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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두환, 박정희 사망 일주일 만에 12·12 “확고한 결심”
게시물ID : sisa_9035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바람처럼9
추천 : 3
조회수 : 52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22 16: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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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개 <5공전사>
▶ <한겨레>가 9권 분량의 <5공전사>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5공전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5공전사>는 박정희 사망 이후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며 만든 책입니다. 신군부가 편찬한 이 책은 신군부의 왜곡된 시각을 반영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자신들의 입으로 직접 밝힌 사료입니다. ‘승리자’에서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한 이후 그들이 해온 거짓말들을 그들의 말로 입증할 증거이기도 합니다. 책의 주인공은 전두환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회고록 정치’에 나선 전두환의 거짓말을 전두환의 책 <5공전사>로 진실 규명합니다.
“인마, 쏘지마! 네 아버지가 죽는다!”
1979년 12월12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응접실에서 정승화 총장을 인질로 잡고 있던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부) 허삼수 대령이 소리쳤다. 공관 2층에서 한 청년이 38구경 권총을 가지고 내려오던 중이었다. 건물 밖에서 불 켜진 응접실을 주시하고 있던 보안사령부(현 기무사) 박아무개 상사가 엠(M)16 소총으로 유리창을 박살냈다. 그리고 안으로 뛰어들어 총장 아들에게 총을 겨눴다. 청년은 2층으로 도주했다. “손들어! 빨리 나가자!” 총장에게 총을 겨눈 박 상사의 고함이 밤의 정적을 깼다.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제5공화국전(前)사>(이하 <5공전사>)엔 10·26과 12·12 및 5·17 쿠데타, 5·18과 관련한 긴박한 순간들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5공전사>는 국내 중견학자 8명이 참여해 당시 쿠데타 직간접 관련자 300여 명을 인터뷰하고 펴낸 책이다. 신군부의 시각으로 쓴 ‘승리의 기록’엔 거짓이 적지 않다. 쿠데타를 미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무용담 속엔 ‘진실’이 숨어 있다.
1979년 12월12일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왼쪽에서 다섯째)·노태우(넷째) 등 신군부 주축 세력은 이튿날 보안사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5공전사>
1979년 12월12일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왼쪽에서 다섯째)·노태우(넷째) 등 신군부 주축 세력은 이튿날 보안사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5공전사>
“12월12일 생일집 잔치에 오라”
정승화 참모총장 강제연행은 12·12 쿠데타의 서막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10·26사건)라는 돌발사태가 발생한 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참모총장인 정승화 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정 총장은 10·26 당시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 김재규의 초대를 받아 궁정동 안가 인근에서 중정 간부와 저녁식사 중이었기 때문이다. 합수본부는 10월29일부터 11월1일까지 정 총장을 사건의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전두환은 11월6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군이나 외부의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 총장의 10·26 관련 혐의를 부인한 것이다.
전두환의 ‘정승화 제거’ 사전 계획 하지만 <5공전사>를 보면, 전두환은 이미 11월 초에 정 총장의 ‘제거’를 결심한다. 그동안 11월 중순 이후부터 12월 초 사이로 알려진 것과 다른 대목이다. <5공전사>엔 “노태우 장군에 의하면 (10·26)사건의 수사를 완결하기 위하여 정 총장을 수사해야겠다는 합수본부장 전 장군의 결심이 이미 11월 초에 확고히 섰으며 다만 적절한 시기만 기다려 온 것”이라고 돼 있다. 전두환은 “11월 중순부터 계획에 포함된 요원을 한 사람 한 사람씩 불러 내밀히 임무를 부여하고 자체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기 시작했다”고 나와 있다. <5공전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치밀한 연행계획이 없이는 일의 성사는 어려운 것이었다”며 ‘사전 준비설’을 시인한다. 전두환은 보좌관 허화평 대령, 합수본부 조정통제국장 허삼수 대령, 수사국장 이학봉 중령, 그리고 평소 가까웠던 수도경비사령부 30단장 장세동 대령, 33단장 김진영 대령과 정 총장 문제를 논의했다. 이 책엔 “(정승화 총장 연행의) 전체 계획을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이 조정, 통제하여 전 장군께 보고드리는 형식을 취했다”고 돼 있다.
신군부는 <5공전사>에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연행 작전을 그림으로 자세히 묘사했다. <5공전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신군부는 <5공전사>에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연행 작전을 그림으로 자세히 묘사했다. <5공전사>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정 총장 강제연행은 ‘하극상 반란’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의 사전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것은 불법이다. <5공전사>는 합수본부 허삼수 대령 등이 저녁 7시께 총장 공관에 도착한 뒤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날 참모총장의 응접실을 방문한 육군 범죄수사단장 우경윤 대령이 인사 뒤 본론을 꺼냈다.
“(10·26사건을 조사하던 중) 김재규와 총장님 사이에 돈이 거래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정 총장은 “그런 일 없다고 했지 않아, 그런 일 없어!”라고 단언했다. “법적인 증빙자료를 얻기 위하여 온 것이니까 총장님의 육성으로 말씀을 녹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 총장은 “그러면 하지 뭐”라고 했다. “저희들이 아직 녹음 준비를 못 해왔기 때문에 저희들이 준비한 곳으로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정 총장은 ‘너희들 어디서 왔나?’라고 언성을 높였다. 허 대령이 “저희들은 대통령 각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라고 응수했다. 거짓말이었다. 허 대령 일당은 정 총장을 끌고 현관까지 나와 차에 태웠다. 그 와중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도착해 정 총장은 합수본부 수사팀에 넘겨졌다. 저녁 7시21분이었다. 강제연행에 걸린 시간은 17~18분에 불과했다.
 
 
(후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1801.html?_fr=mt1#csidxab3cf7caa417975b4b270b5c6b42c74
 
저놈들이 저지른 불법 쿠데타의 진상을 밝혀줄 이른바 비사라고 할수 있습니다.
일반인 들은 쉽게 접할수 없는 내용 입니다. 링크타고 가셔서 보시기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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