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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인원이 사망한 선박사고
게시물ID : panic_901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트색슈가♥
추천 : 21
조회수 : 2888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6/08/22 21:12:46
1987년 12월 20일.

필리핀에서 '도냐 파즈'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도냐 파즈호는 1963년 일본의 '오노미치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배로, 당시 정원은 608명이었다. 1975년 필리핀에 매각된다.

이 배의 원래 이름은 '돈 술리피치오 호'였고 개조를 거치며 정원이 1189명으로 확장되었다. 

1979년, 이 사고 전에도 이 배는 이미 한 번 더 화재로 배가 반파되는 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이 배는 도냐 파즈 호로 개명한 뒤, 부활. 1981년부터 재운항한다. 탑승 인원도 1450명으로 증가되었다.

사고가 벌어진 날엔 정원의 3배를 초과한 4388명이 탑승했다. 이는 이 배의 소유주인 '술피치오'社가 불법으로 암암리에 표를 계속 팔았기 때문.

사건 당일, 도냐 파즈 호는 필리핀에 수도로 떠나고 있었고 승객 대부분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밤 10시 반쯤, 8800톤의 휘발유를 적재한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 폳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폭발로 인해 배에 화재가 발생했고, 근처 바닷물도 이 여파로 물이 뜨거워진다.

무려 4000명이나 되는 인원이 탑승한것이 의아한 사람이 있을텐데, 사람이 이리도 많은 이유는 대충 구석에 틀어박혀 잠을 자는 표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사망자 대다수는 필리핀 국민이었다. 당시 승선객이 너무 많아 탑승을 포기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도 있었다.

이후, 이 배의 병크가 속속 발굴되기 시작한다.

1.구명조끼가 들어있는 곳은 자물쇠로 잠겨있다.

2.선장한 자기 방에서 TV로 야X를 보고 있었다. 다른 승무원들도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다 놀라 우왕좌왕했고, 그들은 대부분 죽었다. 꼴좋다

3.배 모니터를 지키던 선원은 수습선원 1명뿐.

4.폭발이 일어나자 선원들이 당황하여 공지도 없이 전원을 차단하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뭐병. 암흑천지에서 사람들은 도무지 손 쓸 바를 몰랐고 당황한 인파속에서 압사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5.겨우 탈출해도 구명정도 없었고, 승객들은 불타는 바다에서 화상을 입고 숨졌다. 더 끔찍한 점은 이 바다는 상어가 가득한 점.

6.다른 배인 벡터호는 운항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선박이었고 자격을 갖춘 선원도 0.

이 쯤되면 생존자가 소수라도 존재하는게 기적일 정도.

도냐 파즈호에선 전체 승객 4388명중 무려 4364명이 사망. 생존자는 불과 24명이었다. (0.55%), 벡터 호에서는 13명 중 11명 사망. 생존자 2명. 총 합쳐서 4375명이 숨졌다.

사망자 수 2위는 2002년 르 줄라호 침몰사고의 사망자가 1863명 정도니 이 기록은 넘사벽. 두 사건의 사망자 수 차이는 무려 2512명. 선박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으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9400여명이 사망한 빌헬름 구스틀로프 사건이나 5000여명 내외가 숨진 우키시마호 사건도 사건도 있지만 두 사건 모두 전시였기 때문에 전시 상황에 발생한 사건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후 상어들이 몰려와 시체를 먹어치워 수색대들은 총으로 상어를 쫒아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시체는 대부분 훼손이 심했다고 한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어둠 속에 바깥으로 겨우 나와도 구명정도 아무 것도 없이 그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유조선이 폭발하면서 가솔린이 근처 바다를 뒤엎어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했을 정도로.
벡터 호나 도냐 파즈 호나 선장 및 승무원이 거의 사망해 두 선박업체와 감사에 소홀히 한 정부기관을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벡터 호 승무원 2명도 화상으로 죽을 지경을 헤매다 살아난거고, 땜질고 고용된 가난한 임시직 승무원이라 이들을 막연히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사고였기에 당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방송을 해야했고 보상금으로 2500만 페소(한화 약 6억원)를 지급했다. 필리핀에선 큰 돈이지만 보상금이라기엔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 점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연히 슐피소와 벡터 호 소유자, 세계 굴지의 정유회사 중 하나인 칼텍스 그룹에게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유족들은 1999년에야 승소했다. 무려 12년 후에야.
어찌보면 국내의 세월호 사건과도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일본산 배였고, 선장과 선원의 병크로 많은 생명이 희생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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