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민노당 사태는 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면서도 섬뜩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당정치의 기본을 무너뜨리려는 집권층의 시도가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정당의 당원구조는 매우 기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당제도는 쉽게 설명해서 캠페인 형태의 정당입니다. 즉, 평소에는 당원자격을 유지하지 않다가, 혹은 당원 자격을 유지하더라도 당비를 내지 않다가, 선거철이 되면 선거 캠페인에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참여해서 선거를 치르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정당이 활성화되어 유지되지를 않습니다. 정당을 운영할 수입의 원천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에서 나오는데, 당비를 정기적으로 내는 당원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는 굳이 당비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만, 정치헌금을 많이 이끌어오는 정치인이 대우를 받고, 또 정치인 개인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시스템이라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식은 좀 다릅니다. 진성당원제라 해서, 평소에도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정당을 운영하면서 선거철이 되면 당원들이 직접 출마할 사람들을 선출해서 내보내는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는 정치인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고, 개인의 영향력 보다는 당원들의 의지에 충실한 정치인이 많아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대중정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독당이나 자유당 등의 초창기 정당들은 대부분 명망가 몇명이 운영을 하고 대중은 그저 선거때나 따라다니는 식이었습니다. 사실상 최초의 대중정당은 박정희에 의해 건설이 됩니다.
다수의 당원을 보유한 최초의 정당이 바로 박정희의 공화당인데, 문제는 그 공화당은 유령당원들로 구성된 가짜 대중정당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동원에 의해 당원이 되고, 동원된 당원들은 돈준 사람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조직에 가까운 정당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문화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와 오늘의 한나라당까지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한나라당은 엄청난 숫자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당비를 직접 내는 당원들은 거의 없습니다. 당의 운영은 몇몇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 내는 특별당비에 의해 운영되고, 따라서 돈을 끌어오지 못하면서 자기 돈도 없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구조가 됩니다. 심지어 음성적으로 수행되는 공천헌금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돈을 들여 지구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자신의 지역구에서 출마하는 지자체 의원들로부터 공천을 미끼로 불법적인 헌금이라도 받지 못한다면 국회의원 활동 자체를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민노당이 최초로 도입한 제도가 진성당원제도입니다. 한달에 만원정도의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모이고, 그 당비로 당을 운영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서 한달에 만원이라는 작다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당비를 직접 내면서 정당활동을 하는 일반인들이 몇퍼센트나 될 거라고 보십니까? 거의 없습니다. 민노당은 그 척박한 환경에서 수만명의 진성당원을 모아냅니다. 물론 그 중의 상당수가 대기업 노조원들의 노조회비에서 자동공제되는 식으로 납부가 되기에, 민노당이 노조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2002년 당시 창당되었던 개혁정당은 진성당원제를 한차원 더 발전을 시킵니다. 외부 단체의 도움이 전혀 없이 인터넷만으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들을 의미있는 숫자로 모아냅니다. 이 제도는 개혁당이 열린우리당으로 합쳐지면서(물론 합당을 반대하는 많은 당원들이 있었고 그 부분은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정말로 아쉬운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로 변화되게 됩니다.
사실 열린우리당은 그 당비내는 당원인 기간당원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존의 정당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던 정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당에 당원들이 있고 그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지구당이 운영된다면, 그 지역구의 국회의원이라 하더라도 당원들의 뜻을 무시할 수 없고, 당원들의 견제를 통해 부정을 저지를 수가 없으며, 불법적인 정치헌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맑은 정치가 가능해진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는 실패하고 맙니다. 실질적으로 아직도 제왕적인 권력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이 기간당원제를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들어 이 기간당원제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결국 민주당과 다시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이 기간당원제는 다시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진성당원제는 오늘날, 민노당과 진보신당에만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진성당원제가 기존의 정당, 특히나 한나라당에게는 무척이나 거슬리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당원들이 겨우 한달에 만원씩 내는 주제에 지역구 의원에게 콩놔라 팥놔라 하는 것은 그들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제도가 활성화되고 한나라당도 그런 제도를 도입하라는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면 의원나리들 좋은 세상은 끝나는 겁니다.
그러니 진성당원제 따위는 꿈에 불과하며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얘기입니다.
민노당의 CMS 당비 계좌가 바로 그 진성당원들이 납부하는 당비 계좌입니다. 하필 바보같이 이런 계좌를 신고누락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그 계좌를 써온게 오래되었고, 실제로 당 운영비를 집행하는 계좌들은 모두 신고가 되었으며, CMS 계좌는 단지 돈을 받아 신고계좌로 옮겨주는 역할이었으므로 빠트린 것이 이해도 가긴 합니다. 선관위도 그래서 지적을 못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렇게 커져서 이제 민노당의 불법 정치자금 운영 의혹으로 발전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 다, 정치인들은 몽땅 다 그 놈이 그 놈들이다, 민노당도 마찬가지다, 돈 앞에 장사 없다, 민노 도로보데쓰, 뭐 이런 말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노당이 침몰하게 될 경우, 진성당원제는 맥이 끊기게 될 것입니다.
정치는 정당이 하는 것이고 정당은 당원들이 꾸려가는 것입니다. 당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정당은 정당이 아니고 그냥 몇몇 정치가들의 동호회일 뿐입니다. 즉, 이명박을 뽑아대는 이 따위 정치가 이 땅위에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는 뜻이며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정당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당을 개혁하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제아무리 투표에 참여하자고 맘을 단단히 먹고 벼르고 별러서 투표장에 가 봐도 찍을만한 후보 하나도 없는, 정답없는 투표용지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정당개혁은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 정당개혁의 시작에 진성당원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명박 집권 3년만에 민주주의도 후퇴하고 이 사회 모두가 개판이 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진성당원제도까지 침몰해 버린다면 우리는 진짜 삼십년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 문제많은 정당 민노당이 오늘 검경과 언론에게 말도 안되게 당하고 있는 이 상황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거기에, 이런 사건을 통해, 정치는 몽땅 드럽다~ 라는 패배적인 양비론, 정치혐오주의가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합니다.
최소한 어떤 놈이 더 드러운 놈인지, 어떤 놈이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눈을 부릅뜨고 확인을 해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