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참사에 관하여.
환풍구 위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객들이 추락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참담함을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고,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아니 같은 인류로서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 같이 끔찍한 일이 일어난 직후에도 일부 넷 상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사안의 본질을 잊을 수 있을 법한 환경들이 조성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한 바를 다른 이들에게도 설명해주고 싶다. 그보다 먼저, 개인적인 바람으로 이런 끔찍한 사고를 접했을 때 누구의 잘잘못이냐를 먼저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일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발 방지 등을 위하여 사고의 책임과 문제점들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은 있다.
- 누구의 책임인가?
일부 사람들은 사회적 안전망을 탓하고, 또 다른 일부 사람들은 개인의 잘못을 탓한다. 그리고 몇몇 분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못마땅해 하고, 국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과잉대응을 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한다. 펜스를 쳐 놓지 않은 잘못, 그리고 환풍구에 올라간 사람들의 잘못. 무엇이 우선인가?
이제부터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 보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받는 경우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언제인가? (보험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보험은 보상이 아닌 거래다.)
히말라야에서 산을 타다가 실족사 한 경우를 살펴보자. 정부 또는 히말라야가 사고에 대한 보상을 해 주는가? 아니다.
길을 가다 맨홀 뚜껑을 밟았는데 빠져서 사망했다면 정부 혹은 시공사가 보상을 해 주는가? 그렇다.
공사 중인 건물 옆 인도를 지나가다 낙석에 맞아 사망했다면 시공사 혹은 정부가 보상해 주는가? 그렇다.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정부 혹은 기업적 차원에서 보상이 시행되는가? 그렇다.
환풍구에 올라갔다 낙사했다면 시공사 혹은 정부가 보상해 주는 것이 맞는가?
과연 어떨 때 보상을 해주는 것 같은가?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 해준다. 책임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아까의 예로 돌아가, 맨홀 뚜껑을 밟았는데 무너져 내려 사망한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들 중에 길을 걸으면서 맨홀 뚜껑 한 번 안 밟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맨홀 뚜껑은 밟으라고 만든 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밟을 수도 있기에, 또한 무너지면 위험하기에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맨홀 뚜껑이 만약 무너진다면, 애초에 맨홀 뚜껑을 밟은 사람의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맨홀 공사를 시공한 측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환풍구 역시 밟으라고 만든 시설은 아니다. 하지만 밟을 수도 있기에, 또한 무너지면 위험하기에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도, 맨홀의 예와 환풍구 사건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첫째는, 맨홀 뚜껑은 아무도 위험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였고 때문에 대다수가 의도성 없이 밟기 때문이고, 환풍구는 위험을 충분히 인지 할 수 있고 올라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맨홀 뚜껑은 일부러 밟은 것이 아니고, 환풍구에는 일부러 올라갔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 이유는 군중심리를 간과한 것이다. 우리가 맨홀 뚜껑이 아마도 안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이 있듯이, (안전불감증이지만) 다수가 공연을 보러 모여 있고, 환풍구에 올라가 있다면 그 환풍구가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을 갖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의도성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맨홀 뚜껑도 무의식적으로 밟는 것이고 무너지게 해야겠다는 의도가 없는 것처럼, 환풍구에 올라갈 때에도 무너질 것을 알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무너지게 해야겠다는 의도를 갖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의 인지, 위험에 대한 공감대, 의도성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상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더더욱 잘못 되었다.
세상에는 위험에 대한 인지력이 낮은 사람들도 있고, 높은 사람들도 있고, 노인도 있고 아동도 있고 장애인도 있다. 즉 일관된 기준은 공정한 보상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안전망을 더더욱 견고하게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그리고 발생했다면 철저히 피드백하여 더욱 견고하게 말이다.
환풍구에 올라간 개인을 탓하기 전에 말이다.
펜스를 치지 않아 안전위험이 있는 환풍구, 규격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부실 할대로 부실했던 세월호, 낙후된 시설, 부실한 의료체계 등으로 매년 발생하는 우리의 군 장병 사망자들.
이 시스템들을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에 개인의 잘못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 지는 방향이고 복지 선진국이 되는 길이 아닌가 한다.
판교 참사가 났을 때, “하여튼 한국 사람들 올라가지 말라는 곳은 꼭 올라가고, 자업자득이다.” 혹은 “지 잘못이네, 이건 뭐라 할 말이 없다.” 등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던 사람들. 이제 좀 부끄러워 지지 않는가? 손석희가 판교 참사에 대해 표했던 담론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