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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도서관 안 문댄서 -4-
게시물ID : pony_899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3
조회수 : 34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3/14 17:58:50



도서관 안 문댄서 -4-


시크릿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눈은 나무에 난 잔가지처럼 붉게 충혈되고 눈 밑으로는 검은 다크서클이 몇겹이나 짙게 드리웠다. 요 1주일 사이에 몇 년은 폭삭 늙은 것 같았다. 시크릿은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문댄서를 둘이서 만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 때의 일이 꿈이 아닌지 확인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꿈이 아니란 사실을 밝히면 희열에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그는 일주일 내내 친구인 실크 딕을 만나서 자랑하기 바빴다. 처음엔 실크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해 자신의 친구가 미쳤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나는 날 마다 그 때 일을 흥분해하며 설명해주어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그가 문댄서에게 스터디를 제안하는 장면을 엄청난 무용담처럼 거창하게 늘어놓으면 실크는 거의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곤 했었다.


시크릿은 문댄서가 보고 싶어하는 그 책을 일주일 동안 약 100번은 더 복습했다. 그녀에게 완벽하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밤을 새서라도 공부를 했고 이젠 정말 외워서 처음부터 다시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사실 책에 대해서는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집에서 간간히 읽던 책이라 대부분이 아는 내용들 이었다. 솔직히 이 책이 왜 그렇게 희귀한 책이고 문댄서가 열광을 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겐 다른 책과 다를거 없는 고리타분한 고대 마법 서적 일 뿐이었다. 그래도 자신과 문댄서를 이어준 책이니만큼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할 수 있어. 시크릿. 잘 할 수 있어. 넌 잘할거야."


시크릿이 거울을 향해 강박적으로 자신감을 주입시켰다. 몰골로 봐선 흑마법에 빠져 폐마가 된 유니콘이 거울을 향해 중얼거리는 것 처럼 보였다.


"야! 너 또 혼자 중얼거리지!"


캔디 크러쉬가 화장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외쳤다.


"빨리 나와. 나 씻을거야."


"괜찮을거야. 모든게 다 잘될거야. 난 할 수 있어."


시크릿은 주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그의 눈동자는 불안에 흔들려갔다.


"야! 빨리 나오라고, 백수 새끼야!"


시크릿은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뜨며 부숴질듯 울리는 문을 쳐다봤다.


"어? 캔디?"


"나 친구랑 약속있어서 씻어야 한다고! 빨리 나와!"


캔디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나 잘할 수 있겠지? 그치?"


시크릿의 동문서답에 캔디는 목을 끓는 소리를 내었다.


"알 게 뭐야!"


캔디가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여전히 화장실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저기, 캔디."


시크릿이 문 너머로 조용히 말했다.


"또 왜"


캔디가 대답했다. 그녀는 문 두드리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재촉한다고 해서 순순히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요즘 인기 있는 수컷은 어떤 스타일이야?"


"응, 넌 아냐."


캔디가 곧바로 대답했다.


시크릿은 괜히 물었다고 생각했다. 하나뿐인 여동생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오빠를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오빠에게 소리지르거나 심부름 시키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크릿은 더 이상 자기 암시를 그만뒀다. 과도한 자신감은 오히려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알았어, 나갈게."


"진작에 그럴 것이지."


시크릿이 문을 열고 나가자 캔디는 놀라 기겁을 했다. 그녀는 시크릿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뭐, 뭐, 뭐야 그건?!"


캔디가 한 쪽 발굽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쪽으로는 시크릿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크릿은 얼굴에는 새하얀 분칠에 눈과 입 주위로 빨간 염색을 했고 코에는 커다란 방울을 달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머리에는 농구공만한 크기의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고 옷은 지나치게 헐렁한 초록색 물방울 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포니가 자신의 오빠가 아닌 광대 한 마리 였으니 캔디가 기절 할 만 했다. 캔디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게 아직도 자기 오빠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 했다.


"뭐가, 이거?"


시크릿이 자신의 머리를 자랑스럽게 만지며 말했다.


"오, 오빠맞지?"


캔디가 물었다. 목소리로 봐선 영락없는 시크릿이었다.


"대체 그 꼴은 뭐야?"


"뭐긴, 광대지."


시크릿이 순진하게 대답했다. 캔디는 벌떡 일어서더니 시크릿의 얼굴에 대고 그를 째려봤다.


"누가 광대인거 몰라서 그래? 왜 광대 분장을 한거냐고. 간 떨어질 뻔 했잖아!"


시크릿은 우물쭈물 망설이다 실실 웃었다.


"사실 오늘 내가 짝사랑했던 포니와 만나는 날이거든."


시크릿은 동생에게 말해도 될까 고민했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베길수가 없었다.


"짝사랑?"


캔드가 물었다. 어쩐지 요새 행동하는게 이상하고 인기있는 스타일이니 뭐니 헛소리를 한 게 뭔가 있어보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눈앞의 광대 복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게 대체 광대랑 무슨 상관인데?"


캔디의 물음에 시크릿은 화장실 세면대에 놓아둔 책을 가져와 책을 펼쳐 그녀에게 보여줬다. 캔디는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포니를 사로잡을 수 있는 비결. 첫 만남 때는 무조건 광대분장을 하고 가라. 상대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99% 성공이다. 그리고 만나는 장소에서 깜짝 파티를 준비해라. 상대는 놀라 기뻐하며 바로 당신에게 안길것이다."


캔디는 자기가 읽고도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엉터리 책을 누가 쓴건데?"


캔디는 책을 들어 표지를 살펴봤다. 표지에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주황색 포니와 보라색 머리의 하얀 유니콘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둘 사이에 하트가 그려진 표지가 있었다.


"연애의 비결. 핑키 파이 지음."


"정말 좋은 책이야. 연애를 한번도 안해본 포니도 이것만 있으면 바로 좋아하는 상대를 빠지게 할 수 있대."


캔디는 책을 방 구석으로 집어던지고는 시크릿의 가발을 휙 낚아채 벗겨냈다.


"이딴거 필요없으니 당장 옷 벗고 화장 지워."


"뭐? 하, 하지만..."


"지워. 당장."


캔디의 말에 시크릿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름 책에 나온대로 따라한다고 3시간에 걸쳐서 분장을 한 것 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지우기 시작했다. 화장을 지우고 다시 거울을 보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수컷 유니콘 한 마리가 거울에 보였다.


"정말 괜찮을까."


시크릿이 자신감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캔디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며 거울 앞에 섰다.


"아까보단 훨씬 나아."


캔디가 팔꿈치를 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네가 매력이 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시크릿은 캔디의 말에 괜히 따른건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캔디는 시크릿을 마법으로 들어올리더니 화장실 밖으로 밀어냈다.


"이제 꺼져."


캔디는 화장실 문을 쾅 닫고 잠궜다. 시크릿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사서가 아닌 손님으로 도서관에 들어서는 건 느낌이 색달랐다. 그가 매일 아침 손님들을 위해 세심하게 신경쓰며 준비했던 부분이 손님으로썬 당연하게 생각할 만큼 사소하게 느껴졌다. 시크릿은 자신이 일했던 구역말고도 다른 구역들도 한번 씩 둘러보았다. 일했을 때는 몰랐는데 의외로 자신이 상당히 큰 도서관에서 일했던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항상 그의 구역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 다른 구역이 있다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듯 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도서관 복도, 운동장 넓이의 공간에는 책장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퀘스트리아의 중심 도시인 캔틀롯에서 최대규모로 뽑히는 중앙 도서관이니 충분히 그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시크릿은 문득 자신이 일했던 구역으로 들어갔다. 이미 새 새서를 구했는지 머리를 말아 올린 하늘색 유니콘이 허둥지둥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사서가 아닌 손님으로 여기에 오는건 2년 만이었다. 2년 전 처음으로 문댄서를 발견한 곳이기도 했다. 시크릿은 그 날도 부모님의 잔소리에 집에서 쫓기듯 나와 정처없이 방황하다 우연히 이 도서관에 들어와 이 구역에서 문댄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시크릿은 여기서 그녀를 만난게 운명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댄서의 모습은 시크릿의 기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시크릿은 그런 괴리감에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하고 그저 지켜만 봤다. 다음 날도 시크릿은 홀리듯 도서관을 찾아갔고 문댄서는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때 마침 그 구역에 사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되었고 시크릿은 당장 달려가 지원했다. 그 때부터 시크릿은 문댄서를 지켜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2년간의 미련한 기다림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이다. 문댄서와 가까워질 기회를 얻었으니 2년의 시간이 전혀 낭비가 된 건 아니었다.


시크릿이 스터디룸으로 갈수록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가슴속에서 고조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게 잘 풀리게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다. 어쩌면 문댄서도 자신에게 호감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문댄서가 책 뿐만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제안에 수락한 것 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댄서도 그 처럼 일주일 내내 긴장하고 기대하고 그에게 잘 보이려 매일 아침 거울에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막상 스터디룸에 도착해보니 시크릿은 그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얘기인지 알게되었다. 스터디룸 유니문 안에 있는 문댄서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는 그 문댄서였다. 자신처럼 잠을 못자 눈이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고 눈동자는 평소와 다름 없이 맑았다. 그녀는 시크릿을 기다리고 있다거나 초조해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있는 커다란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은 머리와 모습으로 스터디 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를 가꾼 티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마치 어제 이곳에서 자고 일어나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시크릿은 괜한 기대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목적이 그가 아닌 책에 있다는 증거가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문댄서가 저절로 그를 좋아하게 될 거라 바라는 것은 큰 요행이었다. 그의 여동생 말처럼 그는 매력적인 포니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먼저 나서야 하는건 시크릿 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셨네요."


시크릿이 인사를 건내자 문댄서는 읽고있던 책을 탁 덮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그녀는 눈짓으로 인사를 받아주고는 곧바로 시크릿이 가져온 책에 시선을 두었다. 마치 책이 진짜 만나려는 손님인 것 같았다. 시크릿은 맞은 편 소파에 앉고 책을 책상위에 올려두었다.


"시작하기 전에 얘기 하나 해도 될까요?"


시크릿은 어색함을 풀고자 잡담부터 시작했다. 문댄서는 안경을 고쳐쓰고 시크릿을 쳐다봤다.


"무슨 얘기요?"


"제가 옛날에 들은 웃긴 얘긴데요."


시크릿이 자연스럽게 서두를 열었다. 이 방법은 그가 읽던 '연애의 비결'에서 나온 좋은 첫인상을 얻는 방법 중 하나였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유머로 푸는 방법이었다. 비록 그녀와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한 유니콘이 엄청 화가 나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발을 쿵 쿵 구르고 있었죠. 그런데 지나가던 어스 포니가 그 유니콘을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문댄서는 조금의 관심도 두지 않고 말했다.


"'너 뿔이 났구나!' 이해했어요? 유니콘이라 뿔이 난건데 그게 화난다는 표현이랑 같은 뜻으로 한 유머인데..."


"바로 시작하면 안돼요?"


문댄서가 딱 잘라 말했다.


"예... 그러죠."


시크릿이 힘없이 대답했다. 역시 광대 분장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그는 속으로 동생을 원망했다.


문댄서는 책을 들어올리고는 표지를 꼼꼼히 살펴봤다. 책의 냄새, 책의 관리 상태, 인쇄의 질, 제본 방식, 종이의 질감. 마치 음식을 먹기전에 그 향부터 음미하는 것 같았다. 문댄서는 표지를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매력적인 책은 이미 표지에서 부터 그 매력이 흐르는게 느껴졌다.


"저번에 저한테 혼자 보면 무슨 얘긴지 잘 모를거라고 했잖아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그 만큼 어렵다는 뜻이에요?"


문댄서가 물었다. 책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진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아직은 그녀의 인식 범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직접 보시면 알거에요."


문댄서는 사양하지 않고 책을 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한 번 훑어보고 다른 곳을 넘기더니 눈썹을 찡그리며 한참동안 그곳을 읽고는 또 다른 페이지를 넘겨 읽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때요?"


시크릿은 문댄서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물었다. 그녀는 책을 덮고 시크릿을 보았다.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어요.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아요."


문댄서는 담담하게 말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었다. 모르는데 모른채 넘어가거나 아는척 하는게 죄였다.


"옛날 책이라 조금 생소한 용어가 많은 편이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 책에는 바탕이 되는 마법 이론이 있어요. 그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면 책을 이해할 수 없죠."


"바탕이 되는 마법 이론이요?"


문댄서가 물었다.


"네. 스타스월이 발표한 것들 중 알려지지 않은 이론이죠."


시크릿은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집에서 일주일 내내 시뮬레이션을 하며 연습을 해 아직까지는 수월했다.


"그런건 어떻게 아세요?"


"그런 이론은 마법학과 학생인 문댄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얘기였다.


"저희 집에 그 이론을 발표할 당시의 논문이 있거든요."


"대체... 혹시 무슨 수집가세요?"


문댄서가 감탄과 질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아니고 부모님이 그 쪽 관련 일을 하셔서 어렸을 때 부터 그런 책이 조금 많았어요."


"그래요?"


문댄서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는지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사서 주제에 자기보다 더 잘나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은 인생을 공부에 쏟아부었는데도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에 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시 추스렸다. 그렇다고 죄 없는 사서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자신이 모르는 걸 알려줄 고마운 존재이다.


"그럼 알려주세요."


문댄서가 말하자 시크릿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는 공책을 꺼내고 책상위에 넓게 펼쳐놨다.


"우선 스타스월이 발표한 이론부터 설명할게요. 원래 책 한권 분량이지만 요약만 할게요. 이론은 굉장히 간단해요. 유니콘 마법의 원천에 대한 연구인데 스타스월은 오랜 연구 끝에 유니콘의 마법력을 수치화 할 수 있는 공식을 세웠죠."


시크릿은 설명을 시작하면서 공책에 수업을 하듯 중요 키워드를 적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돕기 위한 도표도 그리고 공식들을 유도하기 위한 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시크릿은 자신이 아는 내용이라 급하게 설명해 상대가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까 속도를 맞추며 명확하게 말했다. 일주일간의 연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문댄서는 집중해서 듣다 잠시 발굽을 들어 말했다.


"혹시 질문하실거라도 있나요?"


시크릿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설명이 미흡했나 불안감이 먼저 들었다. 문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시크릿이 앉고 있는 소파의 옆 자리로 왔다. 그녀는  시크릿의 옆에 바싹 붙더니 책상을 봤다.


"됐어요. 계속 하세요."


시크릿은 계속 할 수 없었다. 그는 시간 정지 마법이라도 걸린듯 굳어버렸다.


문댄서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지고 자신의 숨결이 그녀에게 닿을 거리였다. 허벅지와 어깨는 살짝 맞닿고 있었다. 숨이 가빠지는걸 상대가 눈치라도 챌까봐 그는 최대한 천천히 쉼호흡을 했다. 그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댄서는 시크릿이 아무 행동도 없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뭐하세요?"


문댄서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시크릿은 안경 너머의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몸의 피로도 겹쳐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감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 아프세요?"


문댄서가 시크릿의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말했다.


"아, 아뇨. 계속할게요."


시크릿이 간신히 대답했다.


그는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조금 전 보다 긴장을 해 중간중간 말을 버벅댔지만 그래도 크게 막히는 부분없이 설명을 마쳤다. 문댄서는 요약을 한 공책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더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 굉장해요. 대체 왜 이런 이론이 알려지지 않은거죠? 이건 유니콘 마법 연구에 거의 혁신에 가까운 이론인데! 천년은 앞서간 발견이라고요!"


그녀는 어린 아이 처럼 순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시크릿이 일주일동안 연습한 강의가 성공한것 같았다. 시크릿은 따라웃고 싶었지만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몸이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스타스월의 대부분의 업적이 그렇듯 이 이론으로 한 유니콘이 마법을 남용할 위험이 있따고 학계에서는 발표를 금했어요. 선천적으로 강력한 마법을 가진 유니콘이 위험한 마법을 배우고 이퀘스트리아를 위협하면... 굉장히 골치 아파지니까요."


"세상에. 학교에서 배운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문댄서가 학교에서 배운 스타스월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평소 그녀는 시험 문제 단골로 나온 그 늙은 할아버지가 지나치게 고평가 되는건 아닌가 의심을 했던 적도 있었다. 전공책에는 항상 '알려지지 않는 업적'이라는 설명으로 두리뭉술 넘어가기만 했다. 학교 도서관과 이곳 도서관을 전부 뒤져봤지만 성과는 별반 다르지 않아 답답했었다. 지금 그 업적 중 하나를 그녀의 눈앞에서 직접 보니 스타스월이 역대 최고의 유니콘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일단은 여기까지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에요. 조금 쉬었다 할까요?"


"아뇨! 지금 당장 시작해요."


문댄서가 곧바로 대답했다. 지체할 시간 같은건 없었다. 그녀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배움 앞에서 휴식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시크릿도 그녀의 열의에 의욕이 생겨났다.


시크릿은 공책을 넘겨 새 페이지를 폈다. 그는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시크릿은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가장 완벽한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연구했다. 설명은 역시 강의 형식으로 책에 나오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을 간단히 설명해 핵심적인 내용을 나열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씩 파고 들었다.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 적인 요소를 알려주고 그 외 것들은 저절로 흡수하게 만드는 것이 시크릿의 방식이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식이 떨어지고 그 만큼 흡수가 늦어지게 된다. 또한 중간마다 질문을 받고 이해한 내용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실 일반적인 유니콘이라면 아무리 쉬운 설명이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힘들었겠지만 시크릿은 문댄서의 학습능력을 믿었다. 


결과는 시크릿의 예상에 정확히 맞았다. 문댄서는 놀라울 정도로 흡수가 빨랐다. 집중력도 떨어지지 않고 쉬는 시간 없이 스터디는 몇시간 동안 지속됐다. 괜히 캔틀롯 명문대의 수석 학생이 아니었다.


시크릿은 예상보다 빠른 진행속도에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대한 오래 끌어야 그녀와의 만남이 지속될텐데 이대로라면 순식간에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시크릿은 흘끗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우선 점심이라도 먹을까요?"


시크릿이 펜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말했다.


"점심이요?"


문댄서는 놀라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믿지 못한다는 듯 눈이 커졌다. 체감상 10분 밖에 지나지 않은것 같았는데 3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점심같은 거 안먹어도 되는데..."


그녀도 왠만하면 끼니는 챙기자는 주의였지만 지금 만큼은 밥먹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래도 이제까지 계속했으면 잠깐만 쉬면 안될까요?"


"좋아요. 조금 쉬죠."


시크릿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서도 강의를 하느라 휴식이 필요할 지도 몰랐다.


문댄서는 이제껏 진행된 과정을 간단히 복습할겸 책 앞부분을 펴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보다 조금 놀랐는데요. 솔직히 책에 대해 알려준다고 할 때 조금 의심했었는데 이 정도로 잘 알려주실줄은 몰랐어요."


문댄서가 말했다. 시크릿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진짜에요. 제 학교 교수님보다 훨씬 잘 가르쳐요. 혹시 대학은 나오셨나요?"


"아뇨, 안나왔어요."


"이 정도 실력이면 우리 대학에도 들어올 수 있었을텐데. 진학할 생각은 없었나요?"


시크릿은 쓴웃음을 지었다.


"있었죠."


"그런데 왜?"


"저는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실기를 합격할 수 없었어요. 저는 할 줄 아는게 없거든요."


"할 줄 아는게 왜 없어요?"


"예?"


문댄서가 뜻밖에 자신의 말을 무정하자 시크릿은 당황해 되물었다.


"할 줄 아는거 있잖아요. 책을 정리하는 마법."


"아... ..."


의외였다. 문댄서가 자신이 책을 정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줄 은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잘 정리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마법이 대학 입학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마법학과 대학들은 공중 부양 말고도 학교에서 시험으로 내는 마법들을 해낼 수 있어야 했다.


"그거야 뭐, 누구나 다 하는 공중부양 이잖아요."


"아뇨."


문댄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이제껏 책을 그렇게 잘 정리할 줄 아는 사서를 본 적이 없어요. 그 많은 책들을 한꺼번에 정리하는데 마법에 재능이 없다니 말도 안돼요. 대학 입학을 못하는것과 마법을 못하는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시크릿이 물었다.


"네."


문댄서가 대답했다.


"그런 말 한번도 들어본 적 없었는데."


누구나 다 할 줄 아는 공중부양을 보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공중부양 말고 다른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항상 수치스러웠다. 항상 부모와 동생 사이에서 질책과 비난을 받고 자신의 재능에 자괴감만 있었을 뿐이었다. 한번도 그는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요? 의외네요."


문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네 다리를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럼 점심먹으러 가죠. 도시락 싸오셨어요?"


"네?"


"도시락이요. 점심 먹자면서요. 같이 먹어야죠."


"아, 예. 싸왔어요."


"잘됐네요. 저도에요. 식당으로 가죠."


문댄서의 적극성에 시크릿은 끌려가듯 그녀 뒤를 따라갔다. 식당은 오늘도 많은 포니들이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빈자리에 마주 앉아 서로의 도시락 통을 열었다. 문댄서는 건초 샌드위치였다. 문댄서는 굳이 식사의 영양이나 맛에 큰 신경을 쓰진 않았다.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그녀의 메뉴는 항상 간단한 샌드위치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시크릿의 도시락에선 도넛 3개가 나왔다. 아마 어제 가게에서 사고 남은걸 넣은 거겠지 시크릿은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도넛을 입에 물자 살짝 딱딱하고 건조한 빵의 식감이 느껴졌다. 문댄서의 메뉴가 간편하다 해도 시크릿을 따라올 수 없었다. 간편을 넘어 건성이 느껴지는 메뉴였다.


시크릿은 초조함에 도넛을 씹으면서도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문댄서와 둘만의 식사는 좋았지만 대화가 단절된 상태라면 의미가 없었다. 최대한 식사 시간을 길게 잡아 책의 진도를 빨리 빼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 또, 단순히 스터디를 하는 포니의 존재를 넘어 친밀감을 형성할 필요도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스터디가 다 끝나고 문댄서와 더 이상 볼 일이 없게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시크릿은 대화의 화제를 어디에 둘지 고민했다. 주제를 정한다고 끝난게 아니다. 그 주제로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갈지도 문제였다. 잘못하면 일주일 전에 식당에서 말을 걸었을 때 꼴이 날 수 있다. 그 때 일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다.


"일주일 전에 있잖아요."


의외로 먼저 말을 건 것은 문댄서였다. 시크릿은 도넛을 씹지도 않고 삼켜 서둘러 대답했다.


"예, 예."


"그 때 저한테 왜 말건거에요?"


시크릿의 온몸에 털이 솟구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는 자심의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일주일 전에 여기서 밥 먹고 있다 저한테 말 걸었잖아요."


시크릿의 얼굴에 피가 몰려 붉게 물들였다. 벌레라도 기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눈을 한 곳에 두지 못 하고 이리저리 헤맸다. 문댄서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샌드위치를 씹으며 시크릿을 보았다.


"저, 저는 잘모르겠는데요? 그거 저 아닌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다른 포니를 착각하고 그러시는거 같은데 저는 그 때 도서관에 있어서 책을 그... 정리하고 밖에서 점심을 먹다 해서 여기는 절대 안오고 그랬는데 뭔가 오해를 하신거 같아요. 아니면 착각을 했던가, 오해를 했던가."


시크릿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웅얼거리며 말했다. 그는 자꾸 얼굴이 가려운 감각 때문에 발굽으로 쉴 새 없이 얼굴을 문질렀다.


"아뇨, 분명 그쪽이었어요. 그 때도 지금처럼 좀 이상하게 행동했잖아요."


"그랬, 그랬나요? 저는 기억이 잘....."


시크릿은 식은땀을 닦아내며 부자연스럽게 소리내어 웃었다. 문댄서와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런 화제의 이야기는 제발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일주일 전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평정심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나왔다.


"진짜 기억 안나세요?'


문댄서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시크릿은 도저히 아니라고 잡아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고백할 수도 없었다. 그 때 작업 걸려고 말을 걸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헛소리가 나왔다고도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 어....."


"알겠어요. 말 안하셔도 돼요."


시크릿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댄서는 시크릿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저렇게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포니가 또 있을까. 사서가 그 때 그 포니인 것은 틀림없었다. 왜 말을 걸었는지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말하기 곤란한듯 해 문댄서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시크릿은 식욕이 뚝 떨어졌는지 도넛을 깨작깨작 먹기만 했다. 너무 당황해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서 일 말이에요."


이번에도 먼저 화제를 꺼낸 것은 문댄서였다. 시크릿은 그녀가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해줄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까지의 문댄서와는 전혀 다른 포니를 보는듯 했다. 항상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포니를 멀리하고 대화를 차단하는 평소의 문댄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기억속에 같이 발표 준비를 했던 그 문댄서가 떠올랐다. 어쩌면 문댄서도 이제까지 외로웠던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왜 관뒀어요? 거의 2년동안 하지 않았어요?"


시크릿은 놀라 눈이 커졌다.


"절 알고 있었나요?"


문댄서는 무슨 바보같은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시크릿을 봤다.


"물론이죠. 2년동안 사서가 같았는데 모를리가 있나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포니여서 똑같이 생긴 포니가 돌아가면서 서나 싶었다니까요."


"하하.."


시크릿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2년동안 눈도장은 확실히 찍은 듯 했다.


"그리고 저 은근 기분 나빴어요."


문댄서가 말하자 시크릿은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댄서를 기분나쁘게 할 만한 일들이 있었나. 생각나는 거라곤 일주일 전에 말을 건 일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2년동안 제대로 말 한번 못했었는데.


"어떤...?"


"다른 포니들이 책을 빌리거나 할 땐 잘 웃어주고 인사하는데 꼭 저한테만 무뚝뚝한거 같아서요."


시크릿은 2년간 자신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문댄서와 접점이 많다는 걸 새로 알게 되었다.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줬긴 했지만.


"아, 그, 그거요?"


"어쩔 때는 일부러 저러나 싶었다니까요."


"죄송해요. 바빠서 정신없을 땓 있고 해서."


'그리고 당신 앞에서만 서면 긴장이 돼요.' 


시크릿은 진짜 이유를 속안으로 삼켰다.


"괜찮아요. 그렇게 신경 쓴 것도 아니에요."


문댄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왜 관둔거에요?"


문댄서가 물었다. 시크릿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가족이 대학에 가라고 압박을 넣어서 관뒀어요."


"그럼 앞으로 대학에 가실건가요?"


시크릿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뇨. 저는 대학에 못갈거에요. 부모님은 그걸 모르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어쩌면 뒤늦게 마법을 깨우 칠 수도 있고."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 때는 아닌것 같아요. 확실치도 않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그 때만 기다리며 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진 않아요."


"그럼 사서 일을 계속 하고 싶은 건가요?"


시크릿은 생각에 잠겼다. 사서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온전히 문댄서 때문이었다. 그는 한번도 사서가 되고 싶은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2녇농안 일에 적응해 나가면서 자신의 재능에 맞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전업으로 삼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글쎄요."


시크릿이 대답을 흐렸다.


"저는 계속 사서 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 정말요?"


의외의 대답에 시크릿이 물었다.


네. 책 정리도 잘하고 자리도 깔끔하게 치워주고. 일 처리도 빨리 해주고 시간도 정확히 지켜주고. 제가 보기엔 천직인거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추천해주는 책을 잘 읽었어요."


사서가 하는 일 중 또 하나는 그 구역의 추천 도서를 정해주는 일이었다. 새로 들어온 책, 혹은 숨어 있는 책 중 사서가 추천하여 가판대에 진열하는 일이다. 시크릿은 매달 새로 10권씩 목록을 갱신하고 그 때 마다 문댄서는 그 책들을 한권도 빠짐없이 빌려갔다.


"어떻게 매달 제 취향의 책만 딱 올라온다니까요. 꼭 저를 위해 추천해준 것 같았어요."


문댄서가 농담조로 말했다.


사실 추천도서도 시크릿이 일부러 문댄서가 좋아할 만한 책으로 도배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 없던 문대서는 신기하다며 감탄했고 시크릿은 문댄서가 책을 빌려갈 때마다 뒤에서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문댄서는 불현듯 생각이 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잠깐. 사서를 다시 하면 절 못가르쳐 주잖아요."


"뭐, 그렇겠죠."


"그럼 안되겠다. 저 가르쳐 줄때까진 다시 하면 안돼요!"


문댄서가 식탁을 치며 말했다.


시크릿은 큰소리로 소리내어 웃었다. 문댄서의 사랑스런 고집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문댄서를 만나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는 것 같았다.


"알겠어요. 안그럴게요."


시크릿이 웃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말했다.


"어? 그 말 진심이죠?"


"진심이에요. 게다가 원한다면 그 책 말고도 다른 책도 얼마든지 가르쳐 드릴게요."


문댄서가 씨익 웃었다.


"약속 했어요!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에요."


시크릿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댄서는 발굽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시크릿은 굳이 새로운 화제를 찾거나 대화를 이끌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서로의 관심사는 같았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크릿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따. 굳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마음 한편에 의식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으니 그녀를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마치 오랜 친구와 만나는 것 처럼 편안히 느껴졌다.


둘은 어느 새 대화를 하다보니 점심 시간이 지나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크릿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갈까요?"


문댄서가 자리를 일어나며 식당을 나갔다.


"그래야 겠네요."


시크릿도 따라 일어섰다. 그들은 넓은 복도를 나란히 걸어갔다.


"정말 고마워요."


문댄서가 복도를 걸어가다 느닷없이 말했다.


"뭐가요?"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줘서요. 이제까지 배우지 못한것도 가르쳐 주고 다시 한번 포니를 믿어볼까 하는 희망을 줘서."


문댄서가 시크릿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시크릿은 문댄서의 말의 앞부분은 이해했지만 뒷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건 그녀가 자신을 보고 웃고있다는 것이다.


"저야말로 고맙죠."


시크릿은 따라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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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편 안에 끝날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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