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둑'(극본 황진영)은 인기 드라마 제조기인 김진만 PD와 진창규 PD가 연출을 맡은 30부작 월화 드라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홍길동인데 우리가 잘아는 양반집 서자로 태어나 신분제의 모순 앞에서 좌절하다가 의적이 되어 율도국을 세운 그 홍길동이 아니다. '역적' 홍길동은 아모개라는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출신부터가 천민인 존재다. 원작을 비틀면서 일종의 조선판 메시아니즘인 아기장수 설화와 결합한 줄거리다. 여기서 홍길동은 연산군에 맞서 백성들을 조직한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어쨌든 양반집 자제다. 벽초 홍명희도 '임꺽정'을 저술하면서 임꺽정 집안에 양반 하나를 집어 넣는다. 연산군 시대에 간언을 하고 죽을 위기에서 함경도로 도망친 이교리는 백정 양주삼의 딸 봉단이와 결혼한다. 중종 반정으로 다시 벼슬로 복귀한 이교리는 백정의 피가 흐르는 봉단을 정실로 삼는 의리있는 남자로 그려진다. 봉단은 임꺽정의 당고모였다. 물론 양반의 피가 임꺽정에게 섞이지는 않았지만 월북한 인민작가 홍명희도 계급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셈이다. 심지어는 대장금 드라마에서 장금이에게도 양반의 피가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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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역의 윤균상과 연산군 역의 김지석 |
이처럼 한국에서 개혁 혹은 입신양명은 양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뿌리깊은 계급의식이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반영된다.
이문열은 1979년 동아일보에 중편 '새하곡'으로 등단하는데 이 소설은 군대내의 사병간 혹은 사병 장교간의 권력 및 서열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병장은 육사를 다니다가 제적당해 사병으로 입대한 인물이다. 이문열의 이후 세계관을 짐작할 수 있는 초기 작품이다. 개혁도 사병 같은 무지렁이 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해야 된다는 의식이 담겨 있고 이것은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 소설에서조차 극복 못하던 부분이었다. 민초는 그냥 지배 엘리트들 혹은 지배 엘리트의 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홍길동이나 ‘강병장’같은 이들의 지도를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우리가 자랑하는 동학혁명의 기원도 교조 신원운동으로부터 시작했겠는가? 혁명의 대상으로서 극복해야 할 왕이 아니라 억울함을 풀어주는(신원)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로 왕을 생각했다는 것이 동학혁명의 씁쓸한 면이다.
그런데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은 다르다. 양반의 피는 조금도 섞이지 않았고 연산군을 향해 "어이~ 이융"이라고 부른다. 한국 사극에서 천민이 왕을 향해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처음일듯하다. 한국의 오랜 계급 콤플렉스를 깬 작가와 PD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A급이라 할만한 출연자가 없다는 점도 계급 콤플렉스를 염두에 둔 캐스팅으로 보인다. 30부작이라면 방송사에서 꽤 신경을 쓰는 드라마일터인데 간판급 연기자 없이 드라마를 만드는 모험을 했다. 장녹수 역의 이하니와 아모개역의 김상중 정도가 A급일 뿐 아직 연기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윤균상에게 주인공 홍길동 역을 맡겼다. 그밖에 홍길동의 측근 동료들로 나오는 조연급들도 거의가 무명 배우들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역적 홍길동처럼 '민중'들로 드라마를 제작한 셈이다.
한국 진보언론의 계급 콤플렉스
요즘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진보'로 분류되는 언론들의 '문재인 까기'에 갸우뚱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처럼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문재인은 심상정과 함께 그나마 진보를 대표하는 대선주자다. 진보언론이라고 해서 진보 후보를 밀 필요는 없지만 (보수 언론은 노골적으로 보수 후보를 잘도 미는데 진보 언론의 기계적 중립은 거슬리지만 그 논의는 일단 제쳐두고) 문재인을 향한 더 가혹한 논조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진보언론이라면 문재인, 심상정의 ‘우향우’를 비판해야 하는데 지금의 비판에는 그 부분은 빠져 있고 난데 없이 ‘패권’, ‘확장성’ 운운한다.
안철수가 분명 진보는 아닐 터, 진보 언론 뿐 아니라 안철수에게 기울어져 있는 일부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을 보면 후보를 향한 호 불호를 떠나 논리적 인과관계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계급의식과 엘리트 주의가 비문 반문의 실체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 야당의 분열사는 1950년대 후반 민주당 구파와 신파로부터 시작되었다. 4.19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의 구파에는 대통령 윤보선이 있었고 신파에는 총리 장면이 있었다. 김영삼은 구파에서 김대중은 신파에서 정치를 배웠다. 이 둘은 훗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수장이 되면서 정치 세력들이 양강 구도에 흡수된다.
제 3의 세력으로는 민주화 운동 세력이 있었는데 원로급으로는 문익환 장준하 백기완 등이 있었고 김근태 이부영이 그 뒤를 이었다. 동교동과 상도동은 선거철만 되면 민주화 운동 그룹에서 ‘선수’들을 수혈받았다.
조봉암 사형, 통혁당 관계자 일부 사형, 인혁당 지도부 8명 전원 사형으로 한국의 혁신세력이 붕괴되었다. 김철(김한길의 아버지)이 혁신 세력을 잇는듯이 보였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혁신을 외쳐야 할 전통 야당 세력이나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정치권의 ‘문법’ 안으로 편입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진짜 ‘패권’(친노 패권이나 친문 패권이 아닌)이 생겨났고 정치 공학적 판단이 한국 정치를 이끌게 되었다.
이 양대 세력은 언론으로부터도 많은 수혈을 받았다. 언론사들은 의도적으로 엘리트들을 정당 출입기자로 보내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풍토에서 노무현의 등장은 ‘듣보잡’의 출현이었다. 정통 운동권도 아니고 옛 민주당의 신구파 프레임으로도 분석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김영삼이 천거했으니 민주당 구파의 피가 흐른다고 할 수 있으나 그는 3당 합당 거부로 그 라인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야당이 갖고 있던 언론 인맥도 넘겨 받지 못했다. 동교동계와 연대해서 새천년 민주당을 만들었으나 여기서도 그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우여곡절끝에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2007년 기자실을 폐쇄하려다가 언론의 호된 공격을 받고 포기했다. 언론은 언론 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기자실 제도야 말로 기자 기득권을 유지하고 은밀한 거래가 오고 가는 공간, 발로 뛰기 보다는 앉아서 받아먹는 구시대의 작태 공간이었다. 문재인은 노무현에 비하면 더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언론과의 관계가 좋을 일이 없다.
결국 언론이 문재인에게 가혹한 이유는 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이며 예전같은 핫라인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한국 정치의 명문 사숙(私塾)같은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에 속하지 않은 데 대한 보복이고 운동권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서열주의가 반문 비문을 불러 왔다.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서조차 넘지 못했던 계급주의를 ‘역적’이 극복하고 있어서 보기 좋다. 언론들도 이제 변화 하는 상황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어차피 종이 신문은 수명이 다했고 지면을 통해 필력을 펼치던 엘리트들(논설위원이나 교수들)의 칼럼도 인터넷 논객들에게 밀리고 있다. 그 빈자리를 ‘근본도 없는’ 팟캐스트들이 대신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개가 친문성향이다. 지금 새 정권의 주요 매체가 무엇이 될 것인가를 두고 신흥매체와 구 매체가 일전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 언론에 비해 더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진보언론의 몸부림을 충분히 감안해도 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편’을 희생제물로 삼는 것은 비겁해 보인다. 그들이 누리던 ‘계급적 상위’의 단꿈에서 하루 빨리 깨는게 그나마 살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