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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게시물ID : lovestory_896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2
조회수 : 29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3/16 08:51:52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mGJSfUegXHg






1.jpg

이상국자두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알은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다 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2.jpg

한혜영트렁크가 트렁크에게

 

 

 

지겨운 나를 개 끌 듯 끌고 어디든 갈 수는 없나

해골만 달랑 넣은 트렁크 덜덜거리며 끌고

유럽으로 간다던 802호 트렁크 부부를 엘리베이터서

본 적이 없나 당신은 일탈이탈도 할 줄 모르나

 

나를 끌고는 대한민국으로밖에는 갈 줄을 모르는 당신

내 뱃속에 꾸역꾸역 선물 옷가지나 챙겨야 되는 줄로 아는

반세기를 살고도 아직도 고지식한

부부싸움을 하고도 집 바깥으로 나간 적이라고는 없는

 

그 쪼그라진 쓸개랑 간이랑 내장 훌훌 나한테 쓸어 담아

덜덜거리며 끌고 갈 수는 없나

없으면내가 당신에게로 들어갈 수는 없나

인간 트렁크인 지퍼 망가져 쉽게 열리지도 않는

 

트렁크 안에 트렁크

트렁크 안에 트렁크

뚜껑 열기가 그렇게 어렵나 어지간해서는

내가 당신을 열 수 없는 것처럼망가진







3.jpg

피천득가을

 

 

 

호수가 파랄 때는

아주 파랗다

 

어이 저리도

저리도 파랄 수가

 

하늘이저 하늘이

가을이어라







4.jpg

도종환어린이 놀이터

 

 

 

어린이 놀이터에 개나리꽃이 진하게 피었다

동네 아이들은 모두 학교 가고 없고

아이들이 금그어놓고 놀다간

사방치기 그림만 땅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 앞에 서서 폴짝 뛰어 보려다

멈칫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폴짝 폴폴짝 뛰어 건넜다

개나리꽃이 머리를 흔들며

깔깔대고 웃다가 꽃잎 몇 개를 놓친다

햇살이 위 꽃잎에서 아래 꽃잎 더미 위로

주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여기서 오 분만 걸어가면

쫒겨난 학교가 있다

이 봄이 지나면 못 돌아 간지 꼭 여덟 해가 된다

걸어서 오 분이면 가는 학교를







5.jpg

이진우회사씨

 

 

 

오랜 시간을 당신과 인연을 맺고

당신을 사랑하며 지냈습니다

그날들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당신께 꿈을 드렸고 시간을 드렸고 자유를 드렸으며

가족을 맡겼지요

당신 생각에 잠 못 들던 밤은 셀 수도 없습니다

이제 사직서를 내면서 당신을 잊으려 합니다

당신이 저를 행복하지 않게 해 주어서가 아닙니다

제 마음을 몰라주어서도 아닙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는 아무 앙금도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일신상의 이유그 하나만으로 당신을 떠납니다

이렇게 당신을 떠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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