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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말 편순이다
게시물ID : gomin_8990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Wlsa
추천 : 6
조회수 : 27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11/11 01:02:50
 
 
토요일 일요일 오후 2시
 
허둥지둥 일어나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하는 나는 주말 편순이다
 
인터넷에 종종 올라오는 유쾌한 편의점 알바썰을 보며
 
나에게도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시작한 첫알바
 
그러나 나의 첫알바는 지금 손님들이 먹다 남긴 라면 찌꺼기와 함께 음식물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렸다
 
 
누군가에게는 퇼이라는 주말
 
나에게는 토오오오오오오오요오오오오이이이일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요오오오오일인 주말
 
80시간 같은 8시간을 견디며 나는 매순간 고민한다
 
인생이란 뭔가? 나에게 있어서 시급 4900원은?
 
이 일을 하면서 습득하는 경험들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자꾸만 자꾸만 회의감이 밀려온다
 
 
너무 힘든 곳에서 일하는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엄마
 
왜 굳이 편의점에서 하냐고 하는 우리 언니
 
진상이 무섭다는 친구들
 
시계 사게 십만원만 빌려달라는 동생개새끼
 
 
하지만 더 힘든 일을 하잖아 엄마는
 
나도 굳이 왜 여기서 하나 생각해 언니
 
나도 무서워 친구들아
 
꺼져 개새끼야
 
 
그렇게 가족 친구들의 걱정 속에서
 
나는 오늘도 꿋꿋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알바를 시작한지 어언 10개월
 
 
남자가 여자에게 빼빼로를 사줘야한다며 아줌마에게 포장값이 절반인 빼빼로를 선물하시는 유쾌한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훈훈함을 안고 실실 웃던 나는
 
계산도 하지 않고 멋대로 라면에 물 받고 계시던 아줌마 아저씨들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언제부터 편의점이 후불제로 바뀌었나
 
나도 모르는 그 몇십초 사이에 이곳의 시스템이 바뀌었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다
 
저기 손님, 계산 하셨어요?
 
나중에 할게
 
 
 
아 역시 후불제로 바뀌.......................기는 개뿔
 
 
이제는 누가 실수로 쏟은 커피가 카운터에 강을 이루어도 아무렇지 않은 경지까지 올랐다 생각했건만
 
왜 이런 사소한 일에 분노가 치미는 것일까
 
 
편의점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했던 나
 
맥주는 술이 아니라며 후딱 마시겠다던 그 분들
 
여성부에서 오셨습니까 아니면 술 먹었다고 징역 감소 시켜주는 전직 판사셨습니까
 
맥주는 술이 아니면 뭔가요
 
알콜이 첨가됐지만 술이라 쓰고 음료라고 읽으시나요?
 
 
근본을 부정당한 맥주가 쏟아내는 황급빛 액체가 오늘따라 어찌나 슬프던지
 
두 번이나 했던 나의 말은 흐물흐물 물처럼 녹아 아저씨의 뱃속으로 안녕
 
 
봉투에 싸달라며 했으면서 대놓고 마시는 아저씨의 당당함에 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친한 척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제가 아직 수련이 부족해 님을 알아보지 못했나이다
 
그렇게 술판을 벌여놓고 치우지도 아니하시고
 
빈 캔을 정리하는 나의 마음은 쓰레기통의 바닥을 치는 캔의 소리 만큼이나 서늘하게 울린다
 
 
그렇게 한 무리 보내고 나면 멘탈을 수습하기도 전에 풍겨오는 술냄새
 
 
저기요 담뱃불 한 번만 빌려주세요
 
안 돼요 그것도 파는거에요
 
아나 빌려달라고
 
 
난 담배냄새 맡기 싫은데 너 같으면 남이 쓴 라이터 사고 싶겠니?
 
하지만 이런 내 불만은 날 때릴 기세로 치켜들은 취객남의 손바닥에 으스러 사라지네
 
 
그 외에도 기억나는 사람들
 
 
남자친구와 함께 들어온 그녀
 
왜 찾는 물건 들여놓지 않냐며 남자친구에게 기대 짜증을 부리던 그녀
 
너 이년... 아니 손님 발주는 제 일이 아닌데요
 
 
 
급해서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것 같다시던 아줌마
 
먼저 온 손님도 무시하시고
 
천원짜리 한장 던지시며 니가 알아서 가져다 찍으시라며 달려 나가셨다
 
그 와중에 껌 한통 살 생각은 어떻게 하셨을까
 
 
천원짜리 셀프 기계 커피
 
거품이 나는 커피는 커피가 아니시라며
 
그딴 주옥같은 커피 너나 쳐먹으라며 던진 커피가 내 손등에
 
그리고 던져주고 간 이천원
 
아저씨
 
아저씨
 
시재 4천원 더 비는데요
 
 
같은 맛만 같은 것만 두개 사야 하나 더 얹어준다는 행사
 
왜 같은 회사에서 나온건데 다른 맛은 안 되냐며 내게 따지시던 아저씨
 
본사와 상의하세요
 
 
천오백원 짜리
 
옥수수 수염으로 우렸다는 비싼 물
 
그러나 물 주제에 왜이리 비싸냐며 내게 따지시던
 
왠지 그 상황이 너무나 어울렸던 아저씨
 
본사와 상의하세요
 
 
세상에 비둘기가 너무 많아
 
개체수를 줄이고자 비둘기로 튀긴
 
다는 치킨 아니냐며 의심했던 아가씨들
 
아닌데
 
깨끗한 기름에 튀겨 갓 나온 기름기 좔좔 흘러 내 혀를 감동 시키셨던 그 치느님은
 
분명 비둘기 같은 천한 맛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심이 되신다면 손님
 
본사와 상의하세요
 
 
너무나 많지만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힘든 기억들
 
아직 내가 수련이 부족해 이런 것들을 신경쓰는가 보다
 
 
싫으면 그만둬야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금 만기가 얼마남지 않아 당장 그만두기 힘든 내가 밉다
 
 
점장님 사장님
 
먹고 싶은거 있으면 먹으라고 먹는 걸 아까워 하지 말라시며
 
맨날 먹을거 사주시던 점장님 사장님
 
알바생 생각해주는 편의점은 이곳 만한 곳이 없다던 알바 언니의 말
 
그 분들 배려에 더더욱 그만 두기 힘든 내가 밉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분들이 있기에
 
가끔씩 찾아오는 단비같은 훈훈한 손님들 덕분에
 
그리고 조금이지만 한달에 오만원씩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 적금통장을 보며 다음 주도 힘을 내야겠다
 
 
그리고 동생개새끼가 중고나라에서 좆고딩에게 등쳐먹힌 잃어버린 십만원을 메꾸기 위해
 
 
길게자란 손톱을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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