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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너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게시물ID : panic_89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없대연봉
추천 : 24
조회수 : 3354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8/05 16:08:54
사랑하는 아버지의 장례식. 

그가 묻혀 있는 묘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냥, 미동도 없이 묘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악스러운 가을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따가운 것은 내 뺨이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던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그냥, 그 뿐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난 주말이면 아버지를 보러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묘지에 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그 주변의 풀도 많이 자라서, 갈 때마다 풀을 뜯고 정리했다. 제초를 하고 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는 했다. 

어느 날, 묘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노란 꽃 한 송이가 그의 묘비 옆에 피어난 것을 발견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는 묘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고 귀여운 꽃이었다. 본 적이 있는 꽃이다.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에 꽃을 발견했다. "와 꽃이다!" 아버지는 꽃을 꺾어서 내 귀 뒤에 꽂아 주시고는 "이제 두 송이네."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아빠 이 꽃은 뭐야?"라고 묻자 아버지가 "이름 없는 꽃이네." 나는 실망하며 "예쁜 이름을 가진 꽃이면 좋았을텐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름은 없지만 이제 우리 현주의 꽃이잖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현주꽃이네 그럼!"이라고 말했다. "그래, 이제 이 꽃은 현주꽃이야." 

나는 아버지의 묘지 옆에 피어난 작은 꽃을 아래에 있던 흙과 함께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화분에 담고, 물을 주고 나서 나는 꽃을 보고 말했다. "넌 이제 우리 아빠의 꽃이야."라고. 화분을 창틀에 놓고는 한참 바라보다 잠들었다.

현주야! 
현주야!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일어나 보니 새벽이었고, 아버지는 (당연하지만) 어디에도 안 계셨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거의 잠이 들었을 때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기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어두운 형체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였다고 느꼈다. 그때, 나른해지며 깊은 잠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두운 형체는 내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분명, 아버지의 느낌이었다.
아빠...

아침에 일어나서 전날 밤 일을 생각해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갔는데 이마에 작고 옅은 점이 있었다.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제 모기에 물리면서 아버지 상상을 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일 찾아오셨고, 나는 매일 밤 아버지가 내 이마와 볼을 어루만지는 꿈을 꾸면서 잠들었다. 

이마의 점은 늘어났고 점점 진해졌다. 점들은 조금씩 가려워지기까지 해서 피부과에 가봤지만 이런 증상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의사의 답변이었다. 

아버지의 꽃은 소중했지만, 결국에는 피부 문제가 너무 심각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화분을 다시 묘지에 가져가서 아버지 묘비 옆에 심었다. 그 뒤로, 점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찾아오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달이 차고 해가 넘어가서,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타지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 바쁜 와중에도 매주 두 시간 차를 타고 아버지의 묘지에 가서 제초를 했다. 아빠의 꽃은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10년이 넘게 자라지도 않고 그 모양 그 대로 있는 꽃. 늙지도 않고 그 자리에 항상 계시는 아버지와도 같은 노란 꽃.

친하게 지내던 혜영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내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혜영이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동창이었지만, 친해진 것은 대학교 때 이후의 일이었다.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혜영이는 암울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주로 외톨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입학한 뒤에는 성격이 활발해졌고, 얼굴도 주로 슬픈 표정을 짓던 어릴 때와는 달리 잘 웃게 되어서 인기도 많았다. 3학년 때에는 혜영이와 룸메이트이기도 해서, 대단히 친한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았지만, 혜영이는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고, 내가 물어봐도 화제를 돌렸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장례식에서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혜영이를 봤고, 그때 혜영이도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 며칠 동안 혜영이는 원래 성격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잘 웃지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아버지의 묘비를 찾은 뒤에 갑자기 든 생각이 있어 멀지 않은 혜영이 아버지의 묘비를 찾았다. 가까이 가자, 나는 내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역시, 거기도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꽃을 한 송이 피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꽃은 피처럼 붉고, 겨울처럼 화려한 꽃이었다. 바로 그 꽃을 흙과 함께 집에 가져와서 화분에 담았다. 혜영이 아버지의 꽃이다.

다음 날, 혜영이의 기숙사를 찾은 나는 눈이 부어 있는 혜영이에게 화분을 건냈다. 혜영이는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웬 꽃이야?" 
"너 많이 슬퍼하는 것 같아서. 이거 보고 힐링하라고, ㅋㅋ"라고 하고는 나는 뒤돌아서 온 길을 돌아가려 했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슬퍼하는거 아냐."
잘 들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뒤돌아서서는 물었다.
혜영이는 눈물을 또 닦으며, "아, 아니야. 수업 때 봐."라고 하고는 방 문을 닫았다. 

조금 의아해 하기는 했지만, 큰 슬픔을 겪는 사람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건 내가 경험해봐서 잘 안다.

다음 날, 혜영이는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공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 외과의사 김혜영이였다. MT에서 남자들 상대로 족구를 하다가 팔에 금이 갔을 때에도 기브스를 한 상태로 수업에 나오던 혜영이였다. 장례식 당일에도 끝나고 학교로 온 혜영이였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혜영이는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혜영이의 기숙사로 찾아갔다. 문을 두드리자 혜영이가 안에서 힘 없는 소리로 "누구세요..."라고 말했다. 
문고리를 돌리며 내가 말했다. "현주야, 들어갈게."

그 뒤에 내가 본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말라서 앙상해진 현주가 침대에 누워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놀란 내가 말했다.
"혜영아! 괜찮아? 병원 가야겠다!"
혜영이가 힘겹게 팔을 들더니 천천히 손을 저었다.
"아니야. 그새끼가 날 괴롭히는 것 뿐야."
의아해진 내가 말했다.
"무슨 말이야?"
"그 새끼. 내 아비라는 새끼 말야."
"그게 무슨 말이야 혜영아... 너 아버지 돌아가셨잖아."
"응 죽었지. 그런데 안죽었더라."

그 부분은 이해가 갔다. 내가 혜영이를 위해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해줬으니까. 하지만 장례식에서 눈물 훔치던 혜영이가 왜 자기 아버지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새끼 죽었을 때 어릴 때 그새끼가 나한테 한 짓들이 생각나더라. [콜록콜록] 그래서 눈물이 나더라고. 대학으로 도망쳐 와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되져버리니까 또 생각이 나는거야. 그때 생각을 하니까 눈물도 나고-" 숨을 몰아쉬며 혜영이 말을 이었다. 나는 혜영이의 손을 잡고 침대에 앉았다.
"며칠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런데 이젠 꿈에서도 나와서..." 하고는 혜영이는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발에 무엇이 툭 떨어졌다. 피였다. 침대 위에서 흐르는 피가 내 발에 떨어진 것이다. 이불 속에서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는 혜영의 이불을 걷었다.

그때 난 봤다. 

혜영의 사타구니 주위에 나 있는 수많은 빨간 점들을.
출처 Reddit에서 읽은 글에서 영감을 얻고 쓴 글입니다. 내용이 많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원작에서 영감을 얻었으므로 하기와 같이 출처 표기합니다.
https://wh.reddit.com/r/nosleep/comments/4640qe/a_touch_of_graveyard_d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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