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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튤립에 물어보라
게시물ID : lovestory_89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1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4/19 11:37:51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김광규늙은 소나무

 

 

 

새마을 회관 앞마당에서

자연보호를 받고 있는

늙은 소나무

시원한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의 몸짓 보여주며

백여 년을 변함없이 너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송진마저 말라 버린 몸통을 보면

뿌리가 아플 때도 되었는데

너의 고달픔 짐작도 못 하고 회원들은

시멘트로 밑동을 싸 바르고

주사까지 놓으면서

그냥 서 있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도

늙음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

오래간만에 털썩 주저앉아 너도

한번 쉬고 싶을 것이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기에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너의 졸음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백여 년 동안 뜨고 있던

푸른 눈을 감으며

끝내 서서 잠드는구나

가지마다 붉게 시드는

늙은 소나무







2.jpg

이진홍진달래꽃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온 몸 구석구석

오들오들 그리움이 피었습니다

 

가슴 속 관류하는 고통의 핏줄

바위틈에 숨겨진 화려한 절망들이

봄바람에 터져서 피었습니다

 

향기로운 당신 말씀 가혹하여

함부로 찢어져서 빠알갛게

온 산에 철철철 흘렀습니다







3.jpg

공광규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4.jpg

구석본우리 시대의 사랑

 

 

 

2003년 4월 4일 12시 4

당신은 대구광역시 순환도로를

100킬로 속도로 달렸습니다

그곳은 80키로가 제한 속도입니다

 

차를 운전하는 나의 모습이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다

옆자리는 검게 지워져 있다

지워진 검은 잉크 밑에서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얼룩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

누군가 우리들의 사랑을 찍었다

100킬로로 달리던 속도와 그 뜨거움 속으로

내닫던 사랑을 흑백으로 현상하여

6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누군가 제한해 놓은 속도

그 속을 벗어나면

가차없이 현상되는 우리들의 사랑







5.jpg

송재학튤립에 물어보라

 

 

 

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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