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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읽지 마시오.
게시물ID : panic_899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굶주린상상력
추천 : 32
조회수 : 3476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8/12 15: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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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마시오!

 

 

숨을 들이 마신다. 숨을 내쉰다. 들이 마신다. 내쉰다. 마신다. 내쉰다. 마신다. 내쉰다.

오늘은 꽃가루 때문인지 왼쪽 콧구멍이 조금 막힌다. 마신다. 내쉰다. 코만으로 숨쉬는 것이 조금 버겁다. 입으로 한 번 숨을 쉬자. 입으로 마신다. 내쉰다. 한번 더 입으로 마신다. 내쉰다.

 

숨을 쉬는 일에 자 지금부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겠다라고 의식하면서 호흡을 한다면 어떨까? 며칠 걸리지 않아 간단하게 정신병자 되기 딱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나는 호흡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숨을 쉬기 시작한지 이틀째다. 나는 지금 정신줄을 놓기 일보 직전이다.

 

읽지 마시오!’

유머글이 올라오는 사이트에 한 게시물 제목. 아주 조잡한 낚시글이라고 생각했다. 조회수도 형편없었다. 평소라면 나도 관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왜 하필이면 한가했을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바로 백스페이스를 누를 준비를 하면서 그 게시물을 열었다.

 

대 여섯 줄의 짧은 글. 호흡기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질식사에 대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 다는 당연한 소리. 질식은 굉장히 괴롭다는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 숨을 들이마시는 호흡 하나하나 바로 생명이라는 뻔한 내용이었다.

시큰둥하게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다른 게시물을 찾으며 나는 느끼기 시작했다. 내 들숨과 날숨을…….

 

공기를 마셔야 해. 안그러면 죽어. 그만 그만 너무 많이 마셨어! 이제 내뱉자. 후우~. 자 다시 천천히 들이마셔. 이놈의 비염 지겹네. 자꾸 입으로 숨 쉬게 되. 자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답답하다. 호흡전부를 느끼며 숨을 쉬고 있자니 오히려 더 숨이 막힌다. 숨이 막히니 숨 쉬는 데 더 신경이 쓰인다. 다른 생각을 하기위해, 이전처럼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기 위해 TV를 켜고, 영화를 틀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별 수작을 다부려 봤지만 소용이 없다.

 

마셔라. 내쉬어라. 마셔라. 내쉬어라.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사람은 항상 같은 속도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데도 숨 쉬는 주기는 계속 달라진다. 중간 중간 큰 호흡을 한번 씩 쉬어주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 큰 호흡을 너무 의식하다보니 큰 호흡의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이제는 일곱 번에 한번 큰 호흡을 쉬어주지 않으면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해질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다.

 

마셔. 내쉬어. 마셔. 내쉬어. 마셔. 내쉬어. 크게 마셔. 크게 내쉬어. 그래도 답답해. 다시 한번 크게 마셔. 크게 내쉬어.

 

10초에 여섯 번 정도가 가장 편하다.

스읍, 하아, 하나!

스읍, 하아, !

스읍, 하아, !

스읍, 하아, !

스읍, 하아, 다섯!

스읍, 하아, 여섯!

다시 처음부터.

 

그렇지만 고작 1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숨을 헐떡이게 된다. 목을 잡아 뜯고 싶다. 잠이 들면 편해질까 싶어 눈을 감고 누웠다. 하지만 내가 호흡하는 소리가, 마치 내 귀에서 돌개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들렸다. 음악을 켰다. 빠른 비트와 격렬한 연주가 동반되는 음악이었지만, 내 숨소리는 락그룹 보컬이 혼을 실은 목소리도 뚫고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스읍, 하아, 허억! , , , !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족히 1km는 달렸을 것이다. 이정도 뛰었다면 내 몸은 반사적으로 숨을 헐떡이며 숨을 쉬어야한다. 허파가 뒤집어 질 것처럼 심호흡했다.

 

두 번! 고작 두 번 반사적으로 호흡하고 나머지 호흡은 하나하나 조절해야 했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헐떡거리는 호흡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은 사람을 간단하게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대로 죽자.’

 

나는 목을 움켜쥐었다. 남은 평생 이렇게 불편한 호흡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자살은 차라리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내 손에 충분한 힘이 남아있었으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손아귀의 힘보다 생을 향한 욕망이 조금 더 강했다. 나는 여전히 불편한 호흡을 조절하며 차가운 골목길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아직도 숨이 가쁘다. 좀 더 적극적인 호흡조절이 필요 했다. 나는 숨을 내쉴 때 마다 가볍게 가슴을 두드리며 내 호흡을 의식하고 조절했다. 뜻밖에도 내 호흡에 주기적인 움직임을 더해주니 숨을 쉬기 훨씬 편해졌다.

 

지저분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단단히 기대고, 내 허파와 주먹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편해졌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잘하면 이대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이 4월 이라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음이 나의 안면을 방해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눈을 떴다. 입고 있는 투피스가 조금 낙낙한 느낌의 젊은 여자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스커트를 입고 내 곁을 지나가면서도,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큰 보폭으로 걸었다. 하얀색이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여자는 자신의 구령에 맞춰 발을 움직이며 걷고 있었다. 감이 왔다. 저 여자는 내 호흡처럼, 자신의 걸음걸이를 하나하나 의식하는 중일 것이다. 확인해 볼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오른발!”

 

소리에 맞춰서 다리를 움직이고 있던 여자는 내가 갑자기 질러댄 소리에, 왼발을 내밀어야 할 타이밍에 다시 오른발을 내밀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 전 나에게 힐끗 보여 줬던 하얀색을, 이번에는 아주 적나라하게 내보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 하얀색이 아니라 연한 하늘색이었네.

 

, 뭐야?”

 

여자는 황급히 뒤집어진 스커트를 추스르며 내 쪽을 노려보았다.

가관이었을 것이다. 땀투성이, 흙투성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거칠게 헐떡이는 숨소리, 호흡에 맞춰 가슴을 두드리는 주먹. 누가 봐도 어엿한 변태 정신병자였다. 하지만 여자는 내 헐떡거림과 손동작을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혐오감을 보이며 달아나는 대신, 몸을 일으켜 나에게 걸어왔다.

 

왼발, 오른발, 왼발…….”

 

잠시 나를 향해 걷던 여자는 가슴을 치는 내 손동작을 주의 깊게 보더니 보행의 방법을 바꾸었다. 다리가 움직이기 전에 양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손으로 툭치는 신호를 주는 것으로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도록 의식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말로 하는 것보다 감촉으로 신호를 주는 것이 훨씬 편하네요. 고마워요.”

 

신호를 주면서 의식하지 않으면 숨을 못 쉬는 남자와, 걷지 못하는 여자가 만났다. 짧고 이상한 로맨스가 펼쳐질까?

아니었다. 그녀는 몸을 획 돌려, 마지막으로 연한 하늘색의 끝자락을 살짝 보여주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감촉의 신호가 훨씬 편하네요.’

 

나는 여자의 충고를 주의 깊게 시도했다. 정말이다. 허파와 횡경막의 움직임은 대단히 의식해야 조절이 가능하지만, 손의 움직임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당신역시 자 지금부터 왼팔을 움직여야 겠다라고 의식하며 팔을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주의 깊게 손을 움직였다. 호흡이 안정되어 간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움직이는 손의 움직임에 호흡이 맞춰간다. 좋아. 차라리 이대로 잠드는 것이 어떨까?

내 몸 중 반드시 의식해야 움직이는 곳은 호흡기관뿐이다. 다른 신체기관을 적절히 사용하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런데, 만약에 손의 움직임도 의식하게 된다면!

 

숨이 막혔다. 눈을 떠보니 내 손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당연히 숨도 쉬지 않고 있다.

 

마셔. 내쉬어. 마셔. 내쉬어. 마셔. 내쉬어. 크게 마셔. 크게 내쉬어!

 

죽을 뻔했어!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설마?

오른 팔을 들어 올리자고 주의 깊게 의식했다. 오른팔이 올라간다. 그런데 잠시 의식이 오른팔로 옮겨간 사이 다시 숨이 멎었다.

 

마셔. 내쉬어. 마셔. 내쉬어.

 

죽을 뻔 했어! 그러나 이어지는 두 번째 자살 충동. 나는 차라리 호흡을 의식하는 것을 중단했다. 하지만 1분도 버티기 힘든 극심한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다시 호흡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목을 매거나 자동차에 뛰어드는 것도 무리였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 팔다리에 의식이 넘어가는 순간 다시 숨이 막혀 쓰러진다. 숨만 쉬는 상태로 얼마나 이 길바닥에 널부러저 있었을까? 어쩌면 좋을까?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호흡을 의식하는 가운데 심장이 박동하는 느낌을 천천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출처 http://www.jooc.kr/contest/note.detail.html?nn=10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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