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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청소년 소설을 쓰거나 서평 안 하려는 이유
게시물ID : readers_89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보르헤스
추천 : 3
조회수 : 40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9/25 01:11:32
이 글은 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네요. 어째든 송포유의 논란도 있고, 책게이니 책 위주로 가겠습니다.
 
저는 청소년 소설을 매우, 무척 아쭈 짜증스러울 정도로 싫어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청소년 소설이 전부는 아니지만, 가해자를 미화시키거나 가해자 입장의 소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소설도 많죠.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
구병모의 청소년 소설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현실적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죠. 아주 세밀하게요.
뭐, 다른 청소년 소설들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 많을 겁니다. 헌데.
 
가해자 입장에서 혹은 미화 혹은 갱생시키는 내용의 소설도 만만치 않다는 거죠.
어찌보면 너무 극단적인 부분이 아니냐고 생각 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가해자의 입장이 그렇게 쉽게 변했다면 왜 지금깢 학교폭력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거까요? 물론 이 책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죠. 어차피 책을 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부분과 관점이
지속 된다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거죠.
 
  소설은 픽션이니까 그들이 쉽게 교화 될 수 있어 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보고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아 현실도 이렇게 쉽게 교화 되겠지라는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소설만 보고 현실을 구분못해. 하지만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라는거죠. 판타지가 아닌이상 소설은 현실이고 비슷하고, 느낌을 받고 영향으로 이럴 수 있겠다 하는 가르침을 받게 될 수 있는 점이 문제죠.
 
 이런 주장처럼 송포유 같은 프로그램이나 책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만을 그리고 가해자가 처한 환경이 이래 그러니까 가해자를 도와야해 라는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죠. 하지만 가해자를 돕는 다는 것이 예전처럼 가해자가 가난해서 혹은 집안 환경이나 믿음이 없어서야 하는 감성적인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왕따를 감정적으로 다가서면 안되지. 이 말은 결국 피해자도 가해자도 똑같다가 아니라 가해자도 피해자도 이성적인 선택과 판탄을 해야 한다는 말로 저는 들리더군요. 결국 피해자 문제도 피해자의 잘못도 있어 그리고 피해자가 그 심리적 고통을 해결할 대안을 마련 해야해 라는 이성적 잣대도 필요하지만, 가해자의 잘못된 처벌이 강화 되어야하고, 가해자가 생기는 교유 시스템을 먼저 해결해야해 라는 이성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거죠.
 
단순히 가해자만 가정형편이, 선생님들의 믿음이 없어서. 라고 소설 속에 그려놓으면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피해자는요? 피해자가 겪을 평생의 고통은요? 그 동네 다니다가도 가해자를 보고 먼길로 돌아가거나, 물건을 사려해도 있으면 괜히 들어가려다가도 나가서 휴대폰 만지다가 들어가고, 아는척이라도 하면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받고 안좋은 기억 떠올라서 하루종일 우울하고, 중고등학교때 선생님 운좋게 만났다가 가해자 이름 부르고 요새 괜찮아 졌다라 말들어도 달갑지 않은 피해자의 입장은요?
 
청소년 소설 속에서 구병모를 빼고 (솔직히 구병모 작가도 계급론을 청소년 피해자의 입장으로 써낸거죠. 하지만 가해자가 부자집 도련님이라는 점이 지금 새롭게 나타나는 가해자의 모습을 연상게하기는 하네요) 청소년 소설에서 가해자가 갱생하지 못한 소설이 있나요? 아 있군요.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 작품도 결국 버려진 가정과 술집 여자 그리고 폭력으로 물든 가해자들의 사회. 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미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회의 실상을 보이면서 사회의 이면이 이래라고 고발하는 부분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진실을 알려내는 부분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가 아닌가 싶네요. (삼천포로 빠졌군요)
 
다시 돌아와서 묻습니다. 가해자가 갱생해서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마무리 하면 이야기는 좋죠. 하지만 그것을 당한 피해자가 평생을 짊어질 짐의 무게는 소설 속에서도 풀어주지 않네요? 가해자가 2류, 3류라 불린다며 피해자는 그보다 더 낮은 등급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그들이야 정신차리고 다시 삶을 산다쳐도, 피해자가 느끼고 있을 무게가 그들의 사과만으로 끝나지 않을 뿐더러,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겨지겠죠. 그것이 소설의 주된 목표가 아닌가요? 저는 말하고 싶네요. 청소년 소설이 가해자를 미화시키지도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다고 하지만 이게 있는 그대로인지 아닌지는 피해자 삶도 같이 쓰고 난 뒤에 말할 권리 인 것 같습니다.  
 
특히, 요새 웹툰중에서도 '네가 없는 세상' 같이 결국은 그들의 이야기가 드라마틱 하니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피해자가 보면 과연, 좋아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청소년 소설. 10대를 위한 소설, 청소년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은 더 잘 보지 않게 되네요. 소설은 픽션이기에 골라 쓸 수 있지만 현실은 골라 쓸 수 없다는 점을 더 강조하고 싶네요.
 
(말이 이상해도 이해 바랍니다. 흥분해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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