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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4
게시물ID : panic_897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3
조회수 : 5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02 20: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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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기대가 크면 실망도 또한 큰 법이다. 그래서 실망 하지 않으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했고, 그것의 크기는 무한이었다. 많은 것을 기대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뜻도 된다. 미스캐토닉 대학의 천문과학 연구팀이 토성궤도에서 수신된 우주전파에서 어떤 문자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단순히 우주 자기장의 한 종류에 불과할 뿐임을 수차례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밝혔음에도, 그리고 카이저 탐사대의 목적은 지적생명체나 외계문명의 발견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거듭 재확인 했음에도, 대중의 전반적인 열망은 대게 그런 것이었다

밤바다의 바람이 너무 차갑고 거칠게 느껴져서, 동률의 어깨는 다소 움츠려 들었다. 마지막 가을 태풍이 곧 상륙할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떠올랐다. 하지만 먹구름들 사이로 간혹 내비치는 만월을 볼 때마다, 동률은 가슴속에 포근한 온기가 피어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침묵이 주는 무기력한 위안이었다.

동률은 자기 자신에게 반문해보기도 했다. 그때 자신이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주변 세상은 시끄러웠고, 사람들의 대화에서 카이저 탐사선이 이야기 소재로 등장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변함없이 바빴다. 하루마다 수백 명이 입원하는 대형병원의 총무원장이 겪는 일상이 똑같이 반복될 뿐이었다. 수백 건의 보고서를 읽어야 했고, 수십 장의 입원 승인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매일 수십 명이 죽어서 병원을 나갔고, 출생신고서와 사망확인서를 행정 당국에 전송하는 보고서에 서명을 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주탐사선과 자신의 삶은 전혀 다른 세상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인간의 삶이 지구의 한계를 초월해서 다른 곳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비록 자신의 삶에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그런 류의 상상에는 꿈을 자극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 기대감은 다른 삶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이들의 심정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지만 보다 나은 삶, 다른 희망.

그 꿈이 여지없이 실망으로 돌아선 이유도 생각해보면 지극히 단순했다. 별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2068년의 해에, NASA에서 달 탐사 100주년 기념 계획을 발표하면서 야심차게 출발했던 보먼 18호가 제2차 달착륙을 시도했던 그 날, 그 달은 승무원 셋의 목숨을 암석과 이끼만 가득한 차가운 얼음대지 속에 묻어버렸다. 그 후로 11년 후 러시아 제국의 야심찬 부활에 대한 대외 선전적 성격이 짙었던 마스 플레이션 무인선이 화성 궤도에 접근하기도 전에 통신이 마비되고,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때와 지금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원거리 우주 탐사 계획은 줄기차게 시도됐다. 우주탐사 산업이 국가적 기획의 범위를 벋어나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는 시장주도형 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산업도 순수과학적 목표를 잃어버리고 주도권 쟁탈을 위해서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는 광범위한 사업으로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카이저 탐사선이 지구를 떠나 토성궤도의 근처까지 접근해간 18일 동안, 지구로 전송되어온 사진과 동영상들은 하나 같이 보통 사람들의 기대와 무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무한한 어둠속에서 방랑하는 별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하고 공허한 검은 사막일 뿐이었다. 그 어두운 황무지 사이에서 드문드문 빛나는 유성체들이 전송하는 이미지의 뜻은 일반인들의 기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 그런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냈을까? 건국 독립 이후 100여년의 역사동안 경제성장 외엔 이렇다한 대외적 과시거리가 없어 왔다는 국민적 열등감이 근원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기술력으로 최초의 우주탐사선을 출발시킨 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그것도 단 한번도 인류의 손길이 닿아본적 없는 미지의 머나먼 별, 토성을 향한 탐험대를 조직한 것에 대한 자부심?

별장안에서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황지안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김동률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의식이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이다 돌아올 때마다, 동률은 그가 자신의 이성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것은 황지안이 강혜령의 정신질환을 진단하면서, 도저히 혜령의 정신증을 해명 불가능한 종류인 것이라며 그에게 절망적으로 토로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혜령에게서 지안에게로 옳겨간 것이었다. 혜령의 육체가 견디지 못한 고통을 이제는 지안이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별장의 문을 열었다. 발작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사지를 격렬하게 뒤틀고 있었다. 온 몸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로, 마음대로 주물림 당하고 처참하게 얻어맞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병원원장으로써 동률또한 수없이 많은 정신질환자들의 발작 현상을 겪을만큼 겪었다. 신비주의자들이 빙의 혹은 접신이라고 부르는 그 상태를 그는 결코 믿지 않았다. 단지 극도의 신경과민이 수분부족과 결합하여 간의 건강에 이상을 일으킨 사태였을 뿐이었다. 때로 그런 환자들중에 정말로 기괴한 형태를 보여주는 이도 몇 있었지만, 그또한 단지 무의식속에 내재된 두려움이 말초 신경을 자극한 현상에 불과했다. 일단 말초신경의 흥분이 가라 앉혀지고 환자 자신이 자기 내면의 무의식적 공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런 현상은 깔끔히 사라졌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는 자신의 철저한 논리적 사고로 모든 것을 증명해왔다. 빙의나 접신은 없다고 확신해왔다.

하지만 헤령과 지안을 접하면서부터 그는 자신의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를 지탱해온 과학과 논리에 대한 신념이 근본부터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사지를 심하게 떨며 입가에 침을 흘리는 현상은 간질 발작의 전형일 뿐이라고 믿어왔다.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방언이라 일컫는 현상도 대부분 무의미하고 문맥에도 맞지 않는 시시한 외국어를 떠들어대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 대부분은 유소년기의 종교적 경험과 일치하는 교육과정에서 배운 유치한 단어들을 동어반복하는 것일 뿐이었다. 엑소시스트들이 주장하는 악마에게 빙의되어 자신도 모르는 수준 높은 라틴어를 구사하는 그런 병자를 만단 사례는 이제껏 없었다.

하지만 헤령과 지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은 방언도 아니었고, 외국어라 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구사해온 어떤 언어와도 유사점이 없는 듯한 불가해한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항상 판클루 글루나크!” 라는 외침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판클루 글루나크 가나글 파탄! 판클루 글루나크 가나글 파탄! 판클루 글루나크 가나글 파탄!”이라는 주술적인 문장을 찢어지는 듯한 비명으로 세 번씩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해괴한 문장이 똑같이 세 번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었다.

이아! 이아! 가나글 파탄! 이아! 이아! 가나글 파탄! 이아! 이아! 가나글 파탄!”

그것들 모두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처럼 처절한 절규와 함께 터져나오는 말들이었다. 그 뒤에 계속 이어지는 연속적인 주문들은 너무나 길고 장황했으며, 지금껏 살면서 들어본 단어들이 단 하나도 없기에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가 불가능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단어들 사이의 접두사와 접미사로 여겨지는 부분의 배열을 생각해볼 때 아무런 뜻도 없이 내뱉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동률이 기억하는 것은 요그 소토스라는 단어가 여덟 차례, “요그 쇼거스라는 단어가 열 네차레, “그나 바담피스라는 말이 열 두 차례, “아포라고몬이라는 말이 열 두 차례씩 문장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순서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주문을 외우면서 그들은 모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듯 했다. 사지의 모든 근육에서 통증을 느끼는 듯이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대면서, 특히 뒤통수를 바닥에 부서질 정도로 쿵쿵 찍어대는 행동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단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지금 지안이 보여주는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뭇바닥을 망치로 찍어대듯이 후두부로 사정없이 때려대고 있었다. 그냥 두고 보고 있다간 그 엄청난 충격으로 결국 머리가 박살나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황급히 응급진찰용 가죽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주사기에 모르핀을 투입했다. 이번이 몇 번째 투약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온전한 지안의 오른팔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어야 했다. 간신히 주사기를 정맥속에 꽂을 수 있었다. 모르핀이 혈관속으로 들어가면서 발작의 세기는 약해졌지만,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두 번째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마침내 지안의 몸에서 고통이 빠져나간 듯 해졌다. 그의 의식은 다시 잠의 수면아래로 빠져들었다. 모든 사태가 수습된 후 찾아온 것은 고요한 침묵이었다. 그는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의 기력이 모두 소진하여 이제는 자신이 탈진 상태에 이르를 것만 같았다. 그는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고, 간이 침대에 등을 기대었다.

창문밖으로 창백한 만월이 보였다. 사악한 시선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까지 자신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달을 이제 더는 쳐다보기가 싫어졌다. 그것은 만월의 간사한 속임수일 뿐이었다. 사악한 달은 죽음의 정상위에서 무엄하게 군림하고 있을 뿐이었다. 먹구름이 저것의 간사한 얼굴을 가려주면 좋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지금의 느낌은 그럴 뿐이었다.

혜령의 발작은 항상 만월이 떠오르는 주기로 강도가 극심해졌다. 만월이 다가오늘 날에 가까워질수록 고통의 세기 또한 강해졌고, 만월이 지나면 가라앉기를 반복 해왔던 것이다. 달이 완전한 원형에 진입했다가, 조금씩 벋어나는 그 삼일이 지나면 모든 발작은 물러나고, 믿을 수 없는 평온이 찾아오곤 했다.

이제 동률은 만월이 물러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신이 논리와 과학적 사고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엇인가를 소망해보는 경험은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밤의 달은 해변 위에 장엄하게 솟아있었다. 어느 누구의 대적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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