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소와의 전쟁이다. 아니, 박스와의 전쟁인지도 모른다.
지난해부터 부쩍 가열되고 있는 국산 과자의 과대포장 논란은 진화되지 않는다.
한 제과 회사의 회장이 과자포장지 제조회사의 최대주주로 드러나면서
과자를 포장해 파는 것인지, 포장에 과자를 넣어 파는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졌을 정도다.
그러나 제과 업체들이 점점 더 커지는 박스와 작아지는 과자를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3월 말 SBS 뉴스에서 취재한 제과 업체 관계자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포장재를 안 쓸 수 없다. 깨진 게 나오면 좋겠느냐. 과대포장이라고만 몰아가면 개발 의욕이 떨어진다.”
즉 포장재는 과자를 보존하기 위한 선의의 장치라는 점을 이해하면
제과 업체들이 아마존의 나무들을 없애고 지구 환경을 해쳐 가며
종이 박스와 폴리프로필렌 봉지를 마구 사용한다는 오해는 풀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즈>에서는 과대포장으로 억울하게 오인받는 대표적인 과자 7종을 분석함으로써
과자 포장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로 했다.
오리온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 (3,000원)
지난 1월 컨슈머 리서치가 조사한 ‘과자별 빈 공간 비율 순위’에서 영예의 1위를 차지한 제품이다.
15×9.5×5(단위: cm)의 박스 부피(포장 용적)가 712.5c㎥이고 약 3.8×3.6×1.7의
브라우니 4개의 총 부피(내용물 체적)를 95.6c㎥라고 할 때,
브라우니가 박스에서 차지하는 공간을 백분율로 계산(712.5:95.6=100:x)하면 약 13.41%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86.5%의 공간 활용을 살펴보면,
1982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 당시 여성 고객들을 위한 박스 런치 디저트로 브라우니를 준비했던
팔머 하우스 호텔 안주인의 마음처럼 깨끗하게 먹을 수 있는 한 입 크기 브라우니를
하나하나 질소충전 포장해 종이 트레이에 얹음으로써 격식을 더했다.
종이 트레이의 한쪽에는 브라우니 2개 크기 정도의 범퍼를 설치,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완화하는 동시에
비스듬히 눕혀진 브라우니들의 컬러풀한 폴리프로필렌 포장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게다가 브라우니를 다 먹은 뒤 남은 트레이는 스마트폰 거치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
크라운 쿠크다스 화이트 (1,500원)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는 ‘fragile’이지만
요즘 흔히 쓰이는 ‘쿠크다스 심장(마음이 약하다)’, 혹은 ‘내 쿠크 다 깨짐(상처받았다)’ 등의 표현은
‘쿠크(다스)’야말로 부서지기 쉬운 존재의 대명사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딪힘이 적어야 한다.
부피 533.76c㎥의 박스 안 빈 공간이 유난히 큰 것은 바로 쿠키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 수 있는 이유다.
쿠크다스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이것만이 아니다.
쿠키의 길이가 8.2cm인 데 비해 폴리프로필렌 포장지 안쪽에 약 3cm의 추가 공간을 둠으로써
소비자가 쿠키를 부서뜨리지 않고 포장을 찢을 수 있도록 이중으로 배려했다.
보통 하나의 묶음으로 여기는 10개가 아니라 한 상자에 9개가 들어 있는 쿠키의 존재를 통해
때로는 가득 참보다 모자람이 더욱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11cm로 “더 길어진” ‘쿠크다스 쇼콜라’도 있다. 단, 한 박스에 6개 들어 있다.
오리온 마켓오 리얼 초콜릿 클래식 미니 (1,500원)
박스 겉면에 그려진 소년이 상체 크기의 초콜릿을 들고 있고,
투명창을 통해 비스듬히 누운 채 박스를 가득 채운 듯 보이는 초콜릿들이 시각적 포만감을 불러온다.
가로 15.5.cm의 박스를 개봉하면 11.8cm의 트레이가 외부에서 가해질지도 모르는 충격으로부터
초콜릿을 보호하는 한편, 8개의 초콜릿은 종이 포장에 다시 한 번 싸여 열로부터 보호된다.
또한 ‘미니’라는 제품명대로 부피 186c㎥의 박스에서
초콜릿이 차지하는 부피가 약 31.68c㎥인 이 제품에는 몇 가지 특별한 용도가 있다.
10 이상의 숫자를 세지 못하는 유아를 위한 놀이 및 교육에 사용할 수 있고,
한 개의 초콜릿이 8칸으로 구획 지어져 있는 만큼 다이어트 중인 소비자들이 한 칸씩 8회에 걸쳐 섭취함으로써
오랜 시간 동안 초콜릿의 맛을 즐길 수 있으며 이는 무인도에 고립될 경우에도 매우 유용한 특징이다.
책상 위 지우개 찌꺼기나 과자 부스러기를 모아 버리는 데 적합한 트레이는 덤이다.
롯데 아몬드 초코볼 (2,000원)
통아몬드 한 알이 초코볼마다 통째로 들어 있다. 그러나 포장은 훨씬 더 섬세하다.
초콜릿은 더울 때 녹아서 서로 달라붙기 쉬운 제품인 동시에 추울 때 서로 부딪혀 표면에 상처를 입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각각의 초코볼에 개별적 공간을 허용해 칸막이를 만든 트레이의 친절한 거리감은
마치 파티션으로 서로를 차단한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가로 2cm, 세로 3cm의 공간 안에 초코볼을 가득 채우기보다 널찍한 여유 공간을 둠으로써
불시의 열기로 녹더라도 넘치지 않고 소비자가 한 개씩 꺼내 먹기 편하도록 설계했다.
초콜릿이 총 12개이므로 어린이에게 ‘다스’ 단위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며,
다 먹고 난 트레이는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보관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면 좋다.
롯데 빠다코코낫 (1,200원)
빠다코코낫은 1979년 최초로 출시된 이후 36년째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오랫동안 은색 폴리프로필렌 포장지로 익숙했지만 현재는 비스킷 24개가 2봉지로 소분되어 616c㎥ 부피의 박스에 담긴다.
빵이나 케이크류와 달리 건조하여 쉽게 부서지는 비스킷의 특성상 약 51%의 빈 공간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폴리프로필렌 포장지에는 양쪽 1cm 너비의 톱니무늬 날개가 달려 있는데
이는 포장을 뜯기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각 봉지 간의 충돌을 막음으로써 비스킷을 보호한다.
그러나 유사한 특성을 지닌 제품인 오리온 마켓오 리얼크래커 초코의 경우 크래커 12개를 2봉지 소분 포장함은
물론 크래커의 3면을 안전하게 둘러싼 트레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포장계의 혁명을 이뤄냈음을 감안할 때
빠다코코낫의 분발이 요구된다.
해태 계란과자 (2,000원)
부피 1185.6c㎥의 박스를 기준으로 과자의 부피는 3분의 1에 조금 못 미친다.
그러나 냄새, 색깔, 맛이 없는 질소는 제품의 신선도를 보존하는 동시에 완충재 역할을 하고,
공장에서의 출고 이후 유통 과정에서의 수많은 충격에 의해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는
계란과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량의 질소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박스 안쪽 QR코드를 통해 경품 행사에 응모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일종의 복권을 구입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실망할 일도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계란과자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식 라이센스를 받고 들여온 앵그리버드 그림이 그려진 박스와 상당량의 질소, 약간의 계란과자를 얻을 수 있으면서
넥서스 7, 백팩, 앵그리버드 피규어를 받을지도 모르는 희망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단, 5만 원 이상 경품 당첨자에게는 22%의 제세공과금이 부담된다.)
오리온 닥터유 다이제 토스트 (1,500원)
마이클 코어스 해밀턴 라지 백을 연상케 하는 쉐이프의 박스(일명: To Go Bag) 상단에
고리를 걸 수 있는 구멍이 있는 등 휴대성이 뛰어나 바쁜 도시인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높이 16cm의 박스에는 ‘TOAST’라고 적힌 높이 6.5cm의 식빵 모양 비스킷이 2개씩 2봉지 들어 있으며
포장 겉면에는 “토스트를 깔끔하게 즐길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토스트 사이즈를 예상했다가 개봉 후
혼란스러워할 소비자에게 제품의 토스트적 정체성을 친절히 안내한다.
케이스에 비해 비스킷 4개는 너무 단출하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 제품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좋다는 업체의 발표를 감안할 때
아침을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할 수 있으니 허기만 간신히 달래는 정도로 먹으라는 배려임을 알 수 있다.
유사한 맛을 지닌 다이제 초코(g당 가격 11.1원)에 비해 g당 가격이 20.8원임에도
비스킷의 하단에만 초콜릿을 코팅한 데서는 손에 초콜릿이 묻지 않도록 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동시에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이 초콜릿 묻은 데서부터 먹는 사람인지 안 묻은 면부터 먹는 사람인지 깊이 성찰해볼 기회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