 정 꼬마들 틈에 끼는 게 부끄러우면 말만 하려무나. 나이 되감기 주문으로 도로 귀엽고 어여쁜 망아지로 만들어 줄 터이니."
선셋의 표정은 점점 더 뚱해져만 가고 있었다. "진짜로 그러실까봐 소름 돋고 있는 거 아세요? 지금?"
"어머! 딸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도 못 해주는 거니? 흥!"
셀레스티아는 짐짓 삐친 척 하며 잠깐 선셋의 눈치를 살폈다. 선셋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셀레스티아를 쳐다보고 있었고, 셀레스티아는 약간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이거야 원, 무서워서 농담을 하겠니? 그나저나 진짜니? 겨우 날개를 쓰는 법을 알고 싶다고? 너 치곤... 너무 절제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곁가지로 신경 쓰이는 건 일단 미뤄두고, 선셋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전 어머니가 신입 알리콘용으로 진작 새로운 수업 계획표를 짜 놓은 줄 알고 있었는데요?"
좋든 싫든 알리콘이 되었으니, 그 말인즉슨 배울 게 산더미 같다는 말이 아닌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진 건 셀레스티아였다.
"난 너한테 가르칠 게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단다."
커다란 물음표 하나가 선셋의 머리 위에 떠올랐다.
"뭐라고요!? 어머니야말로 무슨 소리세요? 분명 그 때 흑마법이나 그... 어쨌든 여러 가지에 대해서 가르쳐준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선셋은 그 당시 혼미했던 기억을 뒤적거려 셀레스티아가 말해준 걸 겨우겨우 찾아내 되물었다.
대답 대신, 셀레스티아는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질문했다.
"그건 맞는 밀이다만... 선셋.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수업의 내용. 기억하고 있니?"
질문을 했던 것을 후회하며 선셋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스승님. 전-"
갑자기 셀레스티아는 거칠게 헛기침을 했다. 급격한 분위기의 변화에 선셋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셀레스티아는 순간 갑자기 너무 거대하고 심히 위압적인, 너무 뜨거워 차마 쳐다볼 수 없는 태양과도 같은 불타는 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고 선셋은 그저 겁에 질린 체 공주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 할 터이니 단단히 새겨듣도록 해라."
셀레스티아는 앞발굽을 약간 굽혀 선셋의 코 부분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스승님'이라고 날 부르는 건 일절 금지한다. 지금부로 날 어머니, 엄마, 마망~♥ 라고만 부르기로 하도록! 예의가 우선시되는 공석 상에서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으로 날 불러도 좋다. 하지만 사석 상에서 '스승님.'이라고 날 불렀을 땐 내 명을 거역한 죄로 엄벌에 처할 태니 그리 알거라. 잘 알아들었느냐?"
'으... 이거 묘하게 분위기가 인간 세상의 일본제 애니메이션스럽단 말야.. 내 취향은 아닌데..'
선셋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해괴한 기분을 떨쳐버렸다. 최소한 그러려는 노력 정도는 했다.
"아...알았어요.. 어머니."
아니.. '마망~♥'라니.. 아무리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도, 선셋은 어머니를 그렇게 부를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자면.. 솔직히 마지막 수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네요. 아무리 헛것을 봤다지만 그래도 3년의 시간이 흘렀다고요."
"흠.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까의 폭탄선언(?)으로 인한 선셋의 뻘쭘함을 지워주기 위해 셀레스티아는 살짝 웃어주며 말했다. 말투에는 약간의 수심이 묻어나왔지만 말이다.
"그 때 난 분명 평범하게 남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마법은 더 이상 없다고 너한테 선언했었다. 네게 부족했던 건 알리콘으로써 갖추어야 할 성품과 도덕뿐이었지. 하지만 이미 넌 훌륭하게 승천을 끝마쳤으니,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것은 없구나. 너라면 내 도움 없이도 홀로 필요한 공부를 계속해나갈 수 있겠지. 흑마법이든 뭐가 됐던 간에 말이다."
어쩐지 선셋은 가슴 한편이 허전하고 또 슬펐다. 이상했다. 마침내 바라던 날개를 갖게 되었고, 알리콘 직위는 물론 그것보다 더 바라던 것을 얻게 되었건만.. 어쩐지 셀레스티아의 말은 아무리 선셋과 친부모 같은 관계가 되었어도, 앞으로 서로 같이 지낼 시간은 부족하다는 걸 넌지시 암시하는 듯 했다.
"어..." 선셋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흐렸다.
선셋의 머뭇거리는 말에 셀레스티아의 귀가 쫑긋 섰다.
"?.. 무슨 문제라도 있니?"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선셋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모든 게 기대와는 달라서요.." 그리고 선셋은 날개를 쳐다보았다.
"웃기네요. 진짜 이 날개를 오랫동안 간절히 달고 싶었는데.. 막상 달고 나니까 그게.. 행복하기는커녕.. 그저..."
쓸데없는 말을 더 할 것 같아 선셋은 황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저?"
셀레스티아가 되묻자, 선셋의 얼굴은 제 갈기색 만큼이나 새빨개졌다.
"아니..그게.. 저... 갑자기 포니의 삶으로 돌아와서, 적응하기가 영 어렵다구요."
"그런 것 같구나." 공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그런 것 같다니요?"
"네가 정신을 차리고 난 뒤로 포니 중심 화법을 쓰지 않은 걸 보면 잘 알 수 있단다. 가령 '모든 포니.'라고 해도 될 것을 '포니'부분은 생략하고 '모두들' 하는 식으로 말이지."
선셋은 잠시 눈만 깜빡이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으.. 그게.. 좀 희한한 경험을 해서.."
3년간 정신 나갈 정도로 깐깐한 사회적 규범을 가진 세상에 갇히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긴, 여기는 공석 상에서 그리폰 및 다른 종족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포니.'라는 말을 해도 인권단체에서 고소가 들어오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다.
'또 이런다.. 또 그 세상을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간 세상에 대한 생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넘겨버리고, 선셋은 다시 침대에 머리를 뉘였다. 하지만 침대는 어머니의 몸 보단 별로 편안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 해 두죠."
셀레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차분히 하려무나. 시간은 충분하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나 말만 하거라."
선셋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아서 잠시 미뤄두고 있었던 부탁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선셋은 내심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캔틀롯에 다시 적응하는 데 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저... 말씀을 해 주셔서 하는 말인데요, 어제 캔틀롯을 돌아다니다가.. 좀.. 신경 쓰이는 곳을 봤어요."
"으음?"
선셋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전 그 허상 속 세계에서.. 지금 캔틀롯 고등학교랑 아주 비슷하게 생긴 학교에 다녔어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선셋은 말했다. 어쩐지 본격적으로 부탁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조금 괴상한 소리라는 건 알지만, 3년동안 시간을 보낸 곳이라.. 비슷한 환경에 있으면 더 안정이 될 것 같거든요... 어머니도 지금 제 교육 과정은 이미 다 끝났다고 하셨으니.. 남은 학기 기간 동안 별 일 없으면 그 곳에 다녀보면 안 될까요?"
잠시 동안 공주는 정적 속에서 두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하긴, 이미 내 밑에서 하는 공부는 내 입으로 다 끝났다고 했으니, 이젠 네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흠.. 약간 희한한 일이기는 하지만..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내 굳이 뭐라 하진 않으마."
그리고 공주는 수양딸에게 얕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세한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니? 단순한 향수병이라고 치부하기엔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야기하기 꺼림칙한 소재긴 했지만, 희한하게도 선셋은 셀레스티아가 그걸 알아차려 준 게 고맙고 또 행복했다. 역시 어머니는 딸에 대해선 뭐든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행복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선셋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묵혀둔 서운한 기억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 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허상 속 세계에 있었을 때, 사이렌들과 싸우고 난 이후의 일인데요. 그 때 비로소 전 제가 모두에게 진정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었죠. 복도를 지나가다 보면 인간 학생들이 다들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 가끔 웃어주기도 했었으니까요."
한숨을 쉬며 선셋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서로 뭉쳐 다니는 3명의 하급생들이 지들이 잘못을 저지른 걸 제게 누명을 씌우더라고요. 아까까지만 해도 친절했던 얘들이.. 심지어 내 친구들마저 태도가 싹 바뀌었어요. 제가 다시 문제아로 돌아간 것 처럼요.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난 그때처럼 괴물이 아니었는데도, 진실을 들어줄 생각도 하지 않고 절 계속 몰아세우기만 하더군요."
'미스 익명' 사건.. 선셋은 콧김을 한번 푸륵 하고 뱉었다.
"망할, 이제 와서 돌아보니, 쟤네들은 내가 변한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더라고요. 막상 절 미워할 구실이 생기니까 제가 변한 건 별 상관없다는 태도였죠. 끙.. 과거의 잘못을 극복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언제든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정말 미칠 노릇이더라고요... 정말 그 때 다들 왜 그랬는지.."
그건 여전히 선셋이 해결 못 한 의문 중 하나였다. 비록 '미스 익명' 사건이 끝난 후,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시시콜콜 따지지는 않기로 했지만..
또.. 또.. 이걸 진짜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을 하기 시작하는군.. 선셋은 고개를 흔들어 자신의 바보 같은 생각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일어서서 먼 산을 보며 말을 이었다.
"유니콘 학교에선, 거울 속의 환영만큼이나 불량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땐 그냥 까칠한 아웃사이더였죠. 학교 일진 수준이 아니라.. 그런데 어제 그 곳에 다시 한 번 가보니까... 으..."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일제히 절을 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모습.. 마치 환영 속에서 거들먹거리던 선셋을 쳐다보던 인간 학생들의 모습과도 같아서 선셋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가 문득 캐이댄스가 캔틀롯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뭐 이미 알리콘이 한 필 다니고 있으니, 걔들도 알리콘은 익숙하겠죠? 개중엔 내 날개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포니들도 있을 테고, 그렇담.. 음..."
어떻게 하면 이 유치하고 멍청한 부탁을 조금이나마 포장해볼까 하고 선셋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셀레스티아는 앞발로 선셋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둘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공주의 얼굴엔 따스한 미소가 만연했다.
"선셋. 새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단다."
자신의 멍청함을 속으로 탓하며 선셋은 얼굴을 화끈 붉혔다.
"아..그...그럼... 학교 일은 됐고... 이제 우리 함께 뭘 하죠?"
셀레스티아의 미소는 더욱 더 밝아졌다.
"마침 오늘 국정은 다 취소했던 차란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공주는 눈을 찡긋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 스승으로써 마지막 가르침을 내려 보도록 할까. 같이 비행 연습 어떠니?"
선셋은 자신의 날개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비행이요?"
"흠.. 일단은 활공부터 배워야겠구나. 본격적으로 날갯짓을 배우기 전에, 발을 땅을 딛지 않고도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우선 알아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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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곧바로 성으로 들어가는 대신, 캐이댄스는 학교 후문에서 샤이닝 아머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면서 공주는 캔틀롯에 처음 도착해서 그 후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때와는 삶이 엄청 달라졌구나 하고 사랑의 공주는 생각했다. 후미진 곳에 위치한 어스 포니 마을에서 덜컥 이퀘스트리아의 수도로 이주하게 되어서 처음 며칠간은 모든 게 신기하고 또 재미있었다. 볼거리는 많고, 이모님은 언제나 캐이댄스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선셋은 처음엔... 음.......
하긴, 이제 그 문제의 원인도 알아냈고 선셋과도 친해졌으니, 이젠 더 이상 과거의 잘못에 구태여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갑자기 선셋의 성격에 대격변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처음 캔틀롯을 봤을 때 동경에 찬 감정도 점점 시들해져갔다. 아는 포니라곤 별로 없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아주 외로운 일이었거니와, 캔틀롯은 모든 게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곳이었고, 정겨웠던 고향에 비하면 포니들과의 관계가 아주 경직되고 엄격한 편이었다.
처음 여기서 친구를 사귀려는 시도가 아주 제한된 성공만 거두고 난 뒤 이런 권태감은 더 심해졌다. 다들 '캐이댄스 공주님'을 존경해주긴 했지만, 그 공주라는 직위 때문에 이 곳 캔틀롯에서는 캐이댄스와 다른 포니들 간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그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곳에선 그 선을 넘는 포니를 아주 별종 취급을 했다. 그렇다. 캐이댄스와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려는 포니들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포니들 중에서도 순수한 의도로 캐이댄스에게 접근한 포니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캐이댄스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얼뜨기라고 쉽게 생각을 한 뒤,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친해지려는 포니들뿐이었다. 하지만 캐이댄스는 그런 속셈들을 간파하고 그런 포니들을 일부로 멀리했다.
이제, 그런 치사한 목적이 아닌, 캐이댄스의 공주라는 직위에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그저 순수한 우정을 나눌 목적으로 캐이댄스와 친교를 맺으려는 포니들을 찾은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사실, 한 필 찾기는 찾았다. 유니콘 시절에도 캐이댄스의 공주 직위 따윈 신경을 쓰지도 않고 캐이댄스를 막 대했던, 하지만 알리콘으로 승천한 뒤 어째서인지 갑자기 개심한 선셋 쉬머가 바로 그 조건에 부합했다.
'잠깐... 그럼 결국.. 선셋 쉬머가 지금 캔틀롯에서 나랑 가장 절친한 친구라는 이야기네?'
심히 충격적인(?) 결론이 도출되어 캐이댄스는 놀란 표정으로 헉 하고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 충격은 다행히 오래 가진 않았다. 그건 그냥 선셋이 지금 사귄 유일한 친구라서 그런 거겠지. 여기서 선셋 외에 또 다른 진정한 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절친 자리는 아마도...
캐이댄스는 앞서 한 허튼 생각을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버렸다. 사소한 과거의 앙금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선셋을 대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였다. 그리고 지금의 선셋은 자기가 한 일들과 자기가 한 잘못을 인정하고 또 변화를 위해 노력 중이었다. 캐이댄스가 봐도 선셋의 개심은 의심할 나위 없이 진실한 것 같았다. 그러니 과거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자. 심지어 선셋도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데..
"저... 캐이댄스?"
페가수스의 위기 탈출 본능대로 캐이댄스는 언제든 훨훨 날아갈 수 있게끔 두 날개를 활짝 피고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캐이댄스가 아까부터 기다려오던 유니콘 한 필이 뻘쭘뻘쭘 서 있었다. 캐이댄스는 넋을 놓고 있었던 자신을 자책하며 아까 하던 생각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샤이닝 아머!!"
캐이댄스는 미소를 지으며 샤이닝 아머를 반갑게 맞은 뒤, 그 즉시 달려가 와락... 안아줘야 되나? 이게 일반적으로 캐이댄스가 다른 포니를 맞는 방법이긴 했지만, 샤이닝 아머가 캐이댄스의 호의를 오해할 수도 있었으므로, 공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니.. 그렇다고 샤이닝 아머가 결코 수준 이하라던가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샤이닝 아머는 제법 귀엽게 생겼다. 선셋의 수말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캐이댄스는 오늘 아침 막 인정한 차였다. 하지만 귀엽기만 해선 안 된다. 외모는 외모일 뿐, 캐이댄스는 장래 자기 배우자가 있다면 아주 속까지 꽉 찬 그런 포니가 배우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니까 선셋이 점찍어놓은 이 수말처럼 말이다...
그 때, 안절부절 캐이댄스를 쳐다보는 샤이닝 아머의 시선이 느껴졌으므로, 캐이댄스는 또 한 번 멍하게 빠져 있던 허튼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샤이닝 아머에게 친근하게 웃어주었다. 겉으로 웅큼한 생각이 드러나지 않게, 그리고 샤이닝 아머랑 처음 만날 때처럼 사뭇 위협적이지도 않도록 말이다. 지금 와서 구태여 겁을 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왔어?"
샤이닝 아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이라고 대답했다. 풋풋한 첫 사랑의 냄새가 풍겨와 귀엽기가 이를 데가 없었다.
"근데 대체.. 음.. 뭘 하려는 거야? 아까 수업 시작하기 전에도 정확히 뭘 할지는 알려주지도 않았잖아."
도대체 얘는.. 저 나이 될 때까지 로맨스 소설을 한 권도 안 본 거야 뭐야?
"이번 주말에 있을 선셋 쉬머와 너의 데이트를 계획해야지. 당연한 거 아냐?"
캐이댄스는 단호한 어조로 선언했다.
샤이닝 아머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아마 긴장해서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사랑을 위해선 누구나 극복해야 할 시련이기도 했다.
"그...그렇지.." 샤이닝 아머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좋아!"
캐이댄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샤이닝 아머의 자존감을 좀 세워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줘. 아! 미리 말해두는데, 첫 데이트는 진짜 중요하다 너? 이미 선셋의 마음에 들었으니까, 좀 더 선셋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해. 네가 얼마나 괜찮은 포니인지 선셋에게 보여줄 수단 말이야."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샤이닝 아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아! 그럼 쉽겠네. 걱정 마. 이미 계획도 다 짜 뒀어. 이번 주말에 선셋이랑 같이 O&O 한 세션 뛰기로!"
??...뭐래? 분명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캐이댄스는 샤이닝 아머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먹을 수 없었다.
"뭘 한다고?"
샤이닝 아머의 '에버글로우'라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한 차례 길고도 긴 설명이 이루어진 후, 둘은 어느새 '골렘의 던전(후프볼 트레이딩 카드 샵)'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 안에 들어와 있었다. 가게의 흐릿한 조명이 어린 망아지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출처를 모를 여러 가지 귀여운 조형물, 코믹스, 매니악한 제목의 소설책들을 비추고 있었는데 샤이닝이 설명한 그대로였다.(비록 샤이닝은 이곳을 무슨 성소 비슷하게 묘사를 했지만 말이다.) 모든 게 다 캐이댄스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번 쯤 들러볼만한 괜찮은 곳이었다.
그 곳의 주인은 '코믹 북'이라는 이름에 노란색 털가죽과 푸짐한 몸매를 지닌 수말이었다. 냉소적으로 가끔 틱틱대는 소리가 캐이댄스의 귀에는 약간 거슬렸다.
"그럼 요약해볼게. 그러니까 선셋 쉬머를 네가 기사 역할을 하는-"
"성기사지 정확히는.." 샤이닝 아머가 직업 명칭을 정정해준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래. 성기사.. 어쨌든 다른 수말들이랑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모험 놀이를 하는 게임을 할 거라고?... 첫 데이트에?"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건만, 캐이댄스의 한 쪽 입꼬리는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샤이닝 아머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걸 비웃어버리면 매우 무례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캐이댄스가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둘의 첫 데이트는 완전 엉망이 되고 만다. 선셋의 눈에 들기 위해 무슨 수를 써도 모자랄 판에 집 지하실에서, 단 둘이 있는 것도 아닌 다른 수말들과 함께 테이블 탑 게임이라... 이러다간 샤이닝 아머는 선셋 쉬머와 사귈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다. 그리고 샤이닝 아머가 이걸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꼴을 보니 캐이댄스는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캐이댄스의 속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샤이닝 아머는 사뭇 자랑스럽게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설정이 적혀진 책을 캐이댄스에게 보여주며 그걸 좔좔좔좔 읊고 있었다.
"네 생각은 어때?"
"그게..."
캐이댄스는 최대한 좋은 말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음.. 네 취미를 선셋과 공유하는 건... 나쁘지는 않아. 근데.."
말 그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게 기념비적인 첫 데이트에 어울리느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 최소한 세 번째 기념일에나 겨우 허용될 법한 데이트였다. 아니, 그것도 아주 곱게 말해준 거였다. 만약에 결혼한 노부부의 로맨스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면, 아내가 남편을 그 때 그 일 가지고 몇 년동안 달달 볶을 게 분명할 그런 선택이었다.
"하지만...그게..."
네가 하는 중 최악의 판단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캐이댄스는 머뭇머뭇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쩐지 난.. 네가... 약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샤이닝 아머는 되물었다. "어째서?"
'네가 짠 계획이라고 해 봤자. 그냥 단순히 네가 친구들끼리 노는 데에 암말 하나를 데려가는 것뿐이잖아.' 이걸 또 좋게 좋게 설명하자니 캐이댄스의 머리가 점점 아파오고 있었다.
하지만 샤이닝 아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자니 그건 또 용납 못 할 일이였다.
"좋아. 그럼 잘 들어."
'바보.' '멍청.'이라는 말을 섞지 않고 말을 생각해내려니 엄청 힘이 들었다.
"음..."
운을 떼기는 했지만, 적당한 말을 생각하는데 몇 초가 더 낭비되었다.
"그 O&O라는 게임 말인데.. 그냥 책이랑 종이만 펼쳐두고 있는 건데 괴물들의 위치 같은 것은 어떻게 정해두는 거야?"
그럴싸한 질문이었다. 비록 샤이닝 아머에게 이건 절대 아니라고 설득할만한 말을 생각해낼 시간을 벌기 위해 급하게 지어낸 질문 이였지만 말이다. 세상에, 지하실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놀이를 하는 게 관계 진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내 친구들은 주로 이런 작은 모형을 쓰-"
"모형이라. 허! 무슨 애들 소꿉장난 하자는 것도 아니고.."
계산대에서 부리또를 게걸스럽게 씹고 있는 가게 주인이 툭 쏘았다.
"손님이 뭘 모르나 본데, 그런 걸론 암말은 절대 안 넘어와. 5분 동안 거기서 뭣도 안사고 시간만 버릴 거면 됐으니까 그냥 가셔. 응?"
그 순간만큼은 캐이댄스는 저 가게 주인을 권력 빨로 찍어눌러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저 자식이 무슨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거람?
그런 생각을 꾹 참고, 캐이댄스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점장님이 생각하시기에 추천할만한 건 뭐가 있나요?"
비록 약간 비꼬는 어조가 섞이긴 했지만, 캐이댄스는 될 수 있는 한 친절하게 물었다. 가게 주인은 잠시 멈칫 하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부리나케 계산대 아래의 선반을 뒤적거리더니 그곳에서 상자의 전면에 X자 모양으로 은장식이 된 거대한 검은 상자 하나를 마법으로 꺼냈다.
"주인장 추천 물건이유 이게!"
상자를 열자 마법 부여된 보석과 금박으로 장식된 오망성 모양의 판형으로 가공된 마법석이 그 안에 놓여있었다.
"보라! 실시간 액션 롤플레잉의 오망성이 강림하셨도다!"
그걸 본 샤이닝 아머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다.
"끙... 저걸 사라고? 용돈도 부족한데.."
샤이닝 아머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캐이댄스는 그 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비록 캐이댄스의 마법부여학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뿔에 신호가 오는 걸 보아 이 물건이 꽤 꼼꼼하게 마력이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캐이댄스는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물건이죠?" 캐이댄스는 주의 깊은 어조로 물었다.
"이해력이 수준 이하인 분이시구먼, 보쇼. 뻔히 이름에 다 나와 있는데, 그걸 못 알아먹으면-"
캐이댄스는 매섭게 얼굴을 찌푸렸다.
"아...알았수! 설명 하면 되잖아 설명 하면!.. 흠흠! 그러니까 이 오망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종의 꿈 주문이 담겨 있는 물건이거든? 최다 7필의 포니들을 가수면 상태로 만든 다음, 거기에 게임 마스터가 설계한 시나리오대로 꿈속에서 롤플레잉을 해나가는 거지. 완전 현실감이 넘치고 느낌도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그대로인데 결국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절대 위험하지도 않다고!"
오망성에 부여된 주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캐이댄스는 마른 입술을 한 번 핥았다. 어쩌면 이거.. 먹힐 지도 모르겠군.. 만약 저 물건의 기능이 점장이 설명한 그대로라면 이건 샤이닝 아머의 자존심도 세워주고, 샤이닝과 선셋과의 관계도 진전시킬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둘이서 게임으로 시간을 때운다는 건 별로 로맨틱하지는 않을 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샤이닝 아머에 대한 선셋의 관심은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차분히 더 나은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때가 샤이닝 아머가 선셋의 마음을 완벽하게 차지할 결정타가 될 것이다.
캐이댄스의 얼굴에 악마와 같은 음침한 미소가 어렸다. 앞발굽을 쓱쓱 비비며 캐이댄스는 구체적인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샤이닝 아머... 희망이라는 걸 믿어? 방금 그게 생긴 것 같거든? 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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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은 비명을 지르는 육체를 부여잡고 침대 위에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한 비행술 교습은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자존심과 육체, 두 곳 모두 말이다.
"꾸준히 부딪혀 봐야 실력이 는다고? 개소리지 시팔."
자꾸 자기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날개를 쳐다보며 선셋은 투덜거렸다.
"아니, 너 진짜 거울 너머에선 잘만 날아다녔으면서 왜 이래? 레인보우 대쉬도 생전 안 날아본 애가 잘만 날아다니더만, 넌 왜 이 모양이냐고!"
곧, 선셋은 짜증 섞인 신음성을 흘린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왜냐고? 당연하지. 그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니까.."
선셋은 구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쓰라린 진실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여섯 명이 선셋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할지라도..
선셋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병신 같은 환각일 뿐인데.. 왜 이리도 잊기가 힘이 드는 걸까? 대체 왜?
물론 헛것을 본지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긴 했지만.. 공주라면 언제나 강인해야 하는 법이다! 마치 트와일라잇 처럼 말이다. 트와일라잇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악마로 전락했다가 결국 패배해 초라한 행색으로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나은 트와일라잇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 비교를 하면 안 된다. 애초에 트와일라잇 스파클, 보라색 알리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주의를 돌릴 만한 것을 찾아봐야겠어."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선셋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고등 마법이론 책을 침대 위에서 복습하는 건 얼핏 생각하기엔 괜찮아보였다. 하지만, 선셋은 이론보단 실전파였고, 그저 읽는 걸로만 성이 차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저녁 전에 강력한 알리콘의 마력으로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기타라도 연주해볼까...는 기타가 없군. 어차피 기타를 연주했던 기억 또한 조작일 테니.. 궁금했다. 그럼 거기서 배운 음악도 다 가짜가 되는 걸까?
그럼 마법 실험은 내일 날이 밝으면 하는 게 좋겠군. 캔틀롯 고교로 전학 수속도 하루 만에 되지는 않을 테니, 선셋은 어떻게든 열중할만할 일을 하나 찾아야 했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자니 따분함이 몰려왔다. 문득 선셋은 저녁때 하는 경비병 정기 훈련을 구경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세상과는 다르게 이퀘스트리아의 경비대는 다들 아랫도리를 훤하게 드러내놓고 있겠지. 공주가 명령을 하면 무슨 명령이든 들어줄 테고.. 샤이닝 아머도 경비대에 지원한다니까 거기서 한 몇 년간 훈련을 걸치면 근육질의 몸매가 될 것이다. 그럼 잘 익은 샤이닝 아머를 맛 좋게 따먹-
"끄아! 왜 이래 나 진짜! 왜 생각이 결국 그 짓으로 귀결되는 거냐고!"
선셋 쉬머는 결코 음탕한 포니는 아니었다. 무..물론 거울 저편의 세계에 있을 땐 좀 몸을 막 굴리기는 했지만, 그건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였지 결코 색정증 환자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도 아니었고!
"존나 시발.. 아! 몰라! 마법 연습이나 해야지!"
냉기 마법으로 얼음 두 덩이를 창조한 뒤 그 위에 엉덩이를 데고 앉아 있으면 달아오른 몸이 좀 가실까도 싶었다. 물론 알리콘으로 변해 신진대사율이 늘어난 만큼 날뛰는 호르몬이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진 않았지만.
그 순간 선셋의 방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별안간 캐이댄스 공주가 책 무더기를 등에 싣고 방 안으로 쇄도했다.
"선셋? 여기있었구나! 잘 됐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캐이댄스는 가져온 책 무더기를 선셋의 침대 위에 팽개치고 등자 가방에서 주사위 뭉치를 꺼냈다.
"우선 캐릭터부터 짜보자. 캐스터 할래? 밀리 클래스 할래? 아니면 하이브리드로 할래?"
쟤가 갑자기 뭐 하는 거래? 선셋은 잠시 두 눈을 깜빡였다.
"어...."
캐이댄스가 왜 갑자기 잠자다가 남의 발굽 핥는 소리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선셋은 우선 캐이댄스가 싣고 온 책부터 보았다. O&O라.. 근데 왜 갑자기 얘가 이런 대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뭔데?"
"뭐냐니? 다 네 데이트를 위한 거지."
그리고 캐이댄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강압적인 어조로 재차 물었다.
"우선 내 말에 대답부터 해. 캐스터야? 밀리야? 하이브리드야?"
데이트? 내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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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뭐라도 좀 해달라니까? 그 선셋이란 포니가 내게 마법을 썼다고! 유니콘은 보통 그러면 안 돼는 거잖아!"
편안해야 할 저녁 식사자리건만, 스트롱 위더스는 아들놈의 생떼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무리 하원 의원이 할 일이 이런 바보 같은 요구도 별 내색 않고 들어주는 거라지만 이번 건 정도가 좀 지나쳤다. 아들내미란 놈이 말이지..
스트롱 위더스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쓸데없는 민원이 제기되었을 때 의례 하는 습관이었다. 아들의 털에서 퇴비 냄새가 빠졌으니 망정이었지, 아니었으면 스트롱 위더스는 그 자리에서 버럭 성질을 냈을 것이다.
"근데 그 아가씨는 이제 유니콘이 아니라 알리콘이다. 잔말 말고 내일 학교나 지장 없이 가거라."
"그럼 내 숙제 대신 해 줄 포니좀 찾아주라 아빠."
아들놈의 바보 같은 질문에 스트롱은 벅 위더스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이미 네 숙제를 해 주고 있는 포니가 있는 줄로 알고 있다만.."
아버지의 시선이 꽂히자 벅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그랬는데.. 샤이닝 아머가 하필 그 공주랑 친구가 된 것 같아서... 아빠가 어떻게 좀 해 주면 안 될까?"
그런 꼴을 당해놓고도 끝까지 자기의 무능함을 인정할 생각도 하지 않는군.. 스트롱은 멍청한 아들놈에 대한 불만을 식탁 위에 놓인 브랜디 한 잔과 함께 삼켰다. 아무리 좋은 혈통과 좋은 신체조건을 타고 났어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감당 못할 일이 벌어지면 벅은 망아지처럼 생떼를 부리고는 했다.
투자 가치도 없는 가문의 망신 같으니라고... 스트롱 위더스는 조용히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스트롱이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선셋 쉬머 쪽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셀레스티아의 수제자는 공주가 된 것일까? 하원의원이라는 직책 상, 스트롱 위더스는 알리콘의 승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스캔들을 막기 위해 세간에선 천 년 전에 한 수말과 연을 맺어 태어난 셀레스티아의 직계 후손 중에 알리콘이 태어날 수 있다고 거짓 발표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선셋 이전에 또 다른 공주가 미처 예상도 못 한 때에 갑자기 나타나긴 했지만, 그 공주는 멍청했고 정치 경험이 아주 없었으므로 스트롱 위더스와 그 추종자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선셋 쉬머는 이야기가 다르다. 뿔 끝에 피도 안 마른 시절부터 선셋은 계속 동안 셀레스티아의 수제자였고 셀레스티아는 열과 성을 다해 그 수제자를 가르쳐왔다. 평범한 유니콘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마법적 성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스승이나 분홍색 공주에 비해 강단이 꽤 있었으므로, 위협이나 회유가 잘 통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선셋은 미래의 골칫거리가 가능성이 다분했고 어떻게든 선셋의 정치적 영향력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그 기회였다.
때로는 쓸데없는 아들놈도 도움이 될 거리를 물어오는군.. 스트롱은 아들을 돌아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나저나 아들아. 그 막돼먹은 암말이 어떻게 널 괴롭혔는지 자세히 듣고 싶은데, 다시 말해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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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째 전 명절이 더 바빠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누나들도 집에 와서 뒷바라지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래서 좀 늦었어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