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어느 날 문득 겨울 산이 보고 싶어 함께 산을 오른 적이 있다.
사랑이 싸리 눈 마냥 사락사락 우리 둘 사이를 메꾸었다. 가릴 듯 말 듯, 조용히 그 눈은 내렸다. 분명한 것은 날카롭게 사방으로 뻗댄 가지들 사이에서 나는 포근함을 느꼈음이다. 너의 보들보들한 다섯 가락 온기가 나를 부여잡았다.
봄비
봄비가 내리면 발밑에서 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흙 비린내랄지 비내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 묘한 냄새를 맡으면 항상 생각나는 것은 너의 낡은 운동화다. 걸음걸이가 단정치 못한 너여서 앞부분은 헤지고 밑창은 누렇게 변색되었던 그 운동화. 그 운동화를 정자 밑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하릴없이 봄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던 그 날들.
그 때의 우리들은 참으로 사랑을 했었다.
여름장마
내 마른 어깨를 두들기는 빗방울들은 나의 작은 반지하방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사방에 가득 차 나를 짓누르던 축축한 외로움. 그 어린 시절의 나에겐 네가 유일한 사람이었음에 그 방에서 나는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네 품에 얼굴을 파묻고 그 눅진거리는 서러움을 쏟아내는 것이 나의 매일 매일이었다.
어느 새 너의 너른 가슴에도 눅눅한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가을하늘
처서가 지나고 금세 뻥 뚫려버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우리는 어느 언덕길에서 우리는 등을 돌렸다. 언덕 너머 한참을 걸어가면 너의 집이 있었고 언덕 바로 아래 나의 울음서린 반지하방이 있었다. 내 슬픔을 꾸역꾸역 먹어야만했던 너의 품은 그 좁은 반지하방에 차가운 피곤을 내려놓은 채 언덕 저 뒤로 떠나갔다. 버석버석한 낙엽을 가득 채운 것 마냥 서럽고 서러운 반지하방의 문을 열지 못해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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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써두었던 글인데 수정하고 올려보아요
단편이라 하기도 뭐한 짧은 글이네용ㅋㅋㅋ
인터넷을 하다가 언덕 길에서 헤어지게 되었다는 글을 읽고 쓰게 되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