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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구원 (1)
게시물ID : readers_168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렇기에
추천 : 2
조회수 : 31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0/26 02:26:49

 옅은 어둠 속에서, 불현듯 너무 오랫동안 자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잠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주변 분위기를 예민하게 살폈다. 오늘따라 햇살은 내 방의 가장 어두운 곳까지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급히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825. , 맙소사.

 

 회사 출근은 830분까지다. 나는 이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야하나 말아야하나, 밥은 뭘 먹어야 하나, 옷은 뭘 입어야하나 같은 평소에 하던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점이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뾰족한 대상을 갖춘 원망이 아니었다. 나와 내 주변 모든 것들에 대한(알람을 담당한 휴대폰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저주였다.

 

 830분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장염에 걸렸다고 하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2년 전에 심한 장염을 앓아본 일이 있었다. 어찌나 장이 민감했던지 물만 마셔도 화장실에 가서 배를 부여잡고 앉아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때의 경험을 잘 떠올리면 어떻게든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단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뒤에 떠올린 모든 변명꺼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게는 지금 내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 곧 진실이 부족했다. 하지만 더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 어떤 변명이든 출근시간 전에 회사에 알렸더라면 어느 정도 믿음을 줄 수 있었겠지만, 출근 시간이 지나버린 이 시점에서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히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렸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있었던 현실감을 잃고 나니 오히려 일말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모든 것을 관조적으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그러한 안도감이었다. 모든 것. 나는 내가 포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취직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내 인생 자체, 그리고 나의 존재 이유 이기도 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절망감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시간은 910.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전화를 받기 전, 나는 꼭 말해야하는 몇 가지 단어를 추스르고, 목을 가다듬었다. "여보세요?" 목이 잠긴 목소리가 나왔다. "진수씨? 나야." 이 목소리는 재은 선배다. 사무실에 드물게 있는 여자, 그리고 천사역할의 선배였기 때문에 선배가 내게 전화를 해줘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 있어? 아직 까지 출근을 안했네?" 나는 변명거리를 못 찾았고 결국 늦잠을 잤다고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성격답게 조용한 소리로 웃었다. "그럼, 오후 출근으로 해 둘 테니까 좀 있다 봐."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이토록 간단히 해결해준 선배가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말야, 진수씨 생각보다 잠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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