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 보도
– 아직도 회수되지 못한 10구의 시신들 수습 전에는 배 인양 불가
– 유족들, 안전한 사회를 목표로 하는 전면적 수사 원해
채널뉴스아시아가 10월 15일 AFP기사를 받아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두 학생의 아버지들의 삶과 말을 통해 생생하게 전했다.
마지막 시신이 수습된 7월18일과 그 전의 6월 18일 포함 지난 4개월간 겨우 두 시신만이 수습됐고 지금까지 아직 수습되지 못한 10명의 시신을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업에 관한 매일의 새로운 기록들이 이메일로 유족들에게 보고되는 상황을 전하며, 정부는 가족들의 동의 없이는 작업을 끝내지 않고 계속할 것이라는 중앙재해대책본부의 김상인씨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고 있다.
참사에서 딸을 잃은 철강노동자인 허홍환씨와 그의 일과를 소개하며 참사 당일 진도에 급히 달려가 아직도 그것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 허 씨가 딸아이의 시신이 수습되기만을 희망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기사는 전한다.
AFP는 또한 세월호 참사와 그로 인해 수많은 어린 생명을 잃은 것은 “나라 전체를 비탄에 빠뜨린 깊은 충격”이었으며 “아시아 4위의 경제 대국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해준다고 말하며, 또한 “그 비극이 거의 전적으로 인재, 즉 불법적 재설계, 화물 과다적재, 경험이 부족한 승무원, 사업자와 국가 규제자 사이의 비정상적인 결속 등의 결과였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슬픔은 신속하게 분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AFP는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에 참여하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이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참사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면적인 수사”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시신이 회수되기 전에는 배를 절대로 인양할 수 없다는 이들의 단호한 입장을 보도하는 것을 끝으로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채널뉴스아시아의 AFP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044Gtm
The Sewol disaster and the loss of so many young lives was a profound shock that plunged the entire country into mourning and raised questions about what Asia’s fourth largest economy had come to and where it was going.
세월호 참사와 수많은 어린 생명의 손실은 나라 전체를 비탄에 빠뜨린 깊은 충격이었으며 아시아 4위의 경제 대국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Portraits of the victims of the sunken South Korean ferry “Sewol” are seen with yellow ribbons at Gwanghwamun square where relatives of the victims have sitting in protest against the government, in Seoul. (AFP/JUNG YEON-JE)
침몰한 한국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들이 희생자 친지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노란 리본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SEOUL: “Sewol ferry recovery update No. 377 … Days since last body found — 88.”
서울: “세월호 인양 보고 377호 … 마지막 시신 인양 후의 경과 시일 – 88일.”
Six months after South Korea’s worst maritime disaster, the official e-mails keep coming – sometimes several a day – recording every detail of a largely forgotten and ignored operation. Weather and sea conditions permitting, they detail the latest mission by divers to penetrate the sunken vessel in the search for 10 bodies that remain unaccounted for.
한국 최악의 해양참사가 있은지 6개월 후, 공식 이메일이 – 때로는 하루에 몇 개씩- 대체적으로 잊혀지거나 무시되고 있는 작업의 모든 세부사항의 기록을 계속 알려온다. 날씨와 해양 조건이 허락하는 한, 아직 찾아내지 못한 10구의 시신을 찾아 침몰한 선박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잠수사들의 최근 업무를 이메일은 자세히 알려준다.
The last body to be pulled from the upturned ship was way back on Jul 18. The last before that was on Jun 19. Just two bodies in almost four months. “There is no deadline. The work will continue indefinitely,” said Kim Sang-In, an official at the Disaster Management Headquarters overseeing the recovery effort. “The government has already clarified its position that without the consent of the victims’ families, it will not cease operations unilaterally,” said Kim, whose office issues the e-mail updates.
전복된 배에서 마지막 시신을 인양한 것이 지난 7월 18일이었다. 그 바로 전 시신은 6월 19일이었다. 거의 4개월의 시간 동안 겨우 두 구의 시신. “마감기한은 없다. 시신 인양작업은 무기한으로 계속될 것이다”고 재해대책본부에서 인양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김상인씨가 말했다. “정부에서 유가족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인양작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고 김 씨는 말했다. 최근소식에 대한 이메일이 그의 사무실에서 발송된다.
It’s a consent that steel worker Huh Hong-Hwan has no intention of giving. Of the 476 people on board the 6,825-tonne Sewol passenger ferry when it capsized on Apr 16, 325 – including Huh’s teenaged daughter – were high school pupils on an organised outing. Only 75 of the students survived.
용접공인 허홍환씨는 이러한 동의를 해줄 생각이 전혀 없다. 4월 16일, 선박이 전복됐을 때 이 6,825톤의 세월호 안에 탑승했던 476명의 승객들 중에는 십대인 허 씨의 딸을 포함해서 수학여행을 가던 325명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 중 75명만이 살아남았다.
As soon as Huh heard of the disaster, he jumped in his car and drove, sick with anxiety, for five hours down to the southern island of Jindo where the rescue operation was gearing up.
허 씨는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차에 올라타서 불안으로 가슴 조이며 5시간 차를 몰아 구조활동이 펼쳐지고 있던 남쪽의 섬, 진도로 내려왔다.
Six months later, he is still there – one of a tight group of relatives still camped out in a public gymnasium which had housed hundreds of family members in the immediate aftermath of the sinking. “I will never give up or leave this place until I can see my daughter,” the 50-year-old said by telephone from Jindo.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침몰 직후 수백명의 가족들을 수용했던 체육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서로 매우 가까와진 몇몇 가족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는 아직 그곳에 있다. “내 딸을 보기 전까지 절대로 포기하거나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고 50세의 그는 진도에서 전화로 말했다.
Huh’s daily routine rarely varies: He wakes at 7am, has breakfast and walks to the local district office to check if there are any updates. Some days he goes down to Jindo port and boards a boat to take him to the barge where the divers work from.
허 씨의 하루 일과는 거의 늘 일정하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사무실에 들러 새로운 정보가 있는지 확인한다. 때로는 진도항에 가 보트를 타고 잠수부들이 작업하고 있는 바지선에 가기도 한다.
Otherwise he watches television, or talks with other relatives of the 10 people still unaccounted for. “We look out for each other,” Huh said. “It’s important because it’s very difficult – mentally and physically. I feel abandoned and trapped here. Sometimes I even think of suicide, but then I cling to the hope of finding my daughter.”
그렇지 않으면 그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10명 실종자들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아준다”고 허 씨가 말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매우 힘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여기에 버려지고 갇혀버린 느낌을 받는다. 때로는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결국 내 딸을 찾겠다는 희망에 매달린다.”
The Sewol disaster and the loss of so many young lives was a profound shock that plunged the entire country into mourning and raised questions about what Asia’s fourth largest economy had come to and where it was going. The grief swiftly turned to anger as it became clear that the tragedy was almost entirely man-made – the result of an illegal redesign, an overloaded cargo bay, an inexperienced crew and an unhealthy nexus between operators and state regulators.
세월호 참사와 수많은 어린 생명의 손실은 나라 전체를 비탄에 빠뜨린 깊은 충격이었으며 아시아 4위의 경제 대국이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그 비극이 거의 전적으로 인재, 즉 불법적 재설계, 화물 과다적재, 경험이 부족한 승무원, 사업자와 국가 규제자 사이의 비정상적인 결속 등의 결과였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슬픔은 신속하게 분노로 바뀌었다.
And while the tragedy initially seemed to unite the country, its legacy six months later is one of division and discord. Parliament was paralysed for months as the ruling and opposition parties bickered fruitlessly over the content of a bill to create an independent inquiry into the Sewol sinking. Two weeks ago they finally reached a compromise about the composition and investigative powers of the inquiry – but the plan was immediately rejected by the majority of victims’ families, who had been pushing for a say in who should sit on the panel.
그리고 참사는 처음에는 나라를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6개월 후 남은 유산은 분열과 불화이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하기 위한 법안의 내용을 두고 집권당과 야당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언쟁을 벌이는 가운데 국회는 마비됐다. 두 주 전에 그들은 결국 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수사권에 관한 합의에 도달했으나, 그 타협안은 누가 조사위원회에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 발언권을 갖고차 노력해온 희생자 가족들 다수에 의해 즉시 거부됐다.
A group of family members, some of them on rotating hunger strike, have been camped out of Seoul’s main ceremonial thoroughfare for months to push their demands. “The political parties are trying to use the tragedy for their own political interests,” said Jun Myoung-Sun, the father of one of the dead students who heads a group that claims to represent the majority of victims’ families. “What we want is a full investigation aimed at making a safer society. A full disclosure that tells the truth about how such a disaster could occur.”
유족들은, 일부는 단식투쟁에 교대로 참가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큰 행사가 종종 열리는 서울의 큰 거리에서 야영을 해왔다. “정당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참사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희생자들 가족들 대다수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그룹의 대표이며 사망한 학생의 아버지인 전명선씨가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면적인 수사이다. 그러한 참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는 전면적인 조사이다.”
As far as the continuing recovery operation in Jindo goes, Jun acknowledged the challenge posed by the coming winter weather – but was adamant that the time had not yet come to bring in the heavy lifting cranes. “We have no plan to raise the vessel as yet. This is the wish of most of the families,” he said.
진도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인양작업에 대해 전 씨는 다가오는 겨울 날씨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중장비 크레인을 투입할 때는 아직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아직까지 배를 인양할 계획이 없다. 이것은 가족들 대부분의 바램이다”고 그는 말했다.
– AFP/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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