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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끝의 그때
게시물ID : readers_167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렇기에
추천 : 2
조회수 : 328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10/19 03:26:37
늦게 잠드는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나는 그 버릇을 고치고자 오히려 밤을 새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의 운동장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 집은 낮에는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을 좋아한다. 밤은 나에게 예의를 갖춰주기 때문이다.
 
담배를 태울 생각으로 배란다로 나서니 새벽공기가 무척 쌀쌀했다. 며칠 전에 비가 왔기 때문이다. 여름의 끝자락에 내린 비는 재산을 요구하는 이혼녀와 같이 더위를 몽땅 가지고 떠나갔다. 그래도 기분 좋은 것은 대기가 청명해진 것이다. 담배는 이런 깨끗한 공기에서 맛이 더 좋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무심코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에는 유난히 커 보이는 보름달이 떠있다. 보름달이 조용히 나에게 이야기 건다. 나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 없어? 나는 대답한다. 있어. 근데 이제는 쉽게 그려지지 않네.
 
잠깐 무언가 생각을 하던 나는 달 옆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를 찾았다. 그 별은 정말 유난히도 반짝였다. 아마도 금성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금성은 새벽에 나타나서 샛별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아니, 정확하지 않다. 저것은 정말 금성일까?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찌 저 별은 저리 반짝거릴까. 뒤이어 공포감이 찾아왔다. 모두가 잠든 이 시간에 저 별은 어찌 저리 반짝거릴까.
 
저것은 금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짝이는 저것은 아주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 이다. 무언가.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시간에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 시작된 망상은 쉽게 또 다른 망상을 불러왔다. 자꾸 쳐다보고 있으니 반짝이는 그것은 정말로 이곳으로 성큼 다가온 듯 해보였다. 내 목뒤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 TV를 켜고 뉴스채널을 틀었다. 거기에서는 다행히 여전히 무의미한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행동에 실소를 했다. 새벽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고요함 속에서 잠이 깼다. 나는 누워서 휴대폰시계를 켰다. 이미 늦은 오후였다. 나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냉장고에서 두유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굶주림을 달랠 방법을 고민했다. 고민의 끝은 늘 싸고 간편한 아파트 앞 편의점의 도시락이었다.
 
밖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새벽만큼 쌀쌀했다. 아파트 앞 벤치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서럽게 울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할머니는 허벅지를 반복적으로 내려치며 자신의 깊은 슬픔을 주변에 알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묘한 광경이었지만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주말의 늦은 오후라 모두 어디로 떠나버린 것인지 길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주말의 늦은 오후라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눈앞의 펼쳐진 고요한 도시를 보고 있노라니 뭐가 맞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농밀한 침묵은 나에게 가장 익숙한 이곳에 붉은 신호등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입에서 말이 새어나왔다. 설마.
 
그때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답장할 수 없는 그런 부류의 문자였다.
 
이 순간에야 용기가 나네.
너는 나에게 봄과 같아서 언제나 널 그리워했어.
더 이상은 볼 수 없겠지.
지금 너와 함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머리를 들어 노을이 지는것을 바라봤다. 세상이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렇게 낮에도 끝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더 분명히, 더 빨리 알았더라면멍하니 서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세상은 주홍빛으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빛깔로 가득 물들었다가, 이윽고 어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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