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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우리 엄마는 광주에 있었다.
게시물ID : bestofbest_899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할매검
추천 : 594
조회수 : 28510회
댓글수 : 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12/01 09:11:37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01 02:00:21

26년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괜히 제가 기쁜 것 같네요.

 

문득 우리 엄마 얘기가 생각나서 씁니다.

 

저는 이제 20대 후반 다가가는 나이이고, 우리 어머니는 1980년 고등학생이셨죠.

 

근처에 고등학교가 없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시던 우리 엄마

 

날짜는 정확히 모르지만 밖에 사이렌 같은 게 울리고 시끄러워서 불안에 떨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하니 옆집 아저씨가 학교 가지 말라고 했다더군요. 사람이 죽고 있다고...

 

그때부터 아무것도 없는 방안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 고함소리, 사이렌 소리들을 들으며

 

우리 엄마는 몇번이고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때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찾아오셨다더군요.

 

버스가 더이상 들어가지 않아 트럭을 얻어타기도 하고 결국엔 위험한 길을 돌아돌아 엄마가 하숙하던 집에 도달하셨습니다.

 

반찬 보따리를 가지고요.

 

둘은 서로 안고 서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전화도 안되고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엄마의 생사를 알아보러 오셨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모하실 수가 없죠..

 

그런데 외할머니는 정말 그때는 가만 있으실 수가 없으셨다고 하더군요..

 

죽은 듯 방에 박혀 계시던 두분이 공포에 지쳐갈때쯤

 

모르는 청년이 문을 두드리며 이제 나오셔도 된다고 했다더군요..

 

그때까지도 두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TV가 있는 집이 흔치 않았는지는 몰라도 채널에서는 언급도 안해주니 말이죠..

 

그리고 몇년 후 아버지를 만나 제가 태어나게 됩니다.

 

 

저희 엄마는 영웅도 무엇도 아니죠.

 

그냥 그 속에 있던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학교에 다시 나갈수 있을 때 더이상 나오지 않는, 아니 나올수 없던 친구의 빈자리를 보고 친구들과 울었다고 합니다.

 

그 작은 여고생 역시 당신들이 말하는 폭동의 일원이었을까요 ?....

 

아니면 민주화 항쟁속에서 용기를 내다, 아니면 너무도 평범하고 누려야할 일상속에 갑작스럽게

 

그 좋은 봄날에 떠나야만 했던  그저 평범한 국민이었을까요 ?

 

 

 

웃음거리로, 희화거리로 삼기 전에 생각해주세요

 

아무 저항도 못하고 군화발에 차여야만 했던 그 여학생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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