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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에 벚꽃. 2
게시물ID : readers_89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미..
추천 : 1
조회수 : 1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9/24 01:19:06
시야에 벚꽃. 1 http://todayhumor.com/?readers_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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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도착하자 마자 쓰러지듯 소파에 앉았다. 오늘따라 혼자 사는 이 원룸이 더 없이 휑하고 넓어보였다. 아직 밝은 햇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지만 왠지 을씨년스럽고 칙칙해보인다. 

 부산으로 내려오던 그날 KTX에서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대부분 정래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게 너무 소름끼치고 싫어져서 잠을 자려고 눈을 꼭 감고 버틴적이 있다. 지금처럼. 하지만 그때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멜랑콜리한 슬픔만 가증될 뿐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혹시나 하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휴대폰을 꺼내보았지만 어떤 연락도 와있지 않았다. 황금같은 휴일에 이게 뭐하는 짓이람. 가끔 사람들 모두 인생이라는 줄에 매달려서 미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 혼자 그 줄에서 떨어져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어느 소설에서 읽은 글귀처럼 지금 내 오른쪽엔 외로움이, 왼쪽엔 슬픔이 다가와서 양 팔을 꽉쥐로 나를 심문하는 것 같다. 아니, 내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부비면서 애무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엔 정래도 지효도 없었다. 그저 헐벗은 나와 끝없는 감정들만 있을 뿐이었다. 

 가끔 첫키스를 생각하곤 한다. 정래와 했던 그 키스가 내 인생에 첫키스였다. 정래는 아주 독특하게 키스를 했다. 내가 생각했던 키스는 혀를 입속에 넣는 거 였지만 정래가 가르쳐준 키스는 사랑스럽게 입술을 핥아주는 키스였다. 그 부드러운 마음으로 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그 때,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뒤로 만나는 여자들 마다 그런 키스를 해주려 안달이 나 있었다. 지효에게도 그렇게 해주었다. 내가 정말 널 사랑하고 있다고.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게 뭐하는 추태인가. 지효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지효를 잔뜩 속여왔다. 가슴이 아파온다. 

 하얀 종이위에 잉크병을 실수로 쏟은 것처럼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그녀가 남아있다. 내 모든 행동과 습관 속에서. 그래서 그 잉크를 지우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잉크를 지운다는건 불가능하다. 그냥 종이를 버리는 수 밖에 없는데 내 영혼이라는 종이는 어떻게 버리는 걸까?

 나는 잠드는 걸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냉장고로 향했다. 목이타서 물을 마시려 연 냉장고 안에는 얼마전 지효가 챙겨줬던 밑반찬들이 담긴 반찬통이 보였다. 나는 물병을 꺼내고 빠르게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컵도 꺼내지 않고 병에 입을 대고 마셨다. 

 5시가 되었지만 해는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마치 우리 이별과 이 세상이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 처럼, 해는 시간을 무시하고 떠있는 것 같았다. 오늘이 하지인가? 짜증이난다. 혼자 돌부리를 차다 발가락이 꺾인 아이처럼 심술이 솟았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 처럼 휴대폰을 꺼내 지효에게 전화해볼까? 라는 고민을 했다. 

 골룸이 절대반지를 쥐고 놓지 않은 것 처럼 나도 이별이 오면 미련이라는 흉물을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다. 결국 사용할 줄도 모르면서 절대반지를 쥐고있다 폐인이 된 스미골처럼 아무쓸모도 없는 미련을 끌어 안고 나는 폐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구시대 노래 처럼 정말 이별엔 공식이라도 있는 것 처럼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뭐라도 해야할까?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지금 이 순간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을 잃어버린 배 처럼 출구가 없는 세상속 미아가 된것같다. 

 폐인이 되어있을 미래가 떠오르자 정래의 눈길이 함께 떠올랐다. 언젠가 폐인이 되어서 친구들과 진탕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데 정래를 만난 것이다. 사실은 친구놈이 부른 거 였지만 그때는 몰랐으니까. 내 꼴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술이 확 깨버렸다. 그리곤 내 꼴이 떠올라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정래의 눈빛에서 읽은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정래를 바라보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마 그때 정래는 나를 슬프게 쳐다보았을 것 같다. 그랬을 것 같다는 기억이 자꾸 나는 것이다. 

 그날 정래는 나를 끌고 모텔로 들어가 내 옷을 다 벗기고 손수 씻겨줬다. 나는 정래가 하는 대로 묵묵히 있었고 정래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씻더니 정래는 면도기를 밀며 말했다. 

 "이제 네가 해."

내가 면도기를 받아들자 정래는 욕실에서 나갔다. 면도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자꾸 눈물이 났었다. 왜냐고 묻는 다면 솔직히 뚜렷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 상황과 분위기가 애틋하면서도 서글펐던 것 같다. 

 면도를 다 하고 세수를 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대충 가운을 걸치고 나가자 정래가 휴지를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상처가난 내 턱을 닦아주었다. 나는 면도가 서툴러서 면도를 할 때마다 피가났으니까. 그때도 정래의 눈을 못 쳐다봤던것 같다. 아니, 정래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서 흐릿하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매번 이별을 할 때면 이렇게 정래 생각이 난다. 헤어진 그 여자의 생각과 정래 생각이 같이난다. 그리고 때로는 정래와 지금 헤어진 여자를 비교한다. 그러면 아무리 비교해보아도 나에겐 정래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정말 몹쓸 짓인데, 그걸 알지만 자꾸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효는? 

 어쩌면 나는 부산에서 내 입술을 핥아줄 여자를 찾아다녔던 것 같다. 내 알몸을 손수 씻어줄 여자를, 내 턱에 난 피를 닦아줄 여자를... 그런데 엉뚱하게 지효에게 매달렸다. 난 항상 그랬다. 

 내 이상형은 키는 158cm에 피부가 약간 분홍빛이 도는 흰빛이여야 하고 발이 작고 애교가 많은 여자지만 정작 정래는 키는 165cm나 되고 피부는 마치 백인처럼 투명했고 발도 크고 애교란 없는 여자였다. 가끔은 그래서 내 꼴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처음 정해둔 기준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언제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정래도 지효도... 일을 할 때도 처음에 정해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나 패널티가 돌아오니까 연애라는 놈도 그런 식이다. 그렇게 앉아있을 때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나는 최대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밥솥을 열었다. 밥은 없었다. 

 휴대폰을 열어서 자장면을 시키기 위해 중국집에 전화를 했다. 

 "태양반점입니다~."
 "여기 oo빌라 305동인데....."

한참을 울어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었다.

 "탕수육 작은거 하나 주세요."

충동적으로 말했다. 먹는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은 아니지만 충동적인 타입이라 나도 모를 충동에 휩싸여 탕수육을 시켰다. 주문을 끝내고 지갑을 열어 돈을 미리 꺼내놨다. 

 나는 방 구석에 버리듯 세워둔 기타를 잡았다. 배달이 오는 동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 모순적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안했으면 하지만 뭐라도 꼭 해야할 것 같았다. 

 "빨래를 해야 겠어요....."

 첫 코드를 힘없이 다운 스트로크하며 뱉은 가사는 정말 지금 내 상황 같은 노래다. 그래, 이 노래를 부르려고 기타를 든거다. 나는 스트레스를 푸는 여러 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나라는 대상에 국한되어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래를 부르는 거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남김없이 비워내도록~"

 그런데 내 마음속에 있는 건 잉크라 비워지지가 않아. 수습하려고 문지를 수록 흉하게 번지고 퍼지는 잉크. 그래서 지효라는 다른 이쁜 색으로 덧칠하려고 했는데 먼저 쏟은 잉크가 검정색이라 어떤 색을 부어도 더 보기 싫어지는.......

 그냥 검은 종이가 되어버릴까? 인정해야지.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이런게 사랑이라고 하면 인정해야지. 미련인지 모르겠지만 이런게 미련이라면 인정해야지. 내가 나쁜놈이라면 인정해야지. 모두 인정하고 나면 나는 뭐가 남을까?

 식물인간이 되어서 링거에 의지한체 생명을 연명하면서 의식은 깨어서 주위 사람들을 살피는 그런 우스운 꼴이다. 그게 지금의 나다. 정래랑 헤어질 때 그런 편지를 썼었다. 

[널 만나기 전에 나는 태양이라서 수 많은 행성들이 나를 따르고 내 빛을 원했었는데 널 만나고 나서 나는 백색왜성이 됐어. 그래서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고 오늘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됐어.]

 백색왜성은 행성이 죽기 전 마지막 단계다. 실상 다시 재결합한 후에 정래가 그 편지를 꺼내면서 '너 때문에 백색왜성을 검색했어!'라며 웃으며 이야기 할때 조금 오글거려서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박동훈씨, 저번 꺼 까지 총 몇번 폭발하신 겁니까?"

 행성은 폭발해서 죽는다. 정래는 나에게 몇번 폭발했냐고 물어왔었다. 그 편지를 쓴 날까지 총 5번이었지만 정래에겐 그저 웃어 넘겼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 5번의 괴로움을. 지금은 8번이 된 그 괴로움을. 

 아마 앞으로는 교회에 나갈 일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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