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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도서관 안 문댄서 -6-
게시물ID : pony_902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타초콜릿
추천 : 3
조회수 : 288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6/03/30 23:37:59



오랜만에 올립니다!



도서관 안 문댄서 -6-





이제는 때가 되었다. 시크릿 크러쉬는 생각했다. 오늘이 아니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문댄서가 개강을 하기 전 마지막 스터디였다. 오늘은 그녀가 개강을 하고 난 뒤 스터디 시간을 언제로 바꿀지 재 조정하는 날 이었다. 또한 오늘 그의 생각을 그녀에게 전할 것이다. 만약 오늘 문댄서가 나오지 않는다면 스터디는 끝이라는 소리였다. 시크릿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 사실이 두려웠다. 느닷없이 스터디 중간에 나간 문댄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다음 스터디 때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시크릿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어지럽게 널부러진 책들은 수레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제 남은 일은 수레에 담긴 책을 책장에 정리하는 일 뿐이었다. 

 

"안녕, 캔디! 좋은 아침이야!"

 

시크릿은 부엌에서 만난 캔디를 보며 밝게 인사했다. 그녀는 컵에 우유를 따르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징그럽게 왜 이래. 뭐 잘못 먹었어?"

 

시크릿은 다짜고짜 캔디의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올리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우리 사랑하는 동생을 보니 기뻐서 그렇지."

 

캔디는 당황하며 옆구리를 잡은 그의 발굽을 떼어내려 공중에서 발버둥쳤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안놔? 마법 고자 주제에!"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한채 소리내어 웃으며 계속 제자리를 돌았다. 그가 캔디를 바닥에 내려놓자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비틀 거렸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더니 시크릿을 노려봤다.

 

"이런...!"

 

욕설이 튀어나올 뻔 한 캔디는 멈칫했다. 시크릿은 여전히 입이 귀에 걸린 채 활짝 웃고있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어?"

 

그녀의 물음에 시크릿이 놀란 시늉을 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니?"

 

캔디는 그의 반응에 짜증난듯 미간에 주름이 팍 생겼다.

 

"제발 부탁이니 그 기분 나쁜 웃음 좀 거둬줄래?"

 

시크릿은 오히려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캔디의 발굽에 들린 우유 잔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 오늘 스터디 하는 포니에게 고백하려고 하거든!"

 

시크릿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스터디...? 저번에 만난 네 첫사랑?"

 

"맞아."

 

시크릿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고백하기로 했다고? 네가? 진짜?"


캔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평소에 보아온 오빠에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고백은 커녕 좋아하는 포니에게 제대로 말이나 걸 수 있을까.


"그래. 무조건 말할거야, 무조건!"

 

"뭐, 잘해봐. 그 포니도 널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캔디는 저주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을 했다.

 

"오, 그건 걱정마 동생아. 난 확신할 수 있거든. 문댄서도 날 좋아하는게 분명해!"

 

시크릿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결심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크릿은 몰래 연습했던 수많은 근사한 고백 대사들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읽고있는 연애 비결서도 참고할 생각이 없었다. 그 어떤 겉치레 말도 필요없다. 그저 12년전 부터 계속됐던 그의 진심을 말하기만 하면 됐다. 긴장이 되지 않는다고 허세를 부릴 순 없지만 적어도 두려운 마음에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크릿은 책상에 포장지로 포장된 물건 하나를 챙겼다. 그 내용물은 첫 스터디에서 그녀와 함께 공부했던 스타스월의 책이었다. 그는 그 책을 문댄서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문댄서의 미소를 되찾게 해주고 문댄서와 다시 만나게 해준 행운의 물건이었다. 그 때 당시 자신이 얼마나 기뻤는지 진심을 전하고 싶은 기념으로 선물을 하기로 했다. 그의 아버지가 보면 놀라 기절하겠지만 이번 만큼은 부모에게 반항을 해서라도 자기 뜻대로 하고 싶었다.

 

"가볼까."

 




시크릿은 스터디룸에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가져온 선물은 가방에 넣어두고 평소에 스터디를 하는 것 처럼 공책과 책을 책상위에 펼쳐두고 있었다. 가장 적당하다 생각하는 타이밍에 책을 선물하며 고백을 할 생각이었다.

 

고백.

 

시크릿은 문득 이 단어를 당연스레 사용하는 자신이 신기했다. 옛날에는 이 단어를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만 해도 어색했다. 고백이란건 이제까지 상상에서나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상상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문댄서에게 멋지게 고백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현실은 거울속에서 고백하는 연습을 해도 안면 근육 전체가 굳어버릴 정도였다. 연습은 몇번 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실제로 해보겠다는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학창시절에도 말하지 못했고 사서일을 하면서도 말하지 못했고 최근 스터디를 하면서도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말하고 싶다는 갈등과 충돌해 괴로워했다. 어제 미뉴엣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평생 이런 한심한 고민이나 했을 것이다. 어제 대화를 통해 문댄서는 시크릿을 초등학교 때 부터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알고 있는 것 뿐 아니라 시크릿이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있었다. 그는 몰랐지만 심지어 학교에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고 했다. 그리고 문댄서는 시크릿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문댄서는 어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2년동안 도서관 사서일을 하고 스터디를 하고 있던 포니가 사실은 자신을 좋아하던 포니였단걸. 한 가지 분명한건 이제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문댄서도 자신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잃을게 뭐가 있겠는가? 끝까지 어물쩡 거려봤자 서로가 답답할 뿐이었다.

 

이제 중요한 건 문댄서가 오늘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문댄서가 오늘 오지 않는다면 고백도 그렇고 스터디나 그녀와의 인연마저 끝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반대로 오늘 오게 된다면 이러나 저라나 시크릿에게 어느정도 마음이 있다는 뜻이었다. 시크릿은 그녀가 올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명확한 이유에 대해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느낌이 분명 그러했다.

 

문댄서는 언제나 그러하듯 약속시간에 정확히 나타났다. 하지만 스터디에 올 때 항상 똑같은 모습이었던 그녀의 모습이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시크릿은 순간적으로 다른 포니가 들어왔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크릿은 그녀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시간이 멈춘듯 문댄서를 바라봤다. 문댄서를 보자마자 시크릿은 과학 실험실 때 그 문댄서를 떠올렸다. 짧고 단정한 일자로 된 앞머리, 수줍음과 순수함이 담긴 눈동자가 시크릿을 그 때 문댄서를 처음 봤을 때로 되돌아가게 만들었다. 긴장하고 울먹이던 자신을 발굽을 잡아주며 위로하던 문댄서가 바로 지금 눈 앞에 있는것 같았다.

 

"아, 안녕."

 

문댄서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머리스타일부터 안경을 벗은 모습, 단정한 털까지 모든게 달라졌으니 시크릿 만큼이나 자신의 새 모습이 낯선듯 듯 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스터디 룸 안으로 들어와 시크릿의 맞은 편에 앉았다. 문댄서는 시크릿과 시선을 마주칠 수 없어 그녀의 발끝만 쳐다봤다. 그녀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말을 꺼내진 못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시크릿 이었다.

 

"머리... 정리했네. 안경도 벗고."

 

시크릿은 여전히 문댄서의 모습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 어... 한 번 정리했어. 털도 빗고 옷도 새것으로 입고... 2년만에 처음으로. 하하."

 

문댄서는 자신의 앞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예쁘다."

 

시크릿의 칭찬에 문댄서는 당황한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뺨에는 붉은 빛이 감돌더니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워."

 

그녀의 미소에 시크릿은 행복감이 벅차올랐다.

 

"저번엔 미안했어. 갑자기 뛰쳐나가서 놀랐지?"

 

문댄서는 조금씩 시크릿과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조금. 사실 난 문댄서 네가 다음 스터디부터 안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었어."

 

"아냐, 시크릿. 그건 절대 아니었어."


"정말?"

 

"그 때는 네 이름을 듣고 놀라서 설명할 겨를 없이 나왔어."

 

"그래..."

 

시크릿은 '놀랐다'는 의미가 그가 생각하는 의미이길 바랬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문댄서는 그저 조용히 책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크릿은 고백을 하겠다는 결의로 가득찼지만 가장 적절한 때가 어느 때인지 알지 못했다. 스터디를 하다 중간에 갑자기 고백을 하는 상황도 뭔가 좀 이상했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다간 굳은 결심이 풀어질까 두려웠다.

 

지금. 시크릿은 지금 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미루기만 하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긴 싫었다.

 

"사실..."

 

침묵이 깨지자 문댄서는 살짝 놀라 고개를 올려 시크릿을 봤다.

 

"오늘은 스터디보단 문댄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막상 고백을 시작하려니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시크릿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심장소리가 목구멍에서 울려퍼졌다. 시선은 길잃은 아이처럼 헤매기 시작했고 머리속은 좀 더 준비가 되면 할 걸 하는 후회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고 시크릿이 실감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 할 순 없었다. 극복할 순 없어도 참고 견디면 됐다.

 

"뭔데?"

 

문댄서가 조용히 물었다. 시크릿 만큼이나 그녀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시크릿은 쉼호흡을 쉬었다.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난 너를 좋아하고 있어. 네가 알 지는 모르겠지만 과학 실험실 때 부터 네가 좋았어. 너와 꼭 친해지고 싶어서 학교에서 항상 너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겁쟁이라 그러지 못했어. 심지어 졸업하기 전 까지도. 그 이후로 한 번 이라도 널 만날 기회가 있을까 했는데 우연히 널 도서관에서 봤을 때 난 정말 기뻤어. 당장 네가 다니는 구역에서 도서관 사서를 지원할 정도로. 그런데도 겁쟁이인 나는 변하지 않고 너에게 말을 걸지 못했어. 유명 대학교 학생인 네가 사서밖에 안되는 날 무시하진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 기억도 하지 못하지 않을까 계속 걱정만 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어. 설사 말을 걸어봐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말도 나오지도 않았어. 더 이상 가망없다고 사서를 관두자고 생각했을 때 문댄서 네가 내 책을 관심보이며 말을 걸었지. 나는 그 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용기내어 네게 스터디를 제안했어. 너와 스터디를 하며 몇달간 보낸 이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니와 친해질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내 보잘것 없는 능력을 인정받은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예전에 못했던 말을 전하고싶어."

 

시크릿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마지막 문장을 말했다.

 

"난 널 좋아해."

 

시크릿은 살며시 실눈을 떴다. 고백이 끝나면 세상이라도 멸망할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외로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후련한 느낌보단 긴장감만이 더 고조되었다. 고백을 했을 때 두려운것은 했을 때가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할 때였다. 

 

문댄서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저 속에는 어떤 생각들로 가득차 있을까 시크릿은 예측도 할 수 없었다. 문댄서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이 시선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성공할거란 자신감만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자신감이 오만함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문댄서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슬픔과 기쁨이라는 모순된 감정이 보였다.

 

"왜 나같은 걸 좋아한거야?"

 

'나같은 것'. 시크릿은 그 단어에서 그녀의 눈에 비친 슬픔의 의미를 찾았다.

 

"나같은 건 공부밖에 모르고 포니들과 친하게 지낼줄 도 모르고 신경질 적이고 못생겼는데."

 

"절대 아냐."

 

시크릿이 곧바로 반박했다.

 

"넌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 예뻐."

 

시크릿이 말했다. 너무나 진부한 문장들이라 자신마저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멋진 고백 문장을 보고 왔어야 했나. 진심만으로 모든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게 뭐야."

 

문댄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냐 난 진심으로 하는 얘기라고."


"알았어. 고마워."


그녀의 눈에서 슬픔이 사라지는 걸 본 시크릿은 진심이 통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는 여전히 심장이 날뛰었지만 목 뒤에서 울리는 기분나쁜 박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을 편한하게 해주었다.

 

"정말... 나 때문에 사서가 된거야?


문댄서가 물었다.


"맞아."


"그러면서 2년이 넘도록 내게 말도 못걸었다고, 바보야?"


문댄서가 말했다. 시크릿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 말은 뺄걸 그랬나.


"사실 몇 번 말은 걸어봤는데... 다 네가 무시했잖아."


"무시할 만 하지! 난 무슨 술 취한 포니가 말 거는 줄 알았다니까."


문댄서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시크릿은 따라웃고 싶었지만 그에겐 여전히 뼈아픈 기억이라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술취한 포니라니... 그렇게 이상했어?"


"완전! 가드를 불러야 할까 말까 고민할 정도였다니까."


"너무해."


시크릿의 귀가 축 처지자 문댄서는 더 크게 웃었다.


"그럼 스터디 내내 했던 이상한 행동들도 다 날 좋아해서 그런거였네?"


"이상한 행동이라니?"


시크릿이 묻자 문댄서는 씨익 웃으며 그의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았다. 그녀의 몸이 시크릿에게 닿자 그는 눈이 커지며 어깨를 움츠리며 얼어붙었다. 꼿꼿하게 석상처럼 굳어버린 그를 올려다보며 문댄서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거."


시크릿은 이내 어깨에 힘을 뺐다.


"그래. 내가 그랬지."


"정말이지 남자가 그렇게 소심해서야 되겠어?"


시크릿은 문댄서와 마주 봤다. 그를 놀리는 문댄서를 보니 왠지 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모습에 금세 정신이 팔렸다. 그가 조금만 얼굴을 가까이 대도 그녀와 맞닿을 거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 얼어붙어서야..."


시크릿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입술이 문댄서와 맞닿은 후였다. 머리를 움직였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시크릿은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혔다. 문댄서는 그 자리에 꼼짝도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멈춰서 있었다.


"아, 아니. 저기 이건."


시크릿이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그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스터디 룸 주변을 배회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지나칠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시크릿은 차마 문댄서를 볼 수 없어 유리 밖 복도를 보았다. 시선은 복도를 향했지만 그 풍경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해석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용기가 나 그런 대범한 짓을 하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통제가 불가능한 완전히 계산밖의 행동이었다.


머릿속이 주전자처럼 끓어올라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명확하게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문댄서와 키스를 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 강렬하여 머릿속에는 그 외 모든 생각들이 희미해져 버렸다.


시크릿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문댄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문댄서..."


"어?"


문댄서가 그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미안해. 내가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자, 잠시 미쳤었나봐."


시크릿이 사과했지만 문댄서는 여전히 반 쯤 정신이 나간듯 했다.


"아냐, 아냐."


그녀는 초점없는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문댄서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크릿은 이상하다 생각해 문댄서에게 다가갔다.


"너 괜찮니, 문댄서?"


문댄서는 이번에는 대답없이 짧게 고개를 두세번 끄덕였다. 시크릿이 문댄서와 마주 앉자 그녀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그를 쳐다봤다.


"어? 뭐가?"


"방금 전 내가 한 얘기 기억해?"


문댄서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었다.


"얘기? 무슨 얘기?"


문댄서도 시크릿 만큼이나 혼란스러운 듯 했다. 시크릿은 문댄서가 정말 모르는지 모르는 척 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시크릿은 피식 웃었다. 남자가 소심하다느니 어쩌니 떠들던 포니가 저런 반응을 보이니 조금 우습긴 했다.


"저기 말이야."


문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그녀에겐 아직 의문이 남아있는 듯 했다. 시크릿은 긴장한 듯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아직 시크릿의 고백에 확답을 해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꾸만 확인하려고 하는게 무엇일까. 무엇이 그녀를 자신있게 수락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뭔데?"


"날 왜 좋아하게 된거야? 아무것도 보잘것 없는 나에게. 나는 학교에서 포니들이 내 이름이나 기억해줄까 했는데."


그녀 또한 시크릿처럼 비관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시크릿은 거기에 대한 확답을 줄 수 있었다.


"옛날에 기억해?"


시크릿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언제?"


"옛날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학교에서 발표 수업을 하고 우린 한 조가 되었잖아."


문댄서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의문을 표했다.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건가. 시크릿이 생각했다.


"그 때 우리끼리 발표 준비를 했었잖아. 네가 보고서를 쓰고 내가 발표 준비를 맡았고. 우리 모두 서로 열심히 준비했잖아. 근데 막상 발표할 때가 되니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떨기만 했어. 함께 열심히 했는데 나 하나때문에 너까지 망치게 될까봐 꼴사납게 눈물까지 나올 지경이었어."


문댄서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시크릿은 말을 이어갔다.


"그 때 네가 내 발굽을 잡아주며 긴장하지 말라고 웃어줬잖아. 난 그 때 봤던 네 미소가 평생 잊혀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 때 부터 널 좋아하게 됐던거야. 도서관에서 널 다시 봤을 때 비록 내가 알던 모습과는 달라져 있었지만 분명 그 안에는 그 미소가 남아있을거라고 생각했어. "


너무 오래된 얘기고 특별할 것 없이 지나간 일이라 문댄서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시크릿은 그래도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었다. 그녀는 학교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무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포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오히려 문댄서는 보잘것 없던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포니였다. 시크릿에게 그녀는 모든 것 이었다.


문득 시크릿은 문댄서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표정이 지나칠 만큼 싸늘하게 변해갔다.


"그거 트와일라잇 스파클이야."


문댄서가 표정 만큼이나 차갑게 말했다.


"어?"


시크릿은 갑작스럽게 나온 제 삼자의 이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 했지만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게 무슨..."


"그거 내가 아니라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라고."


그녀가 폭발하듯 고함을 질렀다. 시크릿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아냐, 그, 그건 분명 너였어."


시크릿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비해 문댄서의 목소리는 분노로 확고했다.


"내가 똑똑히 기억해. 그거 1학년 때 했던 진자운동실험에 관한 발표 수업이었잖아. 난 그 때 분명 트윙클 샤인과 한 조였어. 그리고 트와일라잇은 발표 날 오줌 지릴 정도로 떨고 있는 수컷 유니콘과 한 조였고. 그게 바로 너라고!"


그녀의 커져가는 목소리만큼 분노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시크릿은 그녀의 시선에 몸이 얼어붙다 못해 녹아버릴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는 서둘러 기억속을 찾아 헤맸다. 그가 이제까지 추억이라고 간직 했던 기억이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랬던거야? 이제껏 스파클이 나 인줄 알고 날 좋아했던거야?"


문댄서가 쏘아붙히듯 시크릿을 노려보며 말했다. 시크릿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확신을 갖고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섣불리 변명을 건냈다간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질것이다. 그는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눈물이 맺힌 건 그가 아닌 문댄서의 눈동자였다.


"아냐, 난 정말로..."


시크릿이 눈물을 글썽이는 문댄서를 보며 다급하게 말했지만 그 뒤를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문댄서가 입꼬리를 올리며 건조하게 웃었다.


"그럼 그 때 그 포니가 나였다는 걸 확신할 수 있어? 그 하찮은 추억에 의존하지 않고?"


시크릿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혼란스러워 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난... 난..."


"것 봐. 그럴 줄 알았어."


문댄서는 마법으로 책상에 펼쳐진 책과 공책을 스터디룸 벽으로 집어던졌다. 날아간 책들은 벽을 맞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떨어졌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온 힘으로 참아냈다. 하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천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또. 또 트와일라잇이야. 2년전에도. 지금도. 지긋지긋하게 날 따라와 괴롭히고 있어!"


문댄서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처럼 위태로웠다. 


대체 어디서 부터가 잘못된 거였을까. 그는 그저 그의 진심을 전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대체 트와일라잇 스파클이라는 포니가 왜 그녀와 자신 사이에 끼어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녀를 진정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자신이 과연 할 수 있을까. 시크릿 자신도 진정하지 못한 마당에.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문쪽으로 걸어갔다.


"자, 잠깐! 가지마, 문댄서."


시크릿은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돌리지 않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그냥 혼자서 공부나 할 걸 그랬어."


문댄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닫히는 문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제 다시는 안만나. 그 누구와도."


시크릿은 스터디룸 안을 봤다. 그에게 남은건 벽에 널부러진 책과 공책들, 그리고 가방안에 그가 준비한 선물상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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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이 아마 마지막 편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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