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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하는 엘리베이터
게시물ID : panic_897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상을즐기자
추천 : 15
조회수 : 1201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8/01 20:22:19
10살 꼬꼬마 시절 내가 살던 집은 분당 효자동에 있는 효자촌 17층에 복도식 낡은 아파트였다. 길다란 복도를 따라 벌집같이 현관문이 달려있는 다세대 아파트.

 밤늦은 시간에 학원이 끝나서 집에 오더라도 복도를 따라 환하게 퍼져나가는 다른 이웃집에서 밝아오는 환한 빛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훈훈해지고 그 늦은 시간에도 어린맘에 겁먹지 않고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10시가 되서 수학 학원이 끝나 하루 종일 지치고 울상이었던 나는 정말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집에 가고 있었다.

 그렇게 너털걸음으로 세월아 내월아 걸어와 선 아파트 1층 공동현관은 그날 따라 몹시 낯설었다. 분명 우리집인데 우리집이 아닌것 같은 느낌에 별다른 말로 표현 할 순 없어도 을씨년스러운 느낌에 슬쩍 올려다본 아파트가 그날 따라 크고 음침해보였다. 무엇보다도 (그 아파트에 내가 이사오기 전 부터 메달려있던) 아파트 현관 한 켠에 자리 잡은 거미 가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가장 큰 특이점이었다.

 어린 내겐 무척 징그럽고 무서운게 거미였지만 할머니는 늘 거미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운 생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거미는 우리 아파트를 지키는 문지기라며  징그러워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며 날 달래며 말씀하셨기에 더욱 현관에 보이지 않는 거미 가족에 신경이 쓰였다.

 그날은 그런식으로 사소한 것들이 달랐다. 거미줄이 있던 곳은 원래 그런게 없었다는 듯이 깨끗했다. 난 징그러운 거미들의 집을 경비 아저씨가 결국 떼어버렸구나 싶었고 그렇게 싫어하던 거미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거미 가족이 없다는 것에 아쉽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동현관에 들어서서 좌쪽에 길다랗게 뻗은 1층 복도를 볼 때도 내 그 작은 심장이 콩콩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게 평상시와 달랐다. 복도가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어두운건지. 밖에 가로등의 백색등 만이 왜 복도에 머무르고 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내가 살던 아파트 불은 정전이라도 난듯이 모두 꺼져있었다."

 그 무렵나는 엄청난 겁쟁이였다. 다만 그 날은 매우 지친 상태였고 겁난다고 생각하면 더 무서운 법이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려 책가방을 동여메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사실 다른 방도도 없지 않은가 그 당시엔 핸드폰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다.

 17층을 누르고 배고픈 손자를 위해 동글동글 미니 돈까스를 해놓고 기다리고 계실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나는 닫힘버튼을 꾹 눌렀다. 그것도 잠시.

 꾸물꾸물 느리게 움직이던 엘리베이터는 *띵동* 경쾌한 소릴 내면서 멈춰섰다. 깜짝 놀라 엘리베이터를 확인하니 2층에서 멈춰선 엘리베이터의 천장등이 몇번 깜빡 거리더니 문이 드르륵 열리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나는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밖으로 2층 깜깜한 복도를 보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숨도 죽이고 가만히 있는데 잠시 뒤 문은 다시 스르륵 닫혔다.

 누군가 장난을 쳤나 안심하며 짜증에 투덜거리는데 잠깐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또 멈춰셨다. 'F'라는 글자가 엘리베이터 화면에 들어왔고 나는 속으론 식겁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나 그 늦은 시각 그 기묘한 장난은 계속 되었다.. 6층 9층 11층까지... 나는 더 이상 그 끔찍한 장난을 참을 수가 없어서 벌벌 떨다가 용기를 내서 엘리베이터 열린문으로 겁먹은 목소리로 "그만해!" 라고 외치며 비명같은 소릴 내뱉었다.

낡은 엘리베이터는  문이 잠시 닫기는 듯 싶더니 다시 열렸다.  겁에 잔뜩 질려서 다시 닫힘 버튼을 꾹하니 눌렀지만 역시나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는가 싶더니 다시 열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비상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 무겁고 긴장을 잔뜩 했는지 뱃속이 아려왔다.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게 아닌지 두려워 계속 난간 아래를 보면서 어느새 눈은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여리여리한 다리와 지친 몸으로 몇층이나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 17층 꼭대기에 살던 어린 내겐 계단은 제정신으로도 오를게 못되었다.

 14층 쯤 올랐을 때 나는 콧물 눈물을 옷춤으로 닦으며 다시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별거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을 추스리며 나는 [ ^ ]버튼을 눌렀다.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훌쩍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나는 순간 머리를 울리는 소리에 한 쪽 발만 텅빈 엘리베이터에 올리곤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 삐이이이!

그때 부터 어린 나는 얼이 빠져버렸다. 정신이 나간듯 바들바들 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벌벌떠는 내게 엘리베이터 층수 화면 옆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온몸에 땀이 나고 눈물이 좀 전 보다 더 흘렀다. 내가 발을 빼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난 그 글씨에 놀라 그 짧은 다리와 팔을 허우적 대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뒤에서 '이대로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건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면서도 손을 발처럼 기며 올라갔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고 등은 땀에 가득찼다.

 너무 놀라서 힘든줄도 지친줄도 모르고 집까지 뛴 나는 정신이 나간채로 문을 두드리는데 할머니가 뛰어 나오셨다. 그렇게 나는 무슨 일인지 설명도 드리지 못하고 서럽게 울다가 그 안도감과 두려움에 지쳐 그대로 거실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그 모든게 꿈같이 느껴졌으나 그때 있었던 일을 정리하기도 전에 며칠간 심한 몸살을 앓아 학교도 결석하고 집밖을 나가지도 못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신 할머니는 집안 곳곳과 현관에 소금을 뿌리고 집에 조금있던 팥을 현관 한켠에 두셨다.

그리곤 할머니는 내게 걱정말라 하셨다. 어린 맘에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잠들었던 것도 기억하지만 겨우 몸이 낫고나서 아파트 단지 현관 밖까지 나갔을 때, 나는 1층 공동현관 한켠에 거미 가족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할머니에게 그날 일을 떠올리며 두서없이 떠들었을 때는 마지막에서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했던 것을 이야기 못했다.

 그날 엘리베이터 경고음에 정신을 차릴수 없던 내가 표시등에서 본 것은 빨갛게 들어온 "만원"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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