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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9
게시물ID : panic_90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1
조회수 : 61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8/17 21: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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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그소토스 00.jpg



 그는 헤령을 처음 봤을 때 그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여동생이 있었다. 헤령과 비슷한 시절에 병치레가 잦았다. 아주 닮은 것은 아니었지만 선량한 눈매가 여동생의 것과 비슷했다. 얼굴에 가득한 피칠, 특히 입가 주변의 핏덩이는 끔찍한 사고의 현장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의 것으로만 보였다. 그 피가 방금 젊은 남자 의사의 목을 물어뜯어서 생겨난 것이란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목덜미가 줄기째 찢어져 그 의사가 긴급 수혈을 받고 있단 주변의 이야기도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어쨌든 지금 그녀는 감금병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은폐되어 있다. 909호 병실, 사람들은 그녀를 909호의 괴물이라 부른다. 문주위로 하얀 커튼을 쳐서 병실 안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햇살 하나 들어올 창문조차 없는 완벽한 감금실이었다. 그런 곳에서 지금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틀림없이 들리고 있었다. 억제대를 차고 있는 괴물이 살고 있는 방안에서 누군가 손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웠지만 밀려오는 호기심을 감당할 수도 없었다. 지금껏 909호에 갇힌 여자가 정말 괴물인지 직접 확인해본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난 보름동안 단 한 번도 그녀를 본적이 없었다. 감금병동에 갇힌 환자들 모두가 치유불능의 광증을 앓고 있다는 점에선 똑같은 처지였지만, 유독 그녀에게만 어떤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하루에 네 번 허용되는 화장실 출입 시간과 사흘에 한번 있는 샤워 시간조차 자신이 아닌 특별 관리인이 동행하는 상태에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감독관들중에서 그녀의 상태를 직접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괴물이란 단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럼 대체 909호에는 누가 있는거지?’ 어두컴컴한 복도를 갤럭시폰 플레쉬에 비춰가면서 909호로 향하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의문들이었다.

 그가 커튼을 열어젖혀 문 상단의 책가방만한 유리창살 너머로 불빛을 비추며 그곳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는 말 그대로 입이 쩍 벌어지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가 세상에서 만나본 적 없는 아리따운 소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침대위에 앉아 있었다. 다리는 양 옆으로 벌어져 있었고, 왼 손은 다리 사이의 그 부분에, 오른손은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 그 시선은 이제껏 어느 여자도 그에게 보여준 적 없었던 달콤하고 음탕한 유혹의 눈길이었다. 그 어두운 방안에서 욕정 가득한 음탕함이 관능적인 몸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고 있었다.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는 사실또한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날 보러 와. 아저씨. 그동안 나를 보고 싶었잖아? 어서와.’

 그녀의 음성이 실제로 들린 것인지, 아님 그렇게 들리는 듯한 착각인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단지 그 희고 축축한 얼굴을 어루만졌고, 하와를 유혹했던 붉은 사과 같은 입술에 입을 포개었을(하지만 실제의 그 입술은 납덩이 같은 칙칙한 잿빛이었을) 뿐이었다. 세상 누구와도 나눠본적 없는 격렬하고 달콤한 키스를 주고 받았다. 그의 손은 팽팽하고 육각적인 몸 이곳저곳을 더듬고 있었다. 마침내 다리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갔을 때, 그 움푹한 곳의 부드러운 축축함에 모든 감각을 내맡기고 있을 때였다. 

 무엇인가 그의 목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뱀의 독니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었다. 혀와 혀를 간지럽히고 있을 때도, 그리고 손으로 몸을 더듬는 동안에도 듬성듬성 끈적끈적하고 흐물흐물한 살갗을 만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불쾌감도 없었고 오히려 흥분을 고조시키기만 했다. 

 이제 그의 몸을 유린하는 것은 죽음의 차디찬 손아귀였다. 그 거칠고 쭈글한 검은 손이 안과 밖에서 그의 목을 조르는 듯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 전달되어져 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음보다 더한 통증이었다. 상어의 이빨 같은 것에 물린 사람이라면 느껴보았음직한 그런 아픔, 그 차갑고 냉습한 고통의 실체를 보기 위해 머리를 내렸을 때 그가 본 것은 이미 잘려나간 자신의 손목이었다. 

 그는 쓰려져서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뒹굴었다. 속수무책의 공포감이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했다. 잘려나간 손목에서 솟구치는 피를 본 순간에는 고통조차 차츰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희뿌연 어둠 너머에서 그가 눈으로 본 것은, 그녀의 다리 사이 음부, 그곳에 자라난 눈이었다. 그 눈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감시하는 것처럼 악의를 내뿜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자신이 지옥의 눈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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