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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도서관 안 문댄서 -5-
게시물ID : pony_900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4
조회수 : 35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3/21 09:37:35


도서관 안 문댄서 -5-



문댄서는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사서와 스터디를 하는 날이었다. 스터디는 매주 두 번, 한번 도 빠짐없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그녀가 배운 책도 세 권이 넘어갔다. 사서는 매번 새롭고 신기한 책을 가져와 대학수업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항상 이 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스터디 전 날 밤이 되면 내일 있을 스터디에 설레여 잠들었고 스터디가 끝나는 날이면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사서가 가지고 있는 희귀한 책들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랐다. 이제는 책 뿐 아니라 그 사서도 만나고 싶었다. 사서와 대화를 하다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시간이 훌훌 지나가 버렸다. 오랜만에 웃고 떠들어 입술과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상하게도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잘 통하고 대화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다 꿰차고 마치 오래전 부터 자신을 알고 지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끔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집에 와서 문득 생각이 들 때는 피식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녀는 더 이상 포니를 믿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2년 전 친구였던 한 포니에게 처참히 버림을 받은 이후로 친구라는 존재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공부라고 생각해 세상과 문을 닫고 공부만의 세계에 자신을 가둬두었다. 그 후 그녀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공부만이 그녀를 배신하지 않을거라며 포니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다가오는 포니들을 무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도피의 수단으로 써온 것 같았다. 2년동안 도서관을 전념하며 공부를 했을 때보다 사서와 만나 대화하는 지금이 훨씬 즐거웠다. 


문댄서는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지저분해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꼴보기 싫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던간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빗질이라도 하고 가야하나. 문댄서는 서랍을 열어 빗을 꺼냈다. 빗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무려 2년동안 빗질을 하지 않고 방치했던 것이다.


문댄서는 머리끈을 풀고 앞머리를 내렸다. 앞머리가 코가 닿을 정도로 길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좀 잘라야 하나..."


이발은 시간 낭비라 생각해 대충 묶어다니기만 했다. 미용실 갈 시간에 책 한권이라도 더 읽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조금 심각했다. 동굴에 사는 포니가 따로 없었다. 문댄서는 거울을 보며 빗질을 했다. 거울을 자꾸 보다보니 머리뿐 아니라 이곳 저곳이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눈썹도 지저분했고 옷과 털도 꾀죄죄했고 냄새도 그닥 좋지 않았다. 그동안 무신경했던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모습으로 어떻게 포니들 앞에 나갔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손 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별 수 없었다. 문댄서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캔틀롯 중앙 도서관에 도착한 문댄서는 익숙한듯 10번 스터디 룸을 찾아갔다. 스터디 룸 유리벽 안에는 검은 머리의 유니콘 한 마리가 보였다. 그녀는 멀리서 그 모습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문댄서가 가까히 다가가자 사서는 혼자서 자신의 앞을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혼잣말로 중얼 거리며 말하는 것은 아닌 듯 했고 가상의 상대를 향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스터디 룸은 방음 처리가 되어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서의 표정으로 보아 꽤 진중한 얘기인듯 했다. 스터디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하는 건가? 문댄서는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문댄서가 문을 열며 인사를 건냈다.


사서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다 못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소파에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아무리 놀랐다고 해도 인사 한마디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쉽지 않았다. 마치 문댄서가 문을 열 때를 신호로 일부러 연기를 한 것 같았다. 사서의 반응에 문댄서는 어쩔 줄 몰랐다. 사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박았던 머리를 문지르고 고통에 신음했다.


"괘, 괜찮으세요?"


문댄서가 사서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는 주춤거리더니 소파에 앉았다.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서의 눈망울엔 눈물이 맺혀 촉촉했다.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문댄서는 괜히 자기 때문인거 같아 미안했다.


"아, 아녜요. 그 쪽 때문에 놀란 거 아니에요. 진짜에요."


사서는 미안해하는 문댄서를 위해 웃으며 말했지만 문댄서는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았다. 이 사서는 거짓말에 정말 서툴렀다.


"뭐하고 있었어요?"


"네?"


문댄서가 말하자 그는 놀라서 물었다.


"저 오기 전에 뭘 하고 있었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유리 너머로 봤어요. 뭔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으시던데."


문댄서가 추궁하자 사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랬나요, 제가?"


문댄서는 사서의 시치미에 빈정이 상했다. 원래라면 별 일 아니라고 넘어갈 일이었을텐데 문댄서는 오기가 생겼다.


"네.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혼잣말 했잖아요. 뭔가 연습하는 것 처럼."


문댄서가 사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지만 사서는 눈을 피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말해봐요."


"뭐가요?"


문댄서는 문득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책상에는 공책에 무언가를 지웠다 적혀있는 글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사서는 문댄서의 시선을 따라 책상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경악했다. 그는 급하게 공책을 덮고 가방을 넣었다. 뭐가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사서는 다시 아무것도 아니란 듯 시선을 피했다. 너무 노골적인 태도에 문댄서는 화가 났다.


"그건 또 뭔데요?"


"......"


사서는 이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입술을 꾹 다문채 시선은 천장으로 고정했다. 사서가 저 상태로 나온다면 더 이상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의미였다.


사서는 이따금 무언가를 숨기고는 한다. 숨긴다는 사실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 문댄서가 파고들려 하면 사서는 아무 일 없다고 감추고는 서투른 거짓말을 한다. 무댄서가 아무리 들춰보려해도 사서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도대체가 이 사서는 무슨 비밀이 이렇게 많은건지 문댄서는 답답했다. 차라리 아예 확실하게 감춘다면 모를까 어설프게 드러내 괜히 궁금하게 만들기만 했다. 이것만 빼면 참 좋을텐데, 문댄서가 한숨을 쉬었다.


"됐어요, 그럼."


문댄서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서는 그녀의 태도에 어쩔 줄 몰라했다.


"죄송해요."


사서가 그의 비밀을 문댄서에게 말해줄 의무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가 미안해 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사서의 비밀을 알고싶은 문댄서의 고집때문이었다. 자신의 호기심으로 상대를 몰아붙히는 행위는 옳지 못했다. 문댄서는 이내 기분을 풀었다.


"아뇨, 제가 더 미안해요."


문댄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서도 이내 안심한 듯 웃었다. 무엇을 감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참 순진한 포니였다.


오전 스터디가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당연한 듯 식당에 서로 마주 앉아 수다를 떨었다. 주제는 대부분 공부에 관한 것이었지만 때론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사서는 동생이 자신을 업신 여긴다고 한탄하고 문댄서도 자기도 동생과 싸운 적이 많다고 공감했다.


문댄서는 문득 식당에 걸린 달력을 봤다.


"그러고보니 이제 방학도 끝나가네요. 슬슬 새학기를 준비해야 할텐데."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사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죠... 새 학기네요."


침울해하는 사서를 보며 문댄서가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였다.


"왜요?"


"새 학기가 되면..."


사서가 한숨을 쉬며 문댄서를 흘끗 쳐다봤다. 문댄서는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저랑 못만나게 될까봐요?"


사서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댄서는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마요. 학교에 다녀도 스터디는 꼭 할테니."


"정말요?!"


"그럼요."


"고마워요!"


사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을 하던 건 문댄서였다. 학교를 다시 다니면 스터디를 해야 하는 시간도 조정해야 했다. 사서쪽에서 만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의 반응으로 보아 문댄서가 시간을 바꿔도 사서는 스터디를 해 줄 생각인 듯 했다. 오히려 감사해야할 건 문댄서 쪽이었다.


"다행이네요. 성적 유지해야 한다고 저랑 더 이상 못만나고 할 줄 알았는데."


"이건 성적과는 별개로 마법을 공부하는 유니콘이라면 꼭 배워야 하는 내용이라고요. 그리고 그쪽이랑 만나는것도 재밌고."


사서는 얼굴이 빨개져 말이 없더니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네, 뭐. 그... 저도요."


그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반응이 시원찮으니 말을 꺼낸 문댄서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보다 대단하시네요. 캔틀롯 대학교에서 항상 수석을 차지하는 것도 힘들텐데."


시금치 샌드위치를 먹으려던 문댄서가 멈칫했다. 그녀는 위화감을 느끼며 사서를 봤다.


"제가 그걸 말한 적 있나요?"


"네? 뭘요?"


문댄서의 갑작스런 질문에 사서가 되물었다.


"제가 다니는 대학을 말한 적도 없고 성적도 말한 적이 없는데요."


사서는 당황한 게 눈에 보이더니 횡설수설했다.


"말한 적 있지 않나요?"


"아뇨, 전혀."


문댄서는 아무리 기억을 살려봐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대학교 강의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은 있어도 자신의 대학을 말한 적이 없다. 성적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을 말하고 다닐만한 포니가 아니었다. 막연하게 예상한 것도 아니가 이미 알고있는 듯 확신을 갖고 얘기했었다.


가끔 보면 사서는 문댄서를 전부터 알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년동안 도서관을 전전해 자신의 책 취향정도야 알아낼 수 있어도 그 밖에 사실은 유추할 만한 단서가 없었다. 자신의 착각이라고 넘어가곤 했지만 그런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이상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치, 친구!"


사서는 갑자기 생각난 듯 소리쳤다.


"친구요?"


문댄서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네! 친구가 사실 당신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거든요. 그래서 당신 얘길 해줬어요. 실크 딕이라고 아세요?"


"아..."


너무 뻔한 변명이 아닌가 문댄서가 의심했었지만 친구의 이름을 듣고 이내 수긍했다. 실크 딕이라면 그녀도 알고있는 포니였다. 그녀와 같은 과에 다니는 동기이자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창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몇 번 얘기를 해본 적 있긴 하지만 대학에 올라오고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2년전 부터 대학에 있는 누구와도 얘기해 본적이 없었다. 실크딕이 사서의 친구라면 아마 그녀의 대학 생활에 대해도 들었을 것이다. 문댄서는 어쩐지 부끄러웠다. 그렇게 유쾌한 대학 생활이 아니라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그 얘기가 사서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뻔했다. 남의 눈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던 문댄서였지만 사서에게만은 그런 모습만은 보이고 싶진 않았다. 어쩐지 자신의 숨겨진 이면이 들키게 된 기분이었다.


"별로 좋은 얘긴 안했겠네요."


"하하..."


사서는 대답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그 대답이 문댄서에겐 더 괴로웠다.


"실크와는 어떻게 아시죠?"


사서는 대답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같은 초등학교에 나왔거든요."


문댄서는 놀라 눈이 커졌다.


"혹시 과학 실험실?"


문댄서가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네, 맞아요."


사서가 대답했다.


"세상에! 저도 과학 실험실 나왔어요!"


문댄서가 소리쳤다. 하지만 사서는 딱히 놀란 기색이 없었다.


문댄서는 눈 앞의 사서를 천천히 뜯어봤다. 얘길 듣고보니 어딘가 낯익은 거 같기도 했다. 아니면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의 자신도 그렇게 활동적인 포니는 아니었기에 자신의 동창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진 않았다. 사서는 문댄서를 알고있는건가? 하지만 알고있었다면 진작에 얘기했을것이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모르는건가? 문댄서는 확신할 순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쪽 이름도 모르고 있네요."


문댄서가 문득 생각이 나 말했다.


이제야 얘기하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제껏 문댄서는 사서를 '당신' 혹은 '그쪽', '저기'등으로 부르기만 했다. 굳이 이름을 알 필요가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름도 모른 채로 지내기도 뭔가 이상했다. 왜 이제까지 이름을 묻지 않았는지 문댄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포니가 만나면 이름을 밝히는건 기본중에 기본이었다. 2년동안 포니들과 얘기한 적이 없어서 포니와 관계를 맺는 법도 까먹은 듯 했다.


"아. 이름이요."


사서도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말했다. 


"제 이름은 알고 계시죠?"


문댄서가 물었다.


"네. 문댄서."


사서는 이미 문댄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2년동안 책을 빌리면서 한 두번쯤은 도서목록에 있는 그녀의 이름을 봤을것이다. 문제는 사서의 이름조차 궁금해하지 않던 문댄서였다.


 문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에게 관심없는 포니가 된 것 같아 왠지 미안했다. 사서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먼저 이름을 말했다.


"저는 시크릿 이에요. 시크릿 크러쉬."


문댄서가 이름을 듣자 멈칫했다. 그녀는 그대로 얼어붙더니 시크릿의 모습을 살폈다.


"시크릿 이라고요?"


문댄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시크릿은 주눅이 들었다.


"네..."


문댄서는 대답을 듣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몸 뿐만 아니라 그녀의 머리도 정지된 듯 생각이 멈춰버렸다. 시크릿 크러쉬라는 사서의 이름만 머릿속에서 무수히 멤돌았다.


"괜찮으세요?"


시크릿이 문댄서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답이 없자 시크릿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 자, 잠깐만요!"


시크릿을 향해 문댄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당황해하며 허공에 발굽을 휘저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안경이 미끄러졌다. 시크릿은 그녀가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해하는 모습을 처음봤다. 그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그녀는 어쩔줄 몰라하며 시크릿을 피했다.


시크릿은 상황을 이해 할 수 없었따. 문댄서가 당황한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건지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오늘은 그만..."


문댄서가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썼다. 항상 한결같던 그녀의 목소리는 감추려 해도 떨린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 가볼게요."


"네?"


시크릿이 놀라 물었다.


"하지만 아직 오후에 할 게..."


문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식탁에 자신의 도시락 통을 그대로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시크릿을 보지 않고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시크릿은 쫓아갈 생각도 하지 못한채 복도로 달려가는 문댄서의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시크릿은 그날 밤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았다. 자신이 했던 말에 문제가 있었는지 자신이 했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어쩌면 오늘뿐 아니라 저번 일에 문제가 있지 않았는지 저번 만남에 있던 일도 하나하나 기억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문댄서가 오기 전에 자신이 혼자 고백 연습을 했던것을 들었나 생각이 들었다. 못들었다고 생각해 안심했었는데 사실 시크릿이 했던 대사를 듣거나 그가 공책에 적어놓은 문장들을 전부 봤을 수도 있었다. 자신에게 고백할거란 사실이 기분나빠 시크릿과의 연을 진작에 끊어버리려 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시크릿은 머리를 벽에 처박았다. 애초부터 고백따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른 자신이 오만했다. 고백이라니 자기 주제에 너무 많은걸 바란거 아니냐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댄서가 그런 반응을 보인 타이밍이 문제였다. 연을 끊으려면 그 자리에서 끊었지 굳이 점심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분명한건 점심 때 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문댄서의 기분도 좋아보였고 자신과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문댄서의 심기를 건들일만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했던 얘기라고는 자신이 같은 초등학교에 나왔다는 것과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일 뿐이었다.


시크릿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혹시 학교에 있을 때 자신의 안 좋은 소문을 들은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소문이 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워낙 사건 사고없이 조용하게 지낸지라 문댄서가 그를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발표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거 시크릿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 그녀가 자신을 알 만한 경우는 없었다.


그는 성과도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문댄서는 더 이상 그와 만나지 않으려 할 수도 있었다. 그녀와 단 둘이 지내는 이 시간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수도 있었다. 이유를 따져봤자 해결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 스터디는 이틀 뒤였다. 문댄서가 그날 나오지 않는다면 아마 모든게 끝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음 날 시크릿은 기분 전환겸 밖으로 나갔다. 요즘 스터디를 준비하느라고 머리 빠지게 공부를 해서 쉬질 못했었다. 저번 스터디에 할 분량이 아직 남아 이번엔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겐 거의 두달만에 얻은 휴식인 셈이었다. 사서일을 하며 2년동안 항상 정해진 일과를 단순하게 따라가던 시간에 적응되다 보니 뻥 뚫린 이 시간이 낯설기만 했다. 시크릿은 아직 문댄서 일로 기분이 착잡했지만 애써 잊으려 노력했다. 지금 고민해봤자 달라지는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바심 갖지 말고 내일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는 캔틀롯 시내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실크 딕을 부를까 했지만 누군가를 만날 기분은 아니었다.


"시크릿 크러쉬!"


그 때 누군가가 시크릿을 불렀다. 한껏 들뜬 목소리에 그가 뒤를 돌아보자 한 포니가 활짝 웃으며 그의 앞에 서 있었다. 하늘색과 하얀색이 섞인 갈기에 밝은 목소리를 가진 유니콘이었다.


"누구?"


시크릿이 묻자 포니는 그의 발굽을 덥썩 잡았다.


"맞구나, 역시!"


포니는 소리내어 웃으며 마주잡은 그의 발굽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포니가 워낙 세차게 흔들어 시크릿은 힙없이 포니의 발굽에 잡혀 몸이 이리저리 딸려나갔다.


"나야, 미뉴엣. 기억하지? 진짜 오랜만이다!"


미뉴엘이라는 포니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풀지 않았다. 그녀는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듯 시크릿 주위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 그래."


시크릿이 마지못해 아는 척을 했다.


"오랜만이네."


시크릿이 미뉴엣과는 상반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크릿은 미뉴엣을 보자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초등학교 동창 중 또렷하게 기억하는 몇 안되는 포니 중 하나였다. 밝게 웃는 미소며, 들뜬 목소리,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행동이 그 시절과 똑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별명인 '개뉴엣'이 떠올랐다. 그때와 성격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듯 했다. 달라진 점이라곤 몸집이 커졌다는 것과 이빨에 꼈던 교정기를 뺐다는 점 뿐이었다.


"거의 10년만이지? 요즘 뭐하고 지냈어?"


미뉴엣은 호기심 어린 강아지 같은 눈으로 시크릿에게 물었다.


"그냥... 공부하고 있어."


"정말?! 넌 진짜 공부를 좋아하는구나! 10년전에도 맨날 공부만 했는데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


"그렇지, 뭐."


"나는 치과 의사를 하고 있어. 저기 발굽 거리에 있는 모래시계치과 알지? 거기서 일하고 있어."


그녀는 소리내어 웃더니 시내 거리 저편을 가리켰다. 시크릿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미뉴엣의 근황을 제쳐두고 눈치를 살폈다. 어쩐지 대화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이었지만 반가운 마음보단 어색함이 먼저 앞섰다. 10년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 할만한게 형식적인 대화빼곤 없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할 기분도 아니었다. 시크릿은 적당히 빠질 타이밍을 보았다.


"어디가고 있던 중이야?"


"그냥. 오늘 쉴까하고 돌아다니고 있어."


시크릿의 말에 미뉴엣은 눈을 빛냈다.


"그래? 잘됐네! 그럼 여기서 이러지 말고 도넛가게라도 가서 얘기하자!"


시크릿은 아차 싶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미뉴엣이라는 포니를 잠시 잊고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고 상대와 헤어질만한 포니가 아니었다. 별명이 괜히 개뉴엣이 아니었다. 그녀는 붙힘성이 좋아 어떤 상대라도 어색함 없이 막연하게 지낼 수 있었다.


"어, 글쎄..."


시크릿이 망설였다. 이미 자기 입으로 자유의 몸임을 선언한 마당에 마땅히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그로써는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다. 딱히 누군가와 대화할 마음도 없었고 그게 10년만에 만난 동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는 빠져나갈 구실을 찾으러 분주히 눈알을 굴렸다.


"괜찮아! 가자!"


하지만 미뉴엣은 틈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시크릿을 막무가내로 끌고 시내로 걸어갔다. 그는 얼떨결에 포니조의 도넛가게에서 미뉴엣과 마주앉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된 이상 체념했다. 개뉴엣은 한번 포니를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다.


"여기 기억해? 옛날에 학기 마지막 날에 도넛 파티 했잖아."


미뉴엣은 한참 추억을 회상하며 도넛을 입에 물었다. 설탕 시럽이 잔뜩 뿌려진 따끈따끈한 도넛을 한입 물더니 행복한 미소가 그녀의 입안에 번졌다.


"과학실험실 때 기억해? 나랑 레몬 하트랑 트윙클 샤인이랑 맨날 뛰어다니다가 물건 부숴먹고 선생팀한테 혼났잖아.


시크릿은 피식 웃었다.


"그때 비커 사건이 유명하지."


"맞아, 맞아! 기억하는구나."


레몬하트가 비커를 머리에 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미뉴엣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웃었다.


"레몬하트가 그 얘길 하는걸 제일 싫어한다니까. 아하하하."


미뉴엣은 발굽까지 치면서 폭소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쉬지않고 학창시절 때 있었던 얘기를 쏟아냈다. 시크릿은 귀가 쉴틈이 없어 흘러들어오는 미뉴엣의 얘기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미뉴엣은 밝고 친근한 포니인 것은 맞지만 시크릿과는 잘 맞지않았다. 그는 딱히 수다스런 포니도 아니어서 그녀와 얘기를 하다보면 대화량에 진이 빠질 지경이다. 미뉴엣은 그런 시크릿은 신경쓰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그리고 우리 친구중에 무니도 있었잖아. 문댄서라고 너도 잘 알지?"


시크릿은 애써 잊고있던 고민이 다시 떠올라 가슴 한켠이 욱신거렸다.


"알지."


시크릿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눈 앞의 유니콘은 자신의 고민을 알기나 할까. 그는 뜨거운 커피를 목에 들이 부었다.


"그때 너 무니 좋아했잖아."


시크릿은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뻔 했다.


"뭐?"


시크릿은 잘못들었다고 확신했다. 환청이든 뭐든 그녀가 했던 말이 자신이 들었던 말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뉴엣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너 문댄서 좋아했잖아."


"그, 그걸 어떻게 알아?"


시크릿은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뛰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발굽이 쉴새없이 떨려 쥐고 있던 컵의 커피가 요동을 쳤다.


미뉴엣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는 시크릿의 반응이 재밌다는듯 깔깔 웃었다.


"왜 모르겠어? 그렇게 티나게 짝사랑 하는 것도 힘들걸. 우리 여자애들은 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미뉴엣은 도넛을 우물우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애들끼리 네가 언제 고백을 할까 내기도 했다니까. 근데 결국 졸업할때 까지 못했지만."


그는 이제까지 누구못지않게 조용히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동창중에 자신의 이름을 아는 포니가 있을까 할 정도였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남을 통해 듣는다는 것은 색다르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시크릿은 한참동안이나 자신의 학창시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단편적인 기억밖에 나지 않았지만 미뉴엣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그의 기억에 서랍에는 명백히 없었다.


시크릿은 입안에 침이 바짝 말랐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문댄서도..."


"응?"


"문댄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심장이 요동쳤다. 그의 몸에 힘이 빠져 버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시크릿은 입을 다문채 미뉴엣의 답을 기다렸다.


"응."


미뉴엣이 대답했다.


"우리가 얘기해줬으니 알고 있었어."


시크릿은 힘이 빠지더니 축 늘어졌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 애도 수줍음이 좀 많아서 너한테 얘기는 못했는데 은근히 고백하길 기다렸던 것 같더라고."


시크릿은 미뉴엣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도넛가게의 창밖을 바라봤다. 흐리멍텅했던 그의 초점이 또렷해졌다. 가로막고있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다. 그는 더 이상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다. 질서없이 쌓여진 책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 기분이었다.


"미뉴엣."


시크릿이 조용히 말했다. 미뉴엣은 한창 다른 얘기를 하다 말을 멈추었다.


"응?"


"고마워."


시크릿은 그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도넛가게를 나갔다.


"어? 뭐가?"


미뉴엣은 어리둥절한 채 밖으로 나가는 시크릿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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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결말이 다가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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