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점심시간... 점심시간 때만 빨라지는 달리기 실력으로 밥을 맛있게 후루룩짭짭 먹고는 교실로 왔는데 다들 축구하러 나가고 없네...
그냥 멍하니 있을까 하는데 한 녀석이 들어온다... 넌 축구하러 안 갔냐 싶은데 갑자기 가방에서 뭘 주섬주섬 꺼낸다... 이때까지는 뭔지 몰랐는데 이 녀석... 피같이 보이는 붉은 액체와 교복 두 벌을 꺼낸다...
어디서 가져온 거지... 그건 둘째치고 일단 뭔가 싶어 계속 쳐다보는데 "너도 해볼래?"
일단 흥미가 생겨서 뭔지 보고 결정하겠노라 했더니 교복 한 벌에 피로 보이는 액체를 막 뿌린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포스터물감에 녹말 조금 넣고 물 섞은 거였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피 같이 보였다.
일단 계속 보고만 있자니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애들을 속여보자는데...
녀석의 설명은 이랬다. 교복에 피칠을 하고서 교실 바닥에 엎드려 있되 그냥 엎드려 있으면 뭔가 허전하니까 (어디서 또 구해왔는지) 식칼손잡이를 등에 붙이고 있자. 다른 한 사람은 역시 교복에 피칠을 하고서 교실 바닥에 엎드려 있되 역시 그냥 엎드리면 허전하니까 (이건 용납가능) 바닥에 피를 좀 많이 뿌려두자.
이거였는데... 어린 생각에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케이, 해보자 해서 진짜 했다...
준비 시간은 고작 15분. 머슴아 두 명이 해서 그런지 빨리 끝났다. 어쨌든 작전 시작.
몇 분쯤 누워있었을까... 왁자지껄 소리가 들려왔다... 반 애들 들어오는 소리겠거니 하며 엎드려 있는데 드르륵 소리와 함께,
"으아악!!!!!!" "야, 씨X 이거 뭐야!!!" "피, 피야?" "얘네 죽은 거야?"
하더니 우르르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근데 몇 놈은 용기있게 들어왔나 보다... 나는 제안한 놈보다 뒷문 쪽에 가까이 있었는데 누가 날 자꾸 찌른다... 진짜 죽었나 확인하는 거겠지...
어쨌든 그렇게 누워 있는데... 좀 지났을까? 갑자기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면서 쿵쾅쿵쾅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이윽고 들려오는 여자애들 비명소리... "꺄아악!!" "이게 뭐야!!" "얘네 누구야!!!" 뭐 대충 이랬던 것 같은데...
일단 어린 마음에 통쾌했다. 아, 이런 것에 속다니... 어린 녀석들... 이따가 저 녀석이랑 동시에 일어나면 더 놀라겠지?
이런 생각으로 계속 누워있다가... 다시 또 우르르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계속 몇 놈은 날 건드리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어느새 내 뒤의 놈도 다른 놈들의 검사를 받는지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일어나야겠다 싶은 즈음에, 어랍쇼... 뭔가 익숙한 목소리...
"야, 이 새X들 뭐야!!!" "야, 반장 나와!" "119, 119에 연락해!!!" "아니지, 경찰에 연락해야지..."
어랍쇼... 이거 선생님들 목소리잖아... 갑자기 상황이 이상해졌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슬슬 여기서 멈춰야 더 이상 일이 덜 커지겠다 싶어 일어나려는데, 내 위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이거... 밖에 새나가면... 이미지 안 좋아지겠죠?" "우리 학교 오려는 학생, 별로 없어지겠죠?" "이거, 그냥 쉬쉬하고 묻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봐요... 산 사람 묻지 마요... 어쨌든 안되겠다 싶어 진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벌떡 일어났더니 아니나다를까,
"우와악!!!" "꺄아아악!!!" "아아아아앍!!!"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선생님이고 자시고 간에 전부 다 깜놀... 그리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에... 나랑 친구는 정말 X맞듯이 맞았다.
1차로 선생님들한테 맞고, 2차로 반 친구들한테 맞고, 3차로 그냥 다른 반에서 놀러온 애들한테 맞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