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때 이야기에요.
13살은 저에게 엄청난 한 해 였어요.
드디어 저만의 방이 생겼거든요.
아빠가 핑크색으로 도배를 해주셨어요.
방문을 열 때마다
하늘하늘한 핑크색이 저를 맞아주었어요.
저는 그 방이 너무너무 좋아서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도 뿌리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그곳은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성이었어요.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식구들과 tv를 보면서도
난 내 방으로 들어가 혼자 있을 시간만을 고대했어요.
용돈을 모아 자물쇠 달린 일기장도 샀답니다.
이쁜 펜도 샀어요.
매일밤 잠들기 전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일기를 썼어요!
밤10시반이 되면 불을 꺼야했어요.
10시반이 되면 엄마가 방문을 열어보시거든요. 빨리 자라고.
난 매번 시간에 맞춰 잠든 척 하다가 잠들어버리고
또 잠들어버리고.
속상했어요.
잠은 쓸데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공간에
나홀로 있다는 사실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거든요.
근데 왜 자야 하는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며칠 후
그날도 엄마의 감시를 피해 잠든 척 하다가 0시 30분에 눈을 떴어요.
세상이 깜깜하고 고요해진 요상한 공기와 느낌이 너무 좋아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냥 잘까 하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과 공기가 너무 좋아
일어나기로 했답니다.
한참동안
음악도 듣고
내 미래에 대한 꿈을 꾸다가
창밖에서 바람이 휘이익- 들어오길래 창가로 갔어요.
창틀에 팔을 붙이고 다리를 살랑거리며 바깥 풍경을 감상했지요.
사실 바깥 풍경이래봤자 별거 없어요.
맞은편 건물 1층엔 슈퍼마켓과 세탁소 등이 있고 2,3층이 일반주택이었어요.
근데 맞은편 창문에
분명 불은 꺼져 있는데
누군가 창밖을 바라보는게 느껴졌어요.
실루엣은 마치 남성 같아 보였습니다.
저의 시선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길래 저도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네요.
며칠 뒤 토요일 밤이었어요.
토요명화를 보고 또다시 저는 영화 장면을 되뇌이며 창틀에 팔을 기대고 바깥구경을 했죠.
아.
또 누군가가 있었어요.
이상했어요.
그 사람도 나처럼 바깥구경을 하는 것 같은데 미동은 없어요.
때마침 라디오에서 로맨틱한 영화 ost가 흘러나와
잠시 아주 설레였어요.
다음날 일요일 아침.
제 방을 대청소하다가 잠시 밖을 보니
맞은편 건물에서 아주 잘 생긴 남자가 나오는거에요.
아마 대학생쯤 되었나봐요.
정말 멋졌어요.
정말 하악거리며 그 사람이 사라질때까지 계속 쳐다봤어요.
순간적으로
맞은편 창문의 주인공이 그 남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나는 매일 밤 자정에 창문앞에서 그 남자와 마주했어요.
어찌나 설레고 좋았던지
가슴이 뻥 뚫리고
온 세상의 기운이 제 품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반년이 지났어요.
괜찮아요.
저는 짝사랑 전문이고
나이도 어리니까요.
그냥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저는 만족했어요.
방학이 되고
친구가 놀러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온다고 전화가 왔지 머에요.
갑자기 심심해진 마음에 창문에 몸을 기대었는데
맞은편 창문에
왠 할머니가 서계셨어요.
너무 힘이 없어서 당장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아차 싶었어요.
저 방은 할머니의 방이고
그동안 내가 본 사람은 할머니였구나.
순간적으로 오바이트가 쏠렸어요.
머리가 핑 돌고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생각해봐요.
나는 13살 사춘기였다구요.
꿈이 산산조각나듯
나의 짝사랑이 쪼글쪼글한 할머니였다니.
그이후로 창밖을 바라보지도
자정 넘어 깨는 일도
하지 않았어요.
스무살이 되었어요.
공부에 뜻이 없어서 지방대학을 가게 되었고
방학이 되어야 집에 오게 되었죠.
아빠는 막내딸을 반년만에 보게 되는 기쁨에
또다시 핑크색으로 도배를 해 놓으셨어요. 내 방을 말이에요.
문을 열자
싱그러운 햇살과 바람이
핑크색 벽지에 잔잔하게 비춰졌어요.
너무 아름다웠죠.
창가로 갔어요.
맞은편 건물 1층은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으로 바뀌었더라구요.
근데 2층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방충망때문에 정확치는 않았지만
난 느낄 수 있었어요.
내 쪽을 보고
노려보고 있다는 걸요.
소름이 확 돋아서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 엄마, 혹시 맞은편 2층에 누가 사는지 알아?
- 응. 왜 ?
어,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랄까요.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친구 만난다고 하고 그 길로 집밖을 나왔어요.
2층 우리집을 올려보았어요. 엄마가 서있어요.
맞은편 2층도 봤지요. 젊은 남자가 서있어요.
두 사람 모두 아주 기분 나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날로 저는 짐을 챙겨 기숙사로 돌아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부모님은 이혼을 했습니다.
제 나이 서른,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무렵
맞은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이듬해 그 집 아들이 건물을 팔고 떠났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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