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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신해철마저 잃어야하는가.
게시물ID : star_2595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8비트
추천 : 14
조회수 : 507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10/28 01:07:48
얼굴을 본 건, 단 한번. 5집 콘서트때였다. 그 외에는 말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다.
나는 당신의 시디를 몇 장 가지고 있고, 당신이 진행하던 라디오를 자주 들었다. 
앞날의 막막함에 대해 술김에 적은 내 글을, 당신이 방송에서 읽고는 답을 해준 적이 한번 있었다.
한쪽 뇌리에 선명한 그 날의 대답이 지금 내 머릿속을 얼핏얼핏 스친다.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겉돌기 일수 였던 사춘기시절.
내밀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던 그때에
당신의 방송을 만났다.
그 속에서 당신은 재미있고, 실없고, 진지하고, 유쾌하고, 현명하고, 이기적이고 매력적이었으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말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말하는 방식을 훔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따라하고, 
논리를, 철학을, 엿들으며 걸음마 하듯 배웠다.
나의 언어의 절반은 당신에게서 왔다.

당신의 말을 배움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격적이던 말투도 잦아들고, 좋은 친구들도 만들게 되었다.
당신을 따라 책도 읽고, 
세상을 겪고, 
나이를 먹고
당신의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되었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싫어지진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고마움이 더 크다.

당신이 만든 음악
당신이 나오는 방송 
당신의 말
당신의 책
들을, 전부는 아니지만 챙겨보았고.
이전만큼은 아니여도.
당신을 따라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웃겠지만, 당신은 나의 친구이자 식구였다.
따라가고 싶은, 큰형 같은 존재였다.
언제까지나 내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성취를 이룩하면서 
앞서있기를 원했다.
창작자로서, 인간으로서.

그저, 당신이 밉다.
나는 당신마저 잃어야 하는가.

나는 신해철이라는, 내 친구를 이렇게 일찍 잃어야 하는가.
내 앞에, 더 오래, 다가가야 할 목표로 있어주길 원했다.


모르겠다. 
그저, 서글프고 황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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