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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유일한 헤트트릭
게시물ID : humorstory_17990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낭만총잡이
추천 : 6
조회수 : 55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0/02/06 15:31:27

이 글은 여자분들이 치를 떤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다. ^^
하지만 이런 최악의 아이템으로 베스트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 

  
난 어디가나 축구만 하면 수비수다. 
공격수는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중원을 누비는 미더필더가 되고 싶은 건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미련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  
하늘이 준 재능이 거기까지니까.  

쫄병시절엔 참 많이 까였다. 
고참 공격수를 막았다고 까이고. 상대편 고참들로부터.
고참 공격수를 놓쳤다고 까이고. 우리편 고참들로부터.

그러던 내가 전무후무하게 헤트트릭까지 기록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났다. 
인생은 둥글고 공도 둥글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걸 그 때 새삼 느꼈다. 

전역을 하루 앞둔 전투체육시간. 

군대에서 난생 처음 난 공격수가 되었다. 
그것도 원톱으로. 
전역한다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나를 원톱으로 세워 준 쫄따구들. 
자격미달이지만 늘 부럽기는 했는데 그 마음을 읽었나보다. 
아무리 군대스리가라 하더라도 이건 아주 특별한 배려다. 

게임이 시작되자 내 생각과는 달리 그들이 내게 맡긴 원톱이라는 포지션은 상당히 외로웠다.  
그들은 한 명 퇴장당한 셈치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공을 따라 왔다갔다 할 뿐 패스는 내 뒤를 받치는 세명의 공격수녀석들이 주거니 받거니. 
그래도 이 자리에 서 본다는 것이 어딘가.

어쩌면 그렇게 경기가 끝났을 것이고 그래도 아주 충분히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흥분되어서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원톱의 기분이란. 
그러던 중 뜻밖에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새로 전입해 와서 얼마 되지 않은 신병 녀석이 상대편 골키퍼를 보고 있었다.
이 녀석 보아하니 공을 잘 못찬다. 골라인 아웃된 공을 들고 차려다 자신이 없는 지 패스를 할 모양이다. 
근데 뜻밖에도 공을 나에게 패스해 준 것이다!!!  
이 친구 당연히 내가 자기 편인 줄 알았던 듯. 
내가 늘 수비수들과 섞여서 공격도 안하고 왔다갔다 하다보니 뭔가 착각을 일으킨 듯. 

가장 안전한 패스라고 밀어 준 공으로 
나는 졸지에 불과 10m 앞에서 골키퍼와 단독찬스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비명과 함께 서둘러 몰려드는 상대 수비수들.
당황해 하는 골키퍼를 향해 나는 본능적으로 드리블을 해 나갔다. 
허둥지둥하던 골키퍼 녀석은 뒷걸음질치다가 넘어지고
나는 아주 정석대로 인사이드로 골대를 향해 골을 툭 밀어 넣었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어이없는 한골이 터진 것이다. 
곧바로 골키퍼는 다른 녀석으로 교체되었고 그 녀석은 아웃되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엄청 욕을 들어 먹었을 텐데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다.  
녀석들 다들 전역 기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골을 먹고도 흐뭇해 하는 걸 보니.

그리고서 두 골이나 더 들어갈 껄 알았다면 그렇게 미소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또다시 온 축구팬들은 경악하게 된다. 
이름하여 살신성인골. 

흔히 축구경기를 TV에서 시청하다보면 전혀 가능성은 없어도 상대 골키퍼에게 공이 가면 공격수들은 골키퍼를 향해 달려 간다. 일종의 압박인 셈이다. 그냥 압박으로 끝나는 거지 그게 골로 연결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군대스리가에서는 그게 골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골키퍼에게 공이 가는 것을 보고 나는 골키퍼를 향해 질주했다. 
첫 골을 넣어서 이미 최고조로 업된 상태였고 TV에서 봤던 대로 흉내를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을 처리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터라 상대 골키퍼는 여유있게 패스할 곳을 찾다가 롱킥을 하려던 찰라였다. 
나는 아무생각없이 그냥 달려 갔던 거고.

골키퍼가 킥을 하던 그 순간 
왜 내 오른쪽 눈에서 번개가 쳤는지는 잠시 후에 알게 되었다. 
골키퍼 녀석 킥을 한 것이 달려 들어가던 내 눈에 맞고 골대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머리가 띵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뒤에서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감격스러울때가!! 
난생처음 두 번째 골이 터진 것이다.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공에 맞아서. 
어쨌든 어이없지만 두 골을 넣었으니 우리편 공격수들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패스에서부터 달라 지고 있었다. 역시 군대는 결과다. 과정 따윈 쌈싸 먹어 버려도 되는. 
달라진 것은 나를 대하는 우리편 공격수들만이 아니었다. 
두 골로 인해 나는 하늘을 찌를 듯 극도의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고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야성적인 공격수로 돌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외적인 변화 속에서 믿기지 않는 세 번째 골이 서서히 다가 오고 있었다. 
우리 팀의 기습공격의 기회였다. 나는 중원에서 공을 패스 받았고 수비수와 내가 1:1 상황이었다. 나는 평소와는 달리 겁 없이 질주했고 상대 수비수는 나를 심하게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면 우리편 공격수 녀석들이 한명 더 골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던 터라. 

상대수비수 녀석의 잔머리는 내가 공을 패스하는 것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나보다. 같이 달려 들어가고 있는 우리팀 공격수는 수준급이니까 찌질한 내가 공을 치고 가든 말든 일단 패스만 막으면 된다는 계산이었겠지. 그런 어정쩡한 질주를 골대 근처까지 하게 된 것이다. 

거의 골라인이 다가온다. 나는 수비수 녀석의 은근한 견제로 골대에서 한참이나 벗어나게 공을 드리블하고 있었다. 내가 슛하긴 불가능한 각도로. 수비수 녀석의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거의 골라인이 다가온다. 

이제는 달려 들어가는 공격수에게 패스해야 할 타이밍.  
내가 어떤 액션을 취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골키퍼와 수비수 녀석은 패스할 타이밍을 살피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절묘한 패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골키퍼와 수비수는 손살같이 공격수 쪽으로 뛰어 나간다.
뻔한 패스를 아주 정확하게 낚아 챌 기세로. 거의 패스가 될 확률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발의 궤적과는 영 딴판으로 공이 빗맞아 버린 것이다. 

거의 각도가 없는 골라인 근처에서의 힘없는 패스는 빗맞아서 골대로 직접 향하고 있었다. 
너무나 뜻밖의 슛아닌 슛을 뛰어나오던 골키퍼는 멈칫하며 멍하니 바라 보고 있었다. 
통통통. 아주 천천히 골대를 향해 굴러가는 공은 골포스트를 살짝 맞고서 서버렸다. 골대안에 살짝 들어간체. 

세 골 중에서 이 골이 가장 멋있었다. 
아주 지능적인 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대 수비수를 속였고
상대 골키퍼마저도 완벽하게 속였고 
심지어 내 발마저 속여 넘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생에 한번뿐인 헤트트릭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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