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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7
게시물ID : panic_898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1
조회수 : 68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07 12: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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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려움. 가려움. 미칠 듯한 가려움. 그놈들이 몸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느낌.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몸안의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다. 가장 심한 곳은 팔이다. 하지만 긁을 수 없다. 긁을수록 더 많은 눈들이 생겨난다.

  그놈들이 이 세상을 엿보고 싶어한다는 요구였다. 아직은 그들에게 낯선 어둠을 익숙한 어둠으로 바꾸고 싶다는 요구였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이 세상을 보여줄 때마다, 지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끔찍한 지옥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들이 세상의 빛에 적응할수록, 지안은 지옥의 어둠에 익숙해졌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어둠이었다. 우주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악마의 성전을 그놈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인류보다 더 길고 오래된 지옥의 제단이 그의 몸속에 들어있었다. 그 제단의 기둥위에 싸늘한 시선으로 이 행성을 내려다보는 폭풍의 눈이 보였다. 토성이 그 눈으로 이 행성의 인류를 모두 엿보려고 하고 있었다. 지안에게 토성의 사악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 거대한 암흑의 눈두덩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지구를 그는 보았다. 푸르고 푸른 타원의 공을 삼켜버리는 진흙 구덩처럼 시커먼 눈. 지구는 그저 눈깔사탕을 씹는 것처럼 토성의 위속에서 허물어졌다.

  그런 영상을 보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지안은 비명을 질렀다. 그런 꿈을 꿀때마다 영혼의 한 조각을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영혼의 전부를 그들에게 흡수당할 것이 틀림없다. 그들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지금으로선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뿐이었다.

  여기서부터 어디로 가야돼?” 동률이 뒤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지안을 고개를 들어 짐칸의 창밖을 살펴보았다. 오른쪽으로 낯설면서도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낯선 이유는 그의 눈으로 이곳의 풍경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이유는 그의 몸을 이용해서 그들이 이곳을 찾아온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갈림길이었다. 비포장도로로 진입하는 지점이었다. 경사가 미친 듯이 앞과 옆으로 불규칙하게 이어지는 곳, 조그만 언덕들이 머리와 머리를 잇대면서 맞부딪치듯이 맞물리는 곳, 등산객들도 찾지 않는 깊숙한 곳이었다. 그 산은 높지 않은 야산이면서도 안으로 들어갈수록 제법 울창한 숲을 형성하는 그런 산이었다.

  왼쪽으로 들어가. 더 들어가면 계곡이 있어.” 지안이 대답했다.

  지안은 가끔 동률의 운전 실력을 비웃었다. 쉰 이 넘은 성인답지 않게 운전대만 잡으면 소녀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묵묵히 있었다. 그의 2059년형 사륜구동차는 자같밭을 달리는데 거침이 없었다. 돌밭길을 성큼성큼 디딜 때마다 요란한 덜컹거림이 전해져왔다. 소음과 진동이 다시금 지안의 의식을 희미한 경계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상상과 꿈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깊은 잠에 들 때마다 보이는 영상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인간과는 달랐지만 인간과 비슷한 형체들, 넝마처럼 너덜한 검은 수의를 치렁하게 걸친 형체들, 그들의 찢어진 검은 천 밖으로 튀어나온 손과 발에는 물갈퀴가 붙어 있었다. 그 시커먼 형체들이 거석 기둥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날 죽여야 돼.” 동률은 지안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잠꼬대처럼 희미하게 들렸다.

  무덤을 찾는 게 먼저야.” 동률이 대답했다.

  사륜구동차의 요란한 진동을 느끼면서 지안은 화성을 상상했다. 아직 인류의 발길이 닿아본적 없는 별,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도 암석과 자갈 밖에 볼 수 없는 붉은 황무지. 화성에 유인탐사선이 착륙한다면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만 같았다. 그토록 오랫동안 인류가 그 별을 꿈꿔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화성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그저 붉은 죽음의 별일 뿐이었다.

  다시 그들의 형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들중의 한 명이 물갈퀴 달린 손을 뻗어 제단위에 놓인 책을 펼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기괴한 도형과 이상한 기호로 가득한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었다. 그 자가 책의 한 페이지에 적힌 주문 비슷한 것을 암송할 때, 지안은 그 기괴한 음성을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개구리와 도롱뇽 같은 생명체가 인간의 음성을 발성하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지아카이 운갈롭흐. 흐즐롱퀴그은나하프, 차토구아 아즐나퀴. 그나 바담피스 아포라고몬.”

  동률은 하마터면 운전대의 손을 놓을 뻔했다. 급브레이크를 밞았을지도 몰랐다. 지안이 잠결에 중얼거린 그 주문, 그것이 지옥보다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암흑의 존재들이 보내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캐토닉 대학의 호지슨과 이메일을 교환하면서 그는 헤령과 지안이 영창하는 그 해괴한 주문의 뜻을 계속 물었다. 하지만 호지슨은 결코 그 말들의 의미를 해석해주길 거부했다. 만약 당신이 그 뜻을 알게 된다면 결코 제 정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미쳐버리거나 광증을 거부할 방법은 자살 외에는 없을 것이라면서.

  대신 호지슨은 전문의 내용을 확인시켜, 그들의 중얼거림이 단순한 헛소리가 아님을 확신하게 주었다.

  이를테면 판클루 글루나파라는 문장 뒤에 크툴루 리예라는 문장이 따르지 않는지, “흐즐롱퀴로 시작하는 발음하기 힘든 긴 단어 뒤에는 항상 차토구아라는 단어가 뒤따르는지 묻는 식이었다.

  크툴루, 차토구아. 그런 이름들은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것들에게 붙여진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는 아닐테지만요.’

  호지슨에게서 가장 최근에 받은 이메일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순간, 먼 바다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해변너머로 폭풍우를 담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번개가 물위로 하나둘씩 내리쳤다. 하지만 동률의 몸이 떨려오는 것은 자연의 그런 현상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는 자신의 두려움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존재들 때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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