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리듬 위에 얹어진 수상쩍은 구호와 함께 검은 선그라스를 낀 남자들이 춤을 추는 요상스런 광고는, 어느 순간부터 TV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을 담지 않고 있는 그 광고에, 처음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그 요상스런 광고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 나오긴 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당신의 꿈에- 베팅하세요. 당신의 꿈에- 베팅하세요. B•D 노원.]
하지만, 묘하게 달라진 멜로디와 함께 새로 나오기 시작한 두번째 광고가 미디어를 타고 흘러나왔을 즈음엔, 모든 이들이 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과 달리, '노원'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지명을 광고가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도, 그 관심에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SNS와 인터넷 등지 이곳저곳엔 사람들이 찍어 올린 사진과 목격담등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거 BOD아니야? 노원에서 봤음. #B•D #이게_뭐야]
사람들이 찍어 올린 사진에는 공통적으로 한 건물의 외벽에 걸려있는, 커다랗고 하얀 정사각형의 현수막에 [B•D]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모습이 나타나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윤고딕체의 노후한 글씨로 [06.3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현수막의 정체는 뜨거운 화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고, 살짝 늦은 감이 있다고 느껴질 때 즈음엔 TV의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그 이름이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다.
모 뉴스에 나온 모 문화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천재적인 마케팅'은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6월 30일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6월 30일 새벽, 노원의 한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반 시민들이 다수였지만, 개중에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기자들, 그리고 혹시 모를 혼란을 대비하려는 듯 무전을 맨 경찰들까지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 같이 건물의 정문으로 쏠려 있었다. 그리고 아침 6시 30분, 어느덧 길거리가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그 시간에 현수막이 떨어지고 건물의 문이 활짝 열렸다.
건물 안에서 나온, 광고에서의 모습과 똑같은, 검은 선그라스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건물 앞에서 구름처럼 모여있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회사에 늦을 각오를 한 채로 이 곳에 와 있었던 A씨도, 그들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뭐야."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A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3대의 기계, ATM기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기계들과 그 앞에 길다랗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꽤 너른 건물 공간에는, 아무런 인테리어도 없이 딱 그것만이 존재했다. 이끌리듯 모여든 인파만 없었더라면, 버려진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그곳은 황량했다.
하지만 그런 실망을 억누르고, 그는 첫번째 행렬에 몸을 맡겼다. 아직은 두달간 쌓여왔던 호기심이 그 안에서 더 크게 존재했기에, 그는 얌전히 순서를 기다렸다.
기계 앞에 선 사람들은 짧게는 3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A씨는 '괜한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후회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게다가 용무를 마치고 기계 앞을 떠나는 사람들의 썩 유쾌하지 못한 표정은 A씨의 그런 생각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리를 떠나진 못했다.
그리고 어느덧 A씨의 차례가 돌아왔다. A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계 앞에 섰다. 기계에는 커다란 터치식 LCD 화면과 자판이 놓여있었다. 그 모양새만 보자면, 오히려 PC에 가까운 형태라고, A씨는 생각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깔끔한 투톤의 인터페이스가 화면에 떠오르고, 가장 먼저 나타난 글씨는 바로 그것이었다. 첫 대면부터 개인정보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에, A씨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윽고 '어차피 개나소나 알고 있는 개인정보 따위야.' 라고 중얼거리며 얼마 전 있었던 은행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떠올렸다.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그는 타자기에 손을 얹어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잠시의장 로딩 화면이 지나가고,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다소 앞뒤 없는, 갑작스런 기계의 질문에 그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건물 앞에서 네시간을 기다린 과거에 대한 후회였던 건지, 아니면 '꿈'이라는 한 글자에 대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것인지는 그 자신도 잘 몰랐지만.
그는 딱 3분간 생각했다.
그 생각은 '이걸 써야하나?' 하는 근원적인 고민에서부터, '무슨 말을 써야하나?'하는 최종적인 고민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입력했다.
[복권 1등 당첨]
그가 버릇처럼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에는 다시 한동안 로딩화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까 그랬듯이,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그 꿈의 배당률은 <8210000%>, 기한은 <2년>입니다. 원하는 배팅액을 넣어주세요.]
그와 동시에, 기계 하단부에 있었던, ATM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현금 투입기가 지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A씨는 당황해 마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서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디스플레이에 [장시간 사용이 없어 초기화면으로 돌아갑니다.]는 멘트가 떠오를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서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B•D]는 언론과 여론의 훌륭한 요깃거리가 되었다. '당신의 꿈에 베팅하세요.'라는 광고의 정체를, 사람들은 확실히 알게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 시사평론가는 '희대의 도박, 사업자 등록이 진행된 경과를 재확인해야...' 라며 목소리를 높혔고, 한 누리꾼은 '배당률 4500%짜리 꿈을 이루었다.'며 자랑을 흘리고 다녔다.
그렇게 [B•D]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대학생 B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B•D]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큰 흥미를 느꼈다. 한 누리꾼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기.'라는 꿈에 100만원을 베팅하여 불과 며칠만에 250만원으로 되돌려 받았다고 자랑했고, '운전면허 시험 합격'에 1500만원을 베팅했다가 모두 잃고 말았다는 다른 누리꾼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B씨는 남김없이 수집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합하다보니, B씨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무도 능동적으로 확실히 이룰 수 있는 꿈에 베팅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결론을 내자마자, 그는 노원으로 향했다. 그는 망설임없이, [오늘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이라는 꿈을 입력했다. 그러자, 한동안 기계는 계산을 시행하더니, 이윽고 화면을 띄웠다.
[그 꿈의 배당률은 <-3%>, 기한은 <1일>입니다. 원하는 배팅액을 넣어주세요.]
그렇게, B씨는 '배당률은 B•D가 임의로 판단한 꿈의 실행가능성에 반비례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그런 B씨와는 조금 다르게, 작은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서 일하는 C씨는 [B•D]의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배당률을 산출해내는 그것의 알고리즘에 그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지금껏 써본적 없던 월차를 내고 노원으로 향했다.
그는 기계에 [내가 올해 안에 죽는 것]을 입력했다.
그러자 기계는 [그 꿈의 배당률은 <125%>, 기한은 <115일>입니다. 원하는 배팅액을 넣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내보였다.
'생각해보니, 죽는건 나 혼자의 의지로 할 수 있잖아.'
그렇게 되뇌이며, 그는 다시 초기화면으로 돌아가 새로운 꿈을 입력했다.
[내가 5년안에 승진하는 것.]
그러자 기계는 또 한 번 계산하더니, 메시지를 띄웠다.
[그 꿈의 배당률은 <80%>, 기한은 <5년>입니다. 원하는 배팅액을 넣어주세요.]
그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다시 한 번 초기화면으로 돌아가 꿈을 입력했다.
[내가 10년 내에 승진하는 것.]
그러자 기계는 말했다.
[그 꿈의 배당률은 <11%>, 기한은 <10년>입니다. 원하는 배팅액을 넣어주세요.]
그렇게 사람들은 [B•D]의 배당률 산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용으로 바뀌게 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맹신으로 변해갔다.
평일 대낮에도, [B•D] 건물 앞에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여졌고, 사람들은 굳이 베팅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알고자 그 곳을 찾았다.
더불어 SNS에서는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B•D]의 결과를 통해 자랑하는, 일종의 릴레이 인증이 성행하였다.
정부와 지식인들은 "[B•D]의 결과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업 [B•D]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히며 형법적 처벌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 어떠한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은 금방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B•D]에 "◇◇◇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하고 입력했더니 배당률이 8% 나왔음.]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역시 ◇◇◇이 될 줄 알았다니까.", "아직까지 정권 교체는 좀 이르지.", "어차피 ◇◇◇이 되는거 아니었어?"하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정부에서 밝혔던 [B•D]에 대한 전면적 수사 계획은 아무도 눈치 못챌 만큼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갔고,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B•D]의 예측대로 ◇◇◇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사람들의 [B•D]에 대한 믿음은 어떠한 선을 넘어버린 듯 했다.
실제로 베팅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B•D]는 어딘가에서 자금을 모아들이는 것 마냥 그 크기를 점점 늘려갔고, 현재는 강남,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충청 지부를 만들 정도로 융성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B•D]를 찾아가 물었고, 베팅액이 '실현 불가능'을 시사하면 미련없이 꿈을 포기했다.
그것은 비단 일반 시민들 뿐 아니라 유명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인기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걸 알게된 인기 가수 M모양은 곧바로 열애중임을 언론에 밝혔고, 자신의 커리어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게된 스포츠스타 H군은 24세, 젊은 나이에 은퇴 선언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애를 발표했던 M모양의 바람기와 섹스스캔들 논란, 은퇴한 H군의 급격한 체중증가가 언론을 통해 전파되면서, 사람들은 [B•D]에 대한 신용을 더욱 굳건히 다져갔다.
[B•D]가 알려주는 대로 도전하고, 포기하는 삶에 사람들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에선 누구도 실망하지 않고 누구도 실패하지 않는 그런 현실이 찾아왔다.
그 어떤 사람도 비전없는 일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이룰 수 있는 일에만 정진하며 성공만을 쌓아가는 그런 세상을, [B•D]가 열어준 것이었다.
사람들은 [B•D]를 믿었고, [B•D]는 보여주었다. 그들의 [B•D]에 대한 믿음은, 그렇게 영원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