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40%대로 급락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언급하면서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정부의 무리한 정책 때문이라는 인식에서다. 반면 정부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 16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도 지방세원 확대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타가 이어졌지만 기재부 측에서 불가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대안 차원에서 정치권에서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현실화하자는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공방'
올해 국정 감사에서는 '복지 디폴트'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자체들이 현재의 재정 상황으로는 더 이상 정부의 복지정책을 이행할 수 없기에 복지정책 관련 예산 책정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크게 위축된 취득세 영구 감면에 있다는 것이 지자체의 인식이다.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부동산 경기 회복을 이유로 지자체의 주요 세원인 취득세에 대해 영구감면하기로 결정했다. 지방세 수입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은 취득세(24.8%)가 대폭 감소하면서 지방세 수입은 연간 2조7000억원가량의 감소가 발생하게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취득세 영구감면조치 당시 정부가 보전대책을 마련해주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영유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도입 등 정부 차원의 잇단 복지사업 늘리기로 지방재정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정부에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지자체의 수입 확대를 위한 세원 조정 등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6일 국정감사에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대한 지적에 대해 "지방세수와 중앙세수 간 관계는 각 국가 상황별로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지역 편중이 심하기 때문에 지방 쪽에 세금을 늘리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된다"고 답했다.
이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세 수입원을 지방세로 돌릴 경우 수도권에 있는 지자체의 수입은 크게 확대될지 모르지만 그 이외의 지역은 오히려 수입이 감소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정부가 먼저 국세로 세금을 거두고 이를 지자체에 적절하게 배분함이 옳다는 주장인 것이다.
■누리과정서 드러난 인식 차
정부와 지자체의 인식 차이는 내년 누리과정 사업 진행에서도 나타났다. 누리과정은 박근혜정부의 공약으로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보육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 아동 1명당 22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최근 재정 문제로 내년도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 전액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지자체에 떠넘기려 들자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사태가 불거지자 최 부총리는 "누리사업은 국민들의 바람을 반영해 만들어진 현행 법령상의 의무사항으로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며 "지방교육 당국은 국가 전체 경제여건의 어려움을 감안해 허리띠를 졸라매 국민의 세금이 한 푼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쓰여질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말로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지자체 세원 확대해야
최근 정부는 담뱃세 인상과 주민세, 자동차세 등의 지방세 증세와 주차단속 강화 등의 세외수입 확대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정부도 지자체의 재정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국세와 지방세에 대한 근본적인 조정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증세 조치는 '언 발에 오줌 누기'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 박맹우 의원은 기재부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장기적으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대 3 혹은 6대 4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박 의원은 △부가가치세 중 지방소비세 세율 인상 및 소득세 일부의 지방소득세 이전 △양도소득세의 지방세 전환 △특정장소 입장행위 등에 대한 개별소비세의 지방세 전환 △지방세 정액세율 조정과 비과세 감면 정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최경환 장관이 지방세 비율을 높일 경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했는데 지방세를 올리더라도 지역별 가중치를 두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박광온 의원도 지난달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고 지방의 재정자립도 하락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개정안은 중앙관서의 장이 지방자치단체의 부담을 수반하는 보조사업을 수행할 경우 매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황이나 부담능력 등에 미치는 영향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예산요구서 제출 전에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박 의원 측은 "중앙과 지방의 상호 피드백을 강화하고 국회가 예산을 함부로 떠넘기지 못하게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